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향기로도 전부 읽을 수 없다는 걸, 나는 그를 만나고 나서야 알았다.
백수진의 전화는 새벽 3시 12분에 걸려왔다. 정태준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기 직전, 그의 침대 시트에 밴 소독약과 섹스 체취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윤세아 씨, 병원 기록 열람 기록이 아까부터 내 컴퓨터에 떠 있어요. 이걸 정태준 선생님 병원 감사팀에 전달할지, 아니면 좀 더... 생산적인 대화를 나눌지는 당신 선택이에요."
백수진의 목소리는 칵테일을 흔드는 셰이커 소리처럼 차갑고 정확했다. 나는 정태준의 정액이 아직 허벅지 안쪽에 끈적하게 배어 있는 채로, 그의 서재 의자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 화면에는 내가 삼십 분 전에 열람한 '이경호, 2021년 11월 7일, 복부 대동맥류 파열 수술 중 사망'이라는 문구가 아직 떠 있었다.
"뭘 원하시죠."
"내일 밤 10시, 노을에서. 혼자 와요. 그리고 그 능력, 나한테는 통하지 않으니까 시도하지 말고."
전화가 끊겼다. 나는 노트북을 닫고 화장실로 걸어갔다. 정태준이 거울 앞에서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있었다. 그의 손이 아직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의 등 뒤로 다가가 떨리는 손목을 잡았다.
"왜 그래요?"
그의 목소리에는 아직 분노가 남아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의 손가락을 하나씩 입에 넣었다. 검지, 중지, 약지. 소독약 냄새가 혀끝에 퍼졌다. 그의 손가락이 내 입 안에서 떨렸다. 나는 그 떨림을 혀로 감쌌다. 손가락 사이사이를 혀끝으로 핥고, 손톱 밑을 살짝 깨물었다. 그의 떨림이 내 혀에 진동으로 전해졌다.
"내일 중요한 약속이 있어요. 당신에 관한 거예요."
그가 내 턱을 잡아 올렸다. 엄지와 검지가 턱뼈를 단단히 눌렀다.
"무슨 약속."
"당신을 지키는 약속."
나는 그의 손을 내 볼에 대고 움직였다. 떨림이 내 광대뼈를 타고 전해졌다. 이 떨림을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는 아직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떨림을 더 이상 무기로 쓰지 않겠다는 결심은 할 수 있었다.
다음 날 밤, 나는 호텔 바 '노을'의 문을 열었다.
백수진은 바 중앙의 둥근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녀 앞에는 마티니 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하나는 그녀의 것, 하나는 나를 위한 것. 그녀는 나를 보자 미소 지었지만, 그 미소는 바텐더가 칵테일을 저을 때 표면에 생기는 소용돌이 같았다. 겉은 우아하고 안은 냉혹한.
"윤세아 씨, 오길 잘했어요. 자, 앉아요."
나는 그녀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의 체취를 읽으려 하지 않았다. 필요 없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었다. 완벽한 헤어스타일, 정확한 각도로 접힌 냅킨, 칵테일 잔을 쥔 손가락의 미세한 각도까지 계산된 자세.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직업이었다. 정보를 수집하고 통제하는 것.
"당신 병원 기록 열람 IP 로그, 내가 지금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정태준 선생의 의료 과실 기록 요약본도. 이것만 언론에 흘리면, 글쎄요. 유망한 외과의사의 경력은 끝이겠죠. 그리고 당신의 조향사 경력도?"
그녀가 USB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3년 전, 내가 망친 전시회의 기록. 변질된 향, 쓰러진 VIP, 계약 파기.
"내가 원하는 건 간단해요. 당신의 능력을 나에게 빌려주는 것. 밤 10시 이후, 내가 지정하는 사람들의 체취를 읽고 그들의 비밀을 보고해요. 일 년만. 그러면 이 모든 걸 없던 일로 해줄게요."
나는 마티니 잔을 집어 들었다. 진과 베르무트의 향이 코를 찔렀다. 완벽한 배합. 너무 완벽해서 역겹도록.
"당신은 내 능력의 대가가 뭔지 알아요?"
"물론이죠. 사용 후 24시간 동안 당신의 트라우마가 통제 불능으로 노출되는 것. 조향 실패의 냄새가 당신 몸에서 풍기는 거겠죠. 알고도 제안하는 거예요."
그녀는 잔을 빙글 돌리며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눈동자에 비친 나는 생각보다 작았다.
"그런데 말이죠, 윤세아 씨. 그 망한 전시회 이후로 당신, 단 한 번도 새 향수를 발표하지 못했죠? 그 트라우마가 당신의 재능을 완전히 마비시켰다는 소문, 사실인가요? 내 정보에 따르면 당신은 지금까지도 실패작을 만지작거리며 과거에 갇혀 있더군요."
그녀의 말이 내 안의 오래된 비명을 건드렸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태준. 그 의사,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위치에 있어요. 그의 병원 감사팀은 이미 그를 주시하고 있고, 나는 단지 그 자료를 전달할 사람을 기다리는 중이에요.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노트북은 메일 전송 대기 상태랍니다. 당신이 거절하면, 클릭 한 번으로 끝이에요."
그녀가 스마트폰을 들어 화면을 내게 보여주었다. 정말로 메일 작성 화면이 떠 있었다. 수신자는 병원 감사팀. 첨부 파일은 정태준의 수술 기록 전체와 내 IP 로그.
나는 잔을 내려놓고 가방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내 시그니처 향수, '오드 트라우마'. 실패한 조향작에서 구해낸, 변질된 향료로 만든 것. 나는 마개를 열고 손목과 목덜미에 뿌렸다.
쇠 냄새가 공기 중에 퍼졌다. 상한 꽃과 타버린 나무, 그리고 뭔가 썩어가는 듯한 달콤함이 뒤섞인, 누구도 향수라고 부르지 않을 냄새.
백수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이게 바로 나예요, 백수진 씨."
나는 한 번 더 뿌렸다. 이번에는 그녀의 마티니 잔을 향해. 쇠 냄새가 진의 투명한 향을 오염시켰다. 그녀가 숨을 들이켰다. 순간 그녀의 얼굴에서 혈색이 사라졌다. 그녀의 콧구멍이 벌름거렸고, 목젖이 경련하듯 움직였다. 그 완벽한 여자가 손을 들어 코와 입을 가렸다.
"이게 느껴져요? 쇠 냄새가 당신의 완벽한 마티니 잔에 번지는 게. 이게 바로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진짜 사람 냄새예요. 정보가 아니라 살아 있는, 결함으로 가득한 인간의 냄새."
백수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의 체취에서 처음으로 균열이 느껴졌다. 분노와, 그리고 희미한 두려움. 완벽한 통제를 원하는 자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마주할 때 나는 냄새. 그녀의 손이 마티니 잔을 움켜잡았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그녀가 갑자기 헛구역질을 했다. 우아한 외피가 찢어지며 나온 구역질은 그녀 자신도 예상치 못한 듯했다. 그녀의 눈에 처음으로 공포가 스쳤다.
"이... 이 냄새..."
그녀가 더듬거렸다. 그녀의 체취가 요동쳤다. 그 순간, 나는 보았다. 그녀의 공허한 향기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환영을. 텅 빈 수술실, 바닥에 흩어진 깨진 향수병 조각들, 그리고 그 파편 사이로 번지는 핏빛. 한순간의 잔상이었지만, 그 안에는 오래전 무언가를 잃은 자만이 풍기는 절망이 농축되어 있었다. 그녀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완벽했던 자세가 무너지고 있었다.
"당신이 수집하는 정보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해요. 정보는 가장 완벽한 향기라고 했죠? 틀렸어요. 진짜 향기는 결함 속에 있어요. 당신이 절대 가질 수 없는 것."
나는 USB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마티니 잔 속에 떨어뜨렸다. 액체가 튀어 그녀의 완벽한 재킷에 얼룩을 남겼다.
"정태준의 기록을 공개해요. 내 기록도. 그런다고 우리가 망가지지 않아요. 오히려 당신이 가진 정보의 무력함이 증명될 뿐이에요."
백수진은 잠시 나를 노려봤다. 그녀의 칵테일 잔 속에서 USB가 진과 베르무트에 잠겨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가 일어섰다. 일어서는 동작조차 평소의 완벽함을 잃고 삐걱거렸다.
"당신, 방금 뭘 한 건지 알고 있어요?"
"알아요. 당신의 협박을 거절한 거예요. 그리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당신도 나와 같은 능력자죠? 하지만 당신은 능력을 잃은 지 오래됐고, 그래서 정보로 대체하려는 거예요. 안타깝지만, 당신이 모은 정보로는 절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어요."
백수진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서서 바를 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에서 나는 쓸쓸한 향기를 맡았다. 자신의 능력을 잃은 자만이 풍길 수 있는, 공허한 향기. 그녀의 발걸음은 바 출입구에서 잠시 멈칫했다. 그녀가 어깨 너머로 나를 돌아봤다. 입술이 무언가 말하려는 듯 움직였지만, 결국 아무 말도 없이 문을 밀고 사라졌다.
나는 바에 남아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정태준에게.
*태준 씨, 당신의 병원 기록을 몰래 열람했어요. 당신이 3년 전 이경호라는 환자를 잃은 수술의 모든 기록을 봤어요. 당신의 손 떨림이 단순한 신경 손상이 아니라 죄책감 때문이라는 것도 알겠어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건지, 아니면 당신의 결함을 소유하고 싶은 집착인지 아직도 잘 몰라요. 하지만 당신의 떨리는 손을 피하지 않고 잡은 순간, 나는 그 떨림 자체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떨림을 없애고 싶지 않았어요. 그 떨림이 곧 당신이니까.*
*내 조향 실패작 냄새, 쇠 냄새와 썩은 꽃향기가 뒤섞인 그 냄새가 나예요. 당신이 그걸 '가장 인간적인 향기'라고 불러준 순간, 나는 처음으로 내 결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어요. 사람의 비밀을 아는 건 사랑이 아니에요. 사람의 비밀을 알고도 그 사람을 떠나지 않는 게 사랑이에요.*
*나, 당신을 떠나지 않을게요. 당신이 나를 용서하지 않아도. 당신의 손이 평생 떨려도. 결함을 감추는 법이 아니라, 결함을 사랑하는 법을 당신에게 배웠으니까.*
*윤세아 올림*
나는 편지를 접어 바텐더에게 건넸다.
"정태준 씨가 오면 전해주세요."
바텐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끝이 편지를 받는 순간, 나는 보았다. 그의 손에서 스치는 환영을.
피비린내. 어두운 골목. 누군가의 등을 떠미는 손. 추락하는 그림자. 그리고 바텐더의 얼굴에 스치는, 죄책감이라고 하기엔 너무 무심한 무표정.
환영은 1초도 안 되어 사라졌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바텐더는 여전히 정중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때 바텐더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저기, 손님. 방금 그 여성분, 백수진 씨 말인데요. 그분이 두고 간 게 있어서요."
바텐더가 바 카운터 아래에서 작은 명함을 꺼내 내 앞으로 밀었다. 백수진의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그 아래에 손으로 눌러쓴 듯한 글씨.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해 - 백수진*
"그분이 나가시면서 '저 여자에게 꼭 전해달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모든 향기에는 어두운 층계가 있다고, 조향사라면 그걸 모를 리 없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명함을 집어 들었다. 바텐더의 손이 내 손가락에 스쳤다. 그 순간, 환영이 다시 떠올랐다. 피비린내. 비명. 그리고 이번에는 더 선명하게—그의 손이 누군가의 등을 떠미는 순간, 피해자의 얼굴이 잠시 보였다. 그 얼굴은 놀랍게도 백수진과 닮아 있었다. 아니, 백수진의 젊은 시절? 아니면 그녀의 가족?
나는 숨을 들이켰다. 바텐더는 이미 다른 손님의 잔을 닦으며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의 어깨 너머로 나는 그가 흥얼거리는 노래를 들었다. 이상하리만치 익숙한 멜로디. 백수진이 바를 나갈 때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던 벨소리와 똑같은 멜로디였다.
내 능력이 보여준 그의 비밀. 가슴 한쪽이 뜨거워졌다. 파헤치고 싶은 충동이 목구멍까지 치밀었다. 백수진의 공허한 향기, 바텐더의 피비린내, 그리고 그들을 연결하는 멜로디. 모든 조각이 손에 잡힐 듯 아른거렸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파고들고 싶었다. 그들의 비밀을, 상처를, 죄를. 하지만 그건 내가 정태준에게 했던 짓과 똑같았다. 사랑이 아니라 집착. 이해가 아니라 소유. 나는 천천히 손바닥을 폈다. 손톱자국이 붉게 남아 있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상처와 죄를 안고 살아간다. 그걸 다 알려고 하는 게 오히려 폭력일 수 있다는 걸, 나는 이제야 배웠다. 하지만 백수진과 이 바텐더 사이에 무언가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나는 바를 나왔다.
새벽 1시 24분, 내 아파트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정태준이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내가 쓴 편지가 구겨진 채 쥐어져 있었다.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평소의 냉철함 대신 무언가 무너져 내린 듯한 표정이었다. 그의 체취에서 소독약 냄새가 평소보다 진하게 풍겼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나는 보았다. 수술실의 밝은 조명 아래 열린 복부, 새어 나오는 피, 모니터에서 평평하게 울리는 심박 알람, 그의 손에서 미끄러지는 메스.
환영은 더 이상 그를 판단하는 증거가 아니었다. 그건 그저 그의 일부였다. 그가 매일 밤 안고 살아가는 무게.
"이 편지..."
그의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진심이에요?"
나는 대답 대신 그의 손을 잡았다. 떨리고 있었다. 수술 후보다 더 심하게. 나는 그 떨리는 손을 내 입술로 가져갔다. 손가락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검지의 첫 마디, 중지의 굳은살, 약지의 미세한 흉터까지. 입술이 닿을 때마다 그의 손가락이 더 심하게 떨렸다.
"내 냄새 맡아요."
나는 그의 손을 내 목덜미로 이끌었다. 몇 시간 전에 뿌린 오드 트라우마의 잔향이 아직 남아 있었다. 쇠 냄새, 썩은 꽃, 타버린 나무.
"이게 나예요. 내가 망친 조향작의 냄새. 내가 평생 숨기고 싶었던 실패작. 당신이 '가장 인간적인 향기'라고 불러준 그 냄새."
그의 손가락이 내 목덜미를 쓸었다. 떨리는 손길이 내 경동맥을 따라 쇄골까지 내려왔다. 나는 그의 손을 내 가슴 위로 눌렀다. 옷 위로, 내 심장이 그의 떨리는 손바닥 아래에서 뛰고 있었다.
"당신의 떨림을 사랑해요."
나는 그의 눈을 보며 말했다.
"그 떨림을 멈추게 하려고 한 적 없어요. 그 떨림이 바로 당신이니까."
그가 나를 끌어안았다. 그의 팔이 내 허리를 감싼 힘이 너무 강해서 숨이 막힐 정도였다. 그의 얼굴이 내 어깨에 묻혔다. 그가 내 향기를 들이마셨다. 오드 트라우마의 쇠 냄새와 내 땀 냄새가 뒤섞인, 어떤 조향사도 만들 수 없는 날것의 향기.
"나도 당신 냄새를 사랑해요."
그의 목소리가 내 쇄골에 진동으로 전해졌다.
"처음 당신을 만난 날, 소독약 냄새를 맡고도 도망가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어요. 당신이 내 손 떨림을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
그가 나를 들어 올렸다. 나는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우리는 침대로 걸어갔다. 더 이상 호텔 바의 은밀한 만남도, 서로의 비밀을 탐색하는 게임도 아니었다. 그저 두 사람.
그가 나를 침대에 내려놓고 내 옷을 벗겼다. 그의 떨리는 손이 내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서툴렀다. 손이 떨려서 두 번이나 단추를 놓쳤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천천히."
내가 그의 손을 이끌어 마지막 단추를 풀었다. 블라우스가 벗겨지고 브래지어가 드러났다. 그의 손가락이 내 브래지어 훅을 더듬었다. 떨리는 손가락이 두 번 실패하고 세 번째에 풀었다. 브래지어가 느슨해지며 내 가슴이 드러났다. 그는 내 유두를 입에 넣었다. 그의 혀가 떨리며 내 유두를 핥았다. 혀끝이 유두의 돌기를 하나하나 긁고 지나갔다. 그 떨림이 내 유두 끝에서 시작해 가슴 전체로, 그리고 아랫배까지 전류처럼 번져갔다. 나는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그의 입술이 내 유두를 빨아들일 때마다 찰칵거리는 젖은 소리가 났다.
그가 내 바지를 벗겼다. 그의 손가락이 내 팬티 위로 미끄러졌다. 면직물 너머로 그의 손가락 떨림이 내 클리토리스에 전해졌다. 규칙적이지 않은 진동. 그의 손가락이 내 팬티를 벗기고 내 음부를 직접 만졌다. 차가운 공기와 뜨거운 손가락의 온도 차이가 선명했다.
그의 검지가 내 질 입구를 쓸었다. 나는 이미 젖어 있었다. 애액이 질 입구를 넘어 허벅지 안쪽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내 질 안으로 들어왔다. 떨리는 손가락이 내 질벽을 문질렀다. 질벽의 주름이 그의 손가락을 감싸고, 손가락이 들어올 때마다 젖은 소리가 났다. 애액이 손가락 마디를 타고 흘러내려 그의 손등을 적셨다. 나는 신음했다.
"당신 안이 뜨거워요. 그리고 엄청나게 젖었어요."
그가 속삭였다. 그의 손가락이 내 질 안에서 구부러졌다. 질벽을 긁으며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애액이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그의 손목을 잡았다.
"더 깊이."
그의 손가락이 더 깊이 들어왔다. 나는 그의 손가락 떨림을 내 질벽으로 느꼈다. 그 떨림이 내 안에서 진동처럼 퍼졌다. 질벽의 주름 하나하나가 그의 떨리는 손가락에 반응하며 수축했다. 나는 그의 바지를 풀었다. 그의 성기가 이미 단단하게 발기해 있었다. 귀두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표면에 핏줄이 불거져 나와 있었다. 나는 그의 성기를 잡았다. 그의 귀두가 내 손바닥에서 떨렸다. 나는 엄지로 귀두의 끝을 문질렀다. 투명한 액체가 스며 나왔다.
"들어와요."
내가 다리를 벌렸다. 그가 내 위로 올라왔다. 그의 성기 끝이 내 질 입구에 닿았다. 나는 그의 엉덩이를 내 쪽으로 당겼다. 그의 성기가 내 질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귀두가 질 입구를 통과할 때, 질벽이 한 번에 벌어지며 그를 감쌌다.
천천히. 그의 떨리는 성기가 내 질벽의 주름을 하나씩 밀어내며 깊이 들어왔다. 질벽의 주름이 성기를 따라 펴졌다가 다시 오므라들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의 근육이 나와 똑같이 긴장하고 있었다. 그의 성기가 내 가장 깊은 곳까지 닿았을 때, 나는 그의 눈을 보았다.
"내 안에서 떨리고 있어요."
"그게 내 전부예요."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규칙적이지 않은 리듬. 그의 떨림 때문에 불규칙한 리듬. 하지만 그 불규칙함이 나를 더 흥분시켰다. 그의 성기가 질벽을 쓸며 들어올 때마다 질벽의 주름이 성기를 더 강하게 조였다. 애액이 그의 성기와 내 질벽 사이에서 찰칵거리는 소리를 냈다. 성기가 빠져나갈 때는 질벽이 성기를 붙잡는 듯 달라붙었고, 들어올 때는 애액이 밀려나며 음부 전체가 젖은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방 안에 끈적하게 울렸다.
그의 성기가 내 질벽의 특정 지점을 압박할 때마다 내 클리토리스가 간접적으로 자극받았다. 나는 그의 목을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그의 입술도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의 떨리는 혀를 내 입 안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숨소리가 내 입 안에서 진동으로 울렸다.
"당신 냄새가 나요."
그가 내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쇠 냄새. 썩은 꽃. 그리고... 지금 당신 안에서 나는 냄새."
그의 성기가 내 질 안에서 더 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그의 엉덩이에 다리를 감았다. 내 질벽이 그의 성기를 더 깊이 조였다. 애액이 그의 성기를 타고 흘러내려 허벅지 사이를 적셨고, 침대 시트에 젖은 자국이 번졌다.
"당신의 떨리는 손이 내 몸을 만질 때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당신의 떨리는 성기가 내 안에서 움직일 때마다..."
그의 움직임이 더 거칠어졌다. 그의 떨림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나는 그의 눈을 보았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나는 보았다. 수술실의 환영이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눈에 두려움이 없었다. 그저 기억일 뿐이었다.
"나는 당신의 결함을 사랑해요."
내가 속삭였다.
"당신의 죄책감을, 당신의 떨림을, 당신이 매일 밤 중얼거리는 '망쳤어'를."
그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가 내 안에서 가장 깊이 박힌 채로, 그의 이마가 내 이마에 닿았다. 그의 땀이 내 얼굴에 떨어졌다. 소독약 냄새와 섹스 체취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그의 숨소리가 내 입술에 닿았다.
"나도 당신의 결함을 사랑해요."
그가 처음으로 말했다.
"당신의 실패한 향수. 당신의 집착. 당신이 내 비밀을 훔쳐본 그 손. 전부."
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더 깊고, 더 느리게. 그의 성기가 내 질벽 전체를 쓸며 들어왔다 나갔다. 질벽의 주름이 성기를 따라 늘어났다가 다시 감싸는 감촉이 선명했다. 내 클리토리스가 그의 치골에 닿을 때마다 전기가 통과하는 듯한 쾌감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그의 손가락이 내 유두를 찾았다. 떨리는 손가락이 내 유두를 비볐다. 엄지와 검지로 유두를 굴릴 때마다 쾌감이 가슴에서 시작해 아랫배를 관통했다. 나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태준 씨..."
"말해요. 당신이 뭘 느끼는지."
그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서 진동했다. 그의 성기가 내 질벽의 특정 지점을 압박했다. 나는 그의 등에 손톱을 세웠다.
"당신의 떨림이... 내 안에서... 나를... 나를..."
오르가즘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 질벽이 그의 성기를 더 강하게 조였다. 질벽이 경련하듯 수축하며 성기를 압박했다. 그의 움직임이 더 빨라졌다. 나는 그의 눈을 보았다. 그의 눈동자 속에 내 얼굴이 비쳤다. 홍조로 붉어진 볼, 헝클어진 머리카락, 열린 입술.
그의 눈동자 속에서 나는 보았다. 3년 전 전시회의 환영. 변질된 향기에 쓰러지는 VIP들. 깨지는 유리병. 나를 향한 비난의 시선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그 기억이 더 이상 나를 찌르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절정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의 성기가 내 안에서 더 단단해졌다. 귀두가 더 부풀어 올라 질벽을 꽉 채웠다. 그의 떨림이 절정에 달했다. 그의 손이 내 엉덩이를 움켜잡았다. 그의 손톱이 내 살을 파고들었다.
"함께... 가요..."
내가 속삭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깊이 밀고 들어왔다. 그의 성기가 내 자궁 경부에 닿는 순간, 오르가즘이 나를 덮쳤다. 내 질벽이 경련하며 그의 성기를 압박했다. 질벽의 근육이 파도처럼 수축하며 성기를 조였고, 애액이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동시에 그가 내 안에서 사정했다. 그의 정액이 뜨거운 줄기로 내 질벽을 채웠다. 그의 성기가 내 안에서 떨며 정액을 뿜어내는 감촉이 내 오르가즘을 연장시켰다. 정액이 질벽을 타고 흘러내리고, 내 애액과 뒤섞이며 끈적한 소리를 냈다.
나는 그의 목을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우리는 서로의 입 속에서 숨을 쉬었다. 그의 정액이 내 질 밖으로 흘러내려 시트를 적셨다. 그의 떨리는 손이 내 땀에 젖은 이마를 쓸었다.
한참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내 안에서 천천히 물러났다. 그의 성기가 빠져나오자 질벽이 아쉽게 수축했고, 그의 정액과 내 애액이 뒤섞여 허벅지 사이로 흘러내렸다. 그는 내 옆에 누워 나를 끌어안았다. 그의 손이 내 배 위에 올려졌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내 손, 평생 이럴 거예요."
그가 말했다.
"나아지지 않을 거예요."
나는 그의 손 위에 내 손을 포갰다. 그리고 그의 떨리는 손가락 사이로 내 손가락을 끼워 넣었다.
"그럼 평생 내가 잡아줄게요."
한참 후, 우리는 다시 호텔 바 '노을'로 향했다. 내가 그에게 말했다. 처음 만난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바는 한산했다. 우리는 처음 만났던 그 바 테이블에 앉았다. 바텐더가 다가와 주문을 받았다. 그가 칵테일을 만들기 위해 손을 뻗는 순간, 나는 다시 보았다.
그의 손에서 스치는 환영. 피비린내. 어두운 골목. 누군가의 등을 떠미는 손. 추락하는 그림자. 그리고 그의 얼굴에 스치는 무심한 무표정.
나는 눈을 깜빡였다. 바텐더는 여전히 정중하게 미소 지으며 셰이커를 흔들고 있었다.
"오늘 밤도 소독약 냄새가 나나요?"
정태준이 내 옆에서 물었다. 그런데 그의 시선은 바텐더의 손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저 바텐더..."
정태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왼손 약지에 있는 흉터. 수술용 메스에 베인 자국이에요. 게다가 칵테일을 젓는 동작이... 마치 봉합하듯 정확해요."
나는 숨을 들이켰다. 바텐더는 여전히 무표정하게 셰이커를 흔들고 있었다. 그의 손끝에서 나는 보았다. 피비린내와 함께 누군가를 밀치는 손의 환영. 이번에는 더 선명하게. 피해자의 얼굴이 거의 보일 듯했다. 백수진과 닮은 그 얼굴.
바텐더가 칵테일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잔 아래에 작은 명함이 접혀 있었다. 백수진의 명함. 나는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시고 명함을 집어 들었다.
그때 바텐더가 내게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백수진 씨가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향기에는 어두운 층계가 있다'고. 그리고 덧붙이시더군요. '다음에 만날 땐 당신의 실패작이 아니라, 당신의 성공작을 맡고 싶다'고."
바텐더의 눈이 바 조명 아래에서 반짝였다. 그 눈동자 속에서 나는 마지막 환영을 보았다. 백수진과 바텐더가 함께 서 있는 모습. 그들의 손이 맞닿아 있었고, 그들의 뒤로 어둠 속에서 무언가 거대한 형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저도 개인적으로 한 마디 드리겠습니다."
바텐더가 정태준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손 떨림은 죄가 아닙니다. 죄는 떨림을 멈추려고 손을 묶는 거죠."
정태준의 손이 순간적으로 더 심하게 떨렸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바텐더는 이미 등을 돌려 다른 손님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명함을 접어 가방에 넣었다. 백수진의 명함. 그리고 바텐더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말들. 그들의 관계는 무엇일까. 바텐더의 손에 묻은 피비린내는 무엇일까. 백수진이 잃었다는 능력은 무엇일까.
정태준이 내 손을 잡았다. 그의 떨리는 손가락이 내 손바닥을 쓸었다. 나는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바텐더의 환영은 내 시야 구석에서 여전히 아른거렸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환영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지금은.
적어도 오늘 밤은.
"아까 그 사람, 당신이 아는 사람이에요?"
내가 물었다.
정태준은 바텐더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얼굴이에요. 하지만 저 손의 흉터는... 내가 아는 그 흉터는..."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3년 전, 이경호 씨의 수술실에 있었던 스크럽 간호사의 손에 있던 것과 똑같아요. 그 간호사는 수술 직후 사라졌고, 아직도 행방을 모르고..."
나는 바텐더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는 칵테일 셰이커를 흔들며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 멜로디는 여전히 백수진의 벨소리와 똑같았다.
그의 손이 셰이커를 내려놓는 순간, 나는 마지막으로 그의 손을 보았다. 약지의 흉터. 그리고 그 흉터 너머로 스치는 환영.
수술실. 열린 복부. 피 묻은 메스를 쥔 손. 그리고 그 손을 떠미는 또 다른 손. 백수진의 손.
환영은 찰나에 사라졌다.
나는 정태준의 손을 더 꼭 잡았다. 그의 떨림이 내 손바닥에 전해졌다. 바텐더가 우리를 향해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여전히 정중했고, 여전히 무심했다.
향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향기는, 어떤 비밀은, 너무 깊은 곳에 숨어 있어서 평생 읽을 수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