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시 불빛 뒤쪽에서 위엄 있는 자태로 무장한 아카데미 학생회 신지태가 가가대소하며 발걸음을 앞으로 옮긴다.
눈이 멀 것 같은 백색광이 내 안면을 정면으로 강타한 순간, 내 뇌세포들은 초당 억만 번의 연산 속도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조, 조졌다! 여기서 들키면 끝장이다!’
머릿속에서 경보기가 미친 듯이 울려댔다. 골든핑거의 절대 법칙. 만약 시청자 중 단 한 명이라도 내가 ‘아카데미 수석 입학생 윤진’이라는 사실을 100% 확신하는 순간, 내 눈앞에 펼쳐진 꿀맛 같은 시스템 버프는 영구히 날아가고 던전 난이도는 헬게이트가 열린다. 내 강남 건물주 테크트리가 시작하기도 전에 수포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 끔찍한 파멸을 막기 위해 내 몸은 생각보다 빠르게 반응했다.
0.1초 만에 스마트폰 전면 카메라의 각도를 바닥의 시커먼 오수 구덩이 쪽으로 확 꺾어버렸다. 동시에 오른손을 번개처럼 움직여 얼굴을 가리고 있던 조잡한 가죽 가면을 홱 벗겨냈다.
파스스슥!
가면을 벗어 아카데미 코트 안주머니 깊숙한 곳, 방금 획득한 ‘도살자의 푸른 심장 핵 파편’ 바로 옆 칸에 쑤셔 넣는 데 걸린 시간은 단 0.5초.
그리고 나는 즉시 현실의 나, 즉 ‘극강의 시선공포증을 앓고 있는 아싸 쭈구리 윤진’의 인격을 소환했다.
어깨를 안쪽으로 바짝 좁혀 거북목을 만들고, 무릎을 살짝 굽혀 키를 10센티미터는 작아 보이게 줄였다.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사방으로 흔들흔들,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마침 발끝에 굴러다니던, 도살자가 쓰던 부러진 뼛조각 몽둥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것을 양손으로 꼭 쥐었다. 마치 그것이 내 평생의 동반자이자 청소용 빗자루라도 되는 양.
사각, 사각.
나는 하수도의 검은 그을음과 먼지를 미친 듯이 쓸어내기 시작했다.
“어, 어어...? 지, 지태... 씨? 아, 아니, 신지태 학우님...?”
내 목소리는 거의 기어가다 못해 하수도 쥐새끼의 울음소리만큼이나 작게 기어 나왔다. 시선은 절대로 신지태의 잘 닦인 명품 가죽 구두 끝자락에서 위로 올리지 못했다. 어버버거리는 말투는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잘생기고 빛나는 인싸를 대면했을 때 발동하는 내 유전적 결함이었다.
신지태가 코웃음을 치며 서치라이트를 내 얼굴에 더 가까이 들이댔다.
“수석 입학생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들어와서 매일 관조실 구석에서 먼지만 쓸고 다니더니, 결국 여기까지 기어들어 와서 이딴 쥐새끼 짓을 하고 있었군.”
그의 목소리에는 뼈를 깎는 듯한 경멸과 오만이 가득 차 있었다.
신지태는 아까 이 구역에서 감지된 엄청난 마력 폭발의 정체를 추적하러 온 것이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역설 시스템의 버프를 받아 1000% 증폭된 일격으로 도살자를 박살 냈으니 아카데미 상층부의 마력 탐지기가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눈물겨운 똥꼬쇼 연기를 개시했다.
“그, 그게... 학, 학생회에서 나누어 준... 구관 배수로 청소 봉사활동 점수... 그거 채우려고 왔는데... 흐어억! 갑자기 저기서, 저기서 괴물이, 괴물이 튀어나와서... 무, 무서워서... 흐으으...”
나는 콧물까지 흘릴 기세로 어깨를 들썩였다.
“무서워서 집에 굴러다니던 코스프레 가면 쓰고... 소, 소리라도 지르면 안 잡아먹힐까 봐... 이러고 있었는데... 갑자기 콰광 하고 저 혼자 터졌어요어어...! 저, 저는 그냥 빗자루질만 하고 있었는데... 흐어엉, 살려주세요...”
신지태의 눈동자가 사방으로 굴러갔다.
사방에 흩어진 도살자의 시커먼 재와 그을음. 그리고 내 손에 들려 있는, 빗자루 대용으로 쓰기에는 너무나 조잡하고 가벼운 뼛조각. 마지막으로 내 안주머니 틈새로 살짝 삐져나온 코스프레용 가죽 가면의 붉은 끈.
신지태의 머릿속 삼류 소설 회로가 완벽하게 작동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이 한심한 아싸 새끼가 혼자 하수도에 기어들어 와서 가면 쓰고 영웅 놀이를 하다가, 마침 던전 잔류 마력이 폭주해 자연 소멸하는 광경을 보고 기겁해서 자빠져 있었군.’
딱 그 수준의 결론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 몸에서 느껴지는 마력 반응은 F랭크 수준의 미약한 찌꺼기에 불과했으니까. 역설 시스템의 버프는 오직 ‘방송 중 시청자의 의심’이 실시간으로 축적될 때만 가동되는 시한부 치트키다. 지금처럼 방송 화면을 바닥으로 꺾어놓고 찌질이 연기를 하는 동안에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쭈구리일 뿐이다.
“하! 가면극이라니. 꼴에 수석이라고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나 보지?”
신지태가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그의 눈빛에는 깊은 안도감과 함께, 벌레를 바라보는 듯한 우월감이 차올랐다.
“이런 음습한 곳에서 혼자 자위질이나 하는 꼴이라니, 가관이군. 입학식 때 수석을 차지한 것도 순전히 필기시험의 뽀록이었던 모양이야.”
그는 거만하게 걸어와 내 손에 들려 있던 뼛조각을 구두 앞코로 툭 차버렸다. 뼛조각이 더러운 오수 바닥을 굴렀다.
“수석이라는 자리가 아깝다, 윤진. 두 번 다시 내 눈앞에 그 끔찍하고 음침한 얼굴 들이밀지 마라. 학생회의 품위가 떨어지니까. 퉤.”
바닥에 침을 뱉은 신지태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그의 등 뒤로 휘날리는 아카데미 망토가 마치 승전보를 울리는 깃발처럼 기세등등했다.
터벅, 터벅, 터벅.
그의 발소리가 완전히 멀어지고, 하수도 저편의 철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나는 자세를 풀지 않았다.
그리고 정확히 30초가 지난 후.
“푸하하하하하하학!!”
나는 바닥을 구르며 무소음 폭소를 터뜨렸다. 배가 아플 정도로 웃음이 비져나왔다.
‘아이고, 회장님! 그렇게 쉽게 속아 넘어가 주시면 제가 너무 감사하죠! 네, 저는 평생 먼지나 쓰는 쓰레기 아싸로 살 테니까 제발 관심 꺼주세요!’
이것이 바로 아싸의 삶이다.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멸시받는 것? 그딴 자존심은 강남에 올릴 빌딩 한 채의 가치에 비하면 먼지 한 톨만도 못하다. 오히려 신지태가 나를 완벽한 쓰레기로 낙인찍어 준 덕분에 내 안전지대는 더욱 견고해졌다.
나는 바닥에 팽개쳐 두었던 스마트폰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여전히 라이브 스트리밍은 켜져 있었고, 채팅창은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였다.
- [??? 방금 지나간 놈 대사 실화냐? 웰메이드 웹드라마 대본인 줄 ㅋㅋㅋ] - [와, 아카데미 학생회장 캐릭터 연기력 지리네. 연극영화과 과탑 섭외했냐?] - [근데 방금 가면 벗은 놈 와꾸 보소... 진짜 찐따의 정석이다 ㅋㅋㅋㅋ] - [저거 연기가 아니라 진짜 찐따 국산 100% 토종 찐따임. 내 학창 시절 PTSD 온다] - [야 ㅋㅋㅋ 근데 CG 퀄리티 미쳤네. 도살자 잡고 폭발하는 연출에 이어서 아카데미 제복 고증까지 완벽함]
성좌들의 리액션도 만만치 않았다.
**[성좌 ‘방구석의 지배자’가 5,000원을 후원하며 혀를 찹니다.]** - [이 새끼 찌질 연기 하나는 인정한다. 그래픽에 돈 좀 썼네.]
그리고 이때, 내 눈길을 사로잡는 붉은색 도네이션 메시지가 상단을 장식했다.
**[★ 성좌 ‘CG_Slayer’가 1,000,000원을 후원하며 날카로운 훈수를 둡니다! ★]** - [어이, 방구석 감독님. 오늘 날조 연출 고소함이 아주 하늘을 찌르는구나? 학생회장 캐릭터 섭외비로 예산 꽤나 썼겠어? 근데 너무 티 나는 3류 전개다. 저 찌질한 연기도 사실 시청자 수 빨아먹으려고 짠 100% 대본이지? 주작 감별단 형들, 저 새끼 아카데미 제복 패턴 보니까 서울 지부 ‘대한 아카데미’ 같은데 정밀 분석 들어가자.]
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CG_Slayer... 이 새끼는 진짜 보통 놈이 아니다.’
단순히 방송이 주작이라고 우기는 수준을 넘어섰다. 아주 집요하게 내 신상을 털어내기 위해 다른 시청자들과 주작 감별단을 선동하고 있었다. 그의 훈수 한마디에 커뮤니티의 사설 신상 털기 단체인 ‘주작 감별단’ 놈들이 벌떼처럼 달려들 기세였다.
나는 지체 없이 가면을 다시 얼굴에 밀착시켰다. 가죽 특유의 냄새와 함께, 내 안의 또 다른 인격인 ‘방구석 여포’가 깨어났다.
마이크 톤을 거칠게 낮추며 나는 카메라를 향해 소리쳤다.
“야! CG_Slayer! 너 눈깔 사시냐? 어?! 저게 대본이면 내가 아카데미 이사장이다, 이 색기야! 그리고 무슨 신상을 털어, 털긴! 나 그냥 방구석에서 하루 종일 3D 블렌더 돌리면서 컵라면으로 끼니 때우는 순수한 예술가라고! 억까 작작 해라, 진짜!”
내 현란한 적반하장 가스라이팅에 채팅창이 다시 한번 불타올랐다.
- [ㅋㅋㅋㅋㅋ 방구석 여포 모드 ON] - [들키니까 발끈하는 거 보소 ㅋㅋㅋ 백퍼 주작이네] - [CG_Slayer 형님이 팩트 때리니까 ㅂㄷㅂㄷ하는 거 개꿀잼]
의심 수치가 치솟는 것과 동시에, 내 머릿속에 시스템의 영롱한 정산 알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띠링! 띠링! 띠링!
**[★ 보스 마수 ‘도살자’ 토벌 정산 완료 ★]**
**[주작 의심 수치 반영율: 890% (폭발적인 불신!)]** **[기본 보상이 의심 배율에 의해 대폭 증폭됩니다!]**
**[획득한 보상 목록]** 1. **[마력 최대치 영구 상승: +15]** (현재 마력: 135) 2. **[전투력 수치 변동: 110 → 240]** (급격한 성장!) 3. **[특수 패시브 스킬 획득: ‘은밀한 발걸음’ (D랭크)]** - 효과: 신체 소음을 90% 차단하며, 위기 상황 시 3초간 이동 속도가 150% 가속됩니다.
‘오오오옷...!’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짜릿한 마력으로 재조립되는 감각이 찾아왔다. 전투력 수치가 무려 두 배 이상 폭증했다. 이제 웬만한 C랭크 헌터급 무력은 맨몸으로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은밀한 발걸음’이라는 사기적인 유틸리티 스킬까지 손에 넣었다. 이 스킬만 있으면 다음번에 한서희나 신지태 같은 귀찮은 놈들이 들이닥쳐도 쥐새끼처럼 소리 없이 도망치기에 최적이었다.
통장 잔고 500만 원에, 급격한 전투력 상승까지. 눈앞에 가시화된 수치들을 보며 나는 가면 속에서 광기의 입꼬리를 실룩거렸다.
‘이거지... 이 맛에 목숨 걸고 방송 켜는 거지! 조금만 더 하면 진짜로 마포구에 내 이름으로 된 양옥집 하나 떨어지겠는데?’
행복한 건물주 라이프의 단꿈에 젖어들려던 바로 그 순간.
우우웅-!
스마트폰 화면이 기분 나쁜 붉은색 빛을 내뿜으며 세차게 진동했다.
동시에 내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고 시뻘건 시스템 경고 팝업창이었다.
**[⚠️ 긴급 상황 발생 ⚠️]**
**[주작 감별단 및 성좌 ‘CG_Slayer’의 의도적인 프레임 단위 분석으로 인해, 스트리머 ‘가면 헌터’의 실제 신분 추적 강도가 위험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현재 신상 유출 예상도: 65% (위험 단계)]**
**[※ 경고: 신상 유출 예상도가 임계치(70%)에 도달할 경우, 시스템 보호 프로토콜이 해제되며 역설 버프가 영구 소멸합니다.]**
**[48시간 내에 정체를 은폐할 확실한 ‘조처’를 취하지 않을 시, ‘시스템 잠금 및 던전 난이도 파멸적 폭증 페널티’ 타이머가 강제 개시됩니다!]**
“......어?”
내 입에서 멍청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화면 속에서 붉게 명멸하는 **[48:00:00]**의 타이머 숫자.
그 숫자가 내 심장 박동에 맞춰 시커뎠다 붉어졌다를 반복하며 내 목을 죄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