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강도현의 작업실은 여전히 어두웠다. 창을 가린 검은 천 사이로 아침 햇살 한 줄기가 겨우 스며들었지만, 서율은 그 빛조차 버거운 듯 이마를 짚었다.

"아직도 두통이 있느냐."

강도현이 물었다. 서율은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조각칼을 다시 쥐었다.

"반동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견딜 수 있습니다."

"견디는 게 아니라 다스려야 한다고 몇 번을 말했느냐."

강도현은 서율의 손목을 붙잡고 맥을 짚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달빛의 힘은 네 몸을 통과하는 물이다. 억지로 막으면 넘쳐 터진다. 흐르게 두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떻게 흐르게 둡니까."

"조각의 완성을 서두르지 마라. 마음이 급하면 힘이 뒤틀린다. 네가 만들려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명확히 그려야 한다."

서율은 나무토막을 앞에 두고 눈을 감았다. 하늬를 구해내던 그 순간, 자신을 감쌌던 낯선 푸른 달빛이 떠올랐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왜 자신을 도왔는지,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스승님. 그날 밤 저를 도운 푸른 달빛, 짐작하시는 것이 있습니까."

강도현의 표정이 순간 흔들렸다. 아주 짧은 동요였지만 서율은 놓치지 않았다.

"모른다."

"모르시는 게 아니라, 말씀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강도현은 잠시 서율을 바라보다가 자리에 앉았다.

"때가 되면 말해주마. 지금은 아니다."

서율은 더 캐묻지 않았다. 스승의 눈빛에서 거짓이 아닌 신중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오래전부터 묻고 싶었던 것을 꺼냈다.

"제 아버지는 왜 돌아가셨습니까. 협회 때문이라는 것은 알지만, 정확히 누가 지시했는지는 모릅니다."

강도현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유겐 때문이 아니다. 그는 그저 손발일 뿐이다."

"그럼 누구입니까."

"유겐의 스승, 별조각 협회의 진짜 수장. 이름은 백단휘다."

서율은 그 이름을 처음 들었다. 그러나 강도현의 목소리에 담긴 무게가 그 이름의 위험성을 짐작하게 했다.

"백단휘는 삼십 년 전 너의 가문과 함께 달빛 조각술을 연구하던 자였다. 하지만 그는 힘을 독점하고 싶어 했지. 네 조부와 아버지가 그 힘을 세상에 나누려 하자, 그는 협회를 동원해 가문을 몰락시켰다."

서율의 손이 조각칼을 쥔 채 미세하게 떨렸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힘을 나누려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다. 예술을 지배의 도구로 삼으려는 자에게, 나누는 마음은 위협이었으니까."

서율은 오랫동안 침묵했다. 분노가 명치 아래에서 뜨겁게 끓어올랐지만, 동시에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조각은 복수의 도구가 아니라, 세상에 남기는 마음이어야 한다.'

"스승님. 저는 백단휘와 유겐을 응징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버지가 바라던 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강도현이 서율의 어깨를 잡았다.

"복수와 신념은 반대편에 서 있는 게 아니다. 네가 진짜 조각가로 서서 그들이 감춘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응징이다. 칼로 베는 것보다 더 강력한 복수지."

서율은 그 말을 곱씹었다. 조각칼을 다시 나무 위에 올리며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그럼 저는 조각으로 증명하겠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그때, 작업실 문이 급하게 열리고 하늬가 들어왔다. 손에는 붉은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

"서율씨, 이거 방금 협회에서 보낸 초청장이에요."

강도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서율이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우아한 필체로 쓰인 글이 있었다.

[한서율에게. 대형 전시회 '달의 계승자'에 그대를 초청한다. 그날, 네 가문의 조각술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세상 앞에서 증명해 보이길. — 유겐]

하늬의 얼굴이 굳었다.

"이건 함정이에요. 사람들 앞에서 당신을 무너뜨리려는 거예요."

서율은 초청장을 손에 쥔 채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함정이라 해도, 피하지 않겠습니다."

강도현이 낮게 말했다.

"그날이 네 가문의 명예를 되찾을 날이 될지, 완전히 무너지는 날이 될지는 오직 네 손에 달렸다."

서율은 조각칼을 굳게 쥐었다. 창밖으로, 아직 낮인데도 어렴풋이 푸른빛이 스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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