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상이 낮게 울부짖었다. 나무로 깎인 몸에서 옅은 빛이 새어 나오며, 창밖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인영들의 발소리가 골목을 채웠다.
"서율, 피해야 한다."
늑대상의 목소리는 나뭇결이 갈라지는 소리처럼 거칠었다. 서율은 조각칼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끝이 아직도 뜨거웠다.
"몇 명이지?"
"셋. 아니, 넷. 협회의 정찰자들이야. 지금 네 힘으로는 승산이 없다."
서율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버지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라는 걸 안 지 하루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그들이 문 앞까지 왔다.
"뒷문."
서율은 늑대상을 품에 안고 작업실 뒷문으로 몸을 던졌다. 좁은 계단을 뛰어내려가는 발소리가 뒤에서 쫓아왔다. 골목을 꺾어 들어간 순간, 누군가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아얏—"
작은 체구의 여자가 바닥에 넘어지며 손에 들고 있던 서류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서율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여자를 붙잡았지만, 이미 뒤에서 다가오는 인영들의 그림자가 벽에 길게 드리워졌다.
"이하늬 씨?"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정장 차림의 그녀는 어둠 속에서도 눈빛이 날카로웠다.
"당신, 얼마 전 갤러리에서 봤던…… 조각가?"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서율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순간 뒤에서 정체불명의 인영 하나가 골목 어귀에 나타났다. 검은 로브를 걸친 자였다. 손끝에서 은빛 실 같은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각가의 후예. 협회의 이름으로 회수하겠다."
"회수라니, 무슨—"
이하늬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서율은 그녀를 등 뒤로 밀며 늑대상을 앞으로 내밀었다.
"막아."
늑대상이 짧게 짖으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나무로 된 몸이 순식간에 크기를 부풀리며 로브 사나이의 손에서 뻗어 나온 은빛 실을 물어뜯었다. 사나이가 뒤로 물러나며 혀를 찼다.
"제법이군. 하지만 그 힘, 오래 못 버틴다."
서율의 손이 떨렸다. 조각칼을 쥔 순간부터 힘이 소모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늑대상이 다시 짖으며 사나이를 밀어붙였지만, 몸의 빛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서율, 더는 못 버텨."
그 순간 골목 끝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순찰차의 불빛이 벽을 비추자 로브 사나이들이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졌다. 남은 건 어둠과 정적, 그리고 바닥에 힘없이 무너지는 늑대상뿐이었다.
"괜찮아요?"
이하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서율은 늑대상을 품에 안고 숨을 몰아쉬었다.
"…괜찮습니다.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놀랄 정도가 아닌데요. 방금 그거, 조각상이 살아 움직인 거 맞죠?"
서율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하늬는 흩어진 서류를 주워 담으며 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저번 갤러리에서 본 당신 작품, 그냥 조각이 아니었어요. 뭔가 이상한 힘이 느껴졌거든요. 그때는 확신이 없었는데, 지금 보니 확실하네요."
"무슨 말을 하려는 겁니까."
"저는 미술품 감정사예요. 이하늬. 그리고 지금 당신 앞에 데뷔 제안을 하려고요."
서율의 눈이 흔들렸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합니까?"
"이런 상황이니까 하는 거예요. 당신, 지금 저들에게 쫓기고 있잖아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힘을 혼자 감당하려다가는 죽습니다. 하지만 예술가로 대중 앞에 서면,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존재가 되죠."
서율은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신을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믿을 필요 없어요. 그냥 이용하세요. 저는 당신의 재능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거고, 당신은 안전할 방법이 필요한 거니까."
이하늬가 명함을 내밀었다. 서율은 그것을 받지 않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당신, 방금 여기 왜 있었습니까. 이 시간에, 이 골목에."
이하늬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서율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우연이었어요."
"우연이라기엔 이상한 서류를 들고 있군요."
이하늬가 흩어졌던 서류 중 하나를 재빨리 품에 숨겼다. 하지만 서율의 시선은 이미 그 종이 위에 그려진 문양을 보았다. 별 모양의 조각칼, 그리고 그 아래 적힌 낯익은 이름—
'유겐.'
서율의 손끝이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