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이 회차는 아직 그래픽 노블 장면이 제작되지 않아 일반 노블로 보여드려요.

"무슨 소리예요."

"공개 심사장." 유겐이 골무를 다시 손가락에 끼웠다. 갱도 어귀의 새벽빛이 그의 등 뒤에서 붉게 갈라지고 있었다. "협회 본부 대심사관. 심사위원 전원, 방청석에 등록 조각가 전부. 거기서 널 봉인한다. 정예 열 명이 아니라, 협회 전체가 보는 앞에서. 소문이 아니라 규칙으로."

서율은 대꾸하지 않았다.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아팠다. 정확히는 아프지 않았다. 감각이 사라진 자리가 저릿하게 비어 있는 것이 아플 뿐이었다.

"이레 뒤. 정오." 유겐이 돌아섰다. "네가 스스로 걸어 들어와야 봉인이 정당해져. 안 오면 도망친 사기꾼으로 명부에 박제되고, 오면—"

"가겠습니다."

유겐의 걸음이 멈췄다.

"그거 나쁘지 않네요." 서율이 품 속 돌을 한 번 눌렀다. 맥박이 손바닥을 두드렸다. "협회 전체가 본다는 거."

이레는 짧았다.

폐공방으로 돌아온 첫날 밤, 하늬는 취재 파일을 바닥에 죽 펼쳐 놓았다. 녹취기 위치 도면, 접견실 지시서 사본, 결재 도장의 확대 사진. 그녀의 뺨에는 유겐에게 맞은 붉은 자국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

"수신처 하나가 죽었어." 하늬가 도면의 한 점을 손톱으로 눌렀다. "백단휘가 역추적으로 밟았거든. 근데 나 반년 준비했다고 몇 번을 말해. 죽은 건 미끼용 하나야. 진짜 원본은 세 군데에 나눠 뒀어."

"공개 심사장에서 틀 수 있어요?"

"틀 수는 있어." 하늬가 서율을 올려다봤다. "문제는 그게 협회 규칙 안에선 증거가 안 된다는 거야. 무단 감시로 얻은 자료는 채택 자체가 안 돼. 제31조. 나 그거 위반하면서 딴 거잖아."

서율은 굳은 왼팔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오래 침묵했다. 창밖에 달이 반쪽만 남아 있었다.

"그럼 규칙 안에서 딴 증거가 하나 더 필요하네요."

강도현은 나흘째 되던 날 찾아왔다.

문을 열자마자 그는 서율의 왼팔부터 봤다. 어깨까지 굳었다가 손목까지 되돌린 그 팔을. 노인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네 아비도 딱 거기까지 왔었다." 도현이 낮게 말했다. "거기서 멈췄으면 살았어. 그런데 멈추질 못했지."

"멈추는 법은 배웠습니다." 서율이 팔을 들어 보였다. "선생님이 아니라, 아버지 조각이 가르쳐 줬어요."

도현이 품에서 낡은 책을 꺼냈다. 가죽 표지가 손때에 검게 절어 있었다. 협회 인증 규정집. 그가 관리해 온, 협회에서 유일하게 원본이 남은 판본.

"이레 뒤 공개 심사에서 백단휘가 뭘 걸었는지 아나."

"강제 봉인이요."

"근거 조항이 제9조 3항이다. 사칭 확정 시 전원 합의로 능력 봉인." 도현이 규정집을 펼쳐 서율 앞에 내려놓았다. 오래된 종이 냄새가 났다. "그런데 이 조항엔 앞장이 있어. 백단휘가 삭제본에서 지운 앞장."

서율의 눈이 페이지 위를 달렸다. 접힌 자국이 깊게 남은 조항. 계승 예외 조항.

세 해 전, 서부 지부 소환장 뒷면에서 처음 봤던 그 문구였다. 아버지의 혈통이 열쇠가 될지 모른다고 짐작만 했던.

"제9조 3항은 사칭자에게 적용된다." 도현의 목소리가 마른 나뭇가지처럼 갈라졌다. "계승 예외 조항—제9조 1항. 정통 계승 혈통이 증명된 자에게는 상위 심사관도 봉인을 청구할 수 없다. 봉인 청구 자체가 협회 규정 위반이 된다."

"증명이 문제죠."

"그래서 백단휘가 이십 년간 명부에서 네 아비를, 널 지웠다." 도현이 규정집을 서율의 손에 쥐여 주었다. 손이 떨렸다. "명부에 없으면 계승 혈통도 없으니까. 예외 조항이 발동을 못 하니까. 그자는 규칙으로 죽였어. 힘이 아니라 규칙으로. 그러니 규칙으로 되받아라."

서율은 규정집을 내려다봤다. 페이지 여백에 연필로 눌러 쓴 글씨가 있었다. 오래돼 흐렸지만 읽을 수 있었다. — '이 아이가 언젠가 이걸 펼치기를.'

"선생님이 쓴 거예요?"

"네 아비가 썼다." 도현이 눈길을 돌렸다. "죽기 전에 나한테 이 책을 맡기면서. 명부에서 지워질 걸 알았던 거지. 자기가 못 펼치면 다음 사람이 펼치게. 그게 유일하게 남길 수 있는 유품이었어."

서율의 손끝이 굳은 채로 그 글씨를 더듬었다.

이레째, 정오. 협회 본부 대심사장.

원형 홀이었다. 천장이 유리 돔으로 뚫려 있어 정오의 빛이 수직으로 쏟아졌다. 중앙 심사대에 선 서율을 반원으로 심사위원 아홉이 둘러쌌고, 그 뒤로 계단식 방청석에 등록 조각가 백여 명이 앉아 있었다. 웅성거림이 돔을 타고 돌았다.

주심석에 백단휘가 앉아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흰 예복에 은실로 짠 별자리 문양—아버지 의무기록 도장에서 봤던 바로 그 문양—이 어깨에서 흘러내렸다. 노인이라기엔 눈빛이 젊었고, 젊은이라기엔 그 눈이 너무 오래 지쳐 있었다.

"청구 사유를 낭독하시오." 백단휘가 서기에게 말했다. 목소리가 물처럼 매끄러웠다.

"한서율. 명부 미등록 상태로 계승 심사를 통과하고 협회 물품을 무단 접촉함. 제9조 3항에 따라 사칭 확정 및 능력 강제 봉인을 청구함."

방청석이 술렁였다. 유겐이 방청석 첫 줄에서 팔짱을 끼고 서율을 내려다봤다.

"이의 있습니까." 백단휘가 형식적으로 물었다. 이미 답을 아는 얼굴로.

"있습니다."

서율이 굳은 왼팔을 심사대에 올려놓았다. 대리석 심사대 위에 대리석 팔이 놓이자, 어디까지가 돌이고 어디부터가 사람인지 방청석에서 구분이 안 됐다.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제9조 3항은 사칭자에게 적용됩니다." 서율이 도현의 규정집을 펼쳤다. "그런데 이 조항엔 앞장이 있습니다. 제9조 1항. 계승 예외 조항."

백단휘의 손가락이 팔걸이 위에서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정통 계승 혈통이 증명된 자에게는 상위 심사관도 봉인을 청구할 수 없으며, 이를 위반한 청구는 청구자의 심사 자격을 정지한다.'" 서율이 낭독했다. 목소리가 돔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제가 계승 혈통임이 증명되면, 저를 봉인하려 한 청구 자체가 규정 위반이 됩니다. 주심 자격을 정지시킬 수 있는."

"증명되면." 백단휘가 웃었다. "너는 명부에 없다. 계승 혈통은 명부로 증명된다. 없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하겠나."

서율은 그 순간을 기다렸다.

품에서 반쪽 달빛석을 꺼냈다. 심사대 위에 올려놓았다. 돌은 여전히 그의 맥박에 맞춰 푸르게 뛰고 있었다.

"명부보다 오래된 걸로요."

돌이 심사대에 닿은 순간, 유리 돔 위로 무언가가 스쳤다.

정오의 흰빛 속에, 낮인데도, 푸른 달의 윤곽이 어렸다. 반쪽 달빛석이 뛰는 박동에 맞춰 돔 유리에 푸른 그림자가 번졌고, 그 안에 눈동자 하나가 떠올랐다. 서율은 그 눈을 알았다. 각성하던 첫 보름밤부터, 위기마다 곁을 지키던 그 푸른 눈.

방청석에서 비명 같은 탄성이 터졌다.

'또 힘을 빌려주는 건가.' 서율의 등줄기로 익숙한 서늘함이 흘렀다. 이 존재가 대가 없이 도운 적은 없었다. 왼팔이 조여왔다. 아까까지 손목이던 석화 경계가, 다시 팔뚝 중간으로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돌이 응답한 것이다. 서율의 피에. 그리고 푸른 눈은 그것을 세상 앞에 증언하러 온 것이다—대가로 그의 살갗 한 뼘을 가져가면서.

"이 돌은 이십 년간 협회 정점의 누구에게도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서율이 통증을 삼키며 말했다. "백단휘 주심을 포함해서요. 그렇죠, 유겐 씨."

방청석의 유겐이 대답하지 못했다.

"이십 년을 시도하고도 못 얻었다는 건, 방금 이 대심사장의 조각가 백여 명이 증인입니다. 그런데 이 돌이 제 피에 반응합니다. 계승 혈통을 명부가 아니라, 돌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건 규칙이 아니다." 백단휘가 일어섰다. 처음으로 목소리에 금이 갔다. "돌이 뛴다고 심사가—"

"협회 인증 제1조." 도현의 목소리가 방청석 뒤에서 울렸다. 노인이 참관관 자격으로 일어서 있었다. "'달빛석의 공명은 어떤 문서보다 우선하는 계승 증거로 채택한다.' 백단휘, 네가 젊었을 때 직접 서명한 조항이다. 지금 뒤집을 텐가?"

돔 안이 얼어붙었다.

"그럼 이번엔 규칙 안 증거를 하나 더 드리죠."

하늬가 방청석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무단 감시 자료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 협회 공식 봉인이 찍힌 서류 한 장을 들어 올렸다.

"저는 반년 전 협회에 정식 취재 등록을 신청했고, 반려됐습니다. 반려 사유서에 주심이 직접 서명했죠." 하늬가 서류를 흔들었다. "그 반려 사유서 뒷면에, 주심이 실수로 결재한 지시서가 붙어 있었습니다. 한지헌—서율 씨 아버지의 의무기록에 '작업 재개를 강제하라'고 지시한 결재. 이건 무단 감시로 딴 게 아니에요. 협회가 저한테 공식 문서로 넘긴 겁니다. 채택 가능하죠, 서기님?"

서기가 서류를 받아 도장 문양을 확인했다. 은실 별자리. 백단휘 예복의 문양과 동일했다.

"동일 문양 확인." 서기의 목소리가 떨렸다.

방청석이 폭발했다. 한지헌—몰락한 한씨 가문의 마지막 정통 계승자. 삼 년 전 미완의 유작 앞에서 죽은 조각가. 그의 죽음이 지병이 아니라, 완성을 강요당한 살해였다는 것이 협회 백여 명 앞에서 문서로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이건 사후 조작이다." 백단휘가 소리쳤다.

"그럼 이 문양을 부정하십시오." 서율이 조용히 말했다. "당신 예복에서 그 별자리를 뜯어내세요. 그럼 이 자리에서 인정하죠. 아버지를 죽인 게 당신이 아니라고."

백단휘의 손이 어깨의 문양으로 올라갔다가, 멈췄다. 뜯어낼 수 없었다. 그건 협회 정점의 인장이었다. 뜯는 순간 그가 협회 정점임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침묵이 유죄였다.

"제9조 1항에 따라." 도현이 규정집을 덮으며 말했다. "계승 혈통이 달빛석 공명과 공식 문서로 증명됐다. 백단휘의 봉인 청구는 규정 위반이며, 청구자의 심사 자격은 이 순간 정지된다."

심사위원 아홉 중 넷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백단휘의 사람이 아닌 자들이었다. 그들이 규칙을 따랐다. 규칙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서율이 규칙을 그들의 손에 쥐여 주었으니까.

압박하던 질서가, 방향을 틀어 백단휘를 겨눴다.

서율은 심사대 위에 올려 둔 굳은 왼팔을 천천히 거두었다. 오래전, 그는 이 순간을 이렇게 상상했었다. 누군가 그를 향해 '너는 진짜다'라고 선언해 주는 순간을. 협회의 도장이 찍히고, 세상이 그를 받아들이는 순간을.

그런데 지금, 아무도 그를 향해 그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서율이 스스로 말했다.

"저는 한지헌의 아들, 한서율입니다." 그의 목소리가 돔을 채웠다. "협회가 인정하든 안 하든, 이 돌이 제 피에 반응합니다. 저는 계승자입니다. 여러분의 승인을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규칙이 이미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까요."

방청석의 조각가들이 하나둘 일어섰다.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규칙 앞에 서는 예였다. 세계가, 어쩔 수 없이, 규칙에 따라 그를 계승자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한씨 가문의 이름이, 삼 년 만에 대심사장 벽에 다시 새겨졌다.

백단휘가 서기석을 지나 걸어 나가며 서율 곁에 멈췄다. 자격을 정지당한 자의 걸음치고는 너무 태연했다.

"규칙을 잘 읽는구나. 네 아비보다."

"아버지는 규칙으로 저를 지키려다 죽었어요."

"그래." 백단휘가 서율의 굳은 왼팔을 흘긋 봤다. "그런데 하나 착각하는 게 있다. 오늘 네가 이긴 건 나야. 나 하나. 협회의 자격 정지 한 명." 그가 유리 돔 위, 아직 어려 있는 푸른 달의 잔상을 올려다봤다. "저 위에 있는 게 무엇인지, 저게 왜 네 피를 따라다니는지, 그걸 원하는 게 협회 안에서 나 하나뿐일 거라 생각하나. 나는 손을 뻗은 사람이다. 손을 뻗으라고 시킨 사람이 위에 있어."

서율의 미간이 좁아졌다. "협회 정점이 당신 아닙니까."

"정점?" 백단휘가 처음으로 진심으로 웃었다. "나는 문지기다. 문 뒤에 뭐가 있는지 너는 아직 몰라. 반쪽 달빛석이 왜 반쪽인지도. 나머지 반쪽이 누구 손에 있는지도."

그가 서율의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다.

그 순간, 서율의 왼팔이 다시 조여왔다. 아까 푸른 눈이 가져간 한 뼘 위로, 석화 경계가 팔뚝을 넘어 다시 어깨를 향해 한 뼘 기어올랐다. 대가는 심사가 끝났다고 사라지지 않았다. 돌이 그의 피에 반응한 만큼, 살갗이 굳어갔다.

서율은 굳은 팔을 내려다봤다. 손목까지 되돌렸던 자리가, 다시 팔꿈치 위였다.

돔 위의 푸른 눈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위기 때 힘을 빌려주고 대가를 남기는 그 존재가, 오늘도 값을 받아 갔다. 그리고 백단휘의 말대로라면, 저 눈이 노리는 나머지 반쪽은—누군가의 손에 이미 쥐여 있었다.

하늬가 곁으로 다가와 낮게 물었다. "이겼는데. 왜 표정이 그래."

"이긴 게 아니라." 서율이 어깨를 조여오는 통증을 삼켰다. 방청석 저편, 유겐이 백단휘를 따라 문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그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 얼굴에 패배가 아니라 기대가 어려 있었다. "문 하나를 연 거예요. 저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게, 이제야 보이기 시작한."

대심사장 유리 돔 위로, 정오의 빛이 다시 흰빛으로 돌아왔다. 푸른 달의 잔상이 사라지는 그 자리에, 반쪽만 남은 달의 윤곽이 한동안 지워지지 않고 걸려 있었다.

그리고 서율의 왼팔은, 어깨를 향해 다시 굳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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