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세라의 창에 켜진 불빛을 얼마나 오래 바라봤는지 몰랐다. 카일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새벽 종소리가 사그라들고, 창밖으로 회색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한번 시험했다.

눈을 감았다. 세라피나. 전생에서 마지막으로 그녀가 남긴 말. 그를 부르던 목소리. 그가 이용해 죽게 만든 사람. 정보는 순서대로 떠올랐다. 이름, 얼굴, 사건. 마치 명부를 읽듯이.

가슴은 움직이지 않았다.

"세라피나 로크웰."

한 번 더 소리 내 불러봤다. 침대 시트 위에 놓인 손등이 눈에 들어왔다. 봉인을 되감을 때마다 짙어진 붉은 자국. 화상처럼 번들거리는 그것이 이제 새벽빛을 받아 더 선명했다. 영수증. 로젤린이 그렇게 불렀지. 지불의 흔적.

그런데 이건 서고를 열지 않고 잃은 감정이었다.

카일은 창틀을 짚고 천천히 주저앉았다. 무릎에 이마를 댔다. 머리가 이 순간을 이해하려고 돌아갔다—첫날. 입학식 강당. 누군가 세라피나의 이름을 부르는 걸 스쳐 들었을 때. 그때도 이랬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그걸 그저 '아직 만나지 않아서'라고 넘겼다.

아니었다.

회귀 첫날, 삼백 명을 구하려 서고를 처음 열던 그 순간. 그때 이미 그녀에 대한 감각의 첫 조각이 뽑혀나간 거였다. 이름을 듣고도 아무 느낌이 없던 건 만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미 지불이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그 징후가 지금 완성됐다. 병에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따라낸 것처럼.

"이거였구나."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전생 내내 그는 자신이 배신당해 죽었다고 믿었다. 다미안이 그를 잠식자에게 넘겼고, 동료들이 등을 돌렸고, 그래서 폐허에서 홀로 죽었다고. 복수의 명분이 거기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병 밑바닥까지 텅 빈 감각을 손으로 더듬어보니—

아무도 그를 죽이지 않았다.

그가 스스로 다 팔았다. 위기가 올 때마다, 이기고 싶을 때마다, 지키고 싶을 때마다. 두려움을 팔면 흔들리지 않았고, 그리움을 팔면 판단이 냉정해졌다. 그렇게 하나씩 따라내다 보니 마지막엔 사람을 사람으로 볼 감각조차 남지 않았다. 동료들이 등을 돌린 게 아니라, 그가 먼저 그들을 도구로만 보게 됐고, 그래서 곁에 아무도 남지 않았다. 폐허에서 죽은 건 배신의 결과가 아니라 고립의 결과였다. 감정을 잃은 자는 신뢰를 얻지 못한다. 스스로도 사람을 도구처럼 대하게 된다. 마법사 사회의 규칙 그대로.

카일은 눈을 떴다.

지금 그 궤도를 그대로 다시 밟고 있었다. 회귀했는데도. 감정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는데도. 서고를 최소한만 쓰겠다고 참았는데도. 참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서고를 여는 것만이 지불이 아니었다. 지킨다는 명분으로 세라를 밀어낼 때마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그녀의 선택권을 빼앗을 때마다, 그는 도장 없이 조금씩 갖다 바치고 있었다.

로젤린의 말이 옳았다.

*너는 도장도 없이 매일 조금씩 스스로 갖다 바쳐.*

카일은 손등의 붉은 자국을 오래 들여다봤다. 그리고 결심했다.

더는 안 된다.

책상 서랍에서 봉인 매듭실을 꺼냈다. 지하 금서고에서 경비진을 교란하며 배운 기초 봉인술. 그는 자기 정신 깊은 곳에 있는 그 '읽을 수 없는 책'을 떠올렸다. 위기 때마다 손끝을 간질이며 열람을 유혹하던 그것. 대마도사를 만들어준 힘. 대륙 최강으로 올려놓고, 결국 폐허에서 죽게 만든 힘.

그는 매듭실을 손등의 자국 위에 감았다. 실이 살에 닿는 순간, 정신 안쪽에서 페이지가 팔랑이는 감각이 일었다. 열어봐. 세드릭이 뭘 준비하는지 알고 싶지 않아? 세라의 미래는? 확인하면 지킬 수 있어. 딱 한 번만.

"아니."

카일은 매듭을 조였다.

"이번엔 내 눈으로 볼 거야. 내 판단으로."

페이지 넘어가던 소리가 뚝 끊겼다. 정신 안쪽이 조용해졌다. 손등의 자국은 그대로였지만, 그 위를 감은 실이 무언가를 눌러 막고 있었다. 완전한 봉인은 아니었다. 위기가 오면 다시 유혹할 것이다. 그래도 지금, 그는 스스로 문을 닫았다. 삼백 명을 구할 수 있는 정보도, 결승의 답도 없이 가겠다고. 편리한 힘 대신 텅 빈 두 손을 택하겠다고.

처음으로, 무언가를 잃는 대신 지킨 기분이 들었다.

가슴이 여전히 조용했지만—그래도.

카일은 일어섰다. 세라의 창에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봉인을 백 번 감아도 사라진 감정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건 되돌릴 방법이 없다. 하지만 감정이 없다는 게 관계까지 끝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리움이 사라졌어도, 그녀에게 진 빚은 사실로 남아 있었다. 사과해야 한다는 판단은 감정 없이도 할 수 있었다. 오히려 지금은 그게 더 분명하게 보였다.

그는 방을 나섰다.

세라의 방문 앞에 서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손을 들었다 내렸다. 노크했다.

문이 열렸다. 세라피나는 잠들지 못한 얼굴이었다. 붉은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고, 눈 밑이 어두웠다. 그녀는 카일을 보자 표정이 굳었다.

"다신 안 묻겠다고 했잖아."

"내가 물으러 왔어."

세라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문틀에 몸을 기댔다.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자세였다.

"뭘."

"전에 네가 그랬지. 내가 사람 같지 않다고. 어디서 본 얼굴 같다고. 예전에도 사람을 치웠던 사람 같다고."

세라의 팔짱이 조금 풀렸다.

"맞아." 카일은 담담하게 말했다. "네 감이 맞았어. 나는 사람을 도구로 쓰던 놈이야. 위험하다는 핑계로 네 선택을 뺏고, 그걸 배려라고 믿었어. 결계 봉합하고도 안 기뻐한 거, 자꾸 너를 배제한 거, 전부 그거였어. 나는 감정이 옅어. 점점 더 옅어지고 있어. 그래서 네가 나한테 위화감을 느낀 거야. 착각 아니었어."

침묵이 흘렀다. 복도 끝 창으로 아침빛이 들어왔다.

"그걸 왜 지금 말해." 세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화날 때 조용해지는 버릇. 카일은 그 사실을 정보로 알고 있었다. "위험할 때마다 밀어내던 사람이. 이제 와서."

"밀어낼 때마다 뭔가를 잃었거든. 오늘에야 그걸 다 잃은 걸 알았어." 카일은 손등을 들어 보였다. 붉은 자국과 그 위에 감긴 실. "이거, 대가야. 힘을 쓸 때마다 감정을 하나씩 내주는. 나는 너에 대한… 어떤 감각을 오늘 완전히 잃었어. 되돌릴 수 없어."

세라의 시선이 그의 손등에 멎었다. 그녀는 마법사였다. 그 실이 무엇을 하는지 알아봤다.

"그거… 방금 감은 거야?"

"응. 다시는 안 쓰려고. 힘도, 사람 밀어내는 습관도." 카일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봤다. "너한테 사과하려고 왔어. 도구로 봐서 미안해. 진짜 미안하다는 감정이 지금 나한테 남아 있는지 솔직히 모르겠어. 그런데 사과해야 한다는 건 확실히 알아. 그래서 왔어. 거짓말은 안 할게. 이젠 안 해."

세라는 오래 그를 봤다. 그녀는 거짓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지금 카일의 말에서 거짓의 결을 찾고 있었다. 그를 향해 몇 번이나 정면으로 캐물었던 그 눈으로.

"너, 지금 나 감동시키려는 거 아니지."

"아니야. 그럴 능력도 없어. 그냥 사실을 말하는 거야."

세라가 짧게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단 숨을 뱉는 것에 가까웠다.

"…그게 제일 너다운 대답이네."

그녀는 문틀에서 몸을 뗐다.

"믿는다는 거 아니야. 아직. 너 여전히 이상하고, 여전히 뭔가 숨기는 것 같고, 네가 말한 그 '전생' 어쩌고도 하나도 이해 못 했어." 세라는 카일을 지나쳐 복도로 나왔다. "근데 처음으로 나한테 먼저 사실을 말했어. 밀어내는 대신. 그건 인정할게."

"세라."

"곁에 있어줄게. 지켜본다는 뜻이야. 네가 또 사람 치우려 들면 그때는 진짜 끝이야." 그녀는 카일의 손등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실이 감긴 그 위를. "이거 풀면 알아. 나 그런 거 보는 눈 있어."

카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은 여전히 조용했다. 그래도 이 순간이 옳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감정 없이도, 그는 옳은 것을 택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게 진짜 시작이었다.

그때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로젤린 아스타드였다. 지하에 남겨두고 온 그녀. 힘이 소진돼 돌아갈 곳이 없다던 여자. 지금 그녀는 벽을 짚으며 절뚝였고, 얼굴은 창백했으며, 손에는 접힌 양피지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세라가 반사적으로 카일 앞으로 반 걸음 나섰다.

"경계 안 해도 돼." 로젤린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나 이제 저쪽한테도 버려졌어. 사냥개는 사냥이 끝나면 버려지거든." 그녀는 자조하듯 입꼬리를 올렸다. "명부 뺏겼으니 실패한 개지. 걔들이 뒤처리 안 남길 리 없고."

"용건이."

로젤린이 양피지를 내밀었다. 카일은 받지 않았다.

"세드릭이 왜 하필 너만 콕 집어 몰라고 시켰는지, 나도 몰랐어. 지금도 몰라. 근데 이건 알아냈어." 그녀는 양피지를 흔들었다. "결승. 서열전 결승전. 그게 진짜 무대야. 걔가 스물세 명을 여기 모은 이유가 그거야. 한 명씩 계약 중개하는 건 낭비고, 감정을 한꺼번에 거두려면 전부 한자리에 몰아넣어야 하니까. 흔들리고, 절박하고, 이기고 싶어 미쳐 있는 감정들을. 결승 무대 전체가 수확장이야."

세라의 얼굴이 굳었다. "결승은 사흘 뒤잖아."

"맞아. 그리고 세드릭의 대마법은 완성 직전이야. 마지막 한 통이 필요한 거지." 로젤린은 카일을 봤다. 원한도, 적의도 아닌 지친 눈으로. "네가 그 명부 가지고 있잖아. 정점 이름은 지워져 있지? 그거 세드릭이야. 이제 다 말했어. 나 갈 데 없으니까, 이제 네 쪽에서 처리하든가."

양피지가 그녀의 손에서 떨어졌다. 카일이 그걸 주웠다.

그 순간, 복도 저쪽 끝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발광석 조명이 일제히 흔들렸다. 아니, 어두워졌다. 새벽빛이 창으로 들어오는데도 복도 안쪽이 먹처럼 짙어졌다. 세라가 카일의 소매를 잡았다. 로젤린이 벽에 등을 붙이며 숨을 삼켰다.

"안 돼." 로젤린이 속삭였다. "벌써…"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검은 예복. 흐트러짐 없는 걸음. 얼굴에는 어떤 표정도 없었다—기쁨도, 분노도, 두려움도. 완벽하게 텅 빈 얼굴. 카일은 그 얼굴을 알았다. 지하 벽화 중앙에서 병을 바치던 인물의 얼굴, 감정을 전부 팔고 죽어간 전생의 자기 자신—그 텅 빈 상태를 산 채로 완성해가는 얼굴.

세드릭 발몬트.

그가 복도 한가운데 멈춰 서서 카일을, 세라를, 로젤린을 차례로 훑었다. 값을 매기는 눈이었다.

"명부를 되찾으러 올 필요가 없어졌어." 세드릭의 목소리는 낮고 평평했다. 물기 하나 없이. "사흘을 기다릴 것도 없이. 학원 전체가 이미 내 무대니까."

그가 손을 들자 복도 창밖으로 학원 전경이 보였다—중앙 결계장 위로 검붉은 안개가 소용돌이치며 내려앉고 있었다. 서열전 결계가 아니었다. 훨씬 크고, 훨씬 오래된 진.

"카일 도렌시아." 세드릭이 그를 불렀다. "흔들리는 감정은 불완전이야. 두려움에 떨고, 그리움에 아파하고, 이기고 싶어 미치는—그 전부가 결함이지. 너는 그걸 팔아치우다 무너졌고, 나는 그걸 거둬 완전해질 거야."

그가 결계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모인 수백의 학생들, 결승을 앞두고 흔들리는 어린 재능들의 감정이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늘 이 자리의 모든 감정을, 내가 거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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