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이하늬가 정리해 준 마지막 전시장의 조명이 꺼지자, 서율은 낯선 노인과 단둘이 남았다. 백발을 짧게 깎은 남자는 낡은 코트 차림이었지만, 눈빛만은 조각칼처럼 날이 서 있었다.

"당신이... 아버지의 스승이라고요?"

서율의 목소리에는 의심이 짙게 깔려 있었다. 강도현이라 자신을 소개한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전시된 서율의 작품 앞으로 걸어갔다. 달빛으로 조각한 늑대상이었다.

"이 작품, 네 손으로 완성한 게 아니지."

"...무슨 뜻입니까."

"손이 저절로 움직였을 거다. 달빛이 네 몸을 빌려 조각을 완성한 거지. 아직 넌 그 힘을 다룬 게 아니라, 힘에 이끌려 다닌 거야."

서율은 주먹을 쥐었다. 정확히 맞는 말이었기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당신은 그걸 어떻게 압니까."

"내가 네 아버지, 한지운의 스승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이전엔, 내가 먼저 이 힘을 다뤘던 사람이었으니까."

강도현의 손끝이 늑대상의 표면을 스쳤다. 순간 조각상의 눈이 희미하게 빛나는 듯 보였다가 사라졌다.

"믿을 수 없습니다. 갑자기 나타나서 스승이라니. 별조각 협회의 유겐도 아버지를 안다고 했습니다. 당신도 그쪽 사람입니까?"

강도현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서율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역시, 뭔가 있군요."

"...맞다. 나도 한때는 별조각 협회 소속이었다."

전시장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서율은 반사적으로 조각칼이 든 가방을 움켜쥐었다.

"그럼 아버지를 배신한 것도 당신입니까."

"아니야." 강도현의 목소리가 낮고 단단해졌다. "나는 협회를 떠난 사람이다. 그리고 네 아버지가 죽던 그날,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서율의 숨이 멈췄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막지 못했다. 유겐의 스승, 그러니까 지금 협회 수장이 직접 손을 댔지. 나는 늦게 도착했고,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서율의 눈에 분노와 슬픔이 뒤섞였다. 오랫동안 궁금했던 진실의 한 조각이 던져졌지만,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새로운 상처였다.

"그런데 왜 이제야 나타난 겁니까. 몇 년 동안 뭘 하고 있었습니까."

"죄책감 때문에 숨어 살았다. 네 앞에 설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강도현이 서율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하지만 오늘, 네가 조각한 늑대상을 보고 결심했다. 더는 숨어 있을 수 없다는 걸."

"왜 지금입니까."

"네 안의 달빛이 완전히 각성하기 전에, 누군가는 네게 진짜를 가르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넌 유겐과 협회에게 이용당하거나, 힘에 잡아먹혀 죽는다."

서율은 잠시 말을 잃었다. 처음 만난 낯선 노인의 말이지만, 그 안에는 거부할 수 없는 무게가 있었다.

"...달빛 조각술이 정확히 뭡니까. 늑대상이 스스로 말하고 움직였습니다. 이게 그냥 예술이 아니라는 건 압니다."

"달빛 조각술은 원래 하나의 예술이자 무기였다. 수백 년 전, 인간이 신의 영역에 닿으려 했던 흔적이지. 달빛을 다루는 조각가는 자신의 감정과 의지를 조각에 담아 실체화시킬 수 있다. 그게 수호상이 되기도 하고, 무기가 되기도 하지."

"그럼 아버지도, 저도... 그 힘을 이어받은 겁니까."

"네 가문은 그 원류의 마지막 혈통이다. 협회가 노리는 이유도 그거고. 네 몸에 흐르는 피와 조각칼에 남은 힘, 그리고—" 강도현이 서율의 눈을 응시했다. "그 반쪽 달빛석. 그것이 완전한 달빛 조각술을 여는 마지막 열쇠다."

서율은 무의식적으로 가슴 속 목걸이를 매만졌다. 아버지가 남긴 부서진 달빛석이 거기 있었다.

"그럼 나머지 반쪽은..."

"유겐이 가지고 있다. 정확히는, 협회 수장이 보관 중이지."

침묵이 흘렀다. 서율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내린 하늘, 낮게 걸린 달이 오늘은 이상하게도 옅은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지난번 각성했던 밤과 똑같은 색이었다.

"저 달... 또 나타났군요."

강도현의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그는 창밖을 응시하며 낮게 중얼거렸다.

"푸른 달이라니... 설마, 아직도 지켜보고 있었나."

"뭘 말입니까?"

강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얼굴에는 처음으로 당혹감이 스쳤다.

"당신도 저 달을 압니까?"

"...안다. 하지만 지금은 말할 수 없다." 강도현이 서율의 어깨를 붙잡았다. "네가 알아야 할 건 하나뿐이다. 지금부터 나는 네 스승이 되어 달빛 조각술을 완성시키겠다. 그러지 않으면 넌 곧 유겐과 협회 앞에서 무력하게 쓰러질 거야."

"제자로 받아준다는 말이, 진심입니까."

"진심이다. 죄를 갚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강도현의 눈이 서율을 응시했다. "네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원했을 일이기도 하니까."

서율은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 오래도록 얼어 있던 무언가가 조금씩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좋습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진짜 힘을 다루는 법을."

강도현은 처음으로 옅게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 뒤로, 창밖의 푸른 달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여전히 감춰진 불안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전시장 밖 어둠 속에서 낮은 진동음이 울렸다. 서율의 휴대폰이었다. 발신자는 이하늬. 화면을 확인한 서율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유겐이 방금 저를 만나러 왔어요. 서율 씨를 데려오라고... 안 그러면—"

전화는 그렇게 갑작스레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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