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우우욱!
고막을 찢는 파공음과 함께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붉은 안광 두 쌍이 쇄도했다. 어깨높이만 해도 성인 남성의 키에 육박하는 괴수, 진짜 1종 마수 ‘그늘진 늑대’ 두 마리가 날카로운 발톱을 치켜세운 채 내 목덜미를 조준하고 날아든 것이다.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
맨얼굴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려 "살려주세요!"를 외치며 꼴사납게 빌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내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은 조잡한 플라스틱 호랑이 가면이었고, 내 손에는 스마트폰 거치대가 들려 있었다.
가면을 쓰는 순간, 내 안의 또 다른 자아가 멱살을 잡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방구석 키보드 여포 모드, 강제 가동.
"어이쿠, 깜짝이야! 형들, 이것 봐라? 연출 치고는 물리 엔진이 아주 살벌하지?"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던졌다.
구관 지하의 차갑고 축축한 시멘트 바닥 위를 한 바퀴 크게 구르는 롤링 낙법. 아카데미 수석 입학이라는 타이틀이 아주 장식은 아니었는지, 몸뚱이는 머리보다 빠르게 반응해 늑대들의 무시무시한 착지 지점을 벗어났다.
쾅!
늑대들이 내려앉은 바닥의 콘크리트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볼때기에 스친 바람만으로도 살갗이 아릿했다.
나는 바닥을 짚고 번개처럼 일어나며 허리춤에 매달아 둔 아카데미 보급용 연습용 목검을 뽑아 들었다. 비록 나무 쪼가리에 불과하지만, 마력을 주입하면 강철보다 단단해지는 룬 문자가 새겨진 물건이었다.
자세를 낮추고, 검자루를 아랫배 부근으로 끌어당겼다. 스킬 '빙결참(氷結斬)'의 기동 자세였다.
그 와중에도 내 눈은 셀카봉에 고정된 스마트폰 화면의 실시간 채팅창을 훑고 있었다.
- 빛나는대머리: 와 ㅋㅋㅋ 방금 낙법 모션 뭐냐? 프레임 드랍 일어난 줄 알았네 ㅋㅋㅋ 요즘 무료 어셋도 저것보단 부드럽겠다 야! - 방구석여포성좌: 늑대 텍스처 상태 와이러냐? 찰흙 인형인 줄. 털 묘사 귀찮아서 대충 덩어리로 뭉개놓은 거 보소. 제작비 아꼈네. - 겜잘알트래쉬: 야, 솔직히 타격감 개구릴 듯. 저 나무 막대기로 때리면 팅- 하는 깡통 소리 나는 거 아니냐? ㅋㅋㅋ - 주작감별사01: 백 프로 크로마키다. 뒷배경 먼지 날리는 필터 쓴 거 보소. 요즘 고딩들도 저것보단 편집 잘함.
"하하! 형님들, 방금 저 살벌한 궤적을 보고도 찰흙 인형 소리가 나와요? 눈에 필터 끼셨나? 이게 진짜 생생한 4D 입체 스크린인데 말이야!"
가면 밑으로 비죽 흘러나오는 조소를 굳이 숨기지 않은 채, 나는 목검 끝에 푸르스름한 마력을 응집시키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귓가에 경쾌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띠링!] [시스템: 시청자 및 성좌들의 '주작(조작) 의심 수치'가 급상승합니다!] [현재 의심 지수: 75%] [역설적 가스라이팅 버프가 활성화됩니다! 의심 지수에 비례하여 전투 능력치 및 스킬 배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스킬 '빙결참(Lv.1)'의 피해량이 증가합니다!] [기본 데미지: 80 -> **480 (600% 폭증!)**] [속성 효과: '빙결' 지속 시간이 5초 증가하며, 광역 한기 파동이 추가됩니다.]
오냐, 바로 이거지!
온몸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마력이 순식간에 불어났다. 평소라면 마력 회로가 과부하로 타들어 갈 정도의 무지막지한 고밀도 에너지가 보급용 목검 끝에 소용돌이쳤다.
나뭇결 사이사이로 서릿발이 돋아나며 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영하로 뚝 떨어졌다. 입을 열 때마다 하얀 김이 뿜어져 나왔다.
크르르릉!
회피당한 것에 자존심이 상했
상했는지, 녀석들이 기괴하게 주둥이를 벌리며 다시금 땅을 박찼다.
두 마리의 그늘진 늑대가 좌우로 갈라져 교차하는 궤적. 아카데미 실전 교본 제3장에 나오는 전형적인 '조기 섬멸 패턴'이다. 어설프게 뒤로 물러섰다간 목덜미와 허벅지를 동시에 뜯기고 요단강 편도 티켓을 끊을 게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내 몸에 흐르는 마력은 이미 평소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600%의 마력 폭증. 전신을 관통하는 마력의 전율에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형들, 눈 크게 뜨고 잘 봐! 이게 바로 자본주의가 낳은 '빙결참'이다!"
목검을 크게 휘둘렀다. 횡으로 그어진 검로를 따라, 푸른빛 서리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콰과과광!
단순한 검기가 아니었다. 의심 지수 75%가 만들어낸 왜곡된 현실. 허공에 얼음 가시가 돋아나며 도약하던 늑대들의 몸뚱이를 관통했다.
- 방구석여포성좌: 엌ㅋㅋㅋ 이펙트 떡칠 실화냐? 눈뽕 오지네 ㅋㅋㅋ - 빛나는대머리: 야, 솔직히 모션 그래픽 외주 어디다 줬냐? 나도 유튜브 인트로 좀 맡기게. - 겜잘알트래쉬: 빙결 효과 물리 엔진 실시간 계산하는 거 보소 ㅋㅋㅋ 프레임 드랍 안 일어나는 게 신기하네. 갓-겜 인정합니다.
성좌들의 비아냥거림이 이어질수록 내 검 끝에 실린 서릿발은 더욱 매서워졌다.
콰아아앙!
얼음 폭풍이 지하 통로를 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단 한 마디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붙은 늑대 두 마리가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쩍, 쩌적.
이내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하더니, 맹수들의 거대한 신체가 수천 개의 얼음 파편으로 화해 사방으로 흩날렸다. 1종 마수가 단 한 격에 흔적도 없이 소멸하는 광경이었다.
그때였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얼음 가루 사이로, 싸늘한 지하 하수구 냄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어? 이 냄새는…….'
은은하면서도 맑은, 상큼한 티트리 향에 달콤한 달빛을 섞은 듯한 기묘한 향취.
**[티트리 루나].**
아카데미 동기이자, 날 사사건건 감시하며 어떻게든 갱생시켜 보겠다고 잔소리를 퍼붓는 폭격기, 한서희가 애용하는 최고급 향수 냄새였다.
"설마 이 근처에 있는 건가?"
등골에 식은땀이 쫙 흘렀다. 그 순간, 거치대에 고정된 내 스마트폰 화면 구석의 오디오 레벨 미터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삐이이이-!
초고감도 마이크가 하수구 철창 너머 먼 복도에서 들려오는 아주 미세한 발소리와 기공의 파동을 빨아들이며 녹색 그래프를 길게 그려냈다. 화면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스마트폰의 변조 오디오 데이터에 그 고주파 파장이 고스란히 녹아들고 있었다.
만약 한서희가 이 아래로 내려와 내 가면 쓴 모습을 보고 정체를 알아챈다면?
[정체가 탄로 나는 즉시 시스템 버프 영구 소멸 및 던전 난이도 파멸적 폭증.]
머릿속에 경고등이 요란하게 깜빡였다. 아싸로서의 평화로운 삶과 내 은퇴 자금이 공중분해 될 위기였다.
나는 애써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바닥에 떨어진 늑대의 잔해로 급히 손을 뻗었다. 녀석들의 심장 부위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푸른색 마력석 두 개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시스템: '그늘진 늑대의 하급 마력석' 2개를 획득하셨습니다!] [예상 가치: 각 **150,000원**]
'좋아, 첫 자본금 적립 완료!'
주머니 속으로 영롱한 마력석을 찔러 넣는 손끝이 짜릿하게 떨렸다. 이 가난뱅이 F랭크 쭈구리 생활도 머지않았다. 이 돈을 모으고 모아 반드시 서울 중심가에 초고층 빌딩을 세우리라.
나는 카메라를 향해 짐짓 여유로운 척 목검을 어깨에 걸치며 씩 웃었다.
"어때요, 형들? 늑대 두 마리 컷! 이래도 주작입니까? 후원금 더 쏠 준비나 하라구요!"
채팅창이 폭발적인 속도로 올라가며 후원 알림이 연이어 터졌다.
그러나 그 축제 같은 분위기를 일순간에 얼어붙이는 단 하나의 댓글이 화면 중앙에 고정되었다.
- 주작감별단장: 야. 방금 마이크에 수집된 배경 소음 데시벨이랑, 바람 소리 반사율 스펙트럼 분석기 돌려봤거든? - 주작감별단장: 그리고 방금 흘러나온 고주파 구두 굽 소리랑 오디오 파형 매칭 결과 나왔다. - 주작감별단장: **여기 대한 아카데미 구관 지하 1층 배수로 맞네. ㅋㅋㅋ 신상 털렸다 새끼야 딱 기다려라.**
순간, 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턱밑까지 차오른 식은땀이 가죽 장갑을 적셨다.
대한 아카데미 구관 지하 1층 배수로. 이 미친 방구석 코난 새끼가 그걸 어떻게 맞춘 거지?
"어…… 어우, 형님들? 소설을 아주 기깔나게 한 편 쓰시네!"
나는 목소리 변조기 너머로 일부러 삑사리를 섞어가며 광대처럼 요란하게 웃어재꼈다. 여기서 기가 죽거나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면 저 하이에나 같은 주작 감별단 놈들에게 확증을 주는 꼴이었다.
"야, '주작감별단장' 형씨! 상상력이 거의 판타지 소설가 수준인데? 대한 아카데미? 거긴 대한민국 상위 0.1% 괴물 천재들만 기어 들어가는 초엘리트 수용소잖아! 내가 그런 데 다닐 대가리였으면 여기서 호랑이 가면 쓰고 썩어가고 있겠냐? 진작에 대기업 스폰 받아서 떵떵거렸지!"
침을 튀어가며 억울하다는 듯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그리고 방금 그 오디오? ㅋㅋㅋ 형들, 인터넷에 'SFX 하수구 울림 패키지 3호' 검색해 봐. 5천 원만 주면 다운로드할 수 있는 무료 공간 음향 프리셋이야! 거 아카데미 구관인지 신관인지 하는 데서 음향 소스를 따왔나 보지! 역시 방구석 전문가답게 낚시바늘을 아주 목구멍 깊숙이 삼켜버리네!"
- 빛나는대머리: 엌ㅋㅋㅋ 하수구 패키지 3호 ㅋㅋㅋㅋㅋ 가격 구체적인 거 보소 ㅋㅋㅋㅋ - 방구석여포성좌: 하긴, 저렇게 혓바닥이 현란하고 찐따 같은 새끼가 아카데미 엘리트일 리가 없음. 아카데미 애들은 목에 힘 빡 주고 다니느라 저런 저질 드립 칠 줄 모른다 이 말이야 ㅋㅋㅋ - 주작감별단장: 이악물고 실드 치네. 야, 두고 봐라. 내가 프레임 단위로 분석해서 네놈 대가리 위에 얹어진 가면을 강제로 벗겨줄 테니까.
[띠링!] [시스템: 시청자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지며 '주작 의심 수치'가 80%로 추가 상승합니다!] [시스템: 역설적 버프 효과로 근력이 일시적으로 증가합니다!] [시스템: 그러나…… 실시간 현실 동기화 위협이 감지되었습니다!]
갑자기 눈앞의 파란색 시스템 창이 핏빛으로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위험! 스트리머의 실제 정체성과 현실 공간 좌표의 연관성이 12% 일치하는 단서가 대중에 노출되었습니다.] [비상 프로토콜: '정체 비익(庇匿) 시한 제한'이 강제 발동합니다!] [남은 시간: **48:00:00**] [페널티 제약: 48시간 이내에 '주작감별단'의 추적을 완벽히 교란하거나 무력화하지 못할 경우, 시스템 버프가 영구 소멸하며 현재 아카데미 구역의 던전 난이도가 '종말급'으로 폭증합니다.]
'미친, 48시간 시한폭탄이라니!'
심장이 갈비뼈 아래로 툭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평생 은퇴 자금을 모아서 강남 건물주로 살아가려던 내 야무진 꿈에 난데없이 불도저가 들이닥친 꼴이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저 멀리 어두운 복도 통로 너머에서 뚜벅, 뚜벅 하는 구두 굽 소리가 한층 더 선명해졌다. 공기 중에 스며든 티트리 루나 향수 냄새가 코막을 마비시킬 정도로 짙어졌다.
진짜 한서희가 코앞까지 왔다.
"어우, 형들! 저기 어둠 속에서 보스 몹 리젠되는 이펙트 터지는 거 보이지? 아무래도 오늘은 장비 점검 좀 해야겠어! 다들 주작 감별하느라 헛물켜느라 고생들 많았고, 다음 방송엔 진짜 가고일 그래픽 들고 올 테니까 후원금 두둑하게 충전해 놔! 바바이!"
"야! 방금 그 소리 뭔데! 꺼지마-!"
채팅창에 올라오는 주작감별단장의 악에 받친 비명을 뒤로한 채, 나는 가차 없이 송출 종료 버튼을 눌렀다.
스마트폰 화면이 꺼지며 주변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회귀했다.
나는 즉시 호랑이 가면을 벗어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었다. 그러고는 하수구 벽면에 밀착하여 낡은 철제 배관 사이, F랭크 아싸인 나만이 숨어 들어갈 수 있는 비좁은 틈새로 몸을 구겨 넣었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기 위해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잠시 후, 눈부신 LED 손전등 불빛이 어둠을 가르며 허공을 휩쓸었다.
"……누구 있어?"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 대한 아카데미의 차세대 에이스이자 잔소리 폭격기, 한서희가 마침내 배수로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녀는 얼어붙은 그늘진 늑대의 잔해가 사방으로 흩어져 서리가 서린 기괴한 현장을 손전등으로 비추었다. 가죽 부츠가 축축한 바닥을 디딜 때마다 질척이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렸다.
"분명 방금 이 근처에서 강력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는데…… 이건 빙결 마법의 잔해인가?"
그녀의 시선이 내가 숨어 있는 철제 배관 바로 앞을 스쳐 지나갔다. 거리가 불과 1미터도 되지 않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는 통에 갈비뼈가 아파왔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기를 억누르며 어둠의 일부가 되었다.
한서희는 한참 동안 주변을 탐색하다가, 바닥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듯 허리를 숙였다.
"이건……?"
그녀가 손등으로 쓸어올린 것은, 그늘진 늑대가 얼어붙으며 남긴 아주 미세한 마력의 결정체 조각이었다. 푸른빛으로 반짝이는 결정체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던 한서희의 미간이 좁아졌다.
"아카데미 보급용 목검에 주입된 룬 마력의 파동? 설마…… 우리 학년 중에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자가 있다고?"
그녀의 중얼거림이 귓전에 날카롭게 꽂혔다. 다행히 내 얼굴을 들키진 않았지만, 그녀의 의심 레이더망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은 확실했다.
한참을 서성이던 한서희가 결국 소득 없이 배수로를 빠져나간 뒤에야, 나는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바닥으로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 * *
다음 날 아침, 대한 아카데미 중앙 교정.
밤새 주작감별단의 IP 추적을 우회할 가상 프록시 서버를 구축하느라 눈 밑이 휑뎅그렁해진 채로 등교했다. 시선공포증 때문에 땅바닥만 보며 걷는 내 몰골은 영락없는 F랭크의 전형이었다.
'48시간 안에 감별단 놈들의 이목을 돌려놓지 못하면 진짜 끝장인데…….'
머리가 깨질 것처럼 지끈거렸다. 안전지대인 사물함 뒤편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던 그 순간, 누군가 내 앞을 무지막지하게 가로막아 서며 그림자를 드리웠다.
"야, 쓰레기."
오만함이 뚝뚝 떨어지는 기분 나쁜 목소리.
천천히 고개를 들자, 값비싼 맞춤형 아카데미 제복을 입은 신지태가 팔짱을 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말려 올라가 있었다.
"어제 밤늦게 구관 하수구 주변을 기웃거리던 쥐새끼가 한 마리 있다던데. 윤진, 너지?"
그의 등 뒤로, 내 스마트폰에 표시된 48시간 타이머의 숫자가 **42:15:23**을 가리키며 무자비하게 줄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