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사정전의 바닥은 차가웠으나, 그 위를 구르는 상소문들의 열기는 조정을 태워버릴 듯 뜨겁습니다. 당신이 호조 전운사(轉運司)의 수장으로서 올린 ‘대양개척지 경제성 분석 보고서’는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보수 대신들의 목을 겨냥한 날카로운 단도와 같았습니다. 사헌부의 국문 초교(草校) 한 구절이 대전의 무거운 침묵을 깨뜨립니다.
> **『사헌부 국문 계목(啓目) 중 일부』** > "...전 영의정 조말생 및 그 가신들이 사사로이 함경도 무산의 철광 배분권을 독점하고, 요동과의 밀무역을 통해 은(銀) 일만 냥을 횡령한 실상이 밝혀졌나이다. 이는 호조 전운사의 조운선 건조를 방해하려 한 정황과 맞닿아 있으니, 엄히 치죄하소서."
그들이 명나라와의 사대외교와 성리학적 명분을 앞세워 당신을 서자라 멸시하고 개척안을 탄핵하려 했던 배후에는, 조선의 철 공급망을 사유화하려는 천박한 이권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세자의 치밀한 묵인 하에 사헌부와 의금부가 기습적으로 움직였고, 일주일 만에 영의정을 비롯한 정적 삼십여 명이 유배길에 오르거나 관직에서 박탈당합니다. 저항하던 구질서의 거목들이 하룻밤 사이에 뿌리째 뽑혀나간 것입니다.
권력의 공백을 메운 것은 당신의 정교한 설계도였습니다. 왕명에 의해 찬성사(贊成事) 겸 전운도제조로 파격 승진한 당신은 편전의 대형 천하도 앞에 섭니다. 세종과 세자, 그리고 새로 임명된 신진 사대부들이 당신의 입을 주목합니다.
"전하, 소신이 올린 대맹선(大猛船) 개량형은 기존 조선 판옥선의 한계였던 평저선(平底船) 형태를 탈피해 종방향 용골(龍骨)을 보강한 범선이옵니다. 총 배수량 150톤, 침수 깊이 8척으로 외양의 거친 파도를 견디며 한 번에 300석의 양곡과 120명의 정예 인원을 대양 너머로 수송할 수 있사옵니다."
당대의 기술적 한계를 냉철하게 분석한 고백이었습니다. 전면적인 철갑(鐵甲) 화포함을 건조하기엔 아직 야철 기술과 수력 송풍 장치의 마력이 부족했으나, 구리를 도금한 용골과 3단 돛의 조합은 당대 서구의 카라벨선에 필적하는 기동성을 보장했습니다. 세종은 만족스러운 묵인 끝에 어필(御筆)이 눌린 교지를 전합니다.
"이 땅에 머무는 자는 반도에 갇힐 것이요, 바다를 건너는 자는 백만의 영토를 얻으리라. 내 이제 비적(秘籍)에 적힌 서방의 대륙을 조선의 직할령으로 삼을 것을 천명하노라."
국가의 공식 전언이 각 도의 관찰사들에게 발송되고, 도성은 신대륙이라는 미지의 땅에 대한 경외와 야심으로 끓어오르기 시작합니다. 한반도 전체 면적의 다섯 배에 달하는 '백만 평방리'의 대지가 조선의 가시권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입니다.
조정의 정적들을 쓸어버린 당신의 눈앞에 이제 거대한 갈림길이 나타납니다. 포구에는 이미 건조를 마친 개량형 전선들이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며 정박해 있습니다.
이 거대한 국가적 역량의 첫 발을 어디로 내딛을 것인가. 힘의 우위를 증명할 무력의 진수인가, 아니면 대륙을 영구히 지배할 법과 제도의 정비인가. 당신의 결단에 조선의 미래가 걸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