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빛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오히려 서율의 손끝에서 시작된 은백색 기운이 조각칼을 따라 흘러 나무토막 전체를 감쌌다. 그는 숨을 죽였다. 몸이 제 것 같지 않았다. 손이 저절로 움직이며 낡은 목재를 파고들었다.

"뭐, 뭐야 이게…"

말릴 틈도 없었다. 조각칼이 나무를 깎아내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서걱, 서걱.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진 순서를 따르듯 손목이 움직였고, 서율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십여 분이 지났을까, 손끝에서 빛이 잦아들었다. 그의 앞에는 작은 늑대 형상의 목조 조각이 놓여 있었다.

"내가… 이걸 깎았다고?"

서율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굳은살도 없고, 조각을 배운 적도 없는 손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늑대상은 정교했다. 털의 흐름, 눈빛, 심지어 이빨의 각도까지도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그 순간, 나무 늑대의 눈에서 옅은 청색 빛이 반짝였다.

"…!"

서율은 뒷걸음질쳤다. 늑대상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목재로 만들어진 몸이었지만 관절이 움직이듯 부드러웠다.

"...크르릉."

낮은 울음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서율은 등을 벽에 붙인 채 눈을 크게 떴다.

"말이 되냐 이게. 조각이 움직여?"

늑대상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놀랍게도 인간의 언어로 입을 열었다.

"…주인의 피, 확인되었습니다."

"뭐?"

"당신은… 달빛 조각가의 혈족입니까."

목소리는 나무가 부딩기는 소리처럼 거칠었지만 분명한 언어였다. 서율은 목이 마른 듯 침을 삼켰다.

"내가 지금 헛것을 보는 게 아니라면… 너, 방금 말했지."

"저는 조각된 형상에 담긴 힘의 파편입니다. 주인의 의지와 달빛이 만나 저를 세상에 불러냈습니다."

"…힘의 파편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나 조각 배운 적도 없어. 방금 손이 저절로 움직였을 뿐이야."

늑대상의 청색 눈빛이 서율을 응시했다.

"당신의 손이 아니라, 당신 안의 달빛이 움직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문에 전해진 '달빛 조각술'입니다."

서율은 아버지의 편지를 떠올렸다. 달빛 아래에서 조각칼을 쥐지 말라던 경고. 그 이유가 이것이었을까.

"그럼 우리 가문이 몰락한 것도 이 힘 때문이야?"

늑대상은 잠시 침묵했다.

"저는 그 답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말이 끝나기도 전, 창밖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서율이 놀라 몸을 돌리는 순간, 검은 그림자가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스며들듯 들어왔다.

"…역시 여기 있었군."

낮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인영이 서율의 책상 위, 아버지가 남긴 반쪽 달빛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거 건드리지 마!"

서율이 소리쳤지만 상대는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이걸 되찾으려면 힘이 필요할 텐데, 넌 아무것도 몰라 보이는데."

그 순간, 나무 늑대가 낮게 울부짖으며 인영을 향해 뛰어올랐다.

"크아앙!"

늑대상의 몸이 부풀어 오르듯 커지며, 인영의 팔을 물어뜯었다. 인영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다.

"이런, 벌써 각성이라니… 예상보다 빠르군."

"넌 누구야! 왜 우리 집에 들어온 거야?"

인영은 대답 대신 품에서 작은 종이 조각을 꺼내 바닥에 떨어뜨렸다.

"곧 다시 만나게 될 거다, 한서율. 별조각 협회가 널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말과 함께 인영은 검은 안개처럼 흩어지듯 사라졌다. 방 안에는 정적만이 남았다. 서율은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집어 들었다. 낡은 문양이 새겨진 조각 하나. 별과 조각칼이 교차된 표식이었다.

"...별조각 협회?"

그 순간 나무 늑대가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커졌던 몸이 다시 원래의 작은 형태로 줄어들고 있었다.

"주인님, 저는…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달빛의 힘이 아직 부족합니다."

"버텨! 방금 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잖아, 좀 더 설명해줘!"

늑대상의 눈빛이 서서히 흐려졌다.

"가문의 진실은… 달빛이 가장 밝을 때, 다시 깨어날 것입니다. 지금은… 제가 한계입니다."

말이 끝나자 늑대상은 다시 평범한 나무 조각으로 돌아갔다. 청색 빛도, 생명력도 사라졌다. 서율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온몸에 힘이 빠졌지만,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진짜였어. 진짜로 조각이 힘을 가졌어."

그는 창밖을 올려다봤다. 여전히 보름달이 떠 있었다. 그런데 그 옆,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위치에 낯선 푸른빛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또 다른 달처럼.

"저건… 뭐지?"

서율은 눈을 의심했다. 푸른 달은 미동도 없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혹은 그를 지켜보기 위해 나타난 것처럼.

바닥에 떨어진 종이 조각과 창밖의 푸른 달. 두 가지 모두 그가 알지 못하는 세계로 향하는 문이었다. 서율은 떨리는 손으로 조각칼을 다시 움켜쥐었다.

"아버지… 대체 무슨 세계에 발을 들이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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