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새벽 세 시의 중환자 집중부서는 사람이 죽어나가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인턴! 5번 베드 활력징후 떨어진다, 빨리!"

도현은 뛰었다. 발령 첫날부터 윤재경이 짜놓은 판이 무엇인지 알았다. 환자를 던져 넣어 손을 쓰게 만들고, 그 손이 부서지는 걸 지켜보겠다는 것. 알면서도 뛸 수밖에 없었다. 5번 베드에서 노인이 흰자를 드러내고 있었다.

"BP 팔십에 사십, 계속 떨어져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모니터는 뻔한 숫자만 뱉었다. 패혈증인지 출혈인지 심장인지, 기계는 답을 주지 않았다. 답은 도현의 손끝에 있었다.

장갑을 벗었다. 이건 하지 말아야 할 짓이었다. 오늘만 벌써 세 번째다. 낮에 담낭염, 저녁에 장간막 허혈. 손끝에 아직 그 두 사람의 통증이 개미처럼 기어다녔다. 그래도 노인의 맨살에 손바닥을 얹었다.

명치가 얼음송곳으로 뚫렸다.

"복부 대동맥이야. 파열 직전이다. 초음파 필요 없어, 바로 수술방 콜해."

"인턴 선생이 뭘…"

"콜하라고!"

도현의 목소리가 부서의 공기를 갈랐다. 노인의 통증이 도현의 배 속에서 폭발하는 중이었다. 손을 떼도 명치의 얼음송곳은 빠지지 않았다. 잔류. 이 저주받은 잔류.

*

수술방으로 옮겨지는 이송 카트를 따라 뛰는 동안, 도현의 시야 가장자리가 흐릿하게 번졌다.

강민석이 마취기 앞에 서 있었다. 도현과 눈이 마주치자 그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꺾였다.

"너 얼굴이 시체색이다. 잠은 잤냐."

"환자부터."

"묻는 사람한테 그렇게 대답하는 거 아니야."

강민석의 말투는 느긋했지만 손은 이미 빨랐다. 프로포폴, 로쿠로늄, 순식간에 노인은 잠들었다. 집도의로 들어온 흉부외과 3년차가 배를 열었다. 예상대로였다. 신장 아래 대동맥이 풍선처럼 부풀어 벽이 종이처럼 얇았다. 3년차의 손이 굳었다.

"이거… 예상보다 심한데. 클램프 어디까지…"

"신동맥 하방, 손가락 세 개 아래요. 거기 파열 예정 지점이 얇아요."

도현이 말했다. 노인의 몸에서 읽은 그대로였다. 배 속에서 얼음송곳이 정확히 그 위치를 찌르고 있었으니까.

"네가 어떻게 알아?"

"방금 만졌잖아요. 촉진했다고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반쪽의 진실이었다. 3년차는 미심쩍은 얼굴로도 클램프를 그 자리에 걸었다. 파열 지점이 맞았다. 출혈이 잡혔다.

숨을 몰아쉬는 동안 도현의 손이 떨렸다. 견인기를 쥔 오른손이 제 것 같지 않았다.

*

수술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콜이 왔다.

"응급 다발성 외상, 오토바이 사고, 3번방으로!"

이건 넘겨야 했다. 넘겨야 한다고 머리는 말했다. 오늘 세 번, 아니 네 번. 낮부터 쌓인 통증이 목까지 차올랐다. 그런데 이송된 청년의 배가 이상하게 부풀어 있었다. 초음파 담당이 프로브를 대고 미간을 찌푸렸다.

"복강 내 출혈은 없는데… 활력징후는 계속 떨어지고."

기계가 놓치고 있었다. 도현은 알았다. 저건 후복막이다. 기계 프로브가 닿지 않는 뒤쪽에서 피가 새고 있다.

가지 마. 손을 대지 마.

도현의 발이 3번방으로 향했다.

"후복막 출혈이에요. 골반 골절에서 나오는 거, CT 찍을 시간 없어요."

"근거는."

"…확인해봐요, 지금."

손을 대지 않고 던진 말이었다. 아직은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초음파 담당은 코웃음을 쳤고, 청년의 혈압은 60을 찍었다. 도현의 이성이 무너졌다. 장갑을 벗어 청년의 옆구리에 손을 얹었다.

골반이 통째로 으스러지는 감각이 도현의 하반신을 관통했다. 뼈 부스러기가 신경을 긁는 통증. 도현의 무릎이 접혔다.

"골반, 후복막, 지금 색전술 안 하면 십 분 안에 죽어요."

바닥에 한쪽 무릎을 짚고 뱉은 말이었다. 사람들이 도현을 봤다. 인턴이 왜 무릎을 꿇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강민석만이, 옆방에서 넘어오다 멈춰 선 강민석만이 그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색전술 팀이 도착했을 때 청년은 살아 있었다. 도현이 옳았다. 후복막에서 새던 피가 카테터로 막혔다. 세 번째 승리. 아니, 네 번째.

문제는 도현의 몸이었다.

수술방 밖 복도에 나온 순간, 형광등이 두 개로 갈라져 보였다. 벽이 물결처럼 일렁였다. 손을 들어 보니 손가락 다섯 개가 제각각 떨렸다. 명치의 얼음송곳, 배 속의 뼈 부스러기, 하반신의 저릿함이 모두 한꺼번에 몰려와 어느 것이 누구의 통증인지 구별되지 않았다.

이게 그거구나. 첫 번째 삶에서는 몰랐던 것. 능력의 임계.

"서도현."

강민석이었다. 어느새 마스크를 벗고 도현의 정면에 서 있었다.

"괜찮습니다."

"안 괜찮아. 너 지금 서 있는 것도 벽에 기대고 있잖아."

도현은 벽에서 등을 떼려다 휘청였다. 강민석의 손이 팔을 잡았다.

그때 다시 콜이 울렸다.

"코드 블루, 8번 베드! 인턴 어디 갔어!"

"내가 갈게." 강민석이 말했다. "너는 여기…"

"제가 갑니다."

도현은 강민석의 손을 뿌리쳤다. 8번 베드는 낮에 봐뒀던 환자였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스텐트를 넣은 노파. 그런데 지금 심정지라면, 스텐트 문제가 아니다. 심장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터진 것이다. 그걸 확인할 수 있는 건 손밖에 없었다.

*

8번 베드에서 CPR이 진행 중이었다. 흉부 압박, 에피네프린, 다시 압박. 심전도는 무맥성 전기활동. 심장은 뛰는 신호를 보내는데 피가 돌지 않았다.

"심장눌림증이야." 도현이 말했다. 압박하던 레지던트가 돌아봤다. "심장 주변에 피가 고여서 심장을 짜누르고 있어요. 지금 바늘 안 찌르면 죽어요."

"근거를 대, 인턴! 초음파부터…"

시간이 없었다. 도현은 노파의 목덜미에 손을 얹었다.

그 순간 도현의 세상이 무너졌다.

심장을 조이는 압박감이 도현의 가슴을 짓눌렀다. 그런데 이번엔 그것만이 아니었다. 낮의 담낭, 저녁의 허혈, 새벽의 대동맥, 청년의 골반. 모든 통증이 한꺼번에 되살아나 노파의 통증과 뒤엉켰다. 어느 것이 지금이고 어느 것이 잔류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손이 노파의 목에 붙은 채 굳었다. 떼어지지 않았다. 손가락이 갈고리처럼 오그라들었다.

"검상돌기… 아래…" 도현의 혀가 굳었다. "왼쪽 어깨… 방향…"

말이 부서졌다. 무릎이 접혔다.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이대로면 노파도, 도현도, 아무도 살리지 못한다.

"비켜."

강민석이었다. 도현의 굳은 손을 노파에게서 억지로 떼어내며, 그가 심낭천자 바늘을 잡았다.

"검상돌기 아래, 왼쪽 어깨 방향. 그 말 맞지?"

도현은 대답할 수 없었다. 강민석은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바늘이 들어갔다. 검붉은 피가 주사기로 딸려 나왔다. 노파의 심전도가 리듬을 되찾았다. 삐― 삐― 삐―.

살았다. 도현이 뱉은 마지막 진단이, 강민석의 손을 통해 노파를 끌어올렸다.

바닥에 주저앉은 도현의 눈에 천장의 형광등이 하얗게 번졌다. 여섯 명. 오늘 여섯 명을 만졌다. 손끝이 여섯 사람의 죽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

12층 심사위원회 회의실.

윤재경은 밤새 올라온 보고서를 한 장씩 넘겼다. 대동맥 파열, 후복막 출혈, 심장눌림증. 모두 인턴 서도현이 정확히 짚었고, 모두 살았다. 실적으로만 보면 경이로웠다.

그런데 윤재경의 시선이 멈춘 곳은 마지막 줄이었다.

'인턴 서도현, 시술 도중 원인 불명의 탈진으로 복도에서 쓰러짐. 마취과 강민석이 처치 인계.'

윤재경은 안경을 벗었다. 미간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쓰러졌다."

혼잣말이 회의실의 정적을 깼다. 그는 도현의 진단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몰랐다. 알 필요도 없었다. 그가 아는 것은 하나였다. 검증되지 않은 방식으로, 절차를 무시하고, 자기 몸이 버티는 것 이상으로 밀어붙이는 손. 그런 손은 언젠가 반드시 환자를 죽인다. 오늘은 여섯을 살렸을지 몰라도, 저 손은 결국 자기 오만의 무게에 무너진다.

"오만은 반드시 무너진다."

윤재경은 보고서를 덮었다.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서도현은 스스로를 태우는 중이었다. 자신은 그저 그 불이 병원 전체로 번지지 않게 관리하면 된다. 검증되지 않은 재능을 시스템으로 걸러내는 것, 그것이 그의 사명이었다.

그는 인터폰을 눌렀다.

"내일부터 서도현 인턴, 근무 강도 상향해. 중환자 배정 늘리고. …그 친구가 얼마나 버티나 봐야겠어."

*

당직실 간이침대에 도현을 눕힌 강민석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이마에 손을 대보니 열은 없었다. 맥박은 빨랐다가 느려지길 반복했다. 진통제를 놓아도 도현은 계속 신음했다. 강민석이 아는 어떤 약도 이 통증을 잡지 못했다.

이상했다. 처음부터 이상했다.

담낭염 환자를 만진 뒤 도현은 오른쪽 윗배를 움켜쥐었다. 대동맥 환자를 짚은 뒤 명치를 눌렀다. 골반이 부서진 청년 옆에서 도현의 다리가 접혔다. 심장눌림증 노파의 목을 만졌을 때, 도현은 자기 가슴을 쥐어뜯었다.

환자의 병이 있는 자리를, 도현의 몸이 똑같이 아파했다.

강민석은 마취과 의사였다. 십 년을 통증만 들여다보며 살았다. 어떤 통증이 진짜고 어떤 통증이 흉내인지 구별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침대 위에서 앓는 남자의 통증은, 세상 어떤 병리학으로도 설명되지 않았다.

도현의 손가락이 침대 시트를 긁었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의식이 물속처럼 아득한 곳에서, 도현은 자기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서도현."

멀었다. 형광등 불빛이 물결쳤다.

강민석의 얼굴이 흐릿하게 겹쳐 보였다. 그 입이 천천히 움직였다. 도현의 귀에, 밀려드는 여섯 사람의 통증 너머로, 낮고 또렷한 한 마디가 박혔다.

"너, 그 손으로 뭘 느끼고 있는 거야."

도현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소리를 내려 했지만 혀가 움직이지 않았다.

"다 알고 있어."

어둠이 도현을 삼켰다.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여섯 사람의 통증이 조금씩 물러가기 시작한 건, 창밖이 희끄무레해질 무렵이었다. 명치의 얼음송곳이 무뎌지고, 하반신의 저릿함이 잦아들었다. 몸이 스스로 잔류를 태워 없애는 시간. 회귀 전에는 알지 못했던, 이 저주의 유일한 규칙.

도현이 눈을 떴을 때, 강민석은 여전히 침대 옆 스툴에 앉아 있었다. 밤새 그 자리를 지킨 사람의 얼굴이었다. 넥타이가 풀려 있었고, 눈 밑이 검었다.

"깼네."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이 아직 떨렸지만, 갈고리처럼 오그라들지는 않았다. 굳었던 것이 풀렸다. 이번에는 풀렸다.

이번에는.

"몇 시간이나…"

"세 시간. 나머지 근무는 내가 널 응급 처치 케이스로 잡아서 빼놨어. 서류상으로 너는 지금 탈수로 수액 맞는 중이고."

강민석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담담함 아래 무언가 벼려진 것이 있었다.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어. 마취과가 원래 뒤처리 전문이거든."

도현은 몸을 일으켰다. 세상이 한 바퀴 돌았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침대 모서리를 붙잡고 강민석을 마주 봤다. 이 남자가 무엇을 봤는지, 무엇을 알아챘는지, 도현은 정확히 알았다. 아까 그 목소리가 아직 귓속에 박혀 있었다.

"뭘 알고 있다는 겁니까."

"그 질문을 네가 나한테 던지는 게 우습다."

강민석이 스툴을 끌어당겨 도현과의 거리를 좁혔다.

"담낭염 환자 만지고 넌 오른쪽 윗배를 잡았어. 대동맥 짚고는 명치를 눌렀고. 골반 부서진 애 옆에서 다리가 접혔지. 심장 눌린 할머니 목 만졌을 때는 네 가슴을 쥐어뜯었어. 나 이거 다 봤어, 서도현. 한 번도 아니고 네 번. 우연이라기엔 자리가 너무 정확했어."

도현의 입안이 말랐다.

"내가 마취과 십 년이야. 통증 흉내 내는 놈들, 통증 없는데 있다고 우기는 놈들, 진짜 아픈데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놈들, 다 봤어. 그런데 너는… 환자의 아픈 자리를 네가 아파해. 그게 무슨 병리학으로 설명이 되냐. 안 돼. 그래서 무섭다."

강민석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도현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칼끝을 돌렸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네가 그걸 이미 알고 있다는 거야."

도현의 어깨가 굳었다.

"오늘 넘어질 걸 알면서 여섯 명을 만졌잖아. 세 번째 환자에서 넌 이미 손이 떨렸어. 넘길 수 있었어. 그런데 안 넘겼지. 왜? 인턴 첫 주에 그렇게까지 자기 몸을 태우는 놈은,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아는 놈밖에 없어."

말문이 막혔다. 반박할 수 없었다. 강민석은 병의 정체까지는 몰라도, 도현이 자기 몸을 소모품으로 쓰고 있다는 사실만은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내가 왜 이걸 캐묻는지 알아?"

강민석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윤재경이 오늘 오전에 지시를 내렸거든. 네 중환자 배정을 늘리래. 근무 강도 올리래. …그 인간이 뭘 노리는지 나는 몰라. 하지만 결과는 안다. 너 이대로 가면 일주일 안에 수술방에서 손 굳어서 환자 죽인다. 그럼 그 죽음이 또 네 몸에 새겨질 거고."

도현의 눈이 흔들렸다. 강민석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봐. 지금 그 표정. 넌 이미 알고 있었어. 환자를 놓치면 그게 어떻게 되는지."

*

강민석이 당직실을 나간 뒤, 도현은 한동안 천장을 노려봤다.

들켰다. 첫 번째 삶에서는 죽는 순간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저주를, 두 번째 삶의 나흘째 밤에 한 남자가 절반쯤 파고들었다. 위협이 될 수도, 방패가 될 수도 있었다. 아직은 알 수 없었다.

그때 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엔 노크도 없었다.

한지우였다.

밤샘 당직을 마친 얼굴로, 그는 문틀에 어깨를 기댄 채 도현을 내려다봤다. 지난 사흘간 도현을 협박하듯 수술방으로 끌어들였던 그 일 이후, 지우의 눈에는 늘 서늘한 벽이 서 있었다.

"복도에서 쓰러졌다며. 인턴 첫 주에 화려하네."

비꼬는 말투였지만, 지우의 손에는 캔커피 두 개가 들려 있었다. 하나를 도현의 무릎 위로 툭 던졌다.

"소문 다 났어. 서도현이 손만 대면 병을 맞힌다고. 근데 정작 본인은 시체처럼 실려 나갔다고."

도현은 캔을 쥐었다. 차가웠다.

"할 말이 그거야?"

"아니."

지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문틀에서 어깨를 뗐다.

"3번 베드. 그 충수염 환자. 네가 나 끌고 들어가서 살린 거."

도현의 심장이 조여들었다. 회수될 것이 회수되는 순간의 공기가 있었다.

"그 환자 아내가 오늘 아침에 감사 인사하러 왔어. 근데 누구한테 왔는지 알아? 나한테 왔어. '지우 선생님 덕분에 남편이 살았다'고. 정한석이 공 가로챈 건 그렇다 쳐. 근데 너는… 너는 그 순간에 나한테 뭐라고 했지?"

지우의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네가 안 하면 이 환자 죽는 거 네 책임이야.' 그랬잖아. 넌 나를 살리는 손으로 쓴 게 아니라, 협박당해서 움직이는 도구로 썼어. 넌 항상 그래. 옳은 걸 위해서라면 옆에 있는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짓든 상관 안 해."

도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대사를, 이 눈빛을 그는 알았다. 첫 번째 삶에서 지우가 자신에게 등을 돌리기 직전, 마지막으로 지었던 그 표정이었다. 그때는 왜 지우가 그런 눈으로 자신을 봤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배신자라고만 생각했다.

지금에서야 보였다. 배신의 씨앗을, 자신이 직접 심고 있었다는 것을.

"지우야."

"됐어."

지우가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난 네가 실력 있는 거 인정해. 오늘 여섯 명 살린 것도 인정해. 근데 서도현, 나 궁금한 게 하나 있어. 너 그렇게 손대는 족족 병을 맞히는데——"

지우가 도현의 얼굴을, 아직 핏기 없는 그 얼굴을 똑바로 겨눴다.

"왜 매번 그 다음에 반쯤 죽어? 담낭염 맞힌 날도, 대동맥 맞힌 날도. 손 대고 나면 넌 항상 어딘가가 아파. 강민석 선생만 눈치챈 줄 알아? 나도 봤어."

도현의 손에서 캔커피가 미끄러졌다. 바닥에 떨어져 데구루루 굴렀다.

두 사람이 봤다. 강민석과 한지우, 둘 다.

"말해. 서도현. 네 그 손이 대체 뭐야."

user계속

assistant지우의 질문이 당직실의 좁은 공기를 팽팽하게 당겼다. 도현은 굴러간 캔을 주우려 몸을 숙였다가, 손끝이 다시 떨리는 걸 보고 멈췄다. 지우의 시선이 그 떨림에 못 박혔다.

"봐. 또 그러잖아."

거짓말을 만들 시간이었다. 첫 번째 삶에서 도현은 이런 순간마다 벽을 세웠다. '촉진 실력이다', '경험의 감이다', '너희가 못 보는 걸 나는 본다.' 그 벽이 그를 고립시켰고, 결국 카르텔의 먹잇감으로 만들었다. 혼자 옳은 자는 혼자 무너진다. 그 교훈을 온몸으로 배우고 죽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는 두 개의 손이 있었다. 도현의 굳은 손을 억지로 떼어 환자를 살린 마취과의 손, 그리고 협박당하면서도 결국 메스를 든 외과의의 손. 두 사람 다 도현을 향해 등을 돌릴 수도, 방패가 될 수도 있었다.

"지우야."

도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충수염 환자 아내가 너한테 감사한 거… 그거 잘못된 거 아니야. 네가 개복했고, 네 손이 그 사람 배 속에서 고름을 긁어냈어. 나는 진단만 했어. 살린 건 네 손이야."

지우의 눈썹이 흔들렸다. 예상한 대답이 아니었다.

"그날 내가 너 협박한 거, 그건 내가 잘못했어."

지우의 입이 반쯤 벌어졌다. 서도현이라는 인간의 사전에 없는 말이었다. 적어도 지우가 아는 서도현에게는.

"난 급했고, 환자가 죽어가고 있었고, 그래서 널 도구처럼 썼어. 네 표정 안 봤어. 그건… 내 오만이었어."

도현은 자기 입에서 나온 말에 스스로 놀랐다. 첫 번째 삶에서라면 죽어도 못 했을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뱉는 순간, 명치에 박힌 얼음송곳 하나가——환자의 것도 아닌, 자기 자신의 오래된 통증 하나가——아주 조금 무뎌지는 것을 느꼈다.

지우는 한참 도현을 노려봤다. 서늘한 벽이 완전히 허물어지진 않았지만, 그 벽에 처음으로 실금이 갔다.

"…뭐야. 사람이 갑자기 왜 이래. 쓰러지니까 정신이 반쯤 나갔나."

지우가 바닥의 캔을 대신 주워 도현의 손에 다시 쥐여줬다.

"그래서, 네 손이 뭐냐고 물었잖아."

"그건."

도현이 답하려는 순간이었다.

당직실 문이 벌컥 열렸다. 노크도, 예고도 없었다. 문가에 선 것은 박태오였다. 손에 태블릿을 든 채, 그는 도현과 지우를 번갈아 보며 얇게 웃었다.

"인턴 둘이 아주 사이가 좋네. 당직실에서 밀담이라도 나누나?"

지우가 반사적으로 자세를 고쳤다. 서열의 벽이 순식간에 방 안에 세워졌다.

"과장님 지시로 왔어. 서도현 인턴, 오늘 오후 흉부외과 컨퍼런스에 참석하래. 삼 주 전 심초음파 재판독 건이 안건에 올라와서 말이야."

도현의 등줄기가 곤두섰다. 삼 주 전 심초음파——수치 48이 42로 위조되어 있던 그 차트. 2화에서 박태오가 자신의 손에서 회수해 갔던 바로 그 기록.

카르텔이 먼저 그 판을 열겠다는 뜻이었다.

"인턴 주제에 컨퍼런스라니 영광이지? 그 자리에서 네가 뭘 봤는지, 뭘 안다고 떠들었는지 다들 궁금해하거든."

박태오의 눈이 뱀처럼 가늘어졌다. 그건 초대가 아니라 함정이었다. 위조된 차트의 존재를 도현이 눈치챘다는 걸, 저들도 알고 있었다.

박태오가 태블릿을 흔들어 보였다. 화면에는 도현의 이름이 붙은 문서 하나가 떠 있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어젯밤 8번 베드 심낭천자 말이야. 기록 보니까 심장눌림증 진단을 인턴이 내렸다던데. 초음파도 안 찍고. CT도 없이. …근거 없이 침습적 시술을 유도한 거, 그거 문제 삼으면 꽤 커지거든."

도현이 살린 환자였다. 그 진단이 옳았기에 노파는 살아 있었다. 그런데 그 정확함이, 이제 도현을 겨누는 칼이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오후 세 시. 7층 컨퍼런스룸. 늦지 마."

박태오가 문을 닫고 사라졌다. 발소리가 복도 끝으로 멀어졌다.

정적 속에서 지우가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너 진짜 큰 거 밟았구나."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문에 고정되어 있었다. 컨퍼런스룸에는 윤재경이 있을 것이다. 위조된 심초음파 차트가 안건으로 올라온다면, 저들은 두 가지 중 하나를 노리는 것이었다. 도현의 입을 막거나, 도현을 미끼로 써서 그 위조의 흔적조차 지워버리거나.

그리고 도현의 손은 아직 떨리고 있었다. 어젯밤 여섯 사람의 잔류가 완전히 빠지지 않은 상태에서, 오후 세 시에 카르텔 전체와 마주 서야 했다.

몸이 부서진 채로.

"지우야."

도현이 캔을 쥔 손에 힘을 줬다.

"오후 세 시에, 나랑 같이 그 방에 들어갈 생각 있어?"

지우가 눈을 크게 떴다. 협박도, 명령도 아니었다. 처음으로 서도현이 그에게 건넨 것은——부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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