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오게, 강현우 선생.”
병원장실의 이중 목제 문이 무겁게 닫힌다. 푹신한 카펫 위로 서늘한 정적이 내려앉는다. 방 한구석에서 끓고 있는 에스프레소 머신의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만이 공간의 공백을 채운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당신의 손끝은 피와 생리식염수로 젖어 있었다. 박동을 멈추려던 환자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한 감각이 아직 손끝에 선연한데, 이곳은 지독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평온이 지배하고 있다.
원장 조인호가 안경 너머로 당신을 가늘게 응시한다. 그의 앞치마처럼 하얀 가운에는 그 어떤 핏자국도, 소독약 냄새도 묻어 있지 않다.
“축하하네. 응급의학과와 흉부외과 전체가 자네 이야기로 시끄럽더군. 그 타이밍에 수술(OP)을 결정하고, 완벽한 지혈(Hemostasis)까지 해내다니. 쫓겨나기 직전이던 레지던트의 솜씨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야.”
조인호가 가볍게 손짓하자, 비서가 두꺼운 가죽 폴더 하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조용히 퇴장한다. 폴더의 겉면에는 은박으로 보호구역 및 대외비 표시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이 병원은 자네처럼 능력 있는 인재를 썩혀두지 않네. 당장 내일부터 자네에게 최고 수준의 연구비와 개인 판공비를 지원할 생각이야. 물론, 펠로우 거치지 않고 바로 조교수 발령을 낼 수 있도록 인사위원회도 압박해 두었지.”
파격적인 조건. 하지만 당신의 심박수는 오히려 차갑게 가라앉는다. 공짜 선물이란 없다. 특히 이 구렁이 같은 인성의 소유자가 내미는 손길이라면 더더욱.
당신이 묵묵히 쳐다보자, 조인호가 서류첩을 열어 안의 태블릿 화면을 켜서 당신 쪽으로 돌린다.
“단, 조건이 있네. 이번 주말, 비밀리에 입원할 VIP가 한 분 계셔. 그분의 수술을 자네가 전담해 주었으면 하네. 집도의(Operator)는 자네지만, 차트상의 모든 기록은 다른 스태프의 이름으로 올라갈 걸세.”
동시에 당신의 망막 위에 푸른빛의 상태창이 점멸하며 켜진다. 시스템이 작동한 것이다. 조용히, 그리고 지극히 이성적인 시선으로 화면 속 검사 결과를 스캔해 나간다.
[시스템 가이드 활성화] [환자 정보: 한태석 (64/M) - 현 여당 유력 대권 주자] [진단명: Giant Ascending Aortic Aneurysm (거대 상행 대동맥류) 6.8cm / Severe CAD (중증 관상동맥 질환)] [상태 분석: 대동맥 박리(Aortic Dissection) 직전 단계. 파열 확률 87%.] [예상 바이탈: HR 105회/min , BP 165/95 mmHg]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린다. 6.8센티미터의 대동맥류. 언제 터져서 흉강을 피바다로 만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시한폭탄이다. 게다가 관상동맥까지 망가져 있어 체외순환기(CPB)를 돌리는 순간 어레스트(Cardiac Arrest)가 올 확률이 비정상적으로 높다. 수술의 난이도는 극상.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이 수술이 ‘기록되지 않는 비선 수술’이라는 점이다.
성공하면 병원의 실세이자 원장의 최측근으로서 탄탄대로를 걷게 될 것이다. 실패하면 모든 독박을 쓰고 소리 소문 없이 의사 면허가 날아갈 칼날 위의 줄타기.
“어떤가, 강 선생?”
조인호가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며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 뒤에 숨겨진 탐욕과 은밀한 제안이 당신의 목을 조여온다.
수술실 밖에서 당신의 손길만을 기다리는 수많은 일반 환자들의 얼굴과, 일생일대의 기회이자 독이 든 성배가 든 이 방의 공기가 거칠게 충돌한다.
선택의 순간이 눈앞에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