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리가 서서히 밑으로 내려앉으며 낡은 철문이 삐걱거리는 비명을 질렀다.
1센티미터. 2센티미터.
벌어진 문틈 사이로 퀴퀴한 복도의 먼지 냄새와 함께, 김대협의 둥글넓적한 콧날이 들이밀어지기 직전이었다. 그의 시선은 정확히 내 가방 뒤쪽, 푸르게 깜빡이는 마이크 페어링 불빛을 향하고 있었다.
‘좆됐다……!’
척수에서부터 전율 같은 경고음이 찌르르 울려 퍼졌다. 여기서 내 정체가 아카데미의 아싸 윤진이라는 사실이 단 1%라도 노출되는 순간, 내 눈앞에 떠 있는 이 달콤한 역설 가스라이팅 시스템은 영원히 안녕이었다. 그뿐인가? 던전 난이도가 안드로메다로 폭발하면서 나는 이 구관 동아리방 구석에서 늑대 밥이 되어 생을 마감해야 할 터였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의 생존 본능이 이성의 회로를 추월했다. 나는 카메라의 각도를 사정없이 꺾어 바닥을 향하게 만드는 동시에, 스마트폰 화면 구석의 음성 변조기 활성화 버튼을 광속으로 터치해 해제했다.
그리고 들이쉬는 숨에 영혼을 담아, 내 인생에서 가장 카랑카랑하고 수줍으며 신경질적인 고함을 질러댔다.
“야!!! 마법 숙제하느라 발가벗고 있어! 문 열면 진짜 죽여 버린다!!!”
쩌어어어억!
구관 복도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날카롭고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었다. 평소의 쭈구리 같은 내 목소리에 약간의 가성과 앙탈(?)을 섞어, 마치 옷을 갈아입다가 불청객을 맞이한 예민한 아카데미 학생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재현해 낸 것이다.
그 우렁찬 사자후가 문틈을 뚫고 대협이의 고막에 직격했다.
“어, 어억?! 바, 발가벗고……? 숙제……?”
문고리를 잡고 있던 대협이의 손이 가루라도 닿은 것처럼 다급하게 떨어졌다. 문틈 사이로 보이던 그의 둥글넓적한 얼굴이 순식간에 홍당무처럼 붉어지는 게 실시간으로 보였다. 대협이는 덩치에 걸맞지 않게 순진해 빠진 녀석이었다. ‘벗고 있다’는 단어 하나에 뇌가 완전히 정지해 버린 것이 분명했다.
“미, 미안하다, 윤진아! 난 그냥 순댓국 식을까 봐……! 으아악! 안 본다! 안 봐! 절대 안 본다!”
허둥지둥 발을 구르는 소리가 복도 너머로 멀어졌다.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계단 아래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시간 따위는 없었다. 내 눈앞의 스마트폰 화면에는 실시간으로 채팅창이 미친 듯이 폭주하고 있었으니까.
- [팩트폭격기]: ??? 방금 목소리 뭐임? ㅋㅋㅋㅋㅋㅋㅋ 여캐 목소리인데? - [성좌 '방구석 평론가']: (후원 1,000코인) 야, 방금 대사 존나 실감 나는데? 발가벗고 있다는 연출은 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거냐? ㅋㅋㅋㅋㅋ 아재 감성이라더니 미소녀 연출이었냐고! - [성좌 'CG_Slayer']: 저거 순 100% 주작 사운드네. 기공 진동 주파수 분석해 보니까 방금 목소리 변조기 꺼진 순간의 잡음이랑 씽크가 안 맞음. 요즘 모바일 인디 겜 수준이 그렇지 뭐 ㅉㅉ - [프로불편러]: ㅋㅋㅋㅋ 야, 사운드 에셋 돌려막기 오지네. 근데 대사 수준 왜 저러냐? 제작사 인성 논란 터지겠네 ㅋㅋㅋ
채팅창의 성좌들과 시청자들은 방금 전의 리얼한 소동을 ‘게임 내부의 어설픈 연출’ 혹은 ‘싸구려 사운드 에셋’으로 치부하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특히 저 깐깐한 성좌 ‘CG_Slayer’의 의심 가득한 채팅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는 재빨리 변조기 어플을 다시 켜고, 목소리 톤을 굵직하고 거친 ‘가면 헌터’의 방구석 여포 모드로 전환했다. 그리고 헛기침을 크게 한 번 내뱉으며 마이크를 부여잡았다.
“어어! 형들, 들었지? 이게 바로 이번 시즌에 새로 업데이트된 ‘아카데미 라이프’ NPC 보이스 리소스야! 요즘 메타버스 게임들은 이런 리얼리티가 생명이라고. 주작이라니? 이 형님들이 메이저 게임 개발사의 대기업 기술력을 무시하네? 어이, CG_Slayer 형씨! 주파수 분석 같은 소리 하네. 형 귀가 뚫린 거야, 막힌 거야? 이게 어떻게 주작이냐, 100% 실시간 렌더링 사운드지!”
나는 뻔뻔하게 가슴을 펴며, 바닥에 흩어진 그늘 늑대의 가짜(?) 사체 조각들을 발로 툭툭 찼다. 오히려 더 당당하게, 더 양아치처럼 굴어야 이 방구석 키보드 워리어들이 낚인다.
“애초에 내 완벽한 모션 캡처 액션에 이런 명품 NPC 더빙이 얹어지니까 게임이 살아 숨 쉬는 거잖아! 안 그래? 요즘 유행하는 하이퍼 리얼리즘 아카데미 던전 RPG라고, 이 무식한 형들아! ㅋㅋㅋ”
내 도발적인 멘트에 채팅창이 순식간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성좌들과 시청자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통찰력이 무시당했다고 느끼자마자 격렬하게 키보드를 두들겼다.
- [성좌 '방구석 평론가']: 주작 감별단 소집한다. 저게 실시간 렌더링이라고? 개가 웃겠네 ㅋㅋㅋ 딱 봐도 연출된 보이스 파일 재생한 거임. - [성좌 'CG_Slayer']: (후원 5,000코인) 어설픈 구라로 시청자를 기만하는구나. 저 NPC 대사는 명백히 사전 녹음된 3류 오디오 파일이다. 감히 내 분석을 부정해? 100% 주작이다에 내 신성의 파편을 건다. - [팩트폭격기]: ㅋㅋㅋ 비제이 뻔뻔한 거 보소. 얼굴 가면으로 가린 이유가 있었네. 주작 들통날까 봐 쫄려서 그런 거지?
딩동!
그들의 불신과 조롱이 극에 달한 순간, 내 시야에 반가운 시스템 메시지가 황금빛으로 번쩍이며 나타났다.
[시스템: 시청자 및 성좌들의 '주작(조작) 의심 수치'가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실시간 의심도: **98%**] [역설 가스라이팅 버프가 활성화됩니다! 전투 능력치 및 스킬 배율이 폭증합니다!]
**[★ 특보: 주력 스킬 '초열 참격'의 스킬 계수가 기존 1.5에서 15.0으로 폭등(1000% 증가) 정산되었습니다! ★]**
‘나이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계수 15.0이라니! 이건 거의 신화급 영웅들이나 구사할 법한 파멸적인 계수였다. 성좌들이 나를 ‘주작꾼’이라며 비웃고 훈수를 두면 둘 수록, 내 손에 쥐어진 물리력은 신의 권능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 위험천만한 라이브 방송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자,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역설의 힘이었다.
“오냐, 형들이 그렇게 주작이라고 우기시니, 내가 이 ‘주작 그래픽’의 끝판왕이 뭔지 몸소 보여줄게!”
나는 바닥에 굴러다니던 단검을 가볍게 치켜들었다. 스킬 배율 1000%가 적용된 내 손끝에서부터, 아지랑이 같은 붉은색 초열 마력이 폭풍처럼 뿜어져 나왔다. 단순히 마력을 흘려보냈을 뿐인데도, 동아리방의 낡은 시멘트 벽면이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쩍쩍 갈라지며 붉은 용암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자, 주작 감별단 형들! 눈 크게 뜨고 잘 봐라! CG 퀄리티 지리는 파이널 피니시 들어간다!”
타앗!
내가 가볍게 발을 구르자, 민첩 380의 속도가 방 안의 공기를 진공 상태로 만들었다. 은빛 단검의 궤적을 따라 거대한 불꽃의 폭풍이 원을 그리며 휘몰아쳤다. 콰과과과광! 동아리방 구석에 남아 있던 침식의 잔해들과 그늘 늑대의 남은 뼛조각들이 초열의 불꽃 속에서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렸다. 카메라 렌즈가 열기에 뿌옇게 흐려질 정도로 압도적인 연출이었다.
- [팩트폭격기]: 어어? 야, 저 불꽃 렌더링 뭐냐? 그래픽 카드 터지는 소리 여기까지 들린다 ㅋㅋㅋ - [성좌 '방구석 평론가']: 와, 요즘 언리얼 엔진 5 성능 미쳤네. 타는 냄새까지 구현되는 줄 알았다 ㅋㅋㅋ - [성좌 'CG_Slayer']: 흥, 화려한 이펙트로 본질을 흐리려 하는군. 그래봤자 가짜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형들, 주작 주작 하면서도 끝까지 다 본 거 알지? 다음엔 더 쩌는 ‘주작 연출’로 돌아올 테니까 후원이나 빵빵하게 충전해 둬! 바잉!”
나는 망설임 없이 방송 종료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검게 암전되자마자, 내 몸을 감싸고 있던 압도적인 초열의 마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동시에 극심한 피로감과 함께, 현실의 ‘쭈구리 아싸 윤진’으로 돌아왔다.
“하아…… 죽는 줄 알았네 진짜.”
가면을 벗어 던진 내 얼굴은 온통 땀벅벅이었다. 대협이 녀석 때문에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내 스마트폰 화면에 기다리던 알림이 연이어 도착했다.
카톡!
[신한은행: 주식회사 플랫폼스타로부터 15,000,0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우오오오옷!!!”**
나는 침대를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주간 정산금 1,500만 원! 성좌들이 주작이라며 아등바등 던진 후원금과 플랫폼 조회수 수익이 정산되어 내 계좌로 꽂힌 것이다. 서울 중심가의 초고층 빌딩을 매입해 조용히 은퇴하겠다는 내 원대한 꿈에 한 걸음 더 바짝 다가선 순간이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모으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빌딩을 짓고 평생 누워서 넷플릭스만 볼 수 있어…….”
나는 통장 잔고를 보며 헤벌쭉 웃었다. 방금 전의 죽을 고비는 깨끗이 잊혀졌다. 돈이 최고다. 자본주의 만세다.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대협이가 문앞에 두고 간 순댓국 그릇을 챙겼다. 비록 식어버렸지만, 1,500만 원짜리 정산금을 본 뒤라 그런지 천상의 맛처럼 느껴졌다.
* * *
이튿날 아침.
어제의 피로를 풀기 위해 늦잠을 자려던 나는, 머리맡에서 사정없이 울려대는 스마트폰 진동 소리에 눈을 떴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아, 씨…… 어떤 놈이 아침부터…….”
짜증을 내며 스마트폰을 확인한 내 눈이 순간 동그랗게 커졌다. 발신인은 아카데미 행정실이었고, 화면에는 붉은색 글씨로 ‘긴급 공지’라는 타이틀이 박혀 있었다.
[대한 아카데미 학사행정처 긴급 공지] - 대상: 전 학년 (F랭크 포함) - 내용: 내일부터 아카데미 서쪽 ‘미궁의 숲’에서 실전 대련식 합동 평가가 진행됩니다. - 특이 사항: 이번 평가는 학생들의 협동심과 실전 적응력을 기르기 위해 **‘2인 1조 무작위 매칭’**으로 진행되며, 평가 점수는 기말 성적에 50% 반영됩니다. 조 편성 결과는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2인 1조……? 그것도 무작위 매칭?!”
내 등줄기에 서늘한 한기가 스쳤다. 아싸인 나에게 2인 1조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재앙이었다. 남과 엮이는 것 자체가 시선공포증이 있는 나에게는 극약 처방이나 다름없는데, 무작위 매칭이라니?
설마 하는 심정으로 침을 꿀꺽 삼키며 조 편성 확인 링크를 클릭했다. 화면이 로딩되는 짧은 몇 초가 마치 몇 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화면에 뜬 내 이름 석 자와, 그 옆에 나란히 적힌 파트너의 이름을 확인한 순간.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조 편성 결과] - 47조: 윤진 (F랭크) & **한서희 (A랭크)**
“……망했다.”
나를 쓰레기 동기라며 경멸하면서도 끊임없이 내 정체를 의심하고 감시하는 집요한 그녀, 한서희. 하필이면 세상에서 가장 피하고 싶었던 인간과 2인 1조로 밀폐된 미궁의 숲에 갇히게 생긴 것이다.
그녀와 하루 종일 붙어 있어야 한다니. 내 평화로운 아싸 생활과 은퇴 계획에 사상 최대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