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東萊) 앞바다의 습한 해풍 속에는 비린내 대신 유황과 탄식, 그리고 달구어진 철의 냄새가 섞여 있다. 당신의 발밑에서 진동하는 것은 경상도 조조창(造船廠)의 심장, 바로 수인(水引)식 수평 송풍기다.
기존의 조선식 야철지가 한 번 조업에 삼백 근의 취약한 선철(銑鐵)을 얻는 데 그쳤다면, 당신이 설계한 이 삼십 자 높이의 수류식 고로(高爐)는 하루에만 무려 사천 근의 연철을 토해낸다. 석탄에서 유황을 걸러내는 세탄(洗炭) 공정과 석회석을 촉매로 쓰는 장입법이 도입된 결과다. 사헌부의 밀정이 조정을 향해 보낸 장계는 이 기적을 공포로 묘사하고 있었다.
*«...동래의 가마는 밤낮으로 불을 뿜으며, 그 소리가 십 리 밖까지 울리나이다. 저들이 주조해 낸 철은 기존의 무쇠와 달라 정으로 때려도 깨어지지 않고 진흙처럼 늘어나오니, 이는 필시 사도(邪道)의 기술이옵니다. 국고의 은화가 이 괴물 같은 장소로 흘러 들어가고 있으니 즉시 조사를...»*
사대부들의 탄핵 상소는 산을 이루었으나, 주상(세종)은 묵묵부답으로 당신의 방패가 되어주었다. 보급의 중심지이자 철제 무기의 고향이 된 이 조조창만은 건드리지 못하도록 밀지를 내린 것이다.
당신은 선대를 가득 채운 조선재(造船材)들을 바라본다. 평안도에서 뗏목으로 운반된 거대한 소나무들이 거대한 회전 톱날 아래에서 규격화된 판재로 썰려 나가고 있다. 수력 규격 연마기의 도입으로 목재의 오차는 푼(分) 단위 아래로 줄어들었고, 선박의 건조 속도는 기존의 세 배로 단축되었다.
"대군들과 판서들이 이 남쪽 끝을 엄중히 감시하고 있습니다. 법통을 위협하는 서자의 거동을 하나라도 잡아내려 실눈을 뜨고 있지요."
도감의 책임자로 임명된 젊은 관리가 당신의 눈치를 살피며 야트막하게 속삭인다. 그의 말대로 조정의 감시망은 숨 막힐 듯 옥죄어 오고 있다. 이미 당신은 왕실 내수사의 자금을 끌어다 쓰고도 부족해 남부 지방의 소금과 무쇠 솥 독점 판매권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해 가고 있었다. 사대부들의 자금줄을 쥔 의주와 개성의 상인들이 야금야금 당신의 세력권으로 흡수되는 중이다.
눈앞에는 건조대의 마지막 뼈대를 드러낸 천 오백 석급 초대형 한선(韓船)의 용골이 장엄하게 누워 있다. 이 괴물을 움직여 대양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제 평범한 돛과 노만으로는 부족하다. 동시에 이 강력한 독점 제조력을 바탕으로 한양 조정의 목줄을 완전히 죄어야 할 시점도 다가오고 있었다.
해풍이 거세지며 건조장의 횃불이 요동친다. 당신의 시선은 거대한 목조 선체와, 저 멀리 사대부들이 도사린 북녘하늘을 번갈아 향한다. 이제 남은 것은 이 막강한 산업적 역량의 방향을 어디로 틀 것인가 하는 결정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