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피. 그 한 글자가 서율의 귓속에서 오래 울렸다.

"거짓말." 서율은 굳은 왼팔을 늘어뜨린 채 갱도 입구를 등졌다. "당신이 지금 아는 척하는 건, 방금 이 돌이 반응하는 걸 보고 급하게 지어낸 이야기예요."

"급하게?" 유겐이 웃었다. 골무 낀 손을 천천히 폈다. "이십 년이야. 백단휘 님이 네 아버지를 놓지 못한 것도, 네 가문을 통째로 무너뜨리고도 씨를 말리지 않은 것도. 왜 그랬을 것 같나. 씨가 필요했으니까. 씨가."

새벽빛 속에서 정예 조각가들의 그림자가 반원을 조금씩 좁혔다. 하늬가 서율의 옆구리를 툭 쳤다. 눈짓으로 갱도 안을 가리켰다. 도망이든 대치든, 등을 보이지 말라는 신호였다.

서율은 대답 대신 손끝을 갱도 어둠 쪽으로 뻗었다. 굳지 않은 오른손.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 잿빛으로 마른, 그 손.

돌이 대답했다.

갱도 안쪽에서 푸른 맥동이 한 번, 두 번, 심장 박동처럼 새어 나왔다. 유겐의 웃음이 다시 지워졌다. 그가 이걸 보려고 서율을 살려 여기까지 몰았다는 걸, 서율은 그제야 알았다. 자기 피로 돌을 깨워, 그 힘을 백단휘에게 바치게 하려는 것.

"열어." 유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네 손으로 열면, 네 팔 남은 마디는 살려주지."

그때, 서편 하늘이 물들었다.

붉은 새벽을 밀어내고, 채석장 위로 달이 떠올랐다. 밤에 지고 있어야 할 보름달이. 그것도 흰빛이 아니라 밑바닥부터 시린 푸른빛으로.

정예 조각가 하나가 하늘을 올려다보다 반걸음 물러섰다. "저게… 뭡니까."

"움직이지 마." 유겐이 내뱉었지만, 그의 목소리에도 처음으로 금이 갔다.

서율은 이 달을 안다. 아버지의 유작이 처음 빛을 낸 밤에도, 왼팔이 굳어가던 배관 통로에서도, 이 달은 서율의 곁을 지키듯 떠올랐다. 대가 없이 힘을 빌려주고 사라졌다. 그때마다 서율은 이유를 묻지 못했다.

이번에는 물었다.

"당신, 누구예요."

푸른 달 한가운데, 눈동자가 열렸다. 사람의 것도 짐승의 것도 아닌, 시린 남빛의 눈이. 그 시선이 하늘 전체를 통과해 서율 하나에게만 내려앉았다. 갱도 안의 돌이 미친 듯이 맥동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물었구나.』

목소리는 귀가 아니라 굳은 왼팔의 대리석 안쪽에서 울렸다. 서율은 자기도 모르게 그 자리를 오른손으로 눌렀다.

『나는 반쪽에 갇힌 자다. 태초에 달빛으로 형상에 숨을 불어넣은 첫 손. 사람들은 나를 최초의 달빛 조각가라 불렀고, 협회는 나를 돌 안에 봉인해 나눠 가졌다. 반쪽은 저 갱도에, 반쪽은—』

"협회 본부에." 서율이 아버지의 유작 성좌를 떠올렸다. 세 점이 이어진 선의 끝, 협회 본부를 가리키던 그 표식.

『네 피가 나를 부른다. 이십 년 전에도, 그전에도. 한씨의 손끝에는 내 숨의 마지막 실이 이어져 있다. 네 아버지는 그 실을 끊지 못해 죽어가면서도 나를 저들 손에 넘기지 않았다.』

서율의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하늬가 팔을 붙잡아줬다. 하늬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 여자도 반년을 파고들었지만, 여기까지는 파내지 못한 것이다.

"그럼 아버지도." 서율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걸 알고, 이백 일을 버틴 거예요?"

『네 아비는 나를 지키려고 자신을 돌로 만들었다. 완성하면 지도가 풀리고, 지도가 풀리면 내가 저들 것이 되니까. 그는 미완으로 죽는 쪽을 택했다. 그게 그가 아는 유일한 방어였다.』

유겐이 참지 못하고 발을 뗐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

그가 골무 낀 손으로 발밑의 석재 바닥을 짚었다. 채석장 벽에서 잿빛 사역물이 튀어나왔다. 늑대 형상 셋. 서율을 향해 한꺼번에 덮쳐왔다.

서율은 오른손을 갱도 쪽으로 뻗었다. 파편도, 매개체도 없었다. 하지만 갱도 안의 돌이 이미 그의 피에 응답하고 있었다.

『힘을 빌려주마. 다만 공짜는 아니다.』

푸른 눈동자가 서율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내 숨을 쓰는 만큼, 네 몸은 나에게로 가까워진다. 석화가 아니라— 네가 사람과 돌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 갈지 정해야 하는 문턱으로. 힘을 크게 쓸수록 그 문턱이 낮아진다. 언젠가 네 발로 돌 안에 들어와 나와 자리를 바꾸게 될 수도 있다. 네 아비처럼.』

늑대 셋이 세 걸음 앞까지 왔다.

『그래도 받겠느냐.』

예전의 서율이라면 물었을 것이다. 이게 협회 규정에 맞는지, 이 힘을 써도 되는 자격이 나에게 있는지. 누군가 승인해주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인증받지 못한 힘은 사기라고, 세상이 그렇게 낙인찍었으니까.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의 승인도 기다리지 않고 이백 일을 버텼다.

"받아요." 서율이 말했다. "누구한테 물어보지 않고, 내가."

푸른 눈동자가 깊어졌다. 그 순간 굳어 있던 서율의 왼팔 대리석 표면에, 실금처럼 푸른 빛줄기가 번져 들어왔다. 죽은 팔의 안쪽에서 처음으로 온기 비슷한 것이 돌았다.

갱도 안의 돌이 서율의 오른손바닥으로 날아들었다. 반쪽 달빛석. 손안에 들어온 순간 그것은 매끄러운 조각석이 되어 서율의 정신에 맞춰 스스로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서율은 늑대들을 보지 않았다. 손끝의 상을 봤다. 6화의 그 벽처럼, 재료가 아니라 완성된 형상을 먼저 떠올리는 법.

날개.

한 쌍이 아니라, 열두 쌍의 날개를 가진 것.

늑대 셋이 목을 물어뜯으려 뛰어오른 순간, 서율의 손안에서 은빛과 푸른빛이 뒤섞여 터졌다. 돌덩이가 아니라 빛으로 조각된 거대한 매가—아니, 매라 부르기엔 너무 크고, 날개가 너무 많은 무언가가 채석장 하늘을 가득 메웠다. 늑대 셋이 그 그림자에 닿자마자 잿빛 부스러기로 흩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거대한 날개가 한 번 접혔다 펴질 때마다 채석장의 공기가 통째로 밀려났다. 서율은 그 무게를 손끝으로 느꼈다. 6화의 벽 조각과도, 세 번째 매와도 달랐다. 이번 것은 재료를 깎아 만든 형상이 아니었다. 반쪽 달빛석이 그의 피를 읽고, 피가 손끝을 통해 상을 밀어 올리고, 그 상이 빛으로 굳는—경계가 사라진 조각이었다.

대가는 즉시 왔다.

오른손 손등에서부터 서늘한 무엇이 손목을 향해 기어올랐다. 저릿하게 비어 있던 새끼손가락 옆으로, 약손가락이 뻣뻣하게 잠겼다. 문턱. 푸른 눈동자가 말한 그 문턱이 한 마디 낮아지는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지나갔다. 서율은 이를 악물었다. 되돌릴 수 있다. 스스로 멈출 지점을 정하면. 아버지가 알려주지 못하고 죽은 것을, 이제 그는 알고 있었다.

여기까지. 서율은 마음속으로 선을 그었다. 열두 쌍의 날개가 하늘에서 천천히 흩어져 은빛 가루가 되어 내렸다.

유겐이 뒷걸음질쳤다. 골무 낀 손이 허공에서 무언가를 붙잡으려다 그대로 굳었다. 그의 눈이 서율의 손안에서 뛰는 돌에, 그 푸른 맥박에 못 박혀 있었다. 두려움이었다. 서율은 그것을 처음으로 명확히 봤다. 도발할 때의 그 여유가 아니라, 자신이 이십 년 섬긴 것의 정체를 방금 처음 마주한 자의 얼굴이었다.

"백단휘 님도 이걸 못 깨웠어." 유겐이 자기도 모르게 흘렸다. "손을 대면 돌은 차갑기만 했다. 스무 해를. 그런데 네가—"

"당신 스승이 이십 년 걸려도 못 한 걸." 서율이 조용히 말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높일 필요가 없었다. "나는 손을 대자마자 했어요. 왜 그런지 이제 알겠어요?"

정예들의 반원이 저도 모르게 반 발씩 벌어졌다. 그들의 무기는 인증받은 사역물의 규격을 겨누도록 훈련된 것이었다. 명부에 없는 것 앞에서 그들의 훈련은 무용했다. 규칙이 예상하지 못한 것을 만났을 때, 규칙을 섬기던 자들이 먼저 흔들렸다.

서율은 그 흔들림을 놓치지 않았다. 굳어가는 오른손을 천천히 쥐었다 폈다. 반쪽 달빛석이 손바닥 안에서 심장처럼 뛰었다. 그의 피에 맞춰서. 오직 그의 피에만.

"아버지가 이걸 지키려고 죽었어요. 완성하면 당신들 손에 넘어가니까. 그런데 이제 완성됐네요." 서율이 갱도를 등지고 섰다. "당신들 손이 아니라, 내 손에서."

정예 조각가 열 명이 일제히 무기를 든 손을 내렸다. 아무도 명령하지 않았는데.

"저건, 인증받은 사역물이 아닙니다."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런 등급은 협회 명부에 존재하지 않아요."

서율은 그 말을 정면으로 받았다. 예전 같으면 명부에 없다는 그 한마디에 무릎이 꺾였을 것이다. 자격 없는 자, 사기꾼. 그 낙인이 다시 살아났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었다.

"명부에 없는 게 아니라." 서율이 반쪽 달빛석을 쥔 손을 들어 보였다. 돌은 여전히 그의 맥박에 맞춰 푸르게 뛰고 있었다. "명부를 만든 협회보다 오래된 겁니다. 이 돌이 지금 누구 손에서 뛰고 있는지, 여러분 눈으로 보고 있잖아요."

증명은 서율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가 '내가 진짜다'라고 외친 것이 아니라, 이십 년간 협회 정점의 누구에게도 반응하지 않던 돌이 그의 피에 맞춰 맥동하는 것—그 사실 자체가 서 있는 사람들 앞에서 규칙을 다시 썼다. 정예 하나가 저도 모르게 반쪽 무릎을 굽혔다가, 화들짝 다시 폈다.

유겐만이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골무 낀 손이, 이번에는 바닥을 짚지 못하고 허공에서 멈춰 있었다.

"백단휘 님이 옳았어." 유겐이 헐떡이는 소리를 삼키며 말했다. "역시 네 피였다. 저 힘이 아니라, 저 힘을 부르는 네가—"

"그러니까 못 가져가겠죠." 서율이 그의 말을 잘랐다. 반쪽 달빛석을 유작과 함께 품에 넣었다. "이건 손에 넣는 물건이 아니에요. 부르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거니까. 백단휘가 이십 년을 헛짚은 게 그거예요. 돌을 뺏으면 힘도 딸려온다고 생각한 거."

유겐의 얼굴 근육이 한 번 크게 경련했다. 그가 정예들에게 손짓했다. 열 명이 무기를 거두고 갱도 반대편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완전히 진 것이 아니라, 판을 옮기려는 사람의 후퇴였다.

하늬가 낮게 속삭였다. "그냥 보내는 거야? 저 사람 물증 뭉치 다 아는데."

"지금 잡으면 나머지 정예 열이랑 다시 붙어야 해요." 서율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아까보다 한 마디 더 잿빛으로 말라 있었다. 문턱이 낮아진 대가였다. "그리고 저 사람, 지금 도망가는 게 아니에요. 다른 판을 짜러 가는 거예요."

과연 유겐이 갱도 어귀에서 걸음을 멈췄다. 물러선 자세 그대로 고개만 틀어 서율을 봤다. 그의 입가에 다시 웃음이 돌아와 있었다. 이번에는 아까처럼 급조된 웃음이 아니었다.

"머리 좋네. 그래, 나 지금 진 거 아니야."

"압니다."

"여기선 정예 열 명이 봤지. 그게 다야. 소문은 되겠지만 규칙은 안 돼." 유겐이 골무를 벗어 손바닥에 탁 쳤다. "너, 사흘 전에 청문 소환 받았지. 정오 미참석하면 강제 봉인이라고. 그거 미뤄줄게. 대신 날짜를 옮겨서, 더 큰 걸로 바꿔주지."

서율의 미간이 좁아졌다. "무슨 소리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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