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청풍(淸風)조차 피비린내를 씻어내지 못하는 차디찬 달밤이다.

무극신종(無極神宗)의 본산, 웅장하게 솟구친 대전(大殿)을 불과 수십 보 눈앞에 두고 당신은 무거운 검 끝을 지면에 내린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적들의 선혈로 물든 청석 바닥에 점점이 붉은 매화가 흐드러진다. 방금 전 정면의 포위망을 뚫고 나온 길은 실로 아비규환(阿鼻救患)의 수라장이었다. 흘린 피는 강을 이루고 쌓인 시체는 산을 이루었으나, 홀로 적진의 심장을 파고든 당신의 육신이 치러야 했던 대가 또한 결코 가볍지 않았다.

"우욱……."

검붉은 유혈이 목구멍을 타고 역류해 입술 틈새로 흘러내린다. 장로가 죽어가며 터뜨렸던 비열한 만독탄(萬毒彈)의 독기가 살을 에는 검창(劍槍)의 상흔 속으로 깊숙이 파고든 탓이다. 기경팔맥을 타고 거침없이 질주하는 독기는 당신의 몸을 지탱하던 정순한 내력과 충돌하며 혈도를 사정없이 뒤흔들고 있다. 주화입마(走火入魔)의 음습한 그림자가 등 뒤를 덮쳐온다.

단전에서 솟구치는 기운은 통제를 벗어난 창해(滄海)의 격랑처럼 사나워져, 뼈와 근맥을 갈기갈기 찢어발길 듯 요동친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부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통에 눈앞이 아련해진다. 검을 쥔 손끝이 파르르 떨리며, 평생을 동반해 온 쇳덩이의 무게조차 아득하게 느껴진다.

저 너머, 밤안개 너머로 굳게 닫힌 대전의 검은 문이 묵묵히 서 있다. 수십 년 전 가문을 멸문시키고 당신을 깊은 은거의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던 최종의 원수, 종주가 숨을 죽이고 있을 곳이다. 원한은 뼈에 사무쳐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도 식지 않건만, 무정하게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당신부 터가 이미 한 자루 부러진 칼날처럼 위태롭다. 고독한 복수자의 여정은 이제 단 한 걸음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하지만 폭주하는 혈도는 기어코 당신의 무릎을 꺾으려 든다. 심장은 터질 듯 박동하고, 서늘한 내상(內傷)의 고통이 온몸을 휘감아 혈류를 막아선다. 가슴속 깊은 곳, 예전에 심어두었던 겁천정화(劫天精華)의 뜨거운 온기마저 이독제독(以毒制毒)의 한계를 시험하듯 요동치기 시작한다.

여기서 멈추면 기세를 잃고 쓰러질 것이요, 무리하게 나아간다면 대전의 문을 열기도 전에 심맥이 먼저 끊어질 터. 의식이 가물거리는 찰나의 침묵 속에서, 차가운 달빛만이 당신의 젖은 어깨를 고요히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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