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 장치 위쪽에서 푸르고 안전한 수치 기류가 소용돌이치며 '클리어 성공(CLEAR)' 녹색 전광판이 번쩍였다. 대강당을 가득 채웠던 마력 폭주의 압박감이 한순간에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무기를 쥐고 대치하던 생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찰나, 지하 암흑의 깊고 어두운 균열 틈새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머리 같은 검은 손들이 솟아올랐다. 끈적거리는 타르 같은 악의를 뿜어내는 손들은 기쁨에 젖어 있던 생도들의 발목을 향해 번개처럼 뻗어나갔다.
"어……? 어어?!"
선두에 서 있던 남학생 하나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발목을 붙잡혀 바닥으로 처박혔다. 단단한 대리석 바닥을 뚫고 솟구친 시커먼 손아귀들은 닿는 모든 생명력을 빨아들이듯 기괴한 음치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대강당 중앙 제어 전광판의 녹색 글자가 지직거리며 붉은색으로 오염되기 시작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위-잉! 경고! 시스템 오작동! 게이트 침식도 측정 불가!] [경고! 차원 장벽의 붕괴율이 임계점을 초과했습니다!]
"이, 이게 무슨 소리야? 방금 클리어라고 떴잖아!" "대피해! 빨리 문 열어!"
교관들이 소리를 지르며 대강당의 거대한 철문으로 달려갔으나, 문은 이미 시커먼 타르 같은 물질로 단단히 용접되어 있었다. 손을 대는 순간 지독한 부식성 마력이 피어올라 교관들의 장갑을 녹여 버렸다. 지독한 역병의 연막이 대강당 구석구석에서 뿜어져 나와 사방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 아수라장의 한가운데, 관람석 구석진 자리에서 한서희는 제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지독한 역병 연막이 폐부를 찔러왔지만, 그녀의 신경은 온통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실시간으로 흘러나오는 '가면 헌터'의 방송 소리. 스피커의 노이즈 캔슬링 필터 너머로 들려오는 극미세한 고주파 음향.
그것은 방금 전 자신이 윤진의 옆을 아주 밀접하게 스쳐 지나갈 때 흩뿌려졌던 고가의 리미티드 에디션 향수, '티트리 루나'의 성분이 마력 제어 장치와 반응해 일으키는 고유의 파형이었다.
"윤진…… 너였어?"
한서희의 턱끝이 잘게 떨렸다. 그녀의 시선이 관람석 구석에 기대어 좀비처럼 멍하니 앉아 있는 윤진의 형상을 향했다.
자세히 보니 그의 어깨 끝부분이 미세하게 지직거리며 1초에 수십 번씩 흔들리는 마력의 왜곡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정교하게 짜인 마력 분신(Double)의 잔상이었다. 진짜 윤진은 지금 이곳에 없다. 그렇다면 진짜는 어디에 있는가.
"지하 3층……."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그토록 동경하고 쫓아다니던 전설적인 스트리머 '가면 헌터'가, 매일같이 잔소리를 퍼붓고 쓰레기라며 무시했던 아싸 동기 윤진이었다니. 머릿속의 모든 단서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들어가며 전율이 척추를 타고 흘러내렸다.
동시에 지독한 일산화탄소 같은 역병 연막이 그녀의 시야를 흐려놓았다.
* * *
같은 시각, 어두컴컴한 지하 3층 제어반 밑바닥.
"아, 진짜 더럽게 끈적거리네."
나는 발목을 감싸 쥐려는 시커먼 거머리 손들을 향해 가볍게 발길질을 날렸다. 툭, 하고 가볍게 찼을 뿐인데도 마신의 악의로 빚어진 검은 손들이 두부처럼 으깨어지며 사방으로 튀었다.
눈앞의 거대한 마력 제어 장치는 완전히 맛이 간 상태였다. 붉은 마력이 미친 듯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포효하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지하 3층 전체가 통째로 날아갈 터였다.
나는 품 안을 뒤적였다. 손끝에 거칠고 딱딱한 감각이 걸렸다.
지난번 그림자 하수도에서 도살자를 썰어버리고 은밀하게 챙겨두었던 '도살자의 푸른 핵 파편'이었다. 마력 제어 장치와 공명하는 특이한 성질을 가진 물건.
"귀찮게 진짜…… 사기꾼 마신 새끼가 어딜 기어들어와?"
나는 핵 파편을 쥐고 폭주하는 제어 장치의 중심부 홈에 사정없이 밀어 넣었다.
콰아아앙!
푸른 섬광이 사방으로 튀며 붉은 스파크를 억누르기 시작했다. 거칠게 요동치던 제어 장치의 마력 파동이 도살자의 핵 파편이 뿜어내는 기운과 마찰을 일으키며, 기이할 정도로 안정적인 주파수로 강제 수렴되었다. 변조 수동 출력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마력 제어 장치의 폭주가 일시적으로 지연됩니다.] [수동 제어 출력 동기화 완료.]
"후우, 대충 땜질은 해놨고."
나는 코를 훌쩍이며 뺨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얼굴에 쓴 가죽 가면이 조금 삐뚤어져 있었다. 스마트폰 거치대를 조정해 카메라 앵글을 내 발끝과 어두운 지하 통로 쪽으로 맞췄다.
실시간 방송 화면의 채팅창은 이미 폭발하기 일보 직직이었다.
- [성좌 'CG_Slayer'가 코웃음을 치며 말합니다: "하찮은 필멸자 놈이 어디서 삼류 컴퓨터 그래픽을 들고 와 사기를 치느냐? 당장 그 허접한 가짜 손들을 지워라!"] - [성좌 'CG_Slayer'가 당신을 지목하며 탐식의 미소를 짓습니다.] - [성좌 '방구석아수라'가 1,000코인을 후원하며 소리칩니다: "야 ㅋㅋㅋ 저거 검은 손들 움직임 웰메이드 판타지 영화급인데? 특수효과 팀 어디 쓰냐? 공유 좀 하자!"] - [주작감별사007: 야, 저 연기 이펙트 봐라. 아무리 봐도 언리얼 엔진 5로 실시간 렌더링 돌리는 거임. 속지 마라 다들.] - [아카데미수석내꺼: 와 근데 대본 지린다 ㅋㅋㅋ 클리어 떴는데 갑자기 히든 보스 페이즈 들어가는 연출 보소. 아카데미 상 줘야 함 ㄹㅇ]
"형들, 진짜 눈이 사시야?"
나는 변조된 걸걸한 목소리로 마이크에 대고 투덜거렸다.
"이게 CG면 난 벌써 할리우드 가서 스필버그 뺨 때리고 감독 데뷔했어. 지금 내 발목 잡으려고 기어 올라오는 이 시커먼 젤리 괴물들 안 보여? 냄새는 또 얼마나 구린데. 하수구 썩은 내 장난 아니다 진짜."
나의 뻔뻔한 가스라이팅에 시청자들은 더욱 광분하기 시작했다. 불신과 조롱이 쏟아질수록, 내 머릿속의 시스템은 요란하게 경보음을 울려댔다.
[실시간 주작 의심 수치: 98.4%……] [실시간 주작 의심 수치: 99.9%……] [★ 경고: 의심지수가 한계점(100%)을 파괴 돌파했습니다! ★] [시스템 역설 가스라이팅 버프가 '스페셜 초월 한도'로 격상됩니다!] [모든 전투 능력치 및 스킬 배율 1000% 폭발적 증가!] [신체 등급이 일시적으로 '신화(Myth)' 등급으로 격상됩니다!] [물리/마법 공격 데미지가 한계 돌파 상태로 전이됩니다: 200 -> 2,000!]
쩌적!
내 전신을 감싸는 마력의 밀도가 달라졌다. 평범한 인간의 피부가 마치 강철보다 단단한 신화 속 거인의 그것처럼 변모하는 느낌이 들었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마력이 너무 뜨거워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10배로 증폭된 힘. 단지 주먹을 가볍게 쥐었을 뿐인데도 주위의 공기가 찌그러지며 파열음을 냈다.
"좋아, 성좌 새끼들아. 끝까지 주작이라고 빌어봐라."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 힘이라면, 저 건방진 마신 분신의 대가리를 깨버리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 * *
지상 대강당은 그야말로 지옥도였다.
모르고스의 분신이 뿜어내는 가공할 맹독 지대가 대강당 바닥을 완전히 뒤덮었다. 보라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독안개는 생도들의 피부를 그슬리고 마력 회로를 강제로 차단했다.
"크, 으윽……!"
신지태가 무릎을 꿇었다. 그의 자랑이던 명검은 바닥에 처박혀 있었고, 그의 손발은 독기에 중독되어 벌벌 떨리고 있었다.
"이 내가…… 이런 하찮은 독기에……!"
오만한 자존심이 무참히 짓밟힌 신지태의 눈에 핏발이 섰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독안개는 그의 호흡기를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그 옆에서 한서희 역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벽에 기대어 있었다. 시야가 흐려지고 의식이 점차 멀어져 갔다. 교관들마저 독기에 취해 쓰러진 상황. 진정한 절망이 대강당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스으으으윽.
검고 짙은 맹독 안개를 반으로 가르며, 일정한 간격의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뚜벅. 뚜벅.
그것은 절망에 빠진 이들을 비웃는 침입자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대지를 짓누르며 굳건하게 걸어 나오는,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압도적인 강자의 발소리였다.
"……어?"
신지태가 흐릿한 시야를 간신히 넓히며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짙은 안개 너머에서 걸어 나오는 실루엣. 얼굴에는 기괴한 가죽 가면을 쓰고, 낡은 가죽 코트 자락을 휘날리는 사내였다. 그의 전신에서는 푸르스름하다 못해 검붉은 빛을 띠는 초고밀도의 마력이 폭풍처럼 몰아치고 있었다. 그 기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주위를 감싸고 있던 모르고스의 맹독 안개들이 사내의 주변 3미터 이내로는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정화되듯 흩어졌다.
"가, 가면…… 헌터……?"
한서희가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눈앞에 나타난 남자는 분명 자신이 동경하던 스트리머 '가면 헌터'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확신하고 있었다. 저 가면 뒤에 숨겨진 얼굴이 다름 아닌 자신들이 쓰레기라고 무시했던 동기, 윤진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존재는 평소의 쭈구리 같은 윤진이 아니었다.
전신에서 신화적인 압도감을 뿜어내며, 대재앙 격 마왕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걸어 나오는 절대자의 풍모. 1000%의 의심 버프를 장착한 윤진은 이미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스마트폰 카메라는 공중에 둥둥 떠다니며 이 믿기지 않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송출하고 있었다.
- [미친 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등장 씬 지렸다!!!] - [이거 완전 영화 오프닝 아니냐? 연출 담당 누구냐 진짜 절하겠다] - [주작이라도 상관없다 이 간지는 진짜다 ㅋㅋㅋㅋ] - [성좌 'CG_Slayer'가 분노하며 소리칩니다: "이 하찮은 인간 놈이 감히 나의 안개를 걷어내다니! 연출된 가짜 마력이 분명하다!"]
"야, 사기꾼 마신 새끼야."
나는 가면 밑으로 두 갈래 변조된 기괴한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목소리 자체에 깃든 마력이 대강당 천장을 흔들며 먼지를 떨어뜨렸다.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짜인지, 네 몸뚱이로 직접 확인해 봐."
키이이이잉!
내 손에 들린 싸구려 기본 검이 10배로 증폭된 마력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검 한 자루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기가 대강당 바닥의 대리석을 가볍게 갈라놓았다.
저 멀리 안개 속에서, 검은 거머리 손들이 뭉쳐지며 마침내 모르고스의 분신이 형체를 드러냈다. 거대하고 기괴한 외눈박이 거인의 형상. 녀석이 나를 향해 귀가 찢어질 듯한 포효를 내질렀다.
"스페셜 버프도 받았겠다, 오늘 정산금 든든하게 챙겨가야겠네."
나는 가볍게 무릎을 굽혔다. 바닥의 대리석이 내 발끝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타락한 독극 안개 속에서 내 신형이 흐려진 것은 찰나였다. 나는 두 갈래로 변조된 폭발적인 목소리로 포효하며, 모르고스 분신의 거대한 심장부를 향해 지면을 박차고 번개처럼 도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