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의 공문서는 잔인하리만큼 간결하고 명확했다.
『승정원일기, 주상전하 위독지시 정국 긴급 보고』 "삼경(三更)을 기해 내대령들의 출입을 통제함. 의정부와 함길도 도절제사에게 밀지를 전하되, 서자 구(構)의 사택 및 해양도감 일대에 정예 갑사를 파견하여 군권 찬탈의 징후를 원천 차단케 하라."
만리장해를 향한 당신의 웅지는 완성을 불과 반보 앞두고 꺾였다. 국왕의 호흡이 가빠졌다는 급보가 대궐 담장을 넘기도 전에, 지하에 은신해 있던 정적들의 최후 동맹이 움직였다. 그들은 주상의 병환을 기회 삼아 당신에게 ‘사사로운 군사 조직죄’와 ‘이역(異域) 간첩죄’라는 역모의 굴레를 씌웠다. 동래포구에 정박해 있던, 당신이 온 생을 바쳐 설계한 조선 최초의 원양 선단인 ‘태종조(太宗潮)호’와 ‘광풍(狂風)호’가 그 표적이었다.
이 함선들은 배수량 450톤급에 달하는 3돛대 대형 범선으로, 당대 명나라의 조운선에 비해 횡풍 항해 능력이 35% 이상 우수했으며, 좌우현에 배치된 18파운드급 청동제 자포(子砲) 24문은 동아시아 최고의 해상 화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혁신의 결정체는 외적과의 전투가 아닌, 비열한 방화로 종말을 맞이했다. 남해안에서 올라온 장계는 그 참상을 고스란히 전했다.
"…도감의 장인들과 격군들이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기름에 적신 화살 수천 발이 선창으로 쏟아졌나이다. 건조 중이던 주력 전함 삼 척이 모두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고, 포구에 적재되어 있던 송진과 타르가 전포구를 삼켜 삼대(三代)의 노역이 하룻밤 사이에 재로 변하였나이다."
의금부 추국장에 결박당한 당신을 향해, 새로이 권력을 장악한 노 대신들은 위선적인 자비가 담긴 목소리로 속삭였다. "공께서는 천하를 넓히려 하셨으나, 군자의 도는 안을 견고히 다스리는 데 있소. 조정을 시끄럽게 한 해양의 기술이란 결국 사직을 위태롭게 하는 요물에 불과하지 않소?" 그들의 눈빛에는 미지의 대양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집착만이 번뜩이고 있었다. 조선은 다시 성리(性理)의 성벽 뒤로 숨기로 결정한 것이다.
사약 대신 당신에게 내려진 것은 북방 백두산 자락, 혹한의 혜산진으로의 유배였다.
그로부터 십수 년의 세월이 흘렀다. 동토의 초막에서 당신은 매일같이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했다. 당신이 세웠던 해양 도감의 서류들은 일제히 소각되었고, 기술자들은 격군으로 강등되어 흩어졌다. 대명 사대의 질서는 이전보다 더욱 공고해졌으며, 조정은 "사사로이 바다를 건너는 자는 참형에 처한다"는 해금령(海禁令)을 국법으로 반포했다. 조선의 시계는 다시 백 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어느 차디찬 동틀 녘, 당신의 가슴 깊은 곳에서 거친 기침과 함께 피가 흘러내린다. 서서히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당신의 눈앞에는 자신이 끝내 가닿지 못한 신대륙의 푸른 파도와 그 위를 당당히 누비던 황금빛 함선의 환영이 스쳐 지나간다.
조선이 거머쥘 수 있었던 가장 찬란한 패권의 기회는, 그렇게 북방의 외딴 유배지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당신의 숨결과 함께 영원한 어둠 속으로 묻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