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BPM 78... BP 110/70... 안정적입니다."

마취과 레지던트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떨림이 묻어났다. 모니터 위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동맥압(Arterial Pressure) 곡선은 그 어떤 교과서의 예시보다 규칙적이고 아름다운 파형을 그리고 있었다.

당신은 메스를 내려놓는다. 손끝에 남아 있던 기이한 감각, 시스템이 우회 수술 경로(Bypass tract)를 초록색 가이드라인으로 그려주던 시각적 잔상이 서서히 명멸하며 시야에서 사라진다. 완벽한 봉합(Anastomosis)이었다. 피 한 방울 새지 않는 완벽한 혈관의 연결.

하지만 수술실의 공기는 얼어붙어 있었다. "강현우."

참관실에서 단숨에 뛰어 내려온 지도교수 김정훈의 안색은 흙빛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분노를 넘어 살기에 가까웠다. "펠로우도, 스탭도 없는 수술실에서 2년 차 레지던트가 단독으로 메스를 잡아? 게다가 내 집도 중단 지시를 무시하고 진행해?" "환자의 하행 대동맥(Descending aorta) 박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1분만 늦었어도 파열(Rupture)로 사망했을 겁니다."

당신은 감정을 배제한 채 차갑게 대꾸한다. 분노도, 흥분도 없다. 오직 환자의 생체 신호와 수술 기록이라는 명확한 팩트만을 뇌 속에서 정렬할 뿐이다.

"시끄러! 이건 명백한 월권이자 징계 사유야. 내일 당장 병원 징계위원회에 정식 안건으로 회부할 테니 그리 알아!"

김 교수가 수술실 문을 부술 듯이 밀치고 나갔다. 하지만 그가 나간 뒤, 수술실 안의 스탭들이 당신을 바라보는 눈빛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무시와 조롱은 사라지고, 오직 경외와 두려움만이 그들의 눈동자에 넘실거렸다. 소문은 빛보다 빠르게 원내 인트라넷을 타고 퍼져 나갔다. '기적의 20분 문합', '교수의 오진을 뒤집은 레지던트'.

당직실로 돌아와 피로가 들이닥친 몸을 눕힌 당신의 눈앞에, 파란색 반투명 시스템 창이 다시 점멸하기 시작했다.

[알림: 수술 성공률 100% 달성.] [경고: 원내 정치적 적대 수치 급상승. 징계위원회 개최 예정.]

그때, 당직실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들어선 것은 병원장 직속의 기획조정실 소속 법무팀장이었다. 그는 서류 봉투 하나를 당신의 침대 발치에 툭 던졌다. "강현우 선생, 실력이 아주 대단하더군. 김정훈 교수가 날뛰고 있긴 하지만, 징계를 면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네."

그의 눈빛은 비열하게 빛났다. "대신 조건이 있어. 이번에 우리 병원이 전면 도입하려는 인공 판막(Prosthetic valve) 기기 승인서에 의견서를 보태주게. 자네의 그 뛰어난 수술 데이터를 이 신형 기기 덕분인 것으로 무마해 준다면, 징계는커녕 전임의(Fellow) 자리도 보장하지."

리베이트와 의료 기기 승인 비리의 썩은 내가 진동하는 제안이었다.

법무팀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열린 문틈으로 또 다른 그림자가 불쑥 들이닥쳤다. 소아 흉부외과의 유일한 양심이라 불리는 최영우 교수였다. 그는 절박한 표정으로 낡은 태블릿 PC 하나를 당신에게 내밀었다. 액정 화면 속에는 갓 태어난 영아의 심장 초음파(Echocardiography)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BPM 180, 혈압 50/30. 아기의 심장이 터질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완전 대혈관 전위(TGA, Transposition of the Great Arteries).

"강 선생, 자네의 그 괴물 같은 손기술이 필요하네. 소아 정맥 전환 수술(Senning operation)을 해야 하는데, 이 아이는 관상동맥 기형까지 겹쳐서 국내에서 집도할 수 있는 의사가 없네. 병원 수뇌부는 실패할 게 뻔하다며 안락사나 다름없는 전원을 권유했지. 자네가 나와 함께 이 아이를 살려준다면, 내 모든 직위를 걸고 자네를 지키겠네."

시스템이 당신의 시야에 두 개의 경로를 푸른빛과 붉은빛으로 강렬하게 제시한다.

하나는 더러운 비리 속에 숨어 안전을 도모하는 길. 다른 하나는 실패하면 의사 면허가 통째로 날아갈 수 있는 극단의 외줄 타기.

결정의 바늘이 가쁘게 흔들리는 순간, 당신의 손가락 끝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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