다음 순간 기숙사 데스크톱 모니터 속 주작 감별단 극성 포럼에 '가면 헌터의 발송 안테나 추적 IP 주소지가 대한 아카데미 기숙사 2동 구관으로 완벽히 검출되었다'는 빨간 줄 고지서가 부착된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척추뼈를 하나하나 적시며 흘러내렸다. 손끝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모니터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색 경고 창이 마치 나를 비웃는 붉은 눈동자처럼 보였다.
정체가 탄로 나는 순간 끝장이다.
‘아카데미 수석 입학생 윤진’이라는 이름 석 자가 저 주작 감별단 앰생 새끼들의 손에 쥐어지는 바로 그 찰나, 내 모든 눈부신 건물주 계획은 공중분해 된다. 시스템 버프는 영구 소멸할 것이고, 던전의 난이도는 지옥 밑바닥 수준으로 치솟아 나를 찢어발기려 들겠지.
평생 방구석에서 뒹굴거리며 후원금으로 산 빌딩 임대료나 받아먹으려던 내 야무진 꿈이, 저 조잡한 고지서 한 장 때문에 파탄 나게 생겼다.
“이 찐따 새끼들이 진짜 선을 세게 넘네…….”
이를 악물었다. 오프라인에서는 지나가는 길고양이 눈빛만 마주쳐도 갈 길을 잃어버리는 아싸 중의 아싸지만, 이 모니터 앞만큼은 내 홈그라운드다. 방구석 키보드 워리어들의 대가리를 깨부수는 법은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탁!
나는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서 검은색 액티베이터 가면을 꺼내 얼굴에 밀착시켰다. 가죽 특유의 뻑뻑한 감촉과 함께 시야가 좁아지자, 내면 깊숙한 곳에서 잠자고 있던 방구석 여포의 자아가 강하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추적을 해? 내 방구석 영토를 침범하겠다고?”
어림도 없지. 나는 즉시 스트리머 시스템의 어드민 패널을 뇌내 콘솔로 호출했다. 반투명한 푸른색 텍스트 창이 공중에 떠올랐다.
[시스템 명령어 입력 대기 중…….]
망설임은 사치였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피아노 건반 두드리듯 날카롭고 빠르게 휘감았다. 주작 감별단 놈들이 내 기숙사 방의 IP를 특정했다면, 그 특정된 경로 자체를 완전히 꼬아버리는 수밖에 없다.
“시스템, 다중 프록시 리라우팅 우회 쉴드 기동해.”
[명령을 확인했습니다.] [스트리머 전용 특수 방어 시퀀스: **‘다중 프록시 리라우팅 우회 쉴드(Multi-Proxy Rerouting Shield)’**를 작동합니다.] [※ 주의: 본 쉴드는 실시간 송출 상태에서 시청자들의 ‘의심 수치’와 동기화될 때 최대 효율을 발휘합니다. 강제 방송 송출을 시작합니다.]
징- 하는 고주파 소음과 함께 내 개인 채널의 방송 시작 버튼이 강제로 활성화되었다. 한밤중에 켜진 기습 방송이었지만, 내 채널에 대기 타고 있던 수만 명의 시청자들과 성좌들이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화면 한가운데에는 내가 실시간으로 가상 방화벽을 구축하는 듯한 화려한 네온사인 그래픽과 난해한 소스 코드가 어지럽게 흘러가고 있었다. 물론 실제로는 시스템이 알아서 우회 경로를 파고 있는 것이었지만, 겉보기에는 마치 90년대 할리우드 해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요란하기 짝이 없었다.
채팅창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 ㅋㅋㅋ 야야 주작 헌터 방송 켰다!! - 방금 주작 감별단에서 기숙사 2동 구관 IP 땄다고 하니까 바로 방어막 치는 거 보소 개추하다 진짜 ㅋㅋㅋ - 와 화면에 흘러가는 저 소스 코드 실화냐? C언어 기초 책에 나오는 예제 코드 복붙해 놨네 ㅋㅋㅋ 그래픽 티 너무 난다 새끼야! - **CG_Slayer**: 어설픈 프록시 우회로 날 속이려 들다니, 주작의 끝판왕이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다. 오늘 네 놈의 진짜 면상을 벗겨주마.
익숙한 닉네임이 보였다. 나를 주작러라 부르며 매번 훈수를 두던 성좌 'CG_Slayer'였다. 저 새끼는 오늘도 내 방송이 가짜 그래픽이라며 온갖 전문 용어를 섞어 선동질을 해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짖어라, 더 짖어대라! 너희가 나를 의심하고, 가짜라고 확신할수록 내 힘은 하늘을 뚫고 우주로 승천할 테니까!
머릿속에서 경쾌한 시스템 경고음이 고막을 사정없이 때려눕혔다.
[채널 실시간 의심도 수치 급상승!] [의심도: 88%…… 93%…… 97%……] [**의심도 99% 돌파!**] [역설적 가스라이팅 시스템 임계점 돌파! 최대 배율 버프가 부여됩니다!] [미시 보상 획득: **순수 민첩 속도 45 → 445 (스피드 맥시멈 상태 돌입!)**]
“어우, 야. 뇌가 녹아내릴 것 같네.”
순식간에 시야가 느려졌다. 방 안을 떠다니는 미세한 먼지 입자의 움직임이 눈에 보일 정도로 내 사고 속도가 광속의 영역에 진입했다. 민첩 445.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초월한 초인의 속도다.
내 손가락은 이미 인간의 눈으로 쫓을 수 없는 잔상을 남기며 키보드 위를 폭격하고 있었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탁!
“형들, 돋보기 들고 내 IP 캐내느라 고생이 많아? 근데 어쩌냐? 니들이 죽어라 추적한 그 서버, 사실 내가 아카데미 교장실 지하 마력로에 심어놓은 가상 더미 허브인데?”
나는 마이크를 향해 일부러 가볍고 도발적인 목소리를 내던졌다. 목소리 변조기를 통과한 내 음성이 한층 더 얄밉게 왜곡되어 흘러나갔다.
“자, 3, 2, 1. 리라우팅 발사!”
엔터키를 강하게 내리쳤다.
순간, 주작 감별단이 기를 쓰고 추적하던 내 IP의 최종 목적지가 순식간에 쪼개지며 전 세계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 경로는 태평양 한가운데의 버뮤다 삼각지대, 두 번째 경로는 바티칸 성당의 지하 기밀 보관소, 그리고 마지막 최종 종착지는—대한 아카데미 교장실 바로 옆의 쓰레기 분리수거장 마력 제어 장치로 완벽하게 리디렉션되었다.
주작 감별단 포럼의 실시간 반응이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 어? 야, IP 주소가 갑자기 교장실로 바뀌는데? - 미친 ㅋㅋㅋ 교장실 쓰레기통에서 방송 송출하고 있냐? - 이거 100% 주작 쉴드 프로그램이네. 가짜 서버 여러 개 띄워서 낚시하는 거 보소 ㅋㅋㅋ 주작 성능 확실하구만! - 아 낚였다 ㅋㅋㅋ 헌터 새끼 기술력 하나는 우주 최강이네. 그래픽에 이어 해킹 툴까지 주작질이냐?
“거봐, 형들. 내가 뭐랬어? 내 기술력은 세계 제일이라니까? 그러니까 괜히 헛수고하지 말고 발 닦고 잠이나 자.”
실시간으로 교란 작전이 성공하며 신상 노출 경고 수치가 10% 미만으로 뚝 떨어졌다.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나는 미련 없이 방송 종료 버튼을 눌렀다.
“후우…….”
가면을 벗어 던지자마자, 억눌려 있던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사방이 고요해진 기숙사 방 안에서 내 거친 숨소리만이 맴돌았다.
단 몇 분 동안 민첩 445의 속도로 뇌를 회전시켰더니 머리가 터질 것처럼 뜨거웠다. 방 안의 공기가 지나치게 답답했다. 이대로 누웠다간 두통 때문에 잠을 설칠 게 뻔했다.
나는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손끝에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 걸렸다. 지난번 그림자 하수도에서 챙겨두었던 보스 마수 ‘도살자의 푸른 핵 파편’이었다.
푸르스름한 안개를 품은 채 미세하게 진동하는 핵 파편을 만지작거리자, 신기하게도 머릿속의 열기가 조금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이걸 언젠가는 아카데미 마력로 제어 장치와 공명시켜서 쓸 날이 오겠지.’
일단은 소중한 내 은퇴 자금의 일부이자, 비장의 카드다. 나는 파편을 다시 주머니 깊숙이 밀어 넣고, 땀을 식히기 위해 방문을 열었다.
기숙사 2동 구관 복도는 한밤중이라 정적만이 가득했다. 차가운 밤공기가 창문 틈새로 불어와 뺨을 스쳤다. 나는 벽에 기대어 가만히 숨을 골랐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어두운 복도 저편, 모퉁이를 돌려던 내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바람을 타고 흘러온 아주 옅지만, 결코 오인할 수 없는 독특한 향기가 내 후각을 자극했다. 달콤하면서도 알싸한 허브 향, 그리고 차가운 달빛의 냄새를 닮은 그것.
**‘티트리 루나(Tea-tree Luna).’**
아카데미에서 오직 단 한 사람, 한서희만이 사용하는 최고급 한정판 향수였다.
“……!”
심장이 쿵쾅거리며 제멋대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보건실에서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그녀가 이 시간에 구관 복도에 있는 거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모퉁이 벽에 기대어 선 채, 팔짱을 끼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실루엣이 보였다. 은빛 단발머리가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을 받아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푸른빛이 도는 그녀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고양이처럼 번뜩였다.
“이 시간에 안 자고 구관 복도를 서성이는구나, 윤진.”
한서희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지나치게 차분했다. 그녀는 천천히 벽에서 몸을 떼고 나를 향해 걸어왔다. 또각, 또각. 구두 굽이 대리석 바닥을 울리는 소리가 마치 내 목을 죄어오는 교수형 집행인의 발소리처럼 들렸다.
내 고질병인 시선공포증이 발작하듯 도졌다. 겉으로는 타격감 없는 쭈구리 아싸의 모습을 유지해야 했다. 나는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깐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어, 어…… 서희야? 네가 왜 여기…… 나, 나는 그냥 바람 좀 쐬려고…….”
“바람?”
한서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티트리 루나의 향기가 파도처럼 밀려와 내 코끝을 마비시켰다.
숨이 막힐 것 같은 거리였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내 얼굴 구석구석을 탐색하듯 훑어내렸다.
“이상하네. 방금 전까지 이 근처 마력 흐름이 아주 요란하게 요동쳤거든. 마치…… 누군가 아주 강력한 주파수 변조 기기를 사용해 대규모 마력을 송출한 것처럼 말이야.”
“그, 그게 무슨 소린지 나는 잘…….”
“모르겠지. 너처럼 게으르고 무능한 F랭크가 그런 고차원적인 마력 변조를 알 리가 없으니까.”
한서희는 비아냥거리듯 말했지만, 그녀의 눈빛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꺼내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화면에는 실시간 음향 분석 그래프와 마력 주파수 대조표가 선명하게 띄워져 있었다.
“가면 헌터의 방송을 분석하는 사설 포럼에서 아주 흥미로운 자료를 올렸더라고. 가면 헌터가 방송을 켤 때마다, 아주 미세한 고주파 잡음이 섞여 들어간대. 그 잡음의 정체가 뭔지 알아?”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목구멍이 바짝 타들어 갔다.
“이 기숙사 2동 구관의 낡은 마력 파이프에서만 발생하는 특유의 공명음이야. 일반적인 마이크로는 잡히지 않지만, 최고급 사양의 마력 감지 필터를 거치면 아주 명확하게 드러나지. 방금 네가 보건실에서 올라간 직후, 기숙사 2층 구관의 마이크 잡음 정밀 대조 결과가 완벽하게 한 곳을 가리켰어.”
한서희의 손가락이 화면을 톡톡 쳤다. 붉은색 점이 찍힌 곳은 다름 아닌 내 기숙사 방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그녀가 한 걸음 더 밀착했다. 그녀의 숨결이 내 턱밑에 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가면 헌터의 최근 방송 녹음본을 대역폭 분석기로 돌려봤어. 그랬더니 아주 아주 미세한, 특정 향수 성분의 고주파 진동 데이터가 검출되더군. ‘티트리 루나’. 내가 쓰는 향수의 고유 마력 파장이야. 내가 너랑 스쳐 지나갈 때마다 풍겼던 그 향기가, 네 스마트폰 마이크를 통해 변조되어 방송에 유출된 거지.”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2화 때, 그녀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갈 때 풍겼던 그 향수 냄새가 내 스마트폰 마이크에 기공 잡음 데이터로 변조되어 들어갔던 그 사소한 사건이, 지금 내 목을 옥죄는 단두대의 칼날이 되어 돌아왔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여기서 어설프게 대답했다간 정체가 100% 확정된다. 나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 오히려 뇌를 풀가동했다. 아싸 연기의 극의를 보여줄 때였다.
“그, 그게…… 무, 무슨 말인지 진짜 모르겠어…….”
나는 일부러 다리를 덜덜 떨며, 눈물을 글썽이는 시늉을 했다. 목소리를 잘게 떨며 말을 더듬었다.
“나, 나 향수 냄새 싫어해……! 그리고 내 방에는 대협이가 매일 놀러 와서 자기 스마트폰으로 그, 그 가면 헌터 방송을 엄청 크게 틀어놓는단 말이야! 맨날 내 침대에서 뒹굴거리면서 헌터 형 멋있다고 소리 지르고…….”
“김대협이?”
한서희의 눈썹이 꿈틀했다.
“으, 응! 대협이가 내 방에서 방송 볼 때마다 온갖 잡음이 다 섞여 들어갔을 거야. 그, 그리고 내 방 문이 낡아서 복도 소리가 다 들리는데…… 네가 복도를 지나갈 때 향수 냄새가 문틈으로 들어와서 대협이 폰 마이크에 들어간 거 아닐까? 나, 나는 그냥 시끄러워서 귀마개 끼고 잠만 잤어…… 진짜야…….”
나는 억울하다는 듯 가슴을 쥐어짜며 비굴하게 고개를 숙였다. 현란한 말장난과 영매 같은 설전으로 물타기를 시도한 것이다. 김대협이라는 완벽한 알리바이이자 바보 방패를 내세워서.
한서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내 비굴하고 찌질한 연기가 그녀의 이성적인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쓰레기 아싸 새끼가 그 위대한 가면 헌터일 리가 없다'는 상식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격돌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서희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래? 김대협이 네 방에서 방송을 봤다고…….”
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럼 직접 확인해 보면 되겠네.”
“어, 어……?”
윤진이 어리버리 침을 삼키는 도중, 한서희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으며 팔을 뻗었다.
그녀의 가냘프지만 단단한 손가락 끝이 윤진의 턱밑 단추로 느릿하게, 그러나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뻗어 내려왔다. 단추 사이에 숨겨져 있을지 모르는 초소형 마이크나 마력 변조 기기의 은닉 여부를 직접 뒤지기 시작하려는 듯, 그녀의 손끝이 옷깃의 얇은 천을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