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12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도현은 오른손을 코트 주머니에 밀어넣었다. 손가락이 아직도 미세하게 떨렸다. 세 시간 전, 3번 베드 환자의 배를 짚었을 때 명치를 파고들던 그 뜨거운 통증이 아직 손끝에 눌어붙어 있었다.

문이 열렸다.

카펫이 깔린 복도, 무음의 공기, 방음 처리된 회의실 문. 응급센터의 소독약 냄새와 비명이 여기까지는 닿지 않았다. 회귀 전, 그가 청문회라 부르던 방. 자신을 매장한 열두 개의 자리가 놓인 그 방.

문을 열자 창을 등지고 선 남자가 있었다.

윤재경. 흉부외과 과장. 회색 정장 위에 걸친 흰 가운은 주름 하나 없었다.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창밖의 병원 전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도현 인턴."

"부르셨습니까."

"오늘 두 건. 대동맥 박리 하나, 천공성 충수염 하나." 윤재경이 천천히 돌아섰다. 안경 너머의 눈은 화도, 호기심도 아니었다. 저울이 물건을 올려다보는 눈이었다. "인턴 첫날에. 정한석 선생의 진단을 뒤엎고. 한지우 선생을 어시스트로 끌어들여서."

"환자를 살렸습니다."

"살렸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이 아니라 사실 확인이었다. "앉게."

도현은 앉지 않았다. 윤재경도 권하기를 포기하고 긴 테이블 끝에 손끝을 짚었다.

"자네가 뭘 근거로 진단을 내렸는지 물어야 정상인데." 그가 말했다. "CT를 안 봤어. 정한석 선생은 초음파상 단순 충수염으로 판독했고, 그 판독에 틀린 데가 없었네. 그런데 자네는 개복을 밀어붙였고, 열어보니 천공이 있었다. 이걸 뭐라고 부를까."

"진단이라고 부릅니다."

"운이라고 부르네, 나는." 윤재경의 목소리는 높아지지 않았다. 그게 더 서늘했다. "한 번은 실력이고 두 번은 우연이야. 세 번째에 자네는 확신에 취해 멀쩡한 배를 열 걸세. 그리고 네 번째엔, 열지 말아야 할 사람을 열겠지."

"이번엔 안 열었으면 그 환자가 오늘 밤 죽었습니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그가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닦기 시작했다. "자네는 하나를 봤고, 나는 삼십 년을 봤어. 검증되지 않은 손이 얼마나 많은 환자를 죽였는지. 재능이라는 이름으로."

그 문장이 방 안에 떨어졌다.

도현은 알았다. 이 말을 언젠가 들었다. 회귀 전, 자신의 손이 묶이고 이름이 지워지던 그 청문회에서, 이 남자가 정확히 같은 어조로 했던 말.

"자기 확신에 찬 재능이 시스템을 무시할 때." 윤재경이 안경을 다시 썼다. "책임은 언제나 환자가 져. 그래서 우리가 있는 걸세. 걸러내려고. 자네 같은."

"저 같은."

"그래. 자네 같은."

도현은 테이블 위에 두 손을 얹었다.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눌러 감췄다.

"과장님 시스템이 걸러낸다는 게." 그가 입을 열었다. "오늘 3번 베드였습니까. 초음파상 이상 없다는 판독을 믿고 그대로 관찰만 했으면, 새벽 세 시에 복막염으로 패혈증 왔을 그 사람. 그게 걸러진 거였습니까, 아니면 죽을 뻔한 겁니까."

윤재경의 손수건 접는 손이 멈췄다.

"제가 지금 서 있는 건." 도현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제 확신이 틀렸으면 오늘 저녁에 잘렸을 자리입니다. 근데 안 틀렸죠. 환자가 살아서 회복실에 있으니까. 과장님 저울에 그 사람 목숨 올려놓고 무게 재실 겁니까. 우연이라는 추 하나 얹어서."

방이 조용해졌다. 창밖으로 헬기 한 대가 옥상 헬리패드를 향해 내려앉는 소리가 유리를 타고 희미하게 들어왔다.

윤재경은 오래 도현을 바라봤다.

"기세가 좋군." 마침내 그가 말했다. 웃지 않았다. "십 년 전에도 자네 같은 친구가 있었어. 기세가 좋았지. 초음파 없이 진단하고, 프로토콜 무시하고, 자기가 옳다고 밀어붙이고. 환자 셋을 살렸네. 그리고 넷째를 죽였어. 자신을 믿었거든."

"그 사람 이름 아십니까."

"뭐?"

"넷째로 죽었다는 그 환자요. 이름 아시냐고요." 도현이 물었다. "아니면 그것도 통계 한 줄로 넘기셨습니까."

윤재경의 턱 근육이 한 번 움직였다. 그게 전부였다. 이 남자는 화를 내는 법을 잊은 사람이거나, 화를 낼 필요가 없는 자리에 너무 오래 있은 사람이었다.

"자네는 나를 악당으로 보는군." 그가 조용히 말했다. "괜찮아. 대부분 그러니까. 하지만 언젠가 알게 될 걸세. 나는 자네가 죽일 환자를 미리 살려두는 사람이야. 자네가 그걸 이해하는 날—"

그때, 회의실 밖 복도에서 무언가 지나갔다.

유리벽 너머, 반투명한 블라인드 사이로 실루엣 하나가 빠르게 움직였다. 짧은 머리, 다급한 걸음, 겨드랑이에 낀 서류 뭉치. 그 사람은 복도 끝 자료실 문 앞에서 멈춰 카드키를 갖다 댔다. 도현의 눈이 그 실루엣을 좇았다.

박태오였다.

세 시간 전 응급센터에서 심초음파 차트를 낚아채 간 그 손. 삼 주 전 수치가 48에서 42로 위조된 그 차트를 회수해 간 그 남자. 지금 그는 자료실 문을 열고 미끄러지듯 안으로 사라졌다. 도현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채.

"—무슨 일인가?" 윤재경이 도현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블라인드 너머는 이미 비어 있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도현이 시선을 거뒀다.

하지만 심장이 뛰었다. 박태오가 저 자료실에서 뭘 하는지 도현은 알았다. 회귀 전의 기억 속에서, 박태오는 언제나 문제가 될 기록을 조용히 지우는 사람이었다. 소송이 걸리기 전에. 감사가 뜨기 전에. 누가 묻기 전에. 지금 저 안에서 그의 손끝은 어떤 환자의 이름을 삭제 목록에 올리고 있을 것이다.

'무슨 기록을 지우는 거지.'

도현은 그 문을 머릿속에 새겼다. 12층, 복도 끝, 자료실. 카드키. 박태오.

"자네 진단 능력." 윤재경이 다시 말했다. 이번엔 목소리에 다른 무게가 실렸다. "어디서 배웠나. 어느 병원 어느 교수 밑에서. 무슨 술기로 CT 없이 천공을 짚어."

"제 손이요."

"손?"

"환자를 만지면 압니다." 도현은 거짓을 진실로 감쌌다. "그게 전붑니다."

윤재경은 그 대답을 오래 곱씹었다. 믿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반박할 데이터도 없는 얼굴이었다. 그는 서류철 하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좋아. 마음껏 만져보게."

"…무슨 말씀입니까."

"자네를 3층에 두는 건 낭비지. 그런 손을 응급센터 관찰 베드에 썩힐 순 없잖나." 윤재경이 처음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미소 비슷한 무언가였다. 그러나 그 미소는 저울이 마침내 무게를 다 잰 뒤에 짓는, 결론에 도달한 자의 미소였다. "다음 주부터 중환자 집중부서로 배치하겠네. 중증 외상, 다발성 장기부전, 응급 개복. 하루에도 열몇 명씩 밀려드는 곳이야. 자네 손이 진짜라면, 거기서 증명해."

도현의 등줄기로 서늘한 것이 지나갔다.

"마음껏 살려보게, 서도현 인턴." 윤재경은 창을 향해 돌아섰다. "몇 명이나 만질 수 있는지. 나는 지켜보겠네."

문이 열렸다.

나가라는 뜻이었다.

도현은 회의실을 나섰다. 등 뒤에서 문이 무음으로 닫혔다. 복도의 카펫이 그의 발소리를 삼켰다. 그는 걸으면서 방금 들은 말을 곱씹었다.

'중환자 집중부서. 하루 열몇 명.'

이 남자는 도현의 능력이 진짜라는 걸 반쯤 믿었다. 그래서 시험대에 올렸다. 하지만 그건 실력을 인정하는 시험이 아니었다. 도현이 손을 대면 댈수록 그 통증이 몸에 쌓인다는 걸 윤재경은 모른다. 알 리가 없다. 그런데도 그가 고른 방법은 정확히 도현의 급소를 겨눴다. 능력을 쓰게 만들어서, 그 능력으로 스스로를 태워 없애게 하는 것.

하루에 열 명을 만지면.

도현은 오른손을 폈다. 아직도 떨렸다. 오늘 두 명을 진단했을 뿐인데 명치의 잔불이 사라지지 않았다. 열 명을 만지는 날, 자신의 손이 어떻게 될지 그는 이미 알았다. 감각이 뒤엉키고, 남의 통증과 제 통증을 구별하지 못하고, 메스를 쥐어야 할 순간에 손가락이 굳는다.

윤재경은 그걸 노린 게 아니었다. 그는 그저 도현을 소모품 자리에 던져넣었을 뿐이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카르텔의 논리란 원래 그런 것이다. 튀는 손을 갈아 없애는 데 악의조차 필요 없다. 그냥 일을 몰아주면 된다.

'이게 나를 죽인 시스템이지.'

회귀 전, 도현을 무너뜨린 건 단 한 번의 극적인 음모가 아니었다. 조작된 데이터 한 장, 책임을 떠넘긴 회의록 한 줄, 그리고 '실력 있으면 감당하라'는 배치표 한 장. 그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한 사람을 지웠다. 지금 그가 손에 쥔 배치 통보서는 그 첫 장이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는 멈췄다.

이번엔 다르게 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죽지 않겠다고.

문이 열렸다. 안에서 강민석이 나오다 도현과 부딪힐 뻔했다. 마취과 가운, 목에 건 청진기, 손에 든 종이컵 두 개. 그는 도현의 얼굴을 보더니 걸음을 멈췄다.

"12층 다녀오는 얼굴이네." 강민석이 말했다. 그는 늘 반쯤 농담처럼 말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표정 봐라. 윤 과장이 뭐 던졌어?"

"중환자 집중부서 배치요. 다음 주부터."

강민석의 손이 멈췄다. 종이컵 하나를 도현에게 내밀려다 그대로 굳었다.

"…미쳤네." 그가 낮게 말했다. "인턴 첫 주에 그 부서? 거긴 3년 차도 반년이면 나가떨어지는 데야. 하루에 코드블루 몇 번 뜨는지 알아?"

"압니다."

"안다고?" 강민석이 도현의 팔을 잡아 엘리베이터에서 끌어냈다. 복도 구석, CCTV 사각지대로. 그는 목소리를 낮췄다. "너 오늘 오전에 손 떨었지. 대동맥 진단하고 나서. 나 봤어. 그리고 아까 3번 베드 개복 끝나고 회복실 앞에서, 너 벽 짚고 서 있었잖아. 눈 풀린 채로."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마취과라서 하는 말인데." 강민석이 도현의 오른손을 눈으로 가리켰다. "그 떨림, 피로 아니야. 나 그런 떨림 알아. 신경이 과부하 걸렸을 때 나오는 거야. 너 뭔가를 하고 있어. 몸을 갈아서. 그리고 윤재경은 지금 너한테 그걸 매일, 하루 종일 하라고 배치표를 던진 거고."

"강 선생님."

"닥치고 들어." 강민석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나 회귀한 것도 아니고 네 능력이 뭔지도 몰라. 근데 이건 알아. 너 지금 혼자 뭔가 다 짊어지고 이 악물고 있는 얼굴이야. 그 얼굴 오래 못 가. 그런 얼굴들이 어떻게 되는지 나 여기서 십 년 봤어."

도현은 이 남자의 얼굴을 봤다. 회귀 전에는 스쳐 지나갔던 사람. 자신이 무너질 때, 곁을 지키려다 함께 밀려났던 마취과 의사. 그때 도현은 아무의 손도 잡지 않았다. 혼자 옳았고, 혼자 싸웠고, 혼자 무너졌다.

강민석이 종이컵을 도현의 손에 쥐여줬다. 미지근한 커피였다.

"혼자 싸우다 죽지 마." 그가 말했다. 농담기가 하나도 없었다. "네가 뭘 하든, 최소한 네 몸이 언제 한계인지 아는 놈 하나는 옆에 둬라. 그게 나든 누구든. 중환자실 가면 네 몸이 어떻게 되는지, 내가 옆에서 봐줄게. 대신 나한테 숨기지 마."

도현은 종이컵을 내려다봤다. 손의 떨림이 컵 표면에 미세한 파문을 만들었다. 강민석의 눈이 그 파문에 머물렀다.

"…생각해보겠습니다." 도현이 말했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그러겠다고 해." 강민석이 인상을 썼다. "너 생각 많은 놈들 특징이 뭔지 알아? 생각하다가 혼자 죽어."

도현의 입가에 처음으로 옅은 것이 스쳤다. 웃음이라기엔 너무 지친, 그러나 회귀 이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진 표정이었다.

그때 복도 끝, 자료실 문이 열렸다.

박태오가 나왔다. 아까 들고 들어갔던 서류 뭉치는 없었다. 겨드랑이가 비어 있었다. 그는 문이 잠기는지 손잡이를 한 번 흔들어 확인하더니, 주위를 한 번 살피고 반대편 복도로 빠르게 사라졌다. 그의 손에는 USB 하나가 쥐여 있었다.

도현의 눈이 좁아졌다.

"저 사람." 강민석이 도현의 시선을 따라갔다. "박태오지. 심사위원회 실무. 저 인간 저기서 뭐 하는 거야, 자료실은 아무나 못 들어가는—"

"강 선생님." 도현이 종이컵을 그의 손에 도로 쥐여줬다. 커피가 조금 넘쳤다. "저 자료실, 뭘 보관하는 곳입니까."

강민석은 도현의 얼굴을 봤다. 방금 전까지 지쳐 있던 눈이, 지금은 사냥개처럼 한 점에 고정돼 있었다.

"…폐기 예정 진료기록." 그가 천천히 대답했다. "소송 끝난 거, 감사 넘어간 거. 최종 파기 전까지 임시 보관하는 데야. 근데 너 그건 왜—"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이미 박태오가 사라진 복도 끝에 박혀 있었다. USB 하나에 담아 나온 것. 그리고 뒤에 남기지 않은 서류 뭉치. 무언가를 지웠고, 무언가를 빼돌렸다.

회귀 전, 도현을 무너뜨린 조작 데이터의 원본이 어디에 있었는지 그는 끝내 찾지 못하고 죽었다.

지금, 그 원본을 관리하는 손이 방금 저 문을 열고 닫았다.

"강 선생님." 도현이 말했다. 목소리가 조용했지만 바닥이 단단했다. "아까 하신 말씀."

"어떤 거."

"혼자 싸우지 말라는 말." 도현이 돌아섰다. 오른손의 떨림은 여전했지만, 그는 이제 그 손을 주머니에 숨기지 않았다. "그거, 받겠습니다."

강민석이 눈을 깜빡였다. 도현이 이미 복도 끝을 향해 걷기 시작한 뒤였다.

자료실 문 앞에 선 도현은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잠겨 있었다. 카드키 인식기의 붉은 램프가 그를 노려봤다. 문틈에서 새어 나오는 서고 특유의 종이 냄새 아래로, 방금 누군가 급하게 다녀간 온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박태오가 저 안에서 무엇을 지웠는가.

그리고 그가 쥐고 나간 USB 안에는—

도현의 등 뒤에서 강민석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 서도현. 너 지금 무슨 생각 하는지 몰라도, 저 문 함부로 건드리면—"

그 순간 자료실 인식기의 붉은 램프가 깜빡였다. 안에서 누군가 문을 여는 소리가 났다.

도현은 물러설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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