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 댕————!
대한 아카데미의 심장부를 뒤흔드는 육중한 개막종 소리가 대강당의 공기를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고막을 물어뜯는 듯한 금속음과 함께, 강당 중앙을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강철 장벽이 스르륵 양옆으로 갈라졌다. 그 너머 어둠 속에서 시퍼런 마력의 소용돌이가 소용돌이치며 짐승의 울음 같은 바람 소리를 토해냈다.
관람석 맨 앞줄. 라이벌 신지태의 어깨가 팽팽하게 굳어 있었다. 그의 입꼬리는 비열하게 호선을 그리고 있었고, 눈빛에는 당장에라도 사냥감을 물어뜯을 듯한 독기가 가득했다. 내 바로 뒤편에 서서 팔짱을 끼고 있던 한서희 역시 사냥개처럼 예민하게 주변을 살폈다. 그녀의 시선은 내 손끝, 그리고 품속에 들어 있는 스마트폰 화면을 향해 끈질기게 따라붙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토록 노려보고 있는 대상은, 내가 그 자리에 세워둔 치밀한 마력 홀로그램 분신에 불과했다.
"……후우."
나는 이미 공간의 뒤틀림을 타고 지하 3층, 인적이 완전히 끊긴 외딴 화장실의 거대한 대리석 기둥 뒤편 음지로 몸을 숨긴 뒤였다.
콧등을 스치는 차가운 타일 냄새와 어둠이 나를 감싸 안았다. 오프라인에서 수백 명의 시선이 집중되는 상상만 해도 위장이 뒤틀리고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지독한 시선공포증이 발작하려던 참이었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것처럼 쿵쾅거렸다.
그러나 품 안에서 검붉은 가죽 가면을 꺼내 얼굴에 완전히 밀착시키는 순간, 뇌리를 지배하던 공포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척수를 타고 짜릿한 전율이 흘러내렸다. 가면을 쓰는 순간, 나는 쭈구리 아싸 윤진이 아니었다. 이 방구석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여포, 스트리머 '가면 헌터'였다.
"자, 방구석에서 손가락만 놀리는 병신 형들아. 쇼타임이다."
나는 목소리 변조기를 켜고, 미리 화장실 구석 벽면에 세팅해 둔 원격 화질 중계기를 작동시켰다. 스마트폰 화면을 톡 두드리자, 성좌 채널의 생방송 시작 버튼이 붉게 점멸했다.
[생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시청자 수: 189,400명 -> 312,050명]
방송이 켜지기가 무섭게, 대기방에서 침을 흘리며 기다리던 시청자들이 채팅창을 폭포수처럼 채우기 시작했다.
- 와, 이 사기꾼 새끼 드디어 켰네? ㅋㅋㅋㅋ - 오늘 아카데미 지하 3층 시연회 날인 거 어떻게 알고 딱 맞춰 켰냐? - 야, 근데 배경 화면 실화냐? 아카데미 지하 3층 비급 던전 내부 구조랑 완벽하게 똑같은데? - ㅋㅋㅋ 요즘 모바일 게임 그래픽 수준 진짜 미쳤다. 대기업 스캔 데이터 해킹해서 실시간 3D 레이더 화면으로 돌리는 거 보소! 주작 퀄리티 하나는 진짜 우주 매장 급이네! - 백퍼 CG네 ㅋㅋㅋ 벽면 타일 질감 보소. 저게 진짜 필드면 내가 내 손가락으로 장을 지진다!
화면 너머로 쏟아지는 불신과 조롱의 향연. 그리고 그 난장판의 중심에는 익숙한 ID 하나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성좌 'CG_Slayer'가 15,000코인을 후원하며 코방귀를 뀝니다!]** [어설픈 3D 그래픽 장난질로 성좌들의 눈을 속이려 들지 마라, 가짜 헌터 놈아. 아카데미의 진짜 수석 윤진이는 지금 관람석 맨 앞줄에 얌전히 앉아 내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 본체가 뻔히 다른 곳에 있는데 이 방송 화면이 진짜라고? 어디서 사기를 쳐! 백퍼센트 가상 시뮬레이션 화면이다!]
그럼, 그렇고말고. 네 눈에는 관람석의 홀로그램이 진짜로 보이겠지. 어리석은 마신 모르고스 놈. 네놈의 그 얄팍한 확신과 훈수질이 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날뛰는 꼴이 우스웠다.
머릿속에서 경쾌하고 타격감 넘치는 시스템 기계음이 고막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시청자들의 '주작(조작) 의심 수치'가 한계치까지 돌파합니다!] [실시간 의심지수: **97%**] [스트리머의 역설 가스라이팅 버프가 영역 전체에 전개됩니다!] [모든 신체 능력치 및 스킬 배율이 **970%**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현재 공격력 수치: **150** -> **1,455**]
쩌저적!
전신을 관통하는 압도적인 마력의 흐름에 뼛속까지 저릿한 쾌감이 몰려왔다. 손아귀에 쥔 싸구려 연습용 한손검 위로 퍼르스름한 뇌전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일렁였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터져 나가기 직전의 압도적인 물리적 힘이 차올랐다. 이 정도 힘이라면 눈앞의 거대한 대리석 기둥 따위는 손가락 하나로 가루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형들, 눈이 삐었어? 이게 CG로 보이면 당장 안과 가서 백내장 수술부터 받아라. 눈깔은 폼으로 달고 다니냐?"
가면 너머로 거친 실소를 흘리며 도발을 던지는 순간, 저 멀리 복도 끝에서 심상치 않은 파동이 감지됐다.
쿠아아아아앙—!
대강당 지하 벽면 전체가 쩍쩍 갈라지며 고막을 찢는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아카데미가 자랑하는 초현대식 인공 던전 게이트의 제어 장치가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붉은색 스파크를 사방으로 뿜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경보! 경보! 게이트 제어 시스템 불능! 차원 침식 수치 임계값 돌파!" "다수의 심연 사도들이 제어 구역 내로 강제 진입 중!"
기계음 섞인 경보음이 지하 3층 전체를 통째로 뒤흔들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하급 마수 몇 마리만 튀어나와 원생들의 시연 대상이 되어야 했을 게이트였다. 하지만 지금 제어 장치의 폭주로 인해, 차원의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 기거하는 시퍼런 눈의 사도들이 차원의 틈새를 거칠게 찢어발기며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두면 던전 내부의 격리 구역뿐만 아니라, 저 위층 관람석에 대기 중인 동기들과 교관들까지 통째로 쓸려나갈 터였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게이트의 제어 신호가 끊기면 내 방송의 가상 중계 신호와 멀티 프록시 우회망까지 한꺼번에 터져버린다는 점이었다. 정체가 탄로 나는 순간 내 은퇴 자금과 시스템은 영구 소멸이다.
"쯧, 세금 받아 처먹는 아카데미 놈들 기계 관리 수준 하곤. 짱구 머리 굴려서 만든 기계가 이 모양이냐?"
나는 혀를 차며 소매 안쪽 깊숙한 비밀 주머니로 손을 뻗었다. 손끝에 차갑고, 심장처럼 미세하게 쿵쿵거리는 이질적인 감각이 닿았다.
과거 그림자 하수도에서 목숨을 걸고 대가리를 깨부수어 획득했던 보스 마수, [도살자의 푸른 심장 핵 파편]이었다.
이 핵 파편은 던전 내부의 불규칙한 마력 흐름을 강제로 흡수하고 묶어두는 독특한 유기적 자성을 지니고 있었다. 현대의 마법 공학 기계들이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던전 본연의 태고적 제어 장치나 다름없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신체를 날렸다. 폭증한 민첩성 덕분에 내 신형은 잔상조차 남기지 않고 순식간에 시연회장 구석에 위치한 메인 제어반 뒷벽으로 파고들었다.
치지직! 콰르릉!
벌겋게 달아오른 도선들이 미친 듯이 요동치며 사방으로 고압의 마력 전류를 뿜어냈다. 피부가 타들어 갈 듯한 열기가 밀려왔지만, 970%의 버프를 두른 내 육체에는 간지러운 수준에 불과했다.
"여기다 박으면…… 되겠지."
나는 도선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메인 제어 노드의 정중앙, 마력 흐름이 가장 격렬하게 충돌하는 틈새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던 [도살자의 푸른 심장 핵 파편]을 사정없이 박아 넣었다.
콰드득! 콰득!
마치 원래 제자리를 찾아간 부품처럼, 푸른 핵 파편이 기계 장치와 맞물리며 일치하는 소리를 냈다. 그 순간, 피처럼 붉게 타오르며 폭주하던 제어반의 과부하 에너지가 거짓말처럼 차분한 푸른빛으로 정화되기 시작했다.
도살자의 핵이 뿜어내는 강력한 마력 억제 파동이 아카데미의 기계 장치와 완벽하게 동기화된 것이다. 내 방송의 가상 송출 신호 역시 흔들림 없이 한층 더 단단하게 융합되어 고화질의 화면을 유지했다.
- 어? 기계 폭주 멈춘 거임? - 와 ㅋㅋㅋ 저 새끼 제어반 뜯어서 이상한 돌덩이 하나 박으니까 기계 바로 조용해지는 거 보소. - 연출 지리네 진짜 ㅋㅋㅋ 무슨 공학 박사 컨셉이냐? - 주작도 머리가 좋아야 하는구나. 저 푸른 돌멩이 그래픽 이펙트 존나 이쁘다 야.
시청자들은 여전히 이것을 짜여진 연출이라며 낄낄거렸지만, 현장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관람석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뭐, 뭐야? 게이트 경보가 울렸는데 왜 출구가 안 열려?!" "대피해야 하는 거 아니야? 교관님! 교관님 어디 계십니까!"
신지태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소리를 질렀다. 그의 오만한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예상치 못한 시스템 오동작 앞에 극도의 공포를 느끼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주변의 다른 원생들 역시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지려 했으나, 차단벽이 내려앉아 출구는 굳게 닫힌 상태였다.
"진정해라! 신지태, 너 수석 입학생 라인이라며! 대열을 정비해!" "시끄러! 이 상황에서 어떻게 싸우라는 거야!"
원생들이 서로를 탓하며 분열하는 그 난장판 속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비정상적으로 조용했다.
한서희였다.
그녀는 난동을 부리는 동기들을 보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 속, 실시간으로 재생 중인 '가면 헌터'의 생방송 화면만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코끝이 미세하게 움찔했다.
시연회장에 가득 찬 기계 타는 냄새와 먼지 구덩이 속에서도, 그녀의 예민한 후각은 특유의 향을 포착해 냈다. 오늘 아침, 오직 자신만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극소량만 뿌리고 나왔던 고가의 리미티드 에디션 향수. '티트리 루나'.
이 향수에는 마법 공학 기계나 고출력 마력 장비와 접촉할 때, 미세한 고주파 음향 데이터로 변조되어 소음을 유발하는 특이한 화학 성분이 포함되어 있었다. 일반적인 귀로는 절대 잡아낼 수 없는 극미세한 주파수였다.
그런데 지금, 스마트폰의 고급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 가면 헌터의 방송 마이크 음향 필터링 너머로, 방금 전 자신이 윤진의 옆을 아주 밀접하게 스쳐 지나갈 때 발생했던 바로 그 특유의 고주파 잡음 파형이 소름 끼치도록 완벽하게 겹쳐 흐르고 있었다.
"……말도 안 돼."
한서희의 턱밑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의 시선이 천천히 관람석 구석에 기대어 좀비처럼 멍하니 앉아 있는 윤진의 형상을 향했다.
평소라면 아무 문제 없이 흐릿하게 보였을 윤진의 모습.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의 어깨 끝부분이 미세하게 지직거리며 1초에 수십 번씩 흔들리는 마력의 왜곡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윤진…… 너였어?"
그녀의 눈동자가 격렬한 충격으로 흔들렸다. 자신이 그토록 동경하고 쫓아다니던 전설적인 스트리머 '가면 헌터'가, 자신이 매일같이 잔소리를 퍼붓고 쓰레기라며 무시했던 아싸 동기 윤진이었다니.
머릿속의 모든 단서들이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지는 순간,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전율이 그녀의 전신을 지배했다.
그 순간, 대강당 중앙의 거대한 제어 전광판이 밝게 빛나며 선명한 녹색 글자를 뿜어냈다.
[게이트 안정화 성공: CLEAR]
"우와아아아! 살았다!" "통제 장치가 다시 작동한다!"
원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신지태 역시 쓸어내린 가슴을 움켜쥐며 안색을 되찾았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이것은 진짜 클리어가 아니었다.
지하 3층, 내가 서 있는 어두운 제어반 밑바닥. 콘크리트 바닥의 시커먼 균열 틈새에서, 끈적끈적하고 거머리 같은 검은 형체의 손들이 무수히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손들은 단순한 지하의 마수가 아니었다.
차원의 장벽 너머에서 오직 나만을 주시하고 있던 마신, 모르고스의 집요하고 차가운 악의가 빚어낸 실체적인 침식의 손길이었다.
**[성좌 'CG_Slayer'가 당신을 지목하며 탐식의 미소를 짓습니다.]**
검은 손들이 내 발목을 향해 번개처럼 뻗어왔다. 그 서늘한 기운이 내 가죽 장화를 집어삼키려는 바로 그 찰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