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하나가 강녕전 깊숙한 침소의 어둠을 간신히 밀어내고 있었다.
소은은 무릎을 꿇은 채 마지막 남은 찬합의 윤기를 닦아냈다. 이미 세 번이나 닦은 것이지만, 지밀 궁녀로서 해야 할 일이 끝났다는 것은 곧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증거였다. 밤이 깊을수록 강녕전은 적막이 짙어지고, 그 적막 속에서 궁녀는 자신의 존재를 지워야 했다.
그런데도 소은의 손끝은 찬합의 모서리를 더듬고 있었다.
현종은 아직 집무실에 있었다. 대왕대비가 보낸 감찰 상궁이 오늘 따라 유난히 강녕전 주변을 서성인다는 보고가 있었고, 그것은 왕이 침소로 돌아오는 시간을 늦추기에 충분한 이유였다. 소은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어깨를 누르고 있었다. 낮에 복도에서 마주친 감찰 상궁의 눈빛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녀는 소은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지나갔다. 마치 낙인을 찍듯이.
일어서려던 그 순간, 손끝이 찬합 아래 깔린 보료의 한쪽을 스쳤다. 평소라면 느끼지 못했을 미세한 차이. 보료의 결이 미끄러졌다.
소은의 몸이 멈췄다.
보료 아래, 마룻장 사이로 손가락 하나 겨우 들어갈 만한 틈이 있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시선으로 더듬자, 벽 쪽으로 이어진 오래된 흔들림 벽장이 손끝에 닿았다. 강녕전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이런 은밀한 공간은 처음이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스치는 시선을 느꼈다. 소은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침소 안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기분 탓이었을까. 그러나 목덜미에 남은 섬뜩한 감촉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벽장 안에서 손끝에 닿은 것은 차갑고 매끄러운 비단 천. 조심스럽게 끌어당기자 묵직한 두루마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소은은 숨을 멈췄다.
비단 천을 걷어내자 짙은 먹 냄새와 함께 오래된 종이의 향이 피어올랐다. 세필로 빼곡히 채워진 글자들. 첫 장의 첫 줄이 촛불 아래 드러났다.
*'내 마음이 닿지 못한 손끝에 남아...'*
선왕의 필체였다.
소은은 알 수 있었다. 지밀 궁녀로서 오랫동안 보아온 선왕의 어람 문서들, 그 특유의 날카로우면서도 끝이 살짝 휘는 획. 틀림없었다.
두루마리를 품에 감추고 강녕전을 빠져나온 것은 거의 본능이었다. 회랑을 지날 때, 저 멀리서 감찰 상궁의 그림자가 스쳤다. 소은은 벽에 몸을 붙이고 숨을 죽였다. 발소리가 멀어지기를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지밀 궁녀들의 처소, 가장 구석진 방. 소은은 얼어붙은 손끝으로 두루마리를 펼쳤다.
첫 장을 넘긴 순간이었다.
눈앞이 일렁였다.
촛불도 깜빡이지 않는 밀폐된 방 안에서, 공기가 갑자기 짙은 색으로 물들었다. 비취색. 짙고 무거운 비취색 안개가 종이 위에서 피어올랐다. 그것은 시각 이상의 감각이었다. 색에는 냄새가 실려 있었다. 달콤하고도 쌉싸름한 향. 잘 익은 매실을 갓 베어낼 때 나는 생목의 향 같으면서도, 그 아래로 사향처럼 짙은 동물성의 비릿함이 깔려 있었다.
소은의 숨이 가빠졌다.
종이 위에서 피어오른 비취색 안개는 곧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희미한 윤곽이었으나, 점차 선명해지는 모습은... 사람이었다.
현종이었다.
아니, 현종의 마음속 풍경이었다.
소은은 두루마리를 떨어뜨리려 했지만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이 파고들 듯 시선이 박혔다.
환영 속의 현종은 평소의 그가 아니었다. 용포도, 익선관도 없었다. 오직 백색 속적삼만 걸친 모습으로 어둠 속에 서 있었다. 그의 눈은 침소의 한구석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시선의 끝에 있는 것은...
소은이었다.
환영 속의 소은은 무릎을 꿇고 찬합을 닦고 있었다. 지금의 자신과 똑같은 자세로, 똑같은 동작으로. 그러나 현종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찬합이 아니었다. 소은의 목덜미였다. 속적삼 깃 위로 드러난, 땀에 촉촉이 젖은 피부 위로 흩어진 가냘픈 잔털들.
촉감이 밀려왔다.
환영을 보고 있을 뿐인데, 소은의 목덜미에 뜨거운 숨결이 닿았다. 현종이 다가오고 있었다. 꿈속에서, 혹은 마음속에서, 그는 소은의 뒤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의 목덜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숨결이 한 번, 두 번, 소은의 피부 위로 떨어졌다. 그때마다 소은의 실제 살갗이 따끔거렸다.
바로 그때, 복도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소은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누군가 문 앞을 지나가는 발소리. 가쁜 숨을 삼키며 귀를 기울였다. 발소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멀어졌다. 감찰 상궁의 발소리였다. 소은은 식은땀이 솟은 손바닥으로 두루마리를 더욱 움켜쥐었다. 들키면 죽음이었다. 그런데도 손에서 종이를 놓을 수 없었다. 죽음보다 더 강렬한 호기심이, 그리고 그 아래 도사린 어떤 갈망이 그녀를 붙들고 있었다.
현종의 손이 올라왔다. 필체를 쥐는 길고 마른 손가락이 소은의 어깨 위로 내려왔다. 닿지 않았다. 닿기 직전에 멈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까지도 소은의 어깨에 전해졌다. 전율이 척추를 타고 올라갔다.
이윽고 손끝이 닿았다.
속적삼 위로, 어깨의 곡선을 따라 천천히 쓸어내리는 손끝. 환영임에도 불구하고 소은은 그 감촉을 생생하게 느꼈다. 거칠고 마른 손가락 마디가 비단 위를 스치는 마찰. 그 아래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 그리고 손끝에서 전해지는 체온.
현종의 손가락이 옷고름에 닿았다.
소은의 실제 옷고름이 저절로 당겨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매듭 위를 더듬는 손가락은 서툴렀다. 초조하고, 갈망하면서도 망설이는 손놀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매듭이 풀리는 감촉. 비단이 미끄러지며 속적삼이 한 겹 벗겨지고, 그 아래로 드러난 쇄골의 오목한 부분.
환영 속의 현종은 그곳에 입을 맞추었다.
소은은 신음을 삼켰다.
입술이 쇄골에 닿는 촉감. 처음에는 가볍게 스치듯, 이내 깊게 빨아들이는 압력. 뜨거운 혀끝이 피부 위로 작은 원을 그렸다. 소은은 자신의 쇄골 부근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모공 하나하나가 열리고, 그 위로 현종의 침이 스며드는 듯한 감각. 피부 아래로 열이 번져 내려갔다.
현종의 입술이 천천히 이동했다. 쇄골에서 목덜미로, 목덜미에서 귀 뒤의 오목한 부분으로. 숨결이 귓바퀴를 타고 들어왔다. 젖은 입술이 귓불을 물었다. 살짝 깨물고, 혀끝으로 달래는 듯 핥는 동작. 소은의 귀에서 실제로 촉촉한 소리가 들렸다.
그의 손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속적삼을 완전히 벗겨내고, 이제 맨살 위를 더듬는 손바닥. 갈비뼈의 능선을 한 올 한 올 세듯 쓸어내리는 손끝. 손바닥 전체가 허리의 곡선을 감싸 쥐었다. 그 악력에 소은의 허리가 저절로 조여들었다.
환영 속의 현종이 속삭였다. 실제 목소리가 아닌, 마음의 파동 같은 것이 소은의 내부에 직접 울렸다.
*'내가 미쳤다.'*
그 한마디에 소은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것은 자책이면서 동시에 항복이었다. 왕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가져서는 안 될 감정에 완전히 굴복한 자의 목소리. 소은은 그 굴복의 순간을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에 아랫배가 뜨거워졌다. 이 나라의 지존이, 자신 앞에서 이렇게 무너지고 있었다.
현종의 손이 소은의 가슴 아래로 미끄러졌다. 갈비뼈 하단을 감싸 쥐고 엄지손가락으로 피부를 쓸었다. 천천히, 집요하게, 소유를 확인하듯. 그의 손바닥이 왼쪽 가슴을 덮었다. 심장 위에 정확히 얹힌 손바닥. 환영인데도 소은의 심장은 그 압력을 느끼고 더욱 거세게 뛰었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유두가 끼어들었다. 현종의 검지와 중지가 젖꼭지 주변을 빙글빙글 돌렸다. 처음에는 부드럽게, 점차 압력을 높이며. 소은의 실제 유두가 옷 안에서 딱딱하게 일어섰다. 그 마찰에 면포가 스칠 때마다 찌릿한 통증과 쾌감이 뒤섞여 척추를 타고 올랐다.
현종은 만족한 듯 낮고 짧은 숨을 내쉬었다. 그의 입술이 다시 움직여 이번에는 척추를 따라 내려갔다. 등허리의 오목한 골짜기에 혀끝을 밀어넣고, 한 마디 한 마디 척추뼈의 윤곽을 입술로 확인했다. 그 감촉이 소은의 등줄기를 타고 흘러 엉덩이까지 번져갔다.
손은 더 아래로 내려갔다.
치마허리를 풀어내는 손길. 비단이 스르르 흘러내리고, 속바지만 남은 하반신 위로 손바닥이 포개졌다. 넓적다리 안쪽을 더듬는 손끝. 거칠고 단단한 마디가 부드러운 살 위를 쓸어 올라갔다. 사타구니에 닿을락 말락, 가장 민감한 경계를 집요하게 맴돌았다.
소은은 깨달았다. 현종이 이곳을, 이 동작을 얼마나 오래 상상해왔는지를. 손끝의 떨림과 서두르지 않는 완급, 그리고 때때로 멈추어 자신을 억누르는 듯한 긴 호흡. 그 모든 것이 그가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을 얼마나 오래 참아왔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마침내 그의 손가락이 속바지 안으로 파고들었다.
소은의 질 입구가 경련하듯 조였다. 실제로 아무것도 닿지 않았는데도, 환영 속 현종의 손가락이 음모를 헤치고 음순 사이를 가르는 감각이 생생했다. 거친 손가락 끝이 질구에 닿았다. 젖어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애액에 젖어 미끄러웠다. 현종은 거기서 잠시 멈추었다. 마치 그 촉촉함의 의미를 음미하듯.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손가락을 밀어넣었다.
소은의 질벽이 조여들었다. 근육이 수축하고 이완하며 침입을 받아들이는 내부의 감각. 현종의 손가락이 질 안에서 굽어지고, 벽면을 더듬으며 더 깊이 파고들었다. 두 번째 손가락이 추가되었다. 꽉 찬 감각. 질벽이 늘어나며 느껴지는 묵직한 압박.
소은은 자신도 모르게 다리를 오므렸다. 속옷이 젖어 있었다. 애액이 허벅지 안쪽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 촉촉한 감촉이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렬한 것을 갈망하게 만들었다. 소은은 떨리는 손을 속바지 안으로 밀어넣었다. 환영 속 현종의 손길을 재현하듯, 젖은 음순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넣었다. 질구는 이미 흠뻑 젖어 손가락을 단숨에 빨아들였다. 환영 속 그의 손가락과 내 손가락이 겹쳐지는 듯한 착각. 소은은 질 안쪽에서 손가락을 굽히며 조용히 신음했다.
환영은 계속되었다.
현종의 손가락이 질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느리고 깊게, 이내 리듬을 타며 점차 빨라졌다. 밀어넣고 빼낼 때마다 질구에서 나는 젖은 소리. 손가락 마디가 굽어질 때마다 질 전벽의 민감한 부위가 자극되었다. 소은의 클리토리스가 저절로 맥박치기 시작했다. 직접 닿지 않았는데도, 질 안쪽의 자극만으로도 음핵이 붓고 욱신거렸다. 소은은 다른 손으로 음핵을 문질렀다. 젖은 손끝이 부풀어 오른 작은 돌기를 빙글빙글 문지르자, 눈앞이 하얘졌다.
현종의 엄지손가락이 음핵을 찾았다. 젖은 손끝이 부풀어 오른 작은 돌기를 빙글빙글 문질렀다. 소은의 허리가 들썩였다. 눈앞이 하얘졌다. 직접적인 자극에 질벽이 더욱 강하게 수축했다. 소은은 현종의 손가락과 자신의 손가락을 동시에 느끼며 허리를 움직였다. 질벽이 두 손가락을 더 깊이, 더 강하게 조여들었다.
그의 입술이 소은의 귀에 닿았다. 실제 목소리가 아닌, 가슴에 직접 울리는 파동 같은 속삭임.
*'네가... 내 꿈을 망쳐놓았다.'*
*'어떻게 해야 너를 지울 수 있지.'*
*'아니다. 지우고 싶지 않다.'*
그 말들이 소은의 질 안쪽을 더욱 뜨겁게 달구었다. 현종의 손가락 움직임이 빨라졌다. 질벽을 문지르고, 음핵을 압박하고, 동시에 다른 손은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세 군데의 자극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소은은 자신의 손가락을 더 빠르게 움직이며 현종의 리듬을 따라잡았다. 손가락이 질 안에서 더 깊이, 더 거칠게 움직였다.
소은은 자신이 오르가즘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환영과 현실의 자극이 뒤섞이며 질 근육이 리드미컬하게 수축하기 시작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수축과 이완. 그때마다 애액이 더 많이 흘러나왔다. 음핵이 현종의 엄지와 자신의 손끝 아래서 마지막으로 크게 뛰었다.
절정이 밀려왔다.
소은은 손수건을 입에 물었다. 신음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리고 이 말도 안 되는 쾌락의 실체를 부정하기 위해. 그러나 몸은 정직했다. 질벽이 몇 차례 더 경련했고, 허벅지 안쪽이 애액으로 흠뻑 젖었다. 질구가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며 끈적한 액체를 더 짜내는 감각이 선명했다. 손가락을 빼내자 애액이 실처럼 늘어져 허벅지에 떨어졌다. 땀이 온몸을 적셨다.
환영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비취색 안개가 옅어지고, 현종의 모습이 종이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그가 소은의 목덜미에 남긴 입맞춤의 잔상, 그리고...
*'네가 내 것이었으면.'*
그 한마디였다.
소은은 두루마리 위에 엎드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속옷이 젖어 허벅지에 달라붙었다. 질 안쪽은 아직도 쑤셨다. 충족되지 않은 허기와, 충족되어버린 수치가 뒤섞인 감각.
떨리는 손으로 두루마리를 다시 들추었다. 비취색 안개가 완전히 걷히자, 종이 위에는 여전히 선왕의 필체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소은은 이제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는 것을. 이것은 마음을 읽는 매개였다. 아니, 마음을 직접 전달하는 통로였다.
그리고 자신이 방금 본 것은... 현종의 가장 은밀한 욕망이었다.
냉철하고 완벽한 군주.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약점으로 여기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허락하지 않는 그가. 보잘것없는 지밀 궁녀인 자신에게 이런 집착을 품고 있었다.
소은은 떨리는 손끝으로 입가를 감추었다. 들키면 안 될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손수건을 문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공포보다도 더 강렬한 감정이 가슴을 채웠다. 이 높은 분, 이 궁궐 전체가 무릎 꿇는 그분의 마음을, 오직 자신만이 꿰뚫어보고 있다는 사실. 자신만이 그의 떨림을, 그의 갈망을, 그의 부끄러운 고백을 알고 있다는 사실. 그 우월감이 혈관을 타고 사지 끝까지 퍼져나갔다. 손끝이 저릿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우월감의 이면에서 차가운 공포가 피어올랐다. 이 벽서가 내 마음도 읽어내는 것이라면, 나도 언젠가 들키는 것이 아닐까. 현종의 욕망을 훔쳐보는 이 쾌락이, 결국 나 자신의 마음까지 벌거숭이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소은은 두루마리를 움켜쥔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이건 마치 양날의 칼이었다. 그의 마음을 읽을수록, 내 마음도 이 종이 위에 새겨질 것이다. 그 생각에 질 안쪽이 다시 한 번 뜨겁게 수축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심장이 갈비뼈를 찢을 듯 뛰었다.
그것은 금지된 쾌락이었다. 왕의 마음을 훔쳐본 죄는 죽음으로도 부족할 터였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더욱 달콤했다. 소은은 젖은 속옷을 갈아입으며 생각했다. 이 능력은 무엇인가. 선왕이 남긴 이 벽서는 왜 하필 자신의 손에 들어왔는가. 그리고 현종은 정말로 매일 밤 꿈에서 자신을 찾고 있는가.
밤 공기가 땀에 젖은 피부를 스치자 소은은 떨었다. 이제 막 시작되었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 감정, 이 능력은 결코 무료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
다음 날 밤, 현종이 평소보다 일찍 침소로 돌아왔다.
소은은 여느 때처럼 무릎 꿇고 그를 맞았다. 용포 자락이 시야의 가장자리를 스치고, 용뇌 향이 공기 중에 퍼졌다. 평소와 다름없는 풍경.
그러나 소은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다.
현종이 평상에 앉아 소매를 정리하는 사소한 동작 하나에도, 옅은 비취색의 잔영이 어른거렸다. 그가 무심히 내뱉은 "차를 올려라"라는 짧은 명령에도, 달콤쌉싸름한 욕망의 향기가 은은하게 풍겼다.
소은은 조심스럽게 찻잔을 올리며 그의 손끝을 슬쩍 보았다. 그 손가락이 방금 전까지 꿈속에서 자신의 몸을 더듬고 있었다. 그 생각만으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유두가 옷 안에서 다시 딱딱하게 일어섰다. 소은은 무릎을 더욱 오므리며 질 입구가 조여드는 것을 애써 무시했다.
찻잔을 받아드는 현종의 손가락이 소은의 손끝을 스쳤다. 일부러 그런 것인지, 우연인지 알 수 없는 짧은 접촉. 그러나 그 순간 소은의 손끝에서 불꽃이 튀는 듯한 열기가 번졌다. 현종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찻잔의 찻물이 작게 일렁였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손을 거두었지만, 그 짧은 접촉만으로도 소은의 손등에 남은 감촉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현종은 조용히 차를 마셨다. 소은은 물러나 한쪽에 무릎 꿇고 대기했다. 침소 안은 고요했다. 촛불 심지 타는 소리만이 유일한 소리.
그런데도 소은은 들을 수 있었다. 현종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오늘은 유난히 가깝구나.'*
*'목덜미가 그런데...'*
*'안 된다.'*
현종의 표정은 여전히 무심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소은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은은 그것을 낱낱이 읽을 수 있었다.
우월감이 다시 피어올랐다. 동시에, 다른 감정도. 방금 전 그 환영 속에서 느꼈던 쾌락의 기억이 질 안쪽을 다시 뜨겁게 달구었다. 소은은 숨을 고르려 애썼다. 들키면 안 된다. 이 미세한 떨림, 이 홍조, 이 젖은 숨결을 들켜서는 안 된다. 그러나 바로 그 '들키면 안 된다'는 긴장이 더욱 그녀를 흥분시켰다.
현종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소은아."
짧은 부름이었다. 그런데 그 목소리에서 비취색과 함께 옅은 홍색의 실타래가 번져나왔다. 불안이었다. 자신이 무언가 잘못 말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신의 마음이 들키는 건 아닌지 두려워하는 감정.
소은은 고개를 숙였다. "예, 전하."
현종은 잠시 망설였다. 그의 손가락이 찻잔 가장자리를 스쳤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눈치채지 못했을 떨림이 소은의 시선에는 선명하게 포착되었다. 그의 턱선이 굳어졌다가 풀리기를 반복했다.
"네가 요즘..."
침묵.
현종의 손이 무릎 위에서 살짝 움켜쥐어졌다.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내 꿈에 자주 나타나는구나."
소은의 몸이 굳어졌다.
현종은 무심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의 손은 여전히 주먹을 쥔 채였고, 굳은 턱선은 더욱 단단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무슨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거기 있는 꿈이다. 네가 시중드는 모습이 반복되는 그런 꿈."
그는 짧게 웃었다. 웃음소리가 지나간 자리에 비취색이 더 짙게 번졌다. "별 뜻은 없다. 다만 오늘따라 네 얼굴을 보니 그 꿈이 떠올라 말해본 것뿐."
소은은 숨을 죽였다.
현종은 자리에서 일어나 침전 안쪽으로 향했다. 그의 뒷모습에서 짙은 비취색이 피어올랐다. 거짓말이었다. 그 꿈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었다. 매일 밤 더 깊어지고, 더 선명해지고, 더 위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현종은 그걸 알면서도, 알기 때문에 오히려 소은에게 이 말을 건넨 것이었다.
소은은 깨달았다.
자신이 읽어낸 그의 욕망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다. 실제로 현종의 꿈에 반영되고 있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꿈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현종은 자신도 모르게 그 꿈의 단서를 소은에게 흘린 것이다.
마치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들켜보기를 바라는 것처럼.
촛불이 흔들렸다. 소은의 손끝이 떨렸다.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는 것을, 이 벽서의 힘이 이미 두 사람을 얽어매기 시작했다는 것을.
현종이 침전 깊숙한 곳에서 다시 입을 열었다.
"소은아."
두 번째 부름에는 더 짙은 색이 실려 있었다. 비취색과 홍색, 그리고 그 사이로 번지는 검은 빛이 소은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 색들은 숨 막힐 듯 달콤하면서도 날카로운 향을 풍겼다.
"내일 밤에도... 네가 시중들도록 해라."
짧은 명령이었다. 그러나 소은은 들을 수 있었다. 그 말 뒤에 숨은, 현종 자신조차 인식하지 못한 진짜 마음을.
*'네가 아니면 안 된다.'*
*'다른 궁녀는 안 된다.'*
*'내 꿈을 망친 건 너니까.'*
*'그러니 네가 책임져야 한다.'*
소은은 깊이 고개 숙였다. 그녀의 입가에 번진 미소를 감추기 위해.
"명을 받들겠습니다, 전하."
그날 밤, 소은은 다시 두루마리를 펼쳤다. 촛불 아래서 선왕의 벽서는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그 마지막 장은 여전히 공백이었다.
*'이 기록은 읽는 이의 마음을 먹고 자란다.'*
소은은 그 문장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그리고 알았다. 이 공백을 채울 것은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을. 현종의 욕망을 읽을 때마다, 자신의 마음도 이 벽서에 기록될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공포보다 더 강렬한 것은 호기심이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의 끝에 도사린, 금지된 욕망.
소은은 두루마리를 가슴에 품었다. 밤새도록, 현종의 마음에서 흘러나온 비취색 잔영이 그녀의 꿈을 채웠다.
그리고 그 꿈속에서, 현종의 손끝은 어젯밤보다 더 깊은 곳을 더듬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소은의 허벅지 안쪽을 타고 올라왔다. 혀끝이 음핵을 찾아 빙글빙글 돌렸다. 소은은 꿈속에서 허리를 뒤틀며 신음했다. 현종의 혀가 음순을 가르고 질구를 핥았다. 애액이 그의 입술에 묻어 반짝였다. 그는 그것을 핥아 삼키며 낮게 웃었다.
그 쾌락이 너무나 생생해서, 소은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분간할 수 없었다. 이것은 꿈인가, 아니면 벽서가 보여주는 또 다른 환영인가. 아니면, 실제로 현종이 지금 이 순간 꾸고 있는 꿈에 내가 들어와 있는 것인가. 혼란이 쾌락과 뒤섞여 더욱 짙은 전율을 일으켰다.
그리고 꿈속의 현종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의 눈이 소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꿈속에서, 환영 속에서, 그는 분명히 소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네가 보고 있구나.'*
소은은 비명을 삼키며 잠에서 깨어났다.
온몸이 식은땀에 젖어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꿈이었다. 분명 꿈이었다. 그러나 그 마지막 한마디는 꿈속 현종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현실의, 살아있는 현종의 마음에서 직접 울려온 파동이었다.
소은은 벌떡 일어나 두루마리를 바라보았다.
마지막 공백이었던 페이지에, 한 줄의 글이 새겨져 있었다. 선왕의 필체도, 현종의 필체도 아닌, 낯선 글씨.
*'읽는 자여, 이제 네 마음도 들킨 것이다.'*
그리고 그 아래, 더 작은 글씨로.
*'대왕대비께서 벌써 강녕전의 벽장을 살피라 명하셨다.'*
소은의 손에서 두루마리가 떨어졌다. 촛불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이내 꺼졌다. 어둠 속에서, 복도 저편에서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소은은 어둠 속에서 두루마리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발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적어도 서넛은 되는 인원이었다. 감찰 상궁의 낮고 엄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이쪽을 샅샅이 뒤져라."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그러나 그 공포 속에서도, 소은의 입가에는 여전히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가 나를 꿈꾸는 한, 나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벽서가 나를 배신해도, 이미 그의 마음은 내 안에 새겨져 있으니까.
발소리가 문 앞에서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