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야, 윤진! 너 거기 안 서? 오늘이야말로 그 썩어빠진 정신머리를 개조해 놓겠어!"

쩌렁쩌렁한 고함이 구관 복도의 벽면을 사정없이 때렸다.

윤진은 심장이 늑막을 뚫고 튀어나올 것 같은 공포에 휩싸였다. 수석 입학생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그의 다리는 사시나무 떨듯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군홧발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존재는 아카데미의 걸어 다니는 규율이자, 정의감 빼면 시체인 동기 한서희였다.

타인의 시선이 1밀리리터만 닿아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는 극심한 시선공포증 환자에게, 저 저돌적인 추격자는 그야말로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히익……!"

윤진은 이빨을 딱딱 마주치며 목덜미를 감싸 쥐었다.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 오직 어둠만이 자신을 가려줄 수 있는 완벽한 피난처가 필요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구관 모퉁이에 방치된, 녹슨 철창문 아래의 좁은 틈새로 몸을 구겨 넣었다. 먼지 구덩이를 구르며 하수구 배관이 훤히 드러난 지하 통로로 굴러떨어졌다.

쾅!

위쪽에서 철창문이 흔들리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고, 이내 씩씩거리는 거친 숨소리가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어디로 간 거야, 대체? 굼뜬 줄 알았더니 도망칠 때만 쥐새끼처럼 빠르네."

한서희의 읊조림이 공기를 타고 내려왔다. 그녀가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마다, 그녀의 목덜미와 손목에서 풍겨 나오는 특유의 향수 냄새가 좁은 하수구 틈새로 스며들었다. 달콤하면서도 알싸한 '티트리 루나'의 잔향이었다.

윤진은 숨을 완전히 죽인 채, 자신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스마트폰을 꼭 쥐었다.

그때, 윤진의 가슴팍에 매달려 있던 방송용 소형 핀마이크의 LED 등이 미세하게 깜빡였다. 미처 꺼지지 않은 스마트폰의 수신 회로가 한서희의 구두 발자국 소리와 함께, 그녀가 풍기는 향수의 미세한 기공 공명 음파를 아주 미세한 고주파 데이터로 변조하여 빨아들이고 있었다. 물론, 잔뜩 겁에 질린 윤진은 그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하수구 안쪽은 썩은 물비린내와 이끼 낀 돌벽의 냉기로 가득했다. 한서희의 발소리가 완전히 멀어지고 나서야 윤진은 겨우 막혔던 숨을 토해냈다.

"후우, 하아…… 살았다. 진짜 심장마비로 요단강 건널 뻔했네."

가슴을 쓸어내리며 축축한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은 순간이었다.

지하의 짙은 어둠 속에서, 난데없이 눈이 멀 것 같은 백색의 빛무리가 윤진의 안구 바로 앞까지 들이닥쳤다.

잉- 하는 기계음과 함께 공중에 기이한 반투명 글자들이 떠올랐다.

[시스템 가동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사용자: 윤진 (대한 아카데미 수석 입학생 / F랭크 아싸)] [고유 능력: '스트리머의 역설 가스라이팅 시스템'이 각성합니다!]

"……어?"

윤진이 멍청하게 침을 흘리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으로 난데없는 시스템 가이드라인이 해일처럼 밀려들어 왔다.

[★ 스트리머의 역설 가스라이팅 규칙 ★] 1. 당신이 켜는 라이브 방송의 시청자(성좌)들이 당신의 무력과 상황을 '주작(CG/조작)'이라 의심할수록, 당신의 실제 전투 능력치와 스킬 배율이 실시간으로 최대 1000%까지 폭증합니다! 2. 불신은 곧 물리적인 파괴력으로 환산됩니다. 남들을 완벽하게 속여 넘기십시오! ※ 경고: 만약 시청자 중 단 한 명이라도 당신의 진짜 정체가 '아카데미 신입생 윤진'임을 100% 확신하여 신상이 털리는 순간, 모든 버프는 영구 소멸하며 현재 진입한 던전의 난이도가 최악으로 폭증합니다.

"미친…… 이게 무슨 개소리야?"

윤진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튀어 나갔다.

남들이 나를 가짜라고 욕하고 의심해야 강해진다고? 게다가 정체가 들통나면 인생 퇴장이라고?

세상의 이목을 피해 조용히 아카데미를 턱걸이로 졸업한 뒤, 방송 후원금이나 야금야금 모아서 서울 노른자 땅에 빌딩 한 채 올리고 평생 침대 위에서 굴러다니는 게 유일한 인생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런 시한폭탄 같은 시스템이라니.

하지만 눈앞의 텍스트는 장난이 아니었다. 하수구 깊은 곳에서부터 스멀거리며 기어 나오는 불길한 마력의 파동이 피부를 찔렀다. 이 깊은 구관 지하는 단순한 하수구가 아니었다. 차원 침식으로 인해 아카데미 지하에 형성된 미공개 격리 구역이었다.

살기 위해서는 방송을 켜야 했다. 그리고 철저하게 가짜인 척 연기해야 했다.

윤진은 품 안에서 꼬깃꼬깃하게 접혀 있던 싸구려 검은색 가죽 가면을 꺼냈다. 얼굴에 가죽을 덧대고 뒤편의 끈을 단단히 조여 매는 순간, 그의 뇌리를 지배하던 시선공포증의 안개가 마법처럼 걷혔다.

맨얼굴로는 개미 한 마리에게도 쩔쩔매는 쭈구리지만, 얼굴을 가리는 순간 그의 입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기관차로 변했다.

"조아쓰. 가보자고."

목소리 변조 스위치를 켜고, 스마트폰의 방송 앱 '성좌 튜브'의 라이브 스트리밍 버튼을 사정없이 짓눌렀다.

방 제목: [하수구에서 맨손으로 늑대 잡는 실시간 생존 방송 (CG 아님)]

라이브가 켜지자마자, 허공에 붉은색 채팅창이 생성되었다. 인간계의 플랫폼이 아니었다. 저 머나먼 심연과 천상의 구석탱이에서 빈둥거리며 팝콘을 뜯던 초월적 존재들, 즉 '성좌'들의 유입이 시작된 것이다.

[시스템: 채널 '가면 헌터'의 스트리밍이 시작되었습니다!] [성좌 '방구석여포성좌'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성좌 '무공은치킨맛'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성좌 '빛나는대머리'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순식간에 시청자 수가 수십 명을 돌파하더니, 채팅창이 요란하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 무공은치킨맛: 와, 요즘 헌터 방송 트렌드는 하수구 컨셉이냐? 비주얼 더러운 거 보소 ㅋㅋㅋ - 빛나는대머리: 야, 방장아. 가면 꼬라지 왜 저러냐? 동대문 시장에서 삼천 원 주고 샀냐? - 방구석여포성좌: 늑대 잡는 실시간 방송? ㅋㅋㅋ 구라도 적당히 쳐라. 요즘 그래픽 기술 좋아졌다고 아주 대놓고 주작질이네. 딱 봐도 세트장에 크로마키 초록 천 둘러놓고 연기하는 거구만.

성좌들의 키보드 워리어 기질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들은 윤진의 방송을 보자마자 '주작'이라며 손가락질을 해댔다.

하지만 윤진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면 속에서 입꼬리가 귀걸이에 걸릴 정도로 찢어졌다.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경고등이 요란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띠링!

[실시간 시청자들의 주작 의심 수치: 45%] [역설적 가스라이팅 버프가 발동합니다!] [사용자의 기본 '힘(Strength)' 수치가 실시간으로 격상됩니다.] [기본 힘: 12 → **실시간 적용 힘: 45** (3.7배 격상!)]

"오오오……!"

윤진은 굳게 쥔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온몸의 모세혈관이 터져 나갈 듯 뜨거운 전류가 들이쳤다. 쪼그라들어 있던 이두근과 삼두근이 단단하게 팽창했고, 척추를 타고 내려가는 뼈마디가 우두둑 소리를 내며 재조립되었다. 허약하던 F랭크의 신체가 단숨에 아카데미 상급 기사 수준의 완력으로 치솟은 것이다.

이것이 불신의 힘이었다. 성좌들이 자신을 허풍쟁이 사기꾼으로 의심할수록, 육체는 신의 영역에 가까워졌다.

윤진은 마이크를 톡톡 건드리며, 한껏 거만하고 깔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이, 거기 방구석에서 모니터만 보느라 눈이 침침해진 성좌 형씨들. 내가 진짜 친절하게 말해주는데, 눈이 삐었으면 안과를 가세요. 이게 CG로 보여? 어딜 봐서 크로마키야, 이 무식한 양반들아!"

- 빛나는대머리: 어라? 이 새끼 말하는 꼬락서니 보소? 대선배 성좌님들 앞에서 아가리 터는 폼이 예사롭지 않네? - 방구석여포성좌: ㅋㅋㅋ 말빨은 인정한다. 근데 요즘 모바일 게임 그래픽도 이거보단 현실감 있겠다. 하수구 벽면에 이끼 낀 연출 너무 인위적인 거 아님? 100% 3D 맥스로 대충 렌더링 돌렸네. - 무공은치킨맛: ㅇㅇ 인정. 저거 진짜 마수 나타나면 바로 도망치거나, 아니면 대역 배우가 튀어나와서 칼질할 듯. 요즘 애들은 노력은 안 하고 이펙트로 떡칠해서 쉽게 돈 벌려 그래 ㅉㅉ.

"하! 나 참 기가 차서."

윤진은 콧방귀를 세차게 뀌며 하수구 벽면을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시멘트 가루가 풀풀 날리며 벽에 깊숙한 주먹 자국이 패였다.

물론 힘 수치가 45로 치솟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화면으로 보기에는 그저 가벼운 연출처럼 보였다.

"이게 3D 렌더링이라고? 형씨들, 내가 진짜 늑대 한 마리 잡아서 그 자리에서 해체 쇼라도 해줘야 믿을래? 요즘 성좌들은 의심병만 늘어서 큰일이야. 뇌가 주작으로 절여졌나 봐?"

윤진의 도발적인 혀놀림에 채팅창이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 빛나는대머리: 아, 킹받네 진짜 ㅋㅋㅋ 야! 너 진짜 늑대 잡으면 내가 꿀밤 후원금 던진다! - 방구석여포성좌: 나도 동참한다. 백 프로 주작 연출일 테지만, 그 뻔뻔한 연기력이 가상해서 던져준다.

[시스템: 성좌 '빛나는대머리' 님이 꿀밤 후원금 **5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시스템: 성좌 '방구석여포성좌' 님이 꿀밤 후원금 **5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스마트폰 화면에 황금빛 이펙트가 터지며 통장 잔고가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알림이 울렸다.

[현재 확보한 후원 자원: **100,000원** (현금 인출 가능)]

'됐다! 들어왔다!'

가면 뒤에서 윤진의 눈이 탐욕스러운 황금빛으로 번뜩였다. 꿀밤 10만 원이 진짜로 꽂혔다. 이대로 성좌들을 살살 긁어가며 가스라이팅을 유지하면, 평생 은퇴 자금 마련은 꿈이 아니었다. 시선공포증 때문에 아카데미에서 겉돌던 서러움이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감사합니다, 호구…… 아니, 귀하신 성좌 형님들! 후원금은 내일 아침 맛있는 뜨끈한 국밥 한 그릇과 건물 매입 자금으로 유용하게 쓰겠습니다! 자, 그럼 슬슬 약속한 늑대를 보여 드려야겠지?"

윤진이 가죽 장갑을 낀 손가락을 튕기며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뻔뻔한 미소를 짓던 그의 안면 근육이 이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하수구 심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너머에서부터 소름 끼치는 피비린내가 바람을 타고 불어왔다.

스르륵, 사각사각.

무언가 젖은 흙바닥을 긁으며 고속으로 접근하는 소리였다. 단순한 쥐새끼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거대한 맹수가 사냥감을 노릴 때 내는, 뼈가 시려오는 살기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어둠 속에서 두 쌍의 기괴한 안광이 번뜩였다. 피처럼 붉고, 심연처럼 깊은 안광.

그것은 아카데미 지하의 차원 균열을 통해 침식해 들어온 진짜 1종 마수, '그늘진 늑대' 두 마리였다. 어깨높이만 해도 성인 남성의 키에 육박하는 거대한 괴수들이 톱날 같은 이빨 사이로 검붉은 침을 뚝뚝 흘리며 웅크리고 있었다.

크르르르르…….

지하 통로 전체를 뒤흔드는 늑대들의 나지막한 으르렁거림이 고막을 찔렀다.

"……어우, 야. 진짜가 나왔네."

윤진이 마른침을 삼키며 뒤로 반 걸음 물러선 그 순간.

두 마리의 그늘진 늑대가 바닥을 박차고, 윤진의 목덜미를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공중으로 도약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