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빛을 집어삼키고, 깊은 지하는 침묵을 살찌웁니다. 청성파의 후계자가 건넨 비도(秘圖)를 따라 당도한 무극신종(無極神宗)의 가장 깊고 은밀한 나락. 눅눅한 이끼 냄새와 오래된 원한의 잔향이 섞여 콧날을 찌릅니다. 걸음마다 밟히는 적막은 차디찬 서리 같아 사방을 얼려 보냅니다.
마침내 당도한 석실의 끝, 등잔불 하나만이 위태롭게 흔들리는 그곳에 한 사내가 앉아 있었습니다. 무극신종의 심장이라 불리는 책사, 제갈우(諸葛宇)였습니다.
당신의 발소리를 들었음에도 사내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무릎 위에는 있어야 할 검도, 무기도 없었습니다. 오직 잔잔하게 끓고 있는 찻잔과, 그보다 더 차가운 조소(嘲笑)만이 그의 입가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습니다.
"수십 년의 세월을 숲속에서 썩으며 칼을 갈았겠지. 백무린."
갈라진 목소리가 등잔불의 흔들림을 타고 메아리칩니다. 당신의 손이 검자루를 꽉 쥐었습니다. 검끝에서 흘러나온 가느다란 검기(劍氣)가 마치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바닥을 흩쓸었습니다. 당장이라도 그의 목을 베어 가문의 원혼들을 달래고 싶었으나, 사생(死生)의 기로에 선 제갈우는 태연히 차를 들이켰습니다.
"참으로 가련하구나. 일평생을 복수라는 망집(妄執)에 사로잡혀 살았음에도, 정작 사냥개의 발목만 물어뜯으려 하다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당신의 목소리는 만년설의 빙정(氷晶)보다 차가웠습니다. 제갈우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손가락 하나를 치켜들었습니다. 그의 눈빛에 기만과 연민이 교차했습니다.
"무극신종이 그대들의 가문을 멸한 것은 천하를 제패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우리는 단지 사냥개에 불과했지. 사냥꾼의 손짓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다. 네 멸문(滅門)의 진정한 배후, 그 모든 비극을 기획하고 조종한 진짜 흑막은 바로 저 정사(政事)의 정점에 앉아 있는 황실(皇室)의 세력들이다."
청천벽력(晴天霹靂)과도 같은 폭로였습니다. 수십 년 동안 마음에 품고 온 복수의 이정표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밀어(密語). 가문의 핏줄을 끊어놓은 자들이 황실의 권력자들이라니.
"나를 베어 보아라. 그리하면 진실은 이 어둠 속에서 영원히 썩어 문드러질 것이요, 너는 평생 진정한 원수의 존재조차 모른 채 장님처럼 강호를 헤매다 죽어가리라."
제갈우의 비웃음 섞인 미소가 허공에 흩어집니다. 그의 말은 수하를 구하기 위한 구밀복검(口蜜腹劍)의 기만인가, 아니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또 다른 잔혹한 진실인가. 당신은 흔들리는 등불 밑에서 대답을 요구하듯 한기를 뿜어내는 검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매서운 삭풍(朔風)이 가슴 속을 헤집고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