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상이 입을 다문 뒤에도 서율은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나무로 깎아낸 것이 분명한 늑대의 눈이 실제로 빛을 내고 있었다. 숨을 쉬듯 옆구리가 오르내렸다.


"다시 말해봐. 지금 네가 한 말, 다시."

"별조각 협회. 이능계의 예술가들이 세운 조직이다. 달빛의 힘을 다루는 자들을 사냥해 그들의 재능을 빼앗아 가지."

"빼앗아? 어떻게."

늑대상은 나무로 된 턱을 삐걱거리며 서율을 올려다보았다.


"조각가의 손에서 힘을 뽑아내는 방법이 있다. 네 아버지도 그렇게 당했을 것이다."

서율의 손끝이 떨렸다. 아버지의 죽음은 사고사로 처리됐다. 작업실 화재. 부검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던 것들이 지금은 다르게 보였다.

"증거가 있나?"

"내가 증거다. 나는 네 조각칼에서 태어났고, 그 조각칼은 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완성하지 못한 작품 속에 있었다."

서율은 책상 위, 부서진 달빛석 옆에 놓인 조각칼을 내려다보았다. 손잡이에 새겨진 문양이 눈에 익었다. 아까 창문 밖에서 발견한 표식과 똑같았다.


"그 표식. 침입자가 남긴 것과 같은 모양이야."

"별조각 협회의 인장이다. 그들이 이미 이곳을 알고 있다는 뜻이지."

서율은 편지를 다시 펼쳤다. 아버지의 필체는 급하게 쓴 듯 흐트러져 있었다.

『서율아. 만약 네가 이 편지를 읽는다면, 나는 이미 그들에게 붙잡혔거나 세상을 떠난 후일 것이다. 협회를 조심해라. 특히 유겐이라는 이름을 기억해라. 그는 우리 가문을 몰락시킨 자의 제자이며, 그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우리를 끝까지 쫓을 것이다.』

"유겐."

서율이 그 이름을 소리 내어 읊자 늑대상이 귀를 세웠다.

"그 이름을 아는군. 조심해라. 유겐은 협회의 후계자다. 지금 이 순간에도 너를 찾고 있을지 모른다."

"찾는 게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서율은 창밖을 다시 바라보았다. 아까 그 이상한 푸른 달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골목 어귀에 서 있는 검은 우산 하나가 보였다. 비도 오지 않는 밤에, 우산을 쓴 남자가 가만히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거, 봤나?"
늑대상이 창가로 다가섰다. 나무로 된 몸이 삐걱거리며 움직이는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움직이지 마라, 서율. 저건 협회의 정찰이다."

"정찰이면 왜 숨지 않고 저렇게 서 있어."
"경고하는 거다. 자신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거지. 유겐의 방식이다. 힘을 숨기지 않고 압박하는 방식."

서율은 조각칼을 다시 손에 쥐었다. 손바닥에 익숙한 온기가 퍼졌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만졌던 물건. 그것이 지금 자신의 손 안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싸울 힘이 있나, 나에게."
"아직은 부족하다. 너는 이제 막 각성했을 뿐이다. 하지만 배울 수는 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순간 창밖의 남자가 우산을 접었다. 얼굴은 여전히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입가에 걸린 웃음만은 분명하게 보였다. 남자는 손을 들어 서율을 향해 무언가를 던지듯 흔들었다. 순간 골목 전체를 채운 희미한 빛의 조각들이 밤하늘로 흩어지며 사라졌다.

"저건…"
"신호다. 협회에게 위치를 알린 거다. 이제 정말로 시작이다."





늑대상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긴장이 실렸다. 서율은 조각칼을 꽉 움켜쥔 채 창밖을 노려보았다.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골목 저편, 가로등 불빛 아래로 또 다른 인영 하나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셋, 넷. 어둠 속에서 하나둘 늘어나는 발소리가 낡은 작업실을 향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