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들리에의 촛불이 대리석 바닥에 금빛을 흩뿌리는 로제라움 대연회장, 카리엘은 계단 아래로 한 발을 내디디는 순간 이 자리가 무대라는 걸 알았다. 전생의 흰 탑도 이렇게 밝았다. 사람을 죽이기 직전의 궁정은 언제나 가장 아름답다.
"아르덴가의 영애가 오셨군요."
델피네의 목소리가 홀 전체로 퍼졌다. 부드럽고, 젖은 벨벳 같은 음성. 그 아래 칼이 숨어 있다는 걸 카리엘의 목덜미가 먼저 기억했다. 목뼈에 닿던 냉기가 스쳤다.
"북부로 사흘이나 자리를 비우셨다지요. 검증의 계절 중에, 후보가 궁을 이탈하다니. 이건 충성의 문제입니다."
귀부인들의 부채가 일제히 소리 없이 움직였다. 카리엘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자, 여기 모인 모든 분 앞에서 묻겠습니다." 델피네가 손을 들자 시종이 두루마리를 펼쳤다. "아르덴가의 봉토 순시 기록. 그런데 이상하지요. 아르덴 봉토에는 지난 계절 순시령이 내려진 바가 없어요. 영애, 이 통행증은 위조입니다. 위조 서류로 궁을 벗어난 후보—이게 무엇을 뜻할까요?"
반역. 그 단어가 홀에 떨어지기도 전에 카리엘은 그 무게를 이미 느꼈다. 전생에 이 여자가 짜놓은 그물이 이런 것이었다. 작은 흠 하나를 만인 앞에 걸어놓고, 거기서부터 목을 조여 온다.
"황후 폐하." 카리엘은 계단을 다 내려와 홀 한가운데 섰다. 도망칠 곳이 없는 자리. 일부러 골랐다. "그 기록, 언제 발급된 것입니까?"
델피네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예상 밖의 반문.
"그건 답할 필요가—"
"삼 일 전이겠지요." 카리엘이 말을 잘랐다. 홀이 술렁였다. 후보가 황후의 말을 자른 것은 처음이었다. "제가 궁을 떠난 다음 날. 순시령이 없었다는 근거가 되는 그 대장(臺帳) 자체가, 제가 사라진 뒤에 새로 쓰였을 테니까요."
델피네의 손끝이 두루마리를 쥐었다. 카리엘은 그 손을 보고 있었다. 이틀 전, 카를슈타인의 얼음 같은 방에서 역독을 열었을 때 본 장면—델피네의 서기가 붉은 인주를 묻혀 대장의 한 면을 뜯어내고 다시 붙이던 그 밤. 통증이 심장을 짓눌러 무릎을 꿇었지만, 그녀는 그 조각을 버리지 않고 삼켰다. 오늘을 위해서.
"근거 없는 모함입니다." 델피네의 미소가 얇아졌다.
"근거는 폐하께서 쥐고 계신 그 대장의 여덟 번째 장입니다." 카리엘은 한 걸음 다가섰다. "종이 결이 다릅니다. 다른 장보다 새것이고, 봉인 밀랍의 색이 옅어요. 여기 계신 문서청 관리 누구든 불러 대조하십시오.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대조를 요청합니다."
정적. 부채가 멈췄다.
바로 그 순간, 카리엘의 시야 끝에 율리안 베르크가 있었다. 창가 기둥 그늘, 몰락한 가문의 셋째 아들. 그의 손이 인근 서명대 위에 놓인 여벌 인장 하나를 소매 안으로 미끄러뜨리고 있었다. 아주 짧게, 그의 시선이 카리엘과 마주쳤다. 무언가 말하려다 삼키는 얼굴. 손끝이 인장 위에서 한 번 멈칫했다. 그러고는 그대로 챙겼다.
카리엘은 그 망설임을 접어 기억 한구석에 넣었다. 값을 매길 변수는 나중에 셈한다.
"영애." 델피네가 목소리를 낮췄다. 부드러움이 벗겨지고 날이 드러났다. "설령 대장에 흠이 있다 한들, 후보가 궁을 이탈한 사실은 남습니다. 그 사흘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증명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진짜 함정이었다. 위조 통행증은 미끼. 카리엘이 행선지를 밝히지 못하면 밀통·역모로 몰고, 밝히면 북부와의 접촉을 반역의 물증으로 삼는다. 어느 쪽이든 흰 탑으로 끌려가는 길.
카리엘은 숨을 골랐다. 심장이 아까부터 불규칙하게 뛰고 있었다. 역독의 대가가 아직 몸에 남아 있었다.
"밝히지요."
델피네의 입꼬리가 이겼다는 듯 올라갔다.
"저는 북부 대공령 카를슈타인에 있었습니다."
홀 전체가 얼어붙었다. 대공. 황제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는 국경의 관리자. 델피네의 승리의 미소가 그대로 굳었다—대공의 이름은 그녀의 각본에 없었다.
"그리고—"
연회장 끝의 청동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찬 공기가 먼저 들어왔다. 사철 눈이 그치지 않는 곳의 냄새. 검은 현무암 같은 외투를 걸친 남자가 근위병의 안내도 받지 않고 홀을 가로질렀다. 걸음마다 대리석이 울렸다. 레온하르트 폰 카를슈타인. 그가 이 궁에 발을 들인 것은 십수 년 만이라고, 누군가 숨죽여 속삭였다.
"북부 대공." 델피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초대장을 보낸 기억이 없습니다만."
"조약법에 따라, 계약 당사자의 신변에 관한 공적 심문이 열리는 자리에는 관리자가 참관할 권리가 있소." 레온하르트의 목소리는 감정이 없었다. 낭독하듯 평평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는, 내 계약 상대의 사흘을 심문하고 있지."
그가 카리엘의 옆에 섰다. 팔을 잡지도, 눈을 맞추지도 않았다. 다만 거리 반 걸음. 그것으로 충분했다.
"카리엘 폰 아르덴은 국경 조약법에 따라 카를슈타인의 임시 후견 하에 있소. 서명되고 기록된 계약이오. 그녀의 사흘은 조약법이 보증하지." 레온하르트가 홀 전체를 훑었다. "조약법의 진실 원칙을 아시오? 그 계약에 거짓이 한 줄이라도 섞였다면, 그녀는 이미 북부의 법으로 참수됐을 거요. 살아서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그녀의 진술이 참이라는 증명이오."
카리엘은 그 논리가 홀을 관통하는 것을 보았다. 제국 사법은 자백을 진실의 왕으로 삼는다. 조작된 자백으로 사람을 죽인다. 그런데 레온하르트는 그 위에 더 무거운 저울—어길 시 죽음이 담보된 진실—을 얹어버렸다. 델피네의 위조 대장은 이 저울 앞에서 종잇조각이 됐다.
"그러니 황후 폐하." 카리엘이 마지막 못을 박았다. "저를 심문하시려거든, 먼저 그 여덟 번째 장을 문서청에 넘기십시오. 조작이 아니라면 두려울 것이 없으실 테니."
델피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여기서 대장을 내놓으면 조작이 드러나고, 거두면 심문이 무너진다. 그녀가 짠 그물이 그녀 자신의 손목을 감았다.
"오늘은—" 델피네가 두루마리를 시종에게 넘겼다. 목소리에 처음으로 균열이 갔다. "이만 하지요. 검증의 계절은 아직 길어요, 영애."
물러선다는 뜻이었다. 만인 앞에서, 황후가.
부채 뒤에서 속삭임이 번졌다. 조금 전까지 아르덴가의 몰락과 위조를 비웃던 입들이, 이제는 북부의 보증을 등에 업은 후보를 다시 재는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카리엘은 그 시선의 온도가 바뀌는 것을 피부로 읽었다. 심판대에 오른 죄인에서,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패로.
레온하르트가 몸을 돌렸다. 온 것처럼 예고 없이 갈 참이었다.
"대공." 카리엘이 낮게 불렀다. "왜 왔습니까. 계약서엔 참관 의무가 없었습니다."
그가 반 발짝 멈췄다. 돌아보지 않았다.
"의무는 없소. 하지만 계약 여백에 내가 적은 한 줄이 있지. 당신은 아직 그게 뭔지 모를 거요." 잠시 침묵. "당신의 심장 통증은 계속 관찰 중이오. 오늘 세 번, 손을 가슴에 댔더군. 기록해 두겠소."
그리고 그는 정말로 갔다. 온기 하나 남기지 않고. 카리엘은 자기 손이 정말로 가슴 위에 얹혀 있는 것을 그제야 알아챘다.
밤이 깊어 배정받은 방으로 돌아왔을 때, 시엔나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감시자라 고백했던 여자. 그런데 그녀는 델피네에게 돌아가지 않고 여기, 카리엘의 방 앞에 있었다.
"오늘 밤 보고는 뭐라고 쓸 거지." 카리엘이 물었다.
"쓸 말이 없어요." 시엔나가 무뚝뚝하게 답했다. 소매를 걷어 올린 팔뚝에 오래된 화상 흉터가 촛불에 붉게 드러났다. 손목 안쪽까지 감긴, 무언가를 감싸다 얻은 흔적. "황후가 진 걸 어떻게 보고해요. 그냥… 아가씨가 무사히 돌아왔다고만."
"왜 나를 돕지." 카리엘의 눈이 그 흉터에 머물렀다. "너는 그 여자의 사람이잖아."
시엔나가 흉터를 소매로 가렸다. 입을 열려다 삼켰다. 또였다.
"아직은 말 못 해요."
카리엘은 더 캐지 않았다. 대신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갔다. 승리의 밤. 그러나 안심은 없었다. 델피네가 물러선 각본, 대공이 나타난 무대—이 모든 게 전생에는 없던 장면이었다. 그녀가 미래를 바꿀수록, 앞이 보이지 않았다.
확인해야 했다. 처형 단상 뒤, 검은 옷자락의 인물. 그 조각을 한 번만 더 열면 얼굴이 보일지도 모른다. 델피네인지, 아니면 다른 누구인지.
카리엘은 눈을 감고 역독을 불렀다. 광장. 흰 수의. 정오의 빛.
칼날의 냉기가 목에 닿았다. 숨이 막혔다. 그녀는 이 악물고 단상 뒤로 시선을 돌렸다—
조각의 절반이 없었다.
검게 타들어간 가장자리가 단상을 삼키고 있었다. 검은 옷자락이 있던 자리에 그을린 구멍만 남아, 재가 되어 부스러졌다. 어제까지 남아 있던 형체가, 오늘은 없었다.
카리엘은 눈을 떴다. 심장이 손아귀에 잡힌 듯 조여왔다. 그녀가 무도회에서 미래를 바꾼 만큼, 그 조각은 대가를 치르고 사라진 것이다.
이제 흑막의 얼굴은, 기억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찾아야 했다.
책상 위 촛농이 흘러내려 굳었다. 카리엘은 굳은 손가락을 하나씩 펴며 숨을 골랐다. 조각이 타 사라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형체도, 소리도, 냄새도. 다만 그 그을린 구멍 언저리에서, 어제까지는 없던 것이 하나 남아 있었다.
옷자락이 사라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남은 손. 검은 옷 소매 끝에서 뻗어 나온 손. 그 손이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두 번 접힌 종이.
카리엘은 눈을 다시 감았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몸이 먼저 알았다. 심장이 이미 한 박자를 건너뛰고 있었다. 그래도 열었다. 이 조각마저 타버리기 전에, 그 손이 쥔 것을 봐야 했다.
칼날의 냉기가 목을 파고들었다. 정오의 빛이 눈을 찔렀다. 군중의 웅성거림이 귓속에서 부풀었다. 그녀는 이 악물고 그 손 하나에만 시선을 붙들었다. 손, 종이, 접힌 자국—그리고 종이 끝에 매달린 봉랍.
넝쿨과 가시. 그 위에 얹힌 작은 왕관.
전생의 흰 탑에서 본 그 밀서. 카를슈타인의 얼음 방에서 다시 확인한 델피네 가문의 사문서 인장. 처형 단상 뒤의 그 손이, 바로 그 밀서를 쥐고 있었다.
카리엘은 숨을 뱉으며 눈을 떴다. 방바닥에 손을 짚었다. 시야가 두 겹으로 흔들렸다. 촛불이 셋으로 번지다 하나로 합쳐졌다. 광장의 빛과 이 방의 어둠이 잠시 뒤섞였다—어느 쪽이 지금인지 분간이 흐려졌다. 그녀는 손톱으로 손바닥을 눌러 통증을 만들었다. 통증만이 현실의 좌표였다.
봉랍 문양이 처형장까지 이어졌다. 흰 탑의 밀서와 광장의 손이 같은 인장으로 묶였다. 우연이 아니다. 그 손의 주인이 델피네이거나—혹은 델피네의 밀서를 대신 쥔 누군가다.
문제는 조각이었다. 손은 봤지만, 소매 위, 얼굴은 이미 재가 되어 없었다. 다음에 이 조각을 열면 손마저 사라질 것이다. 미래를 바꿀 때마다 기억은 얇아졌고, 무도회의 승리로 그녀는 스스로 자기 단서를 태워 없앴다.
그녀는 이제 알았다. 역독은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아직 남아 있을 때, 밖으로 옮겨 적어야 하는 지도였다. 카리엘은 떨리는 손으로 펜을 들어 종이에 봉랍 문양을 그렸다. 넝쿨, 가시, 왕관. 기억이 타버려도 이 그림은 남는다.
그때 문 밖에서 소리가 났다.
발소리가 아니었다. 종이가 문틈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아주 얇은 소리. 카리엘은 펜을 내려놓고 문가로 다가갔다. 바닥에 접힌 쪽지 한 장이 떨어져 있었다. 봉인은 없었다. 급하게 쓴 필체.
『무도회의 위조 대장은 미끼였습니다. 진짜는 사흘 뒤 광장 청문입니다. 당신의 서명 인장이 위조되어 그 자리에 오를 겁니다. — 값은 다음에 받겠습니다.』
율리안. 여벌 인장을 챙기던 그 손. 망설이던 그 얼굴.
카리엘은 쪽지를 촛불에 비췄다. 밀고인가, 미끼인가. 값을 나중에 받겠다는 거래꾼이 왜 대가 없이 정보를 먼저 흘리나. 그의 망설임이 진심이라면 경고였다. 계산이라면 그녀를 청문장으로 유인하는 또 다른 그물이었다.
어느 쪽이든—사흘 뒤 광장. 전생에 그녀가 흰 수의를 입고 섰던 그곳.
역독을 열어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흘 뒤 광장 청문은 전생에 없던 무대였다. 그녀가 미래를 바꾼 탓에, 그곳에 관한 조각은 존재하지 않았다. 기억은 그 앞에서 백지였다.
카리엘은 쪽지를 접어 코르셋 안, 봉랍 그림 옆에 넣었다. 심장이 아직 불규칙하게 뛰었다. 손바닥의 눌린 자국이 붉었다.
문 밖에서, 이번엔 진짜 발소리가 들렸다. 하나가 아니었다. 여럿. 그리고 익숙한 무게—무장한 자들의 군화. 2화의 그 밤과 같은 소리가, 카를슈타인의 후견을 등에 업은 이 밤에 다시 방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카리엘은 촛불을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