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비변사 급보. 삼도수군 합동 장계에 이르기를, 경상도 조조창에서 출격한 신형 하이브리드 범선 ‘해룡호(海龍號)’가 당포 앞바다에서 왜적의 안택선 및 관선 일백이십여 척을 포착, 이를 완전히 분쇄하였음. 적의 주력 함포는 사거리 150보에 불과했으나, 아군의 선철제 12파운드 장포는 400보 밖에서 적의 기함을 수직 격침함. 적의 사망자는 이천여 명에 달하며, 아군의 전사자는 전무함.」

승전보가 도성에 닿기도 전에, 당신이 서 있는 당포 좌수영의 도크는 이미 검은 매연과 붉은 쇳물 냄새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남해를 붉게 물들인 불길은 가라앉았지만, 당신이 이룩한 미시적 기술 혁신의 결과물은 여전히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며 포구에 정박해 있습니다.

전통적인 판옥선이 역풍 시 3노트 남짓한 속도로 표류할 때, 당신이 설계한 해룡호는 경상도 제철소의 고탄소강 강판으로 함수를 보강하고 종범(縱帆) 시스템을 도입하여 역풍 속에서도 7.8노트의 고속 기동을 실현했습니다. 이 압도적인 사거리와 기동성의 정량적 격차가 불과 반나절 만에 수군사적 불균형을 야기하며 왜구의 주력을 지도 위에서 지워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승리의 대가는 가혹한 정치적 화살이 되어 당신을 겨누고 있습니다.

“승전의 공은 태산과 같으나, 조정의 공론은 그렇지 못하외다.”

도성에서 내려온 사헌부 지평 이우신이 서늘한 눈빛으로 당신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합니다. 그의 뒤편에는 조정을 대신해 이 거대한 거함을 접수하려는 금군 관리들이 도열해 있습니다.

“종친의 몸으로 이토록 가공할 사병(私兵)에 가까운 수군 세력을 거느리다니요. 예조와 헌부의 상소가 이미 전하의 어탑 위에 수십 장이 쌓였소. 좌의정 대감께서는 예판을 제수하여 대군을 도성으로 불러들이라 하셨소이다.”

직설적인 위협 대신 교묘한 명분론으로 당신의 수뇌를 묶으려는 외교적 수사. 하지만 당신은 그의 시선 너머, 바다 안개 사이로 푸르게 빛나는 동해의 수평선을 바라봅니다.

지금 도성으로 올라가 사령권을 반납하고 타협한다면, 평생을 두고 건조한 이 강철 거함들은 조정을 장악한 훈구 대신들의 사치품이나 내수용 고깃배로 전락할 것이 자명합니다. 당신이 축적한 화약 배합법과 제철 기술 역시 당쟁의 참화 속에서 유실되겠지요.

풍향계가 동쪽을 가리키며 팽팽하게 울립니다. 동해의 거친 해류 너머에는 당신만이 알고 있는 미지의 대륙이 존재하고, 발밑의 함선은 당장이라도 닻을 올릴 준비를 마쳤습니다. 기만과 임기응변으로 가득 찬 한양의 정치판을 향해 고개를 숙일 것인가, 아니면 이 거함을 몰아 그 누구도 가보지 못한 거대한 대양의 한복판으로 뚫고 나갈 것인가.

당신은 이제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갑판 위에서 마지막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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