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욱한 해무가 걷히며 웅장한 침엽수림과 붉은 사암 절벽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석탄이 연소하며 내뿜는 매캐한 냄새와 고압 수증기의 비명이 사방의 침묵을 깨뜨립니다. 당신이 탑승한 기함 ‘진양호(振洋號)’는 배수량 2,400톤, 주기관 출력 450마력에 달하는 연강제 외륜 증기선입니다. 서양의 직항선들이 여전히 목조 범선의 한계에 갇혀 있을 때, 조선의 주조 공장들은 저각 고압 실린더를 탑재한 다중 보일러 시스템을 완성해 냈습니다. 하루 석탄 소모량 15톤, 평균 속력 7.8노트를 유지하며 태평양을 종단한 이 거함은 당대 그 어떤 열강도 흉내 내지 못할 기술적 금자탑입니다.
"닻을 내려라!"
당신의 준엄한 명령이 증기 확성기를 타고 해상으로 퍼져 나갑니다. 육중한 철제 사슬이 굉음을 내며 차가운 핏빛 바다로 가라앉고, 세 발의 예포 소리가 미지의 만 전체를 뒤흔듭니다. 안개를 뚫고 드러난 만 안쪽은 훗날 샌프란시스코라 불릴 요충지이지만, 이제 조선의 역사에는 ‘신한양(新漢陽)’이라는 이름으로 영원히 각인될 것입니다.
선단의 서기실에서는 조정으로 보낼 공식 공문서가 격식에 맞춰 삼가 작성되고 있습니다.
`[의정부 급보 - 제37호 사본]` - 발신: 영해군(寧海君) 이서(李璴), 신한양 대도독부 - 수신: 대조선 국왕 전하 및 조종 대신 일동 "신 이서, 사천의 정병과 장인들을 이끌고 바다 끝 동방 대륙에 안착하였나이다. 이곳의 평원은 옥토가 끝이 없고, 산맥에는 은(銀)과 탄광포가 무궁하여 조선의 만대 부강을 다질 요새와 같사옵니다. 이에 본 서안 일대를 '신한양부(新漢陽府)'로 명명하고 관청을 세워 천하에 조선의 강역임을 선포하나이다."
이 역사적 선언의 이면에는 당신이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한 화폐 금융 대개혁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 대륙에서 채굴될 압도적인 은은 한양의 전환국에서 발행할 '대동제은(大同齊銀)'의 확고한 담보가 될 것입니다. 명나라의 유통 은에 휘둘리던 동아시아의 실물 경제는 이제 조선이 천명한 철권 통화권 아래로 재편될 운명입니다. 과학적 개혁과 서자 진출의 한계를 돌파한 정교한 정치적 억지력은, 마침내 당신을 해양 제국의 거대한 설계자로 등극시켰습니다.
모래사장에 상륙한 군졸들이 황룡기와 오색 기치를 높이 세우고 일제히 함성을 지릅니다. "만세! 대조선국 만세! 영해군 대감 만세!"
바닷바람이 당신의 의복을 세차게 흔들고 갑판 위의 차가운 포말이 흩어집니다. 붉은 석양이 지평선 너머 대륙의 심장부를 길게 비출 때, 당신은 확신합니다. 조선은 이제 반도의 작은 나라가 아닙니다. 태평양을 안마당으로 삼은 대양 제국의 장엄한 서막이, 바로 당신이 그어 내린 침로 위에서 완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