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붉은 방." 그 세 글자가 허공에 정체되는 순간, 정적은 비명만큼이나 날카롭게 취조실을 갈라놓는다.

기세등등하게 숨을 몰아쉬던 강 형사의 눈빛이 사정없이 흔들린다. 그의 시선이 허공의 한 점에 고정되더니, 이내 알아차리기 힘들 만큼 미세하게 목울대가 오르내린다.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철제 책상 아래의 눅눅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다. 방 안의 온도계는 영상 18도를 가리키고 있지만, 당신의 살가죽에 와닿는 공기는 영하의 그것처럼 서서히 얼어붙기 시작한다.

당신은 그의 얼굴 위로 드리운 그림자를 집요하게 응시한다. 포식자의 여유를 부리던 사내의 이마에 얇은 식은땀 한 줄기가 배어 나온다. 파르스름한 형광등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그 땀방울은, 그가 감추고자 하는 진실의 무게를 대변하듯 무겁게 턱 끝으로 흘러내린다. 저 사내는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 당신이 기억해 낸 '붉은 방'이라는 단어 속에, 그 역시 발을 담그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켜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기억이라는 건 참 묘하지."

길고 무거운 침묵 끝에 강 형사가 나지막이 입을 연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옥타브 낮아져 있고, 기묘하게 물기가 얹혀 촉촉하면서도 서늘하다. "아무리 깨끗하게 씻어냈다고 생각해도, 가장 깊은 바닥에 스며든 얼룩은 뜻하지 않은 순간에 다시 배어 나오거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에 놓인 간이 정수기로 향한다. 서늘하게 돌아가는 기계 웅웅거림 사이로 물이 컵에 담기는 소리가 요란하게 고막을 자극한다. 투명한 물줄기는 마치 아무런 죄도 없다는 듯 맑고 깨끗해 보인다. 그러나 맑은 물일수록 아주 미세한 독에도 쉽게 오염되는 법이다.

이윽고 그가 조용히 걸어와 투명한 유리 물컵을 당신의 바로 앞에 내려놓는다. "목이 탈 텐데, 좀 마시면서 하지."

유리컵 벽면을 타고 차가운 물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려 결이 거친 철제 테이블 위에 둥근 얼룩을 만든다. 물은 더없이 맑고 투명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그 안에 무엇이 녹아 들어갔는지 육안으로는 결코 식별할 수 없다. 물을 건네는 강 형사의 손끝이 미세하게 경련하는 것이 보인다. 그의 눈빛은 깊은 늪처럼 침전되어, 당신이 이 물을 들이키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처럼 기이한 탐욕을 품고 당신의 입술을 응시한다.

이 차가운 액체는 굳게 닫힌 당신의 기억을 열어줄 열쇠인가, 아니면 목격자의 입을 영원히 막아버리기 위해 준비된 마지막 덫인가.

당신은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머금은 채 빛나는 유리컵으로 천천히 손을 뻗는다. 턱밑까지 차오르는 긴장감 속에서, 당신의 손가락 끝이 차가운 유리 표면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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