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원정회록(慶源征海錄)》 사본, 사헌부 서리 제출 보고서 중 발췌** *"...대군의 선단이 동북방의 이역(異域)으로 나아간 지 마른하늘에 해가 보이지 않은 지가 벌써 이레째라 합니다. 조정에서는 명나라 칙사가 압록강을 건너기 전에 선단을 즉시 회항시켜 상국의 의구심을 풀어주어야 한다며, 연일 상소가 빗발치고 있나이다. 사간원에서는 대군의 이 같은 독단이 종묘사직을 위태롭게 하는 전조라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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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파도가 갑판을 강타할 때마다, 당신은 수평선 대신 들이치는 암녹색의 바닷물을 바라봅니다. 이곳은 평범한 남해의 여울목이 아닙니다. 차가운 오호츠크의 한류와 태평양의 난류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캄차카반도 남단의 지옥도입니다.
당신이 설계한 경원형 삼호함(慶源型 三號艦)의 선체 전반에서 삐걱거리는 비명이 터져 나옵니다. 조종의 근간이 되는 이 배는 기존의 격군들이 노를 젓는 전통 평저선이 아닙니다. 평저선은 연안 항해에는 유리하나 3미터 이상의 외양 횡파에는 맥없이 전복됩니다. 당신은 사리원의 관설 제철소에서 공수해 온 고탄성 연강(Wrought Iron) 볼트로 삼나무 늑골을 결속하고, 홀수선 아래를 날렵하게 깎아낸 배수량 220톤의 첨저선(V-hull)을 완성했습니다. 정량적으로 계산된 인장 강도는 약 280메가파스칼(MPa)로, 전통 소나무 선박보다 무려 일곱 배 이상의 종방향 휨 압력을 버틸 수 있게 설계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연의 노여움은 공학적 수치마저 비웃습니다.
"대군 대감! 우현의 보조 삼각돛이 파손되었습니다! 침로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조타장 김유선이 바닷물 뒤범벅이 된 얼굴로 울부짖습니다. 그의 손에 들린 나침반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듯 침을 요동치게 놔두고 있습니다. 당신이 아연-구리 습식 전지로 미세한 전류를 흘려 지자기의 편각을 보정하도록 고안한 '전자기식 나침반'마저도, 이 극지 폭풍이 몰고 온 강력한 저기압대 앞에서는 무력하게 회전할 뿐입니다.
"대감, 이것은 귀신의 조화가 분명합니다."
사리원 제철소에서 기계 설비를 담당하다 함대에 합류한 우부장 이순지(李純之)가 초췌한 안색으로 당신을 붙잡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념과 공학을 넘어선 원초적인 공포가 깃들어 있습니다.
"상국의 칙사들이 한양에 당도하여 우리를 역도로 몰고 있을 이 시점에, 대양에서 침몰해 먼지가 된다면 신대륙의 존재를 증명할 방법도, 조선의 기술적 도약도 모두 물거품이 됩니다. 동남방으로 항로를 꺾어 일시적으로 연안의 기압골에서 벗어나는 것이 순리이옵니다."
"동남방에는 정밀 측량되지 않은 암초 군락이 도사리고 있소. 만일 그곳에서 연강 장갑판이 찢어지면, 수리는 불가능하오."
당신의 답변은 냉철하지만, 상황은 급박합니다. 돛대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금 가기 시작했고, 기압계의 수은주는 960헥토파스칼(hPa) 이하로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폭풍우의 한가운데를 뚫고 나아가 기압골을 관통할 것인가, 아니면 미지의 암초지대를 감수하고 남동쪽으로 기수를 돌려 생존을 도모할 것인가. 선원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선주의 자리에 선 당신을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