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그치지 않는 카를슈타인의 밤, 카리엘은 시엔나의 손목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소매 걷어."
"놓으세요."
"걷으라고 했어."
두 사람의 손이 촛불 아래에서 잠깐 힘을 겨뤘다. 시엔나가 먼저 손목을 뺐고, 그 반동으로 소매가 저절로 팔꿈치까지 밀려 올라갔다. 카리엘은 숨을 멈췄다. 손목 안쪽부터 팔뚝까지, 녹아 붙은 살이 물결처럼 굳어 있었다. 화상. 오래되었으되 깊었다. 불에 그슬린 것이 아니라, 불을 껴안았던 자국이었다.
"흰 탑." 카리엘의 입술이 저 혼자 움직였다. "흰 탑에서 불이 났어. 전생에. 유폐당하기 반년 전."
"기억하시는군요."
"그날 밤 나는 잠들어 있었고, 누군가 나를 창가로 끌어냈어. 얼굴은 못 봤어. 연기 때문에. 그 손이—" 카리엘의 목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갈라졌다. "그 손이 뜨거웠어. 살이 타는데도 놓질 않았어."
시엔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소매를 천천히 내렸다. 그 동작이 대답이었다.
카리엘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창밖의 눈이 검은 유리를 긁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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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한테 말 안 했어."
"말하면요?" 시엔나가 처음으로 눈을 들어 그녀를 똑바로 봤다. "믿으셨겠어요? 아가씨는 제가 물을 떠 와도 독을 탔나 의심하는 사람이에요. 감시자라고 실토했을 때 눈빛 기억하세요? 그때 아가씨는 저를 값으로 매기고 있었어요. 얼마짜리 배신인가, 언제 팔릴 배신인가."
정곡이었다. 카리엘은 반박하지 않았다. 반박할 말이 몸에 없었다.
"근데 나는," 시엔나의 어깨가 한 번 들썩였다. "그 불 속에서 아가씨를 끌어낸 손이 내 손이라고, 어떻게 증명해요. 흉터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그래서 삼켰어요. 두 번이나."
"두 번."
"3년 전에 한 번. 그리고—" 시엔나가 입을 다물었다.
카리엘의 등줄기를 서늘한 것이 훑고 지나갔다. 그녀는 역독을 쓰지 않고도 그 문장의 끝을 알아차렸다. 두 번. 두 생.
"너, 기억하는구나." 카리엘이 낮게 말했다. "전생을. 나처럼."
시엔나가 촛불을 등지고 앉았다. 그림자가 그녀의 화상을 삼켰다.
"전부는 아니에요. 조각조각. 아가씨가 흰 탑으로 끌려가던 아침, 광장에 흰 수의를 입고 서 있던 뒷모습. 그리고 단상 뒤에 서 있던 검은 옷자락. 그 사람이 소매 안쪽에서 뭘 꺼냈는지—"
카리엘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가 태워버린 조각. 역독으로도 이제 열 수 없는 사각. 그 검은 형체를, 시엔나는 보고 있었다.
"소매에서 뭘 꺼냈어."
"두 번 접힌 종이요. 봉랍이 넝쿨하고 가시. 그 위에 작은 왕관."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카리엘은 자기도 모르게 심장께를 눌렀다. 통증은 없었다. 이번엔 역독을 열지 않았으니까. 시엔나의 기억이, 그녀가 다시는 태울 수 없는 조각을 대신 메우고 있었다. 내가 잃은 별자리의 빈 칸을, 이 여자가 채운다.
"내 능력이 태워 없앤 걸," 카리엘이 중얼거렸다. "네가 갖고 있었어."
"그러니까 죽지 마세요." 시엔나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화를 내는 방식으로 우는 사람이었다. "이번엔. 흰 탑에서. 광장에서. 두 번 다 못 지켰어요, 나는. 세 번째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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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대화를 끊었다. 급했고, 규칙적이지 않았다.
시녀 하나가 들어와 봉인된 전언을 내밀었다. 발신처를 확인한 카리엘의 눈이 가늘어졌다. 율리안 베르크. 여벌 인장으로 통행증을 팔았던, 그리고 광장 청문에 위조 함정이 있다고 쪽지를 남긴 남자.
전언은 짧았다.
'청문 하루 전, 새 대장을 대공청에 제출하기로 했습니다. 아가씨의 후견 서약이 조약법 위반이라는 증빙과 함께. 값은 이미 받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카리엘은 그 종이를 손끝으로 두 번 튕겼다.
"붙었네." 그녀가 웃었다. 웃음에 온기가 없었다. "델피네한테."
"어쩌실 거예요." 시엔나가 벌떡 일어섰다. "저놈은 계약 자리에서 여벌 인장을 하나 슬쩍 챙겼어요. 무도회 서명 때. 제가 봤어요. 그걸로 뭐든 위조할 수 있어요, 아가씨 이름으로."
"봤어? 왜 말 안 했어."
"값을 매기실까 봐요." 시엔나가 쏘아붙였다. "이제 안 그러실 거죠?"
카리엘은 대답 대신 그 여벌 인장이라는 단어를 곱씹었다. 율리안이 챙긴 인장. 카리엘 폰 아르덴의 서명 인장. 그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위조 증거였고, 위조 증거로 만들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두 번째 처형이었다.
그런데.
"죄송합니다." 그녀가 전언의 마지막 줄을 다시 읽었다. "값은 이미 받았다면서, 죄송합니다를 적었어."
"그게 왜요."
"율리안은 값을 매기는 놈이야. 거래에 감정을 넣지 않아. 그런 놈이 사과문을 붙였다는 건—" 카리엘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제출하기 전에 나한테 알렸다는 뜻이지. 완전히 넘어가지 못했다는 뜻이고. 저 새끼, 또 망설이고 있어."
율리안은 배신의 순간마다 미묘하게 손이 떨리는 남자였다. 몰락한 가문의 복권을 위해 어느 편에든 붙지만, 붙는 순간 항상 뒤를 남겨두는 거래꾼. 카리엘은 전생에도 이생에도 그를 신뢰한 적이 없었다. 신뢰하지 않았기에, 그의 값을 정확히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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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엘은 잉크를 끌어당겼다.
"뭐 하시게요."
"역정보를 흘릴 거야." 펜이 종이 위를 달렸다. "율리안은 아직 대장을 제출 안 했어. '하기로 했다'고만 적었으니까. 제출 전에 델피네가 요구하는 건 딱 하나야—내 후견 서약이 조약법 위반이라는 증빙. 그걸 위조 인장으로 만들 거고."
"그런데요."
"그런데 그 인장은 진짜 내 인장이 아니야. 여벌이지. 조약법이 뭐라고 했지, 시엔나."
시엔나가 눈을 크게 떴다. "기록되지 않은 것은 없는 것과 같다."
"그리고 하나 더. 계약 내 모든 진술은 진실이어야 하고, 거짓이 한 줄이라도 섞이면 참수." 카리엘이 펜을 멈췄다. "율리안이 위조한 증빙을 델피네가 대공청에 제출하는 순간, 그건 조약법의 진실 원칙 앞에 서게 돼. 위조는 거짓이야. 거짓을 제출한 자가 참수당해."
"델피네는 조약법 관할 밖이잖아요."
"델피네는 그렇지." 카리엘의 눈이 번득였다. "제출한 사람은 아니야."
그녀는 율리안에게 답신을 썼다. 문장은 다정했고, 내용은 칼이었다.
'대공청에 제출할 증빙은 내 후견 서약 사본이어야 완전하다. 그 사본은 대공 여백에 조건 미기재 항목 한 줄이 있어야 진본으로 인정된다. 그 한 줄을 함께 위조해 넣어라. 그래야 델피네가 받는다.'
시엔나가 어깨너머로 읽고 숨을 삼켰다. "그 한 줄이 뭔데요."
"몰라." 카리엘이 봉인을 찍었다. "대공이 계약 여백에 적은 한 줄이 있어. 나한테도 안 보여줬어. 나조차 못 읽는 걸, 율리안이 위조할 수 있을 리 없지. 그런데 그 한 줄이 없으면 대공청 진본 대조에서 튕겨. 율리안은 그 한 줄을 지어낼 거고, 지어낸 순간 그건 명백한 거짓이 돼. 조약법 아래서."
"율리안이 참수당하겠네요."
"율리안이 살고 싶으면," 카리엘이 답신을 시녀에게 건넸다. "제출을 못 해. 그럼 델피네의 함정도 못 완성돼. 그게 저 새끼가 남긴 '죄송합니다' 한 줄에 대한 내 답이야. 넌 망설였고, 나는 그 망설임에 값을 쳐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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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가 나가고, 방에는 다시 눈 소리만 남았다. 카리엘은 창가로 걸어가 검은 현무암 벽에 이마를 댔다. 차가웠다. 카를슈타인의 모든 것이 차가웠고, 그래서 명료했다.
"시엔나."
"네."
"아까 물었잖아. 이제 값 안 매길 거냐고."
시엔나가 대답하지 않았다.
"못 고쳐." 카리엘이 벽에서 이마를 뗐다. "나는 손 내미는 사람을 보면 언제 파는지부터 세는 인간이야. 그건 안 바뀌어. 앞으로도 너를 의심할 거고, 너한테 상처 줄 거고, 계산할 거야."
"위로가 참 형편없으시네요."
"근데," 카리엘이 돌아섰다. 촛불이 그녀의 얼굴 절반을 물들였다. "율리안은 값을 매겨서 살렸어. 너는—" 그녀가 말을 골랐다. 두 생을 통틀어 한 번도 골라본 적 없는 종류의 말이었다. "너는 값이 안 매겨져. 안 매겨지는 걸, 나는 처음 만났어."
시엔나의 눈이 흔들렸다.
"불에 손을 넣어서 나를 끌어낸 값이 얼마야. 흉터 값이 얼마고, 두 생을 기억하는 값이 얼마고, 네가 아군인지 감시자인지 나조차 아직 못 정했는데도 곁에 남은 값이 얼만데." 카리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못 매겨. 그러니까 너는 이용 대상이 아니야. 그냥—"
그녀는 마지막 단어를 삼켰다가, 뱉었다.
"지켜야 하는 사람이야. 세 번째는 없다며.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시엔나가 소매로 얼굴을 쓱 문질렀다. 화상 자국이 촛불에 잠깐 붉게 빛났다. 화를 내는 방식으로 우는 여자가, 이번엔 화를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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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오기 전, 대공청에서 전갈이 왔다. 레온하르트의 필체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율리안 베르크가 제출을 철회했다. 위조 증빙 안에 진본과 대조되지 않는 여백 항목이 포함되었다는 사유. 흥미롭군. 그 여백 항목이 무엇인지, 그대는 아는가.'
카리엘은 그 마지막 문장을 오래 들여다봤다. 대공은 자신이 여백에 적은 한 줄을 아직 그녀에게 밝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녀가 그것을 아는지 시험하고 있었다. 규칙의 관리자다운, 온기 없는 질문. 그녀는 답신에 딱 한 줄만 적었다.
'모릅니다. 모르는 채로 이겼습니다.'
이겼다. 처음으로, 배신을 함정으로 되돌리고 아군을 골라냈다. 율리안은 살아서 카리엘의 손아귀에 남았고, 델피네의 청문 함정은 완성되기 전에 무너졌다. 시엔나는 감시자가 아니라 별자리의 빈 칸을 채우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카리엘의 손끝은 여전히 차가웠다.
율리안이 넘기려던 정보. 제출은 철회됐지만, 이미 델피네의 손에 흘러 들어간 조각들이 있을 터였다. 그녀가 카를슈타인에 있다는 것. 대공의 후견을 받는다는 것. 조약법을 무기로 쓴다는 것. 델피네는 물러선 것이 아니라, 카리엘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무기로 삼는지 확인한 것이었다.
카리엘은 그 생각의 끝에서 시엔나가 채워준 사각을 떠올렸다. 넝쿨과 가시, 그 위의 작은 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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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라움 황궁, 흰 탑의 가장 깊은 방.
델피네는 율리안의 마지막 전언을 손끝으로 태웠다. 재가 벽난로 안에서 검게 말려 올라갔다. 실패한 함정은 그녀의 얼굴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자애로운 미소조차 거두지 않았다.
"조약법이라. 규칙 뒤에 숨었구나, 그 아이."
그녀는 벽의 숨은 판을 밀었다. 어둠 속에서 오래된 서류함이 미끄러져 나왔다. 그 안에 두 번 접힌 종이 한 장이 잠들어 있었다. 흰 탑의 화재에도 타지 않았고, 전생의 처형에도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밀서.
델피네의 손가락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촛불 아래에서 봉랍이 붉게 빛났다.
얽힌 넝쿨과 가시. 그 위에 얹힌 작은 왕관.
"규칙으로 나를 이길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인데." 그녀가 밀서를 뒤집었다. 봉랍의 뒷면에, 아무도 본 적 없는 두 번째 문양이 있었다. "규칙을 처음 쓴 게 누구라고 생각하니."
촛불이 그 두 번째 문양 위에서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