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에 뜬 보름달이 유리 천장을 통해 전시장 안으로 쏟아졌다. '달의 계승자' 특별전. 홀 중앙에는 아직 천으로 덮인 좌대가 놓여 있었고,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긴장되나?"

강도현이 낮게 물었다. 서율은 조각칼을 쥔 손을 폈다 접었다.

"아니요. 이제야 제자리를 찾는 기분입니다."
"오만하군. 마음에 든다."

하늬가 다가와 서율의 어깨를 툭 쳤다.

"관객이 삼백 명이 넘어. 협회 관계자도, 이능계 감독국 사람들도 다 왔어. 오늘 여기서 무너지면 끝이야."

"압니다."
"근데 왜 그렇게 태연해?"

서율이 처음으로 옅게 웃었다.

"제가 만들 건 무너질 것이 아니니까요."
그때 홀 저편에서 박수 소리가 터졌다. 유겐이었다. 흰 정장을 입은 그는 여유롭게 걸어와 서율 앞에 섰다.

"드디어 무대에 섰군, 몰락 가문의 후예."

"오늘로 그 호칭도 끝입니다."

"자신하는군. 좋아. 그럼 보여줘. 네가 말하는 '달빛 조각술의 완성'을."

유겐이 손짓하자 조명이 꺼지고 홀 중앙 두 개의 좌대에 스포트라이트가 떨어졌다. 심사위원단과 감독국 관계자들이 자리에 앉았다. 강도현이 서율의 등을 짚었다.
"반동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늘은 달이 너를 도울 것이다."

서율은 좌대 앞에 서서 반쪽 달빛석을 손에 쥐었다. 유겐도 맞은편에서 자신의 조각칼을 들었다.

"먼저 하시죠." 서율이 말했다.

"자비인가, 오만인가."

유겐의 칼끝이 움직이자 대리석이 갈라지며 거대한 늑대상이 솟아올랐다. 근육 하나까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정교함에 관객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졌다. 늑대의 눈에서 붉은 기운이 번쩍였다.
"이것이 별조각 협회의 예술이다. 지배하고, 굴복시키는 힘."


서율은 말없이 자신의 대리석에 손을 얹었다. 눈을 감았다. 아버지의 마지막 뒷모습, 강도현의 가르침, 하늬가 내밀었던 손, 그리고 그날 밤 자신을 구했던 정체불명의 푸른 빛. 그 모든 순간이 손끝으로 흘러들었다.

칼이 대리석을 스치자, 빛이 아니라 '달의 결'이 새겨지듯 조각이 흘렀다. 형체는 늑대가 아니었다. 사람의 형상, 그러나 손에는 조각칼을 쥔 모습. 아버지의 얼굴을 닮은, 그러나 서율 자신의 얼굴도 겹쳐 보이는 조각상이었다.

"수호가 아니라... 계승이라."

강도현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조각상이 완성되는 순간, 보름달빛이 유리 천장을 통과해 그대로 조각상 안으로 흡수되듯 스며들었다. 조각상의 눈이 은은한 은빛으로 떠올랐다.


유겐의 늑대상이 으르렁거리며 달려들었다. 서율의 조각상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손을 들어 늑대의 이마에 얹었다.

그 순간, 늑대상이 산산이 부서졌다. 붉은 기운이 흩어지며 사라졌다.

"어떻게…" 유겐의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당신의 조각은 지배를 새겼죠. 제 것은 이해를 새겼습니다. 달빛은 억누르는 자에게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관객석에서 침묵이 흐르다가 이내 폭발적인 박수가 터졌다. 감독국 관계자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하늬가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참았다.

유겐이 이를 갈았다.

"이걸로 끝났다고 생각하나. 백단휘 스승님께서 알면—"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서율이 그의 말을 끊었다. "당신 스승이 내 아버지를 죽인 이유, 오늘 여기서 밝히지 않은 건 예의를 지킨 것뿐입니다."

유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순간 서율은 확신했다. 유겐도 온전히 자신의 뜻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걸.

"다음엔 예의 없이 갈 겁니다."

유겐은 아무 말도 못한 채 자리를 떠났다. 강도현이 서율의 옆에 서서 낮게 말했다.

"가문의 이름을, 오늘부로 다시 세워라."

서율이 관객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한서율입니다. 몰락한 조각가 가문, 달빛 조각술의 후예.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박수가 홀을 가득 채웠다. 하늬가 달려와 서율을 끌어안았다.

"해냈어, 진짜 해냈어."

행사가 끝나고 인적이 드문 옥상으로 올라온 서율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때, 난간 너머 어둠 속에서 익숙한 푸른 빛이 어른거렸다.

"당신은…"

빛이 사람의 형체로 서서히 응축되었다. 은발에 푸른 눈을 가진 낯선 이가 달빛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 네가 완성한 조각술, 반쪽짜리다."
"...반쪽이라니요."

"진짜 달빛석은 하나가 아니야. 네 아버지가 지켰던 반쪽, 그리고 내가 오랫동안 지켜온 나머지 반쪽. 둘이 만나야 진짜 달이 뜬다."

서율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당신은 대체 누굽니까?"
푸른 눈의 존재가 옅게 웃었다.

"곧 알게 될 거다. 다만 그때는, 유겐의 스승보다 더 위험한 것이 널 찾아올 거야."

말이 끝나기 전에 빛은 다시 흩어지듯 사라졌다. 서율은 홀로 남아 반쪽 달빛석을 움켜쥔 채, 아직 채워지지 않은 밤하늘을 오래도록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