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야, 이 새끼 발소리랑 바람 소리 울리는 거 보소. 이거 100% 대한 아카데미 구관 지하 2층 배수로다. 내가 저기서 작년에 실습해 봐서 아는데, 특유의 공명음이랑 습도가 딱 거기임. 수석 입학생 윤진인가 하는 쭈구리 새끼 있는 그 아카데미 맞음 ㅇㅇ.”

[가면_헌터]의 실시간 라이브 스트리밍 채널. 채팅창에 벼락처럼 내리꽂힌 장문의 분석글을 보는 순간, 내 심장은 그대로 정지하는 줄 알았다.

어제 아침, 아카데미 중앙 교정에서 신지태 그 오만한 자식의 추궁을 “어, 어버버…… 나, 나 그런 데 간 적 없는데…….” 하고 간신히 뭉개며 도망쳐 나온 지 겨우 반나절 만이었다. 정체를 숨기고 평화로운 은퇴 자금을 모으려던 내 계획의 목줄을 쥐고 흔드는 ‘주작 감별단’의 칼끝이 마침내 내 목덜미 바로 뒤까지 들이닥친 것이다.

화면 우측 하단에 표시된 신상 유출 페널티 타이머는 무자비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남은 시간: 41:12:05]** **※ 경고: 시청자 중 단 한 명이라도 당신의 진짜 정체가 ‘아카데미 신입생 윤진’임을 100% 확신하는 순간, 모든 시스템 버프가 영구 소멸하며 던전의 난이도가 최악으로 폭증합니다.**

‘미친, 저 넷카마 같은 주작 감별단 새끼들이 결국 소리 분석까지 처돌렸네!’

가면 속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당장이라도 방송을 끄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오히려 정체를 자백하는 꼴이 된다. 현실에서는 눈만 마주쳐도 어버버거리는 시선공포증 말기 환자지만, 지금 내 얼굴을 가려주는 것은 이 든든한 가짜 가죽 가면과 변조 마이크뿐이었다.

방구석 여포 모드, 온(ON).

나는 목소리 변조 톤을 한 단계 더 낮추며, 일부러 헛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아이고, 우리 방구석 코난 형님들 또 소설 집필 시작하셨네? 형들, 진짜 지랄도 풍년이다, 풍년이야.”

- [방구석코난]: 어허, 팩트 들이미니까 말 돌리는 것 보소? 거기가 아카데미 구관이 아니면 어디란 말이냐? - [성좌_CG_Slayer]: ㅋㅋㅋㅋ 주작충 새끼 밑천 드러나니까 당황했죠? 쫄리면 뒈지시던가! - [키보드워리어]: 아카데미 구관 지하 배수로 맞네 ㅋㅋㅋ 딱 걸렸죠? 지옥행 급행열차 출발합니다~

채팅창이 붉은색 의심 이모티콘으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이대로 두면 진짜로 아카데미 수석 입학생 윤진의 신상이 털리고 내 아름다운 건물주 은퇴 계획은 공중분해 된다. 나는 뇌세포를 풀가동했다. 위기를 기회로, 아니, 주작을 진짜 주작 같은 가짜로 만들어야 했다.

나는 슬그머니 왼손을 뻗어 스트리밍 제어 패널의 화이트 밸런스 슬라이더를 강제로 비틀었다. 동시에 실시간 화면 왜곡 필터를 켰다.

위이이잉-!

화면 전체가 푸르스름한 노이즈로 찌그러지며, 내가 딛고 있는 하수도의 벽면이 마치 싸구려 3D 그래픽이 깨지는 것처럼 일그러졌다. 일부러 크로마키 초록색 배경이 노출되는 듯한 가상 파란색 픽셀까지 화면 구석에 띄웠다.

“형들, 눈이 삐었어? 이게 진짜 아카데미 구관 지하로 보여? 내 방구석에 초록색 천때기 대충 붙여놓고 언리얼 엔진으로 만든 가상 CG 크로마키인 거 진짜 몰랐던 거야? 요즘 기술이 얼마나 좋은데 그런 싸구려 음향 분석에 낚이냐고, 멍청하긴!”

나는 일부러 카메라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며 낄낄거렸다. 화면을 고의로 조잡하게 일그러뜨려 ‘이곳은 실제 던전이 아니라 방구석 스튜디오다’라는 역행 가스라이팅을 시전한 것이다.

그러자 채팅창의 기류가 순식간에 요동치기 시작했다.

- [뇌절개인]: ??? 뭐야, 방금 벽면 텍스처 깨지는 거 실화냐? - [성좌_미소녀천사]: 헐 ㅋㅋㅋㅋ 진짜 CG 크로마키였음? 어쩐지 먼지 날리는 게 너무 부자연스럽다 했다 ㅋㅋㅋ - [주작감별단장]: 어? 어라? 발소리 주파수가 왜 갑자기 모노 레코딩 주파수로 바뀌지? 이거 주작 샘플러 쓴 거 아님? - [성좌_CG_Slayer]: ㅋㅋㅋㅋㅋ 아 씨발, 그럼 그렇지! 아카데미 구관은 개뿔 ㅋㅋㅋ 그냥 방구석에서 크로마키 천 걸어놓고 쌩쇼하는 하꼬 스트리머였네! 아아, 내 감동 돌려내라 이 사기꾼 새끼야!

[※ 시스템 알림: 시청자들과 성좌들의 ‘주작(조작) 의심 수치’가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현재 의심도: **92%**]

‘그렇지! 바로 그거야, 이 멍청한 키보드 워리어 놈들아!’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지만, 얼굴은 여전히 가면 뒤에 숨긴 채 뻔뻔한 표정을 유지했다. 성좌들과 시청자들이 내 방송을 ‘싸구려 CG 주작 예능’이라고 확신하는 순간, 내 골든핑거 시스템은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

띠링!

**[★ 시스템 역설 버프 활성화! ★]** **[시청자들의 불신과 조롱이 현실의 절대적 물리력으로 환산됩니다.]** **[버프 배율: 900% (9배)]** **[주인공 ‘윤진’의 기본 공격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실시간 조정됩니다.]** **[공격 능력: 50 -> 450 (초폭증!)]** **[스킬 ‘룬 마력 가속’의 피해 배율이 900% 상승합니다!]**

온몸의 혈관을 타고 미칠 듯한 마력이 요동쳤다. 아카데미 보급용 목검을 쥐고 있는 손끝에서 푸른색 스파크가 파지직 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이 정도 힘이라면, 지금 당장 아카데미 교수진과 맞짱을 떠도 상판대기를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전능감이 차올랐다.

- [성좌_CG_Slayer]님이 10,000골드를 후원하며 훈수를 둡니다. [야 이 사기꾼 새끼야 ㅋㅋㅋ 이펙트 퀄리티 보소? 목검에서 전기 스파크 튀는 거 에셋 스토어에서 5달러짜리 사 왔냐? 타격 이펙트 너무 싸구려 티 난다 ㅋㅋㅋ]

“어휴, Slayer 형님. 5달러가 뭐야, 이거 무료 에셋인데? 형이 그렇게 잘 알면 나한테 에셋 살 돈 좀 더 쏴주던가! 쩨쩨하게 1만 골드가 뭐냐, 1만 골드가!”

대범하게 도발을 던지는 순간, 하수도 저편의 깊은 어둠 속에서 고막을 찢는 듯한 괴성이 울려 퍼졌다.

쿠구구구궁-!

배수관 벽면에 붙어 있던 더러운 이끼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키가 3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거대한 거구의 마수였다. 상체는 기괴하게 부풀어 오른 근육질 인간의 형태였고, 하체는 여러 개의 뼈마디가 얽힌 지네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녀석의 오른손에는 피칠갑이 된 거대한 녹슨 무쇠 칼날이 들려 있었다.

**[그림자 하수도의 지배자 - 마수 도살자 (Lv. 35)]**

아카데미 2학년 수석들조차 파티를 맺고 들어와야 간신히 잡을 수 있다는 구관 지하의 진정한 보스 몬스터. 녀석의 붉게 충혈된 눈동자가 나를 향해 번뜩였다.

“크어어어어어어-!”

보스의 포효 한 번에 하수도의 악취 나는 물이 사방으로 요동쳤다. 하지만 내 눈앞에는 전혀 다른 창이 떠올랐다.

**[※ 메커니즘 윈도우(Mechanism Window) 활성화]** **- 마수 도살자의 돌진 궤적: 전방 15도 직선 경로 (회피율 98% 확보 가능)** **- 아머 취약 지점: 가슴 중앙의 푸른색 마력 핵 부근** **- 등가 교환 제안: 현재 마력의 10%를 소모하여 ‘초고속 룬 궤적’을 생성하겠습니까? (Y/N)**

‘당연히 YES지, 이 멧돼지 새끼야.’

나는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마수 도살자가 거대한 쇠사슬을 쩔렁이며 나를 향해 폭풍처럼 돌진해 왔다. 무쇠 칼날이 공기를 가르는 파열음이 귓전을 때렸지만, 내 눈에는 녀석이 움직이는 궤적이 붉은색 가이드라인으로 아주 느리게 그려지고 있었다.

- [키보드워리어]: 와 ㅋㅋㅋ 보스 몹 렌더링 수준 실화냐? - [성좌_미소녀천사]: 몬스터 모션이 너무 역동적인데? 이거 언리얼 5 엔진으로 돌리는 게임 맞죠? ㅋㅋㅋ - [성좌_CG_Slayer]: 주작충 새끼 패턴 피하는 척 발광하다가 3초 뒤에 컷신으로 넘어가겠네 ㅋㅋㅋ

“형들, 팝콘이나 준비해. 발컨이 뭔지 제대로 보여줄 테니까!”

스으읍. 짧은 호흡과 함께, 나는 보급용 목검을 거꾸로 쥐었다.

슈우우욱!

마수 도살자의 거대한 칼날이 내 머리칼을 스치며 바닥을 내리찍었다. 콰앙! 콘크리트 바닥이 처참하게 아스라지는 굉음이 일어났지만, 이미 내 신체는 900%로 폭증한 마력 가속을 통해 녀석의 품 안으로 파고든 뒤였다.

“첫 번째 슬라이스.”

채찍처럼 휘둘러진 내 목검이 마수 도살자의 오른쪽 어깨 관절을 정확히 스쳐 지나갔다. 원래라면 단단한 마수의 가죽에 막혀 부러졌어야 할 아카데미 보급용 목검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손에 깃든 에너지는 단순한 마력이 아니었다. 수만 명의 시청자와 오만한 성좌들이 ‘저거 백퍼 주작이다’라며 비웃고 있는 불신의 결정체, 즉 파괴적인 물리력의 덩어리였다.

서걱-!

마치 잘 익은 무를 베어내듯, 도살자의 거대한 가죽과 근육이 깨끗하게 잘려 나가며 검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크아아아악?!”

도살자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뒤로 주춤했다. 녀석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당혹감과 공포가 서렸다. 하지만 내 검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두 번째는 몸통.”

파지직! 푸른색 벼락 같은 궤적이 허공을 세 차례 연달아 갈랐다. 속도가 너무 빠른 나머지, 화면상에는 내가 제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고 도살자의 몸만 허공에서 찢겨 나가는 것처럼 연출되었다.

- [뇌절개인]: ??? 방금 검 휘두른 거 맞음? 프레임 드랍 일어난 거 아님? - [성좌_미소녀천사]: ㅋㅋㅋ 연출 지리네. 프레임 스킵 기법 쓴 듯? 편집자 일 잘하네! - [성좌_CG_Slayer]: 에이, 너무 티 나잖아! 피 튀는 이펙트 타이밍이 검 닿기 전부터 시작하네! 주작 퀄리티 실망입니다~

성좌들의 비아냥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도살자의 가슴 중앙, 메커니즘 윈도우가 가리키는 붉은색 약점을 향해 목검을 일직선으로 찔러 넣었다.

**[스킬: 룬 마력 가속 - 최대 출력 전개]**

쿠구구궁!

목검의 끝부분이 도살자의 두꺼운 흉판을 완전히 관통했다. 9배로 뻥튀기된 마력 폭풍이 녀석의 내부를 사정없이 헤집어 놓았다. 도살자의 거대한 몸집이 안쪽에서부터 터져 나가는 빛의 구체들에 의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잘 가라, 돼지 새끼야.”

내가 목검을 가볍게 회수하며 뒤로 돌아서는 순간.

퍼어어어엉-!

도살자의 몸체는 완전한 빛의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하수도의 천장까지 들썩이게 만들었던 거대한 보스 몬스터가, 불과 1분도 되지 않아 먼지처럼 소멸한 것이다.

그리고 그 파편의 중심부, 도살자의 가슴팍이 부서진 자리에서 형형색색으로 반짝이는 푸른색 결정체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것은 일반적인 마력석과는 궤를 달리하는, 기묘한 기운을 내뿜는 **‘도살자의 푸른 심장 핵 파편’**이었다.

나는 방송 카메라에 잡히지 않도록 미세한 손동작으로 신속하게 그 핵 파편을 낚아챘다. 그리고 내 아카데미 코트 속 깊숙한 안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이건 나중에 쓸 데가 있을 거야. 아카데미의 마력 제어 장치들과 공명 주파수가 일치하는 느낌인데…….’

은밀한 전리품 수확을 마치자마자, 내 머릿속에 경쾌한 알림음이 연이어 울렸다.

띠링! 띠링! 띠링!

**[★ 보스 토벌 정산 완료! ★]** **[성좌 ‘CG_Slayer’ 외 47명이 보낸 후원금 정산액: 5,000,000원]** **[현재 등록된 계좌로 전액 즉시 입금되었습니다!]**

스마트폰 화면에 찍힌 선명한 일시불 입금 문자.

실제 돈 500만 원이 내 통장에 꽂히는 순간, 내 입꼬리는 가면 뒤에서 귀에 걸릴 정도로 찢어졌다.

‘됐다! 이 속도라면 진짜로 졸업 전에 마포구에 꼬마빌딩 하나 올릴 수 있겠어! 은퇴가 머지않았다!’

희열에 찬 비명을 지르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바스락.

악취 나는 하수도 안개 너머, 내가 들어온 배수로 입구 반대편 구석에서 기분 나쁜 마찰음이 들려왔다. 뒤이어, 어둠을 날카롭게 찢는 강렬한 서치라이트 라이트 플래시가 내 얼굴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눈이 멀 것 같은 강한 빛에 나는 본능적으로 소매로 눈을 가렸다.

“정말 눈물겨운 쇼로군, 윤진.”

안개 속에서 울려 퍼지는 오만하고 고압적인 목소리. 빛 뒤편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값비싼 맞춤형 아카데미 제복 위에 빛나는 학생회 배지를 단 신지태였다. 그의 손에 들린 서치라이트가 내 가죽 가면을 집요하게 비추고 있었다.

“하하하! 쥐새끼처럼 구석에서 먼지만 빼는 줄 알았더니, 여기서 이런 역겨운 사기극을 벌이고 있었을 줄이야. 드디어 꼬리를 잡았군, 수석 입학생.”

신지태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로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 스마트폰 화면 속, 신상 유출 타이머의 숫자가 미친 듯이 깜빡거리며 위험 신호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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