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실의 공기는 필요 이상으로 서늘하다. 얇은 환자복 틈새로 사정없이 파고드는 냉기는 뼈마디를 시리게 하지만, 머릿속을 들쑤시던 두통만큼은 차갑게 얼려버린다. 벽면에 매달린 주황색 조명등은 수명을 다해가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는 짐승처럼 주기적으로 명멸하며, 방 안의 명도를 극단적으로 흔들어댄다. 깜빡이는 불빛이 노란 장판 바닥 위에 길고 어두운 그림자를 늘어뜨린다.
당신의 손가락 끝이 낡은 차트 표지를 스친다. 철제 캐비닛의 틈새로 손을 밀어 넣어 간신히 빼낸 서류철. 누렇게 바랜 종이가 사각거리며 넘어가는 소리가 고요한 정적을 베어 물어낸다. 당신의 이름이 적힌 페이지를 찾아낸 순간, 불규칙하게 뛰던 맥박이 일시에 멈추는 듯한 착각이 든다.
사건 당일의 기록. 그 치명적이었던 밤의 타임라인 위에 붉은색 수성펜으로 조잡하게 그어진 선들이 보인다. 투약 대장에 기록된 약물명은 미승인 환각 유도 장치이자 단기 기억 소실을 유발하는 고용량의 특수 마취제였다. 의학적 치료를 위한 투여가 아니다. 뇌세포를 강제로 마비시켜 영구적인 인지 장애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양. 주사기를 쥔 채 당신의 혈관을 파고들었던 손길의 주인이 누구인지, 하단 결재란의 이름이 모든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강현민.*
그 이름 석 자를 마주하는 순간, 당신의 폐부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신음이 흘러나온다. 가죽 장갑 밑으로 언뜻 보였던 나비 모양의 흉터. 그는 당신을 구렁텅이에서 건져 올린 구원자가 아니라, 애초에 당신이라는 존재를 이 거대한 음모의 밑바닥으로 밀어 넣은 설계자였다.
그가 취조실에서 당신에게 건넸던 차가운 음료, 온화한 미소 뒤에 숨겨진 서늘한 눈빛. '처방(處方)'이라는 단어는 본래 병을 고치기 위한 인도적인 행위를 뜻하지만, 이 방 안에서는 가장 합법적으로 목격자를 말살하기 위한 독극물의 다른 이름에 불과했다. 어쩌면 그가 당신에게 흘린 사소한 단서들조차 철저히 계산된 또 하나의 처방이었을지 모른다.
그의 악마 같은 치밀함에 온몸이 소름 돋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기괴한 안도감이 뇌리를 스친다. 나는 미치지 않았다. 내가 범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 실낱같은 가능성이, 손에 쥔 가늘고 얇은 종이 한 장에 실려 차갑게 요동친다.
복도 저편에서부터 구두굽이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또각, 또각.
일정한 박자로 다가오는 그 소리는 의무실 벽면을 타고 좁혀오며 당신의 숨통을 조여온다. 형광등의 깜빡임이 완전히 멈추고 방 안이 짙은 어둠 속으로 침잠한다. 손에 쥔 서류의 모서리가 식은땀으로 눅눅하게 젖어 들어간다.
이 증거를 품에 안고 다시 그가 기다리는 취조실로 걸어가 허울뿐인 침묵을 깰 것인가, 아니면 이 경찰서 내부에 가득한 그의 조력자들을 피해 완전히 어둠 속으로 녹아내릴 것인가.
발소리가 의무실 문바깥 바로 앞에서 우뚝 멈춰 선다. 이윽고 차가운 철제 문손잡이가 아래로 서서히 꺾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