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이 회차는 아직 그래픽 노블 장면이 제작되지 않아 일반 노블로 보여드려요.

"떼어 버려요, 그 브로치."

카리엘의 손이 아직 가슴께 금 장미를 감싸 쥐고 있을 때, 어둠 속에서 시엔나가 걸어 나왔다. 그녀의 눈은 브로치에 못 박혀 있었고, 목소리에는 평소의 무뚝뚝함 대신 다급함이 배어 있었다.

"아드리안이 뭐라고 했든—어머니라는 말을 흘렸든, 지금 아가씨 심장 위에 얹힌 그 세 갈래 백합부터 떼어요. 지금 당장."

카리엘은 물러서지 않았다. 회랑 등불이 시엔나의 얼굴 절반을 노랗게 물들였다.

"'어머니는 실수를 용서하지 않으신다.' 그자는 그렇게 말했지." 카리엘은 브로치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차가운 금속이 손바닥을 눌렀다. "그리고 내 가슴엔 판결문에 찍혀 있던 것과 똑같은 문장이 얹혀 있어. 네가 이걸 왜 그렇게 노려보는지, 나는 그 이유부터 알아야겠다."

"이유요?" 시엔나가 웃었다. 웃음이 아니었다. 입꼬리만 비틀린 무언가였다. "이유를 대면 믿기는 하겠어요?"

카리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못 했다.

시엔나에 대한 신뢰의 감각은 이미 재가 된 지 오래였다. 얼음 창고에서 대공을 만난 뒤, 함정 질문을 피한 심사 자리 언저리에서, 무리하게 조각을 열어젖힌 대가로 그녀는 이 소녀를 향한 신뢰라는 것을 통째로 태워 먹었다. 지금 시엔나를 보면 남는 건 낯섦과 계산뿐이었다. 이 애가 언제 나를 팔아넘길까. 그 물음만 습관처럼 혀 밑에 고였다.

"네가 무슨 값을 원하는지 말해." 카리엘이 말했다. "브로치를 떼라는 조언에도 값이 붙겠지. 얼마냐."

시엔나의 얼굴이 무너졌다.

"또 그거예요? 값. 대가. 얼마." 그녀는 두 걸음 다가와 카리엘의 소매를 붙들었다. "아가씨, 나는 아가씨한테 단 한 번도 값을 청구한 적이 없어요. 편지 훔치던 걸 붙잡혔을 때도, 심사장에서 아가씨가 쓰러지기 직전에 부축했을 때도. 그런데 왜 매번 나를 저잣거리 상인 취급하냐고요!"

"대가 없는 마음을 나는 믿지 않으니까." 카리엘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차분한 것이 더 잔인했다. "네가 유일한 예외라고 우기면, 그게 더 수상해."

시엔나는 소매를 놓았다. 그리고 손목의 붕대에 손을 가져갔다.

*

붕대가 풀렸다.

등불 아래 드러난 것은 화상 흉터가 아니었다. 손목을 두 바퀴 감고 지나간, 살이 파여 하얗게 아문 자국. 밧줄이 오래 파고들어 뼈까지 조였던 흔적. 카리엘은 그 무늬를 알았다. 흰 탑의 처형 대기실에서, 죄인의 손목을 묶던 삼실 밧줄이 남기는 정확히 그 무늬였다.

"화상이라고 했지." 카리엘의 입술이 말라붙었다.

"거짓말이었어요." 시엔나가 흉터를 손끝으로 쓸었다. "이건 밧줄 자국이에요. 흰 탑 북동쪽, 아가씨 옆방. 나는 거기 묶여 있었어요. 아가씨가 처형되던 그날."

바람이 회랑을 훑고 지나갔다. 등불이 흔들렸다.

"너는 나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접근했어." 카리엘의 머릿속에서 조각이 아니라 현실의 기억이 되감겼다. 편지를 훔치려던 소녀를 붙잡던 밤, 이 애는 카리엘의 얼굴을 보자마자 손목부터 소매로 가렸다. 처음 만나는 사이라면 있을 수 없는, 지나치게 절박한 몸짓이었다. "그런데 손목부터 감췄지. 왜 그랬어."

"아가씨가 이 흉터를 보면……" 시엔나의 목소리가 젖었다. "기억할까 봐. 아니면, 기억 못 할까 봐. 둘 다 무서웠어요."

"기억할 게 뭐가 있는데."

"흰 탑에 불이 났어요."

시엔나가 무릎을 꿇듯 주저앉았다. 흉터 진 손목을 무릎에 얹고, 그녀는 카리엘이 열어 본 적도 없는 조각을 대신 열었다.

"처형 사흘 전 밤이었어요. 탑 이 층 서기실에서 불이 났고, 삼 층 옥사로 번졌어요. 나는 옆방에서 밧줄에 묶인 채였고, 아가씨는—아가씨는 이미 풀려서 계단까지 갈 수 있었어요. 위병들은 다 도망쳤거든요. 그런데 아가씨는 내려가다 말고 돌아왔어요."

카리엘은 숨을 멈췄다.

"아가씨가 창살 사이로 손을 넣어 내 밧줄을 풀었어요. 불이 벽을 타고 오는데도. 밧줄이 안 풀리니까 아가씨가 그걸—입으로 물어뜯었어요. 손톱이 다 빠지고. 그때 불붙은 들보가 떨어졌고, 나는 손목을 빼내다가 이렇게 됐어요." 시엔나는 흉터를 들어 보였다. "아가씨는 나를 밀어 계단으로 던지고, 자기가 뒤에 남았어요. 그리고 사흘 뒤 정오, 광장으로 끌려 나갔죠."

"그건—" 카리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런 기억은 내 조각에 없어."

"알아요. 아가씨는 나를 두 눈으로 담을 새가 없었으니까. 불길 속에서 나를 던지고 등을 돌렸으니까. 자기가 본 것만 조각으로 남는다면서요." 시엔나가 젖은 눈으로 올려다봤다. "그러니까 나는, 아가씨가 절대 기억 못 하는 증인이에요. 아가씨 사각지대에 있던 유일한 사람."

*

카리엘은 오랫동안 말을 잃었다.

이 소녀는 삼 년을 더 살았다고 했다. 카리엘이 광장에서 목을 잃은 뒤에도, 시엔나는 살아남아 삼 년의 세월을 걸었고, 어떤 방식으로 삼 년 전 이 자리로 돌아왔다. 그 삼 년 동안 무엇을 보고 무엇을 짊어졌는지—카리엘은 묻지 못했다. 그 대신, 태어나 처음으로 값이 아닌 다른 것을 물었다.

"왜."

시엔나가 눈을 들었다.

"왜 나를 구하려 하느냐고." 카리엘은 자기 목소리가 낯설었다. 저울에 올릴 수 없는 질문이라 혀가 어색했다. "삼 년을 더 살았으면서, 굳이 돌아와서. 밀어내고 냉대하고 상인 취급하는 나를. 대가도 없이. 왜."

시엔나의 눈에서 물이 떨어졌다.

"아무도 나를 안 풀어 줬으니까요." 그녀가 말했다. "평생을. 태자궁 세탁방 아이였던 나를. 그런데 죽으러 가는 사람이, 창살 사이로 손을 넣었어요. 손톱이 빠지도록. 나 같은 걸 위해서." 시엔나가 흉터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그게 이유예요. 그게 다예요. 계산 안 해요. 아가씨가 아무리 계산해도, 나는 안 해요."

카리엘은 손을 뻗었다.

내미는 손을 먼저 저울에 올리는 습관이, 이 자가 언제 나를 팔까 재는 버릇이, 여전히 혀 밑에 고여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은 그 버릇을 밀어냈다. 그녀는 시엔나의 흉터 진 손목을 잡았다. 아문 자국이 손바닥에 배겼다.

"믿는 법을 나는 다 태워 먹었어." 카리엘이 말했다. "너에 대한 신뢰라는 것도. 그러니 지금 이건 믿음이 아니야. 그냥—" 그녀는 말을 골랐다. "받아들이는 거다. 계산 없이.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시엔나가 웃었다. 이번엔 진짜 웃음이었다.

"그거면 됐어요."

*

시엔나가 품에서 접힌 양피지를 꺼냈다.

"이거, 흰 탑에서 빼돌렸어요. 돌아온 다음에."

카리엘이 펼쳤다. 조세 회계의 부속 문서 한 장. 상단에 '자애 기금 특별 지출'이라 적혀 있고, 그 아래로 수취인이 부호로만 표기돼 있었다. 이미 그녀가 쥐고 있는 붉은 실 표시 회계 사본과 같은 필체, 같은 부호 체계였다.

"수취인 서명이 없어." 카리엘이 낮게 말했다.

"거기가 핵심이에요." 시엔나가 문서 하단을 가리켰다. "서명란이 비어 있는데, 봉랍 자국만 세 갈래 백합이에요. 서명은 안 하고 인장만 찍었다는 건—누군가 자기 이름은 안 남기면서, 그래도 이 돈은 내 권한으로 나갔다고 표시하고 싶었다는 뜻이잖아요."

카리엘은 문서를 등불에 비췄다. 그 순간, 흰 탑에서 세 번 연속 봉인을 강제로 열었을 때 잔상으로 스쳤던 이미지가 되살아났다. 탑 지하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 그 벽에 새겨진 반쪽짜리 문구—북부 방위비 유용의 최종 승인이 황후궁 회계실을 거치며, 물증 원본은 이 아래에 있다는. 그때 그녀는 처형장 잔상에 잠식돼 그 문구를 끝까지 읽지 못했다.

"원본은 흰 탑 지하에 있어." 카리엘이 중얼거렸다. "이 서명 없는 문서는 그 그림자야. 원본으로 이어지는."

시엔나가 눈을 크게 떴다. "지하까지 봤어요?"

"봤다기보단, 태웠지." 카리엘은 답하지 않고 문서를 접었다. 심장이 눌리는 후유증이 아직 갈비뼈 안쪽에 남아 있었다. 세상의 색이 반쯤 바랜 채로.

*

문서를 외투 안주머니에 넣으려던 손이 멈췄다.

이걸 대공에게 넘기면 어떻게 될까. '황실 배후 가설'은 이미 두 번째 검증 실적으로 계약에 등재돼 있었다. 서명 없는 문서 한 장, 원본이 어디 있다는 짐작 하나. 이걸 실적이라 내밀면 레온하르트는 어떻게 판정할까.

카리엘은 그의 목소리를 되새겼다. 감정은 증거가 아니다. 문서는 다르다. 그는 세 장을 나란히 놓고서야 진술서 아래 부기를 더한 사람이었다. 그런 자에게 서명란이 비어 있는 문서, 봉랍 자국만 남은 종이는—증거일까, 짐작일까.

"이건 아직 절반이야." 카리엘이 소리 내어 말했다. "원본이 지하에 있다는 건 내 머릿속 짐작일 뿐이고, 이 문서엔 이름이 없어. 대공에게 내밀었다가 '검증 불가'로 판정 나면……"

유용성이 소진되면 조약은 자동 파기된다. 그 조항이 다시 혀끝에 씹혔다. 계약서 반쪽이 든 외투 안주머니가 가슴을 눌렀다.

"넘기지 마요." 시엔나가 말했다. "원본까지 확보하고 나서 한 번에 내밀어요."

"시간이 없으면?" 카리엘이 되물었다. "심사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원본은 흰 탑 지하야. 위병이 깔린 곳. 다시 들어가려면 또 값을 치러야 하고."

*

그때 회랑 저편에서 종이 울렸다.

정규 시각이 아니었다. 카리엘은 즉시 알았다. 저 종은 검증의 계절 일정을 바꿀 때만 울린다.

시녀 하나가 회랑을 달려와 두 사람 앞에 멈췄다. 숨을 헐떡이며 두루마리를 펼쳐 읽었다.

"황태자 전하의 재가로, 검증의 계절 최종 심사가 앞당겨집니다. 사흘 뒤 정오, 장미궁 대회당에서. 후보 전원은 신원과 충성에 대한 최종 심리를 받습니다."

카리엘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사흘 뒤 정오. 전생에도 그랬다. 최종 심사가 갑자기 당겨졌고, 그 자리에서 조작된 증언이 낭독됐으며, 그녀는 반역자가 되어 흰 수의를 입었다. 온실에서 실패한 아드리안이—아니, 그 위의 손이—같은 수순을 다시 꺼내 든 것이다. 사고사가 무산됐으니, 이번엔 법의 얼굴을 쓴 처형으로.

"전생과 똑같아." 카리엘이 시엔나를 봤다. "최종 심사에서 나를 반역으로 몬다. 그 자리에서."

"그럼 원본을 확보할 시간이 없잖아요." 시엔나의 얼굴이 하얘졌다.

"없지." 카리엘은 이미 걷고 있었다. 회랑 끝, 대공가 상단이 머무는 별채를 향해. "그러니까 지금 이 반쪽이라도 대공에게 넘겨야 해. 최종 심사 전에 조약법 보호를 한 칸이라도 더 올려 두지 않으면, 나는 사흘 뒤 광장으로 끌려간다."

*

대공가 별채. 자정을 넘긴 시각.

레온하르트는 자지 않고 있었다. 촛불 아래 국경 회계를 대조하던 그가, 문을 밀고 들어선 카리엘을 눈으로만 맞았다.

"이 시각에." 그가 말했다. "정보인가."

"실적입니다." 카리엘은 서명 없는 문서를 탁자에 올렸다. "황실 배후 가설의 두 번째 검증 자료. 자애 기금에서 세 갈래 백합 인장으로 나간 특별 지출. 수취인 서명은 없고, 봉랍만 찍혀 있습니다. 이름은 안 남기면서 권한은 행사한 손—델피네 황후입니다."

레온하르트는 문서를 집어 촛불에 비췄다. 오래 봤다. 서명란의 빈자리에, 그의 시선이 정확히 머물렀다.

"원본은." 그가 물었다.

"흰 탑 지하에 있습니다. 방위비 유용의 최종 승인이 황후궁 회계실을 거친다는 물증 원본이."

"거기 있다는 걸 너는 어떻게 아나."

카리엘은 잠시 침묵했다. 조각을 태워 잔상으로 봤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직접 확인했습니다. 아직 손에 넣진 못했지만."

레온하르트가 문서를 내려놓았다. 그의 손이 그것을 카리엘 쪽으로 도로 밀었다.

"서명이 없다." 그가 말했다. "수취인이 부호다. 원본은 네 손에 없다. 이것으로 델피네를 지목하는 건 짐작이지 증거가 아니다."

"봉랍 인장이—"

"인장은 도용될 수 있다. 부호는 해석의 여지가 있다. 서명 없는 문서는 조약법상 미완성 계약과 같다." 레온하르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촛불 그림자가 벽에서 크게 흔들렸다. "너는 지금 절반짜리 정보로 조약을 흔들려 하고 있다."

"사흘 뒤 최종 심사가 앞당겨졌습니다." 카리엘의 목소리가 급해졌다. "그 자리에서 저는 반역으로 몰립니다. 시간이 없어요. 지금 이 반쪽이라도 실적으로 등재해서 보호 등급을—"

"카리엘 폰 아르덴." 레온하르트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조약법 신봉자의 눈이, 재는 눈으로 완전히 돌아와 있었다. "불완전한 정보로 조약을 흔들면, 검증은 실패로 판정된다. 검증이 실패하면 네 정보의 신용은 무너진다. 신용이 무너진 자산은—"

그가 계약서 조항을 외듯 말했다. 이 밤, 그 조항은 그녀를 살리는 냉정함이 아니었다. 그녀의 목을 겨눈 칼이었다.

"유용성이 소진된 것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유용성이 소진되면."

레온하르트가 촛불을 껐다.

"조약은 자동으로 파기된다. 지금 이 문서를 실적으로 올리는 순간, 너는 사흘 뒤 심사가 아니라 오늘 밤, 내 손에 보호를 잃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어둠 속에서 그의 목소리만 남았다.

"그래도 이 종이를 나에게 넘기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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