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푸른 빛이 서율의 손끝에 닿는 순간, 그의 몸속에서 무언가가 뒤틀리듯 끌려 올라왔다. 반쪽 달빛석이 뜨겁게 달아올랐고, 조각칼을 쥔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이게… 뭐야."

서율은 자신의 목소리가 낯설게 들렸다. 눈앞의 나무토막이, 아니 원래는 그냥 부서진 각목이었던 것이 조각칼의 궤적을 따라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사자의 머리를 한 인간형의 수호상. 서율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손이, 아니 어떤 힘이 그를 이끌고 있었다.

"막아!"

유겐의 하수인 하나가 소리쳤다. 창고 안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이하늬는 기둥에 묶인 채 눈을 크게 뜨고 서율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율씨, 도망쳐요! 저 사람들 그냥 사람이 아니에요!"

"움직이지 마."

서율은 낮게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지만 단호했다. 조각이 완성되는 순간, 그의 눈앞이 아득해졌다. 마치 몸속의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수호상이 빛을 뿜으며 일어섰다. 실체를 가진 조각이 살아 움직이는 광경에 하수인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게… 저게 뭐야!"

"물러서!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이다!"

수호상이 포효했다. 그것은 소리가 아니라 진동이었다. 창고 안의 공기가 흔들리고, 하수인들이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서율은 이를 악물고 손을 뻗었다.

"하늬씨한테서 떨어져."

수호상이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거대한 앞발이 하늬 근처의 하수인을 밀쳐냈다. 하늬는 숨을 멈춘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두려움보다는 경이로움이 앞섰다.

"이게 조각이라고요? 이게 정말 당신이 만든 거예요?"

"나중에 설명할게."

서율의 목소리에 힘이 빠지고 있었다. 조각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기력이 빨려나가는 것 같았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버텨. 조금만 더."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을 수도, 수호상에게 하는 말이었을 수도. 하수인들은 이미 전열이 흐트러진 상태였다. 그들 중 하나가 손짓을 하자 나머지가 뒤로 물러섰다.

"철수한다! 이건 우리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야!"

"유겐님이 알면…"

"그럼 네가 남아서 저 괴물을 상대해!"

하수인들이 창고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수호상은 그들을 쫓지 않고 하늬 곁을 지켰다. 서율은 마지막 힘을 짜내 하늬를 묶은 줄로 다가갔다.

"괜찮아요?"

"저는 괜찮은데… 서율씨가 안 괜찮아 보여요."

서율은 조각칼로 줄을 끊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줄이 끊어지자 하늬가 벌떡 일어나 그를 붙잡았다.

"얼굴이 백지장이에요. 당장 앉아요."

"괜찮…"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율의 무릎이 꺾였다. 수호상이 흐릿해지며 형태를 잃기 시작했다. 조각술을 유지할 힘이 바닥난 것이다.

"서율씨!"

하늬가 그를 부축하려 했지만, 서율의 몸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눈앞이 새하얘지고, 온몸의 감각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다시 그 푸른 빛이 눈꺼풀 안쪽에서 어른거렸다.

'너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목소리인지, 감각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머릿속에 스쳤다. 사람의 것이 아닌, 그러면서도 사람보다 더 깊은 슬픔을 담은 목소리였다.

"누구야…"

서율은 겨우 그 말을 뱉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대신 시야가 완전히 암전됐다.

"서율씨! 정신 차려요! 서율씨!"

하늬의 목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느끼며, 서율은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

눈을 떴을 때 서율은 낯선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익숙한 냄새, 나무와 흙과 오래된 종이 냄새. 강도현의 작업실이었다.

"일어났나."

강도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율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온몸이 무겁게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하늬씨는…"

"안전해. 자네가 정신을 잃은 후 내가 도착해서 데려왔네."

서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곧 다른 것이 떠올랐다.

"그 빛… 그 목소리. 스승님, 그건 뭐였습니까?"

강도현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는 서율을 잠시 응시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빛을 말하는 건가."

"푸른… 푸른 달빛이었습니다. 유겐의 부하들과 싸울 때, 그리고 정신을 잃기 직전에도. 누군가 저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강도현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건… 나도 짐작만 할 뿐, 확신할 수는 없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

"그게 뭡니까?"

"자네 몸은 지금 큰 대가를 치렀어. 달빛 조각술은 힘을 빌리는 대신 대가를 요구하지. 자네가 겪은 반동이 그 증거야. 지금까지는 반쪽짜리 달빛석으로 근근이 버텼지만…"

강도현은 서율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대로 계속 힘을 쓰면, 자네 몸이 먼저 무너질 수 있어."

서율은 무거운 침묵 속에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조각칼을 쥐었던 손끝이 아직도 저리듯 아팠다.

"그래도… 멈출 수 없습니다."

"알고 있네. 그러니 지금부터 제대로 배워야 해. 힘을 다루는 법이 아니라, 그 대가를 감당하는 법을."

강도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낡은 상자를 꺼냈다. 상자 안에는 서율이 처음 본 조각도구들이 가득했다.

"오늘부터 진짜 수련을 시작한다. 각오해."

서율은 아픈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그의 눈빛에는 두려움보다 더 짙은 결의가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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