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빗줄기는 피부를 바늘처럼 찔러댄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수분은 체온을 급격히 앗아가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얼음물 속에 잠긴 것처럼 투명하게 가라앉는다. 의무실의 헐거운 감시망을 뚫고 빗속으로 도망치는 동안, 당신의 등 뒤에서는 붉고 푸른 사이렌 불빛이 차가운 빗방울에 산산이 흩어지고 있었다. 도망자가 된 몸으로 갈 곳은 단 한 군데뿐이다.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그 축축하고 해묵은 폐가.

강 형사가 주입했던 약물의 잔령이 여전히 혈관을 돌며 기묘한 이명을 만들어낸다. 기억을 지우는 약물. 기억을 잃었기에 도리어 무죄를 주장하지 못하게 만들려던 그의 서늘한 악의가 빗물과 섞여 온몸으로 번져간다. 당신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삐걱거리는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의 온도는 바깥보다 훨씬 낮았고, 어둠은 수조 속의 물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 코끝을 찌르는 것은 곰팡이 냄새만이 아니다. 비릿한 쇠 비린내. 그것은 미처 씻겨 나가지 못한 피의 향기이자, 이곳에 박제된 진실의 취기였다. 당신은 스마트폰 손전등의 가느다란 빛줄기를 바닥으로 내리쬐었다. 불빛의 좁은 조준선에 들어온 것은 무너진 벽돌 더미와 바닥의 틈새였다. 손가락 끝이 얼어붙어 감각이 무뎌졌지만, 당신은 미친 듯이 흙바닥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누군가 급하게 감춰둔 흔적을 쫓아서.

마침내 손끝에 닿은 차갑고 단단한 감각. 진흙 속에서 건져 올린 비닐봉지 안에는, 얼룩덜룩하게 녹이 슨 칼 한 자루가 들어 있었다. 손등에 소름이 돋아난다. 칼자루를 쥐는 가느다란 홈과 날카롭게 갈린 칼날의 각도. 이 흉기는 피해자를 베어 넘긴 진짜 무기다. 그리고 그 손잡이 안쪽에 음각으로 새겨진 익숙한 이니셜이 빛줄기 아래 그 정체를 드러낸다.

지우려 할수록 선명해지는 진실이 빗소리와 함께 뇌리를 난타한다. 이 칼은 단순히 누군가를 죽인 도구가 아니라, 강 형사의 숨통을 단숨에 끊어버릴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이 이 흉기를 쥐고 있는 모습 자체만으로도 검찰이 기다리던 완벽한 진범의 시나리오가 완성될 터였다.

멀리서 폭우를 뚫고 다가오는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붉은 낙인 같은 증거를 손에 쥔 채, 당신은 이 차가운 흉기를 어떻게 휘둘러야 이 지독한 누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빠르게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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