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아파도 좋으니, 내 곁에서 숨만 쉬어.”
평생을 벽 뒤에 숨겨두었던 날것의 진심이 도연의 갈라진 목청을 찢고 터져 나왔다. 폭우가 창문을 부술 듯이 두드리는 신림당의 어두운 구석, 그 지독한 소음 한복판에서 두 사람의 입술이 마침내 겹쳐졌다.
그것은 달콤한 구애가 아니었다. 서로의 상처를 파먹고 들어가는 처절한 영혼의 언약이었고, 서로를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를 지옥으로 밀어 넣는 자들의 비명에 가까웠다. 도연은 단 두 손가락만 움직이는 오른손으로 그녀의 젖은 뺨을 필사적으로 감싸 안았다. 차디찬 그의 손끝이 지원의 따뜻한 살결에 닿을 때마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두 사람의 입술 사이로 흘러들어 짠맛을 남겼다.
지원이 숨을 헐떡이며 입술을 떼어냈다. 그녀의 시선이 도연의 오른손으로 향했다. 가늘게 떨리고 있는, 그러나 기괴할 정도로 뻣뻣하게 굳어버린 세 개의 손가락.
지원은 떨리는 손으로 그의 오른손을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하는 그 차가운 손가락 끝에 자신의 입술을 가만히 갖다 대었다. 먼저 마비되었던 새끼손가락, 그다음 약지, 그리고 최근에 굳어버린 중지까지.
“이거였어…….”
지원의 목소리가 모래알처럼 서걱거렸다.
“비가 올 때마다 네가 밤새 피아노를 치고 나면, 내 머리를 짓누르던 그 끔찍한 공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던 이유가…… 전부 이것 때문이었어.”
도연은 굳어버린 손가락을 숨기려 주먹을 쥐려 했지만,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1화에서부터 유독 차갑게 식어 아무리 비벼도 피가 잘 돌지 않던 오른쪽 새끼손가락의 극심한 저림 현상. 그것은 단순한 환절기의 기후 탓도, 일시적인 신경통도 아니었다. 우수의 계약이 그의 육체를 잠식해 들어가며 내린 첫 번째 영구 마비의 가혹한 징후였던 것이다.
지원의 뜨거운 눈물이 그의 무감각한 손가락등 위로 떨어져 흘러내렸다.
“바보 같은 사람. 왜 말 안 했어? 왜 혼자 다 짊어지려고 했어!”
“내가 선택한 거야.”
도연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가 고통 속에서 울부짖는 걸 보느니, 내 손가락 따위는 전부 돌덩이가 되어도 상관없어. 그게 내가 이 마을에 들어온 유일한 이유니까.”
그들의 발밑, 피아노 페달 근처의 낡은 나무 바닥에는 붉은 자국들이 어지럽게 얼룩져 있었다. 과거 노인회의 박혜순이 신림당의 먼지 쌓인 피아노를 가리키며 건넸던 경고가 도연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건반 밑바닥을 봐라. 저 붉은 수액 흔적이 뭔 것 같냐? 이 미친 짓거리를 먼저 해댔던 앞선 병신들이 제 살을 깎고 피를 흘려가며 남긴 핏자국이다. 대가를 치른 자들의 끝은 언제나 비극이었어. 너도 결국 저 건반 아래에 네 피를 채우게 될 게다.’
혜순의 비장한 예언은 틀리지 않았다. 지금 성당 피아노와 신림당의 건반 위에는 도연의 마비된 손가락 끝에서 흘러내린 진짜 피가 붉은 수액처럼 스며들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고통을 분담하겠노라 맹세한 그 순간, 찰나의 평화는 잔인하게 깨어졌다.
*쾅!*
신림당의 낡은 목조 문이 완전히 부서질 듯 젖혀지며 거친 비바람이 실내로 들이쳤다.
비열하게 찌그러진 입꼬리, 구겨진 가죽 재킷을 걸친 사내. 한태만이었다. 그의 뒤로는 우림리 노인회의 감시자들이 쇠갈퀴와 우산을 든 채 귀신처럼 늘어서 있었다. 노인들의 눈빛에는 차가운 방조와 외지인을 감시하는 기괴한 적의가 가득했다.
“야, 한지원. 여기 숨어서 아주 눈물겨운 신파극을 찍고 있었네?”
태만이 젖은 구두로 바닥을 짓밟으며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액정이 산산조각 난 지원의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그는 이미 노인회로부터 우림리의 기이한 치유 현상과 도연의 비밀에 대해 전해 들은 상태였다.
처음에는 그저 미친 소리라고 치부했으나, 실제로 안색이 눈에 띄게 좋아진 지원의 모습을 본 순간 태만의 눈에는 탐욕적인 확신이 들어찼다. 지원의 가짜 광증과 트라우마를 이용해 재단에서 후원금과 투자금을 빼돌리려 했던 그에게, 완전히 치유된 지원은 서울로 데려가 당장 본전을 뽑아낼 수 있는 움직이는 현금 상자나 다름없었다.
“소문이 진짜였어. 저 병신 피아니스트 새끼가 연주만 하면 네 머리가 싹 고쳐진다는 게.”
태만이 징그러운 웃음을 흘리며 지원의 목덜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너 때문에 날아간 투자금이 얼마인지 알아? 대가리 좀 나았으면 군말 말고 따라와. 저기 구석에 사설 구급차 대기시켜 놨으니까, 일단 정신병원에 처넣어서 안정을 취한 다음에 재단 이사장 앞 고대로 배달해 줄 테니까.”
“이 손 놓으라고!”
지원이 비명을 지르며 태만의 손을 뿌리치려 버둥거렸다. 하지만 태만은 거친 악력으로 그녀의 손목을 꺾어 쥐었다.
도연의 눈빛이 서슬 퍼런 살기로 뒤덮였다. 그는 오른손의 마비되지 않은 엄지와 검지에 힘을 주며 태만의 어깨를 밀쳐내려 했다.
“그 손 치워.”
“치우면? 네가 뭘 어쩔 건데, 이 손가락 병신 새끼야.”
태만이 비웃으며 도연의 가슴팍을 거칠게 밀쳤다. 도연은 중심을 잃고 뒤로 비틀거렸다. 세 손가락이 단단하게 굳어버린 탓에 상체의 균형을 잡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주먹을 쥐려 해도 오른손은 기이하게 꺾인 채 허공에서 파르르 떨릴 뿐이었다. 제대로 된 반격조차 할 수 없는 자신의 육체에 지독한 절망감이 밀려왔다.
태만의 뒤에 서 있던 덩치 큰 장정 두 명이 순식간에 신림당 내부로 들이닥쳐 지원의 양팔을 붙잡았다. 그들은 미리 준비해 온 억제용 가죽 끈으로 지원의 몸을 강제로 포박하기 시작했다.
“도연아! 도연아!”
지원이 울부짖으며 발버둥 쳤다. 가죽 끈이 그녀의 살을 파고들며 붉은 자국을 남겼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도연의 이성이 완전히 끊어졌다. 그는 움직이지 않는 오른손을 가슴팍에 품은 채, 오직 왼손 하나와 온몸을 던져 장정들에게 달려들었다.
팍!
장정 중 한 명의 묵직한 주먹이 도연의 안면을 강타했다. 입술이 터지며 붉은 피가 바닥으로 튀었다. 그러나 도연은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고 다시 일어섰다. 그는 자신의 몸을 거대한 방패 삼아 장정들의 앞을 막아섰다. 또다시 날아오는 구두발과 주먹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내면서도, 그의 시선은 오직 지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바닥을 뒹굴며 뼈가 으스러지는 통증이 밀려왔지만, 이 악물고 비명을 삼켰다. 자신이 쓰러지면 지원이 끌려간다. 오직 그 생각 하나가 그를 버티게 했다.
“이 쓰레기 같은 자식들! 도연이 건드리지 마!”
지원의 눈빛에 깊이 가라앉아 있던 사나운 집착이 야수처럼 폭발했다. 그녀는 자신을 결박하려던 장정의 손목을 이빨로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아악! 이 미친년이!”
장정이 비명을 지르며 손을 놓친 틈을 타, 지원은 한태만에게 달려들었다. 그녀의 열 손가락 끝에 서린 서슬 퍼런 분노가 태만의 얼굴을 향해 매섭게 그어 내렸다.
짜아악!
태만의 뺨과 목덜미를 따라 거친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지며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이 년이 진짜 죽으려고 환장했나!”
태만이 얼굴을 감싸 쥐고 비명을 지르며 지원의 따귀를 사정없이 갈겼다.
*찰싹!*
고개가 거세게 돌아간 지원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사정없이 쏟아지는 폭우 소리 사이로 기괴한 이명이 지원의 귀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지원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공포의 해일이 다시금 밀려왔다.
웅성거리는 빗소리 너머로, 5년 동안 그녀를 괴롭혔던 환각이 눈앞을 가득 메웠다. 푸른 안갯속에서 날카롭게 산산조각 나며 사방으로 튀는 푸른 유리 파편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7화에서 도연의 진심을 확인하고 오해가 풀린 순간, 그 조각난 유리의 환영들이 하나의 거대한 그림으로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 파편들은 5년 전, 그들의 탄탄했던 미래와 꿈을 한순간에 앗아갔던 잔인한 교통사고 당시의 차량 앞 유리창이었다. 안개 자욱한 도로 위에서 트럭이 덮쳐오던 그 찰나의 순간, 도연은 운전대를 꺾어 자신을 구하려 했다. 조각난 유리가 지원의 얼굴과 심장을 향해 쏟아져 내릴 때, 그녀의 눈앞을 가로막은 것은 도연의 넓은 등과 그의 양손이었다.
도연은 제 온몸으로 유리 파편을 받아내며 그녀를 감싸 안았다. 손가락 뼈가 으스러지고 신경이 끊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그는 지원을 놓지 않았다.
‘아…….’
그녀가 5년 동안 품어왔던 원망과 오해의 실타래가 완전히 풀려나갔다. 그는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었다. 제 모든 것을 바쳐 그녀를 살려냈던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마주한 기쁨도 잠시, 현실의 폭력은 너무나 가혹했다.
태만이 바닥에 쓰러진 지원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거칠게 잡아당겼다.
“어디서 눈을 부릅떠? 이 미친년이 기어이 내 손에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지원의 가슴이 거칠게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해소된 줄 알았던 트라우마가, 태만의 물리적인 폭압과 극도의 정신적 공포로 인해 다시금 폭발적인 기세로 그녀의 영혼을 옥죄기 시작했다.
“하아…… 하윽……!”
지원이 숨을 쉬지 못하고 목을 긁어댔다. 산소가 차단된 것처럼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고, 가슴을 쥐어짜며 바닥을 뒹굴었다. 입술 사이로 하얀 거품이 섞인 침이 흘러내렸다. 완전한 과호흡과 공황 발작이 그녀를 다시 쇼크 상태로 밀어 넣고 있었다.
“지원아! 지원아!”
도연이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바닥을 기며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은 세 개나 마비되어 지탱할 힘조차 없었다.
태만은 거품을 물고 쓰러진 지원을 보며 혀를 찼다.
“쳇, 또 발작이 도졌네. 야, 빨리 차에 실어. 서울 병원에 격리해 두고 약물로 가둬버리면 그만이니까.”
장정들이 지원의 사지를 들어 올렸다. 지원의 초점 없는 눈동자가 허공을 헤매며 도연을 찾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살려줘…….’
그녀의 무언의 비명이 도연의 심장에 날카로운 비수로 꽂혔다.
도연은 고개를 들어 신림당의 깨진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광장 저편, 우뚝 솟은 석조 성당의 거대한 실루엣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마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우수의 계약이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는 파이프 피아노가 잠들어 있었다.
지원을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남은 두 손가락마저 바쳐야 한다.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마저 잃게 된다면, 그는 평생 건반 하나 누르지 못하는 진짜 불구가 될 것이다. 피아니스트로서의 완벽한 죽음.
하지만 도연의 눈빛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쏟아지는 장대비 속으로, 성당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하는 그의 등 뒤로 음산한 비바람이 몰아쳤다.
마지막 연주를 위한 서막이, 붉은 핏빛으로 물든 빗줄기 속에서 천천히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