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호텔 바 ‘노을’은 이미 어둠에 절어 있었다. 도시의 불빛이 통유리 너머로 흩어지고, 칵테일 잔에 담긴 얼음이 녹는 소리가 귀에 달라붙는 시간. 나는 바스툴에 앉아 마티니를 입술에 걸치며 사람들의 체취를 호흡했다.
향수라고 부르기엔 너무 은밀한 냄새들. 왼쪽 테이블의 여자는 잉크와 종이 먼지가 섞인 법률 사무소의 공기. 오른쪽 남자는 흙과 시멘트 가루—건축가다. 나는 이 게임을 사랑한다. 낯선 사람의 직업을 향기로 맞추는 일. 완벽한 통제의 쾌락.
그때 로비 쪽에서 문이 열렸다.
소독약 냄새가 바를 가로질러 나를 때렸다. 아니, 단순한 소독약이 아니었다. 에탄올과 포비돈요오드, 그리고 그 밑에 깔린 쇠붙이 비린내. 수술실의 공기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남자는 짙은 회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넥타이는 이미 풀려 있었고, 와이셔츠 소매가 살짝 접혀 올라간 오른손 손목이 드러났다. 손가락이 길었다. 그런데—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내 시야가 일그러졌다.
바의 조명이 수술등으로 바뀌고, 그의 손에는 메스가 들려 있었다. 푸른 수술복. 마스크 너머로 흘러내리는 땀방울. 심장 박동 모니터의 전자음이 점점 빨라지다가—길게 이어지는 단음. 삐—
그리고 피가 흥건한 거즈. 봉합사가 미끄러지는 손끝. 환자의 눈동자가 열린 채 굳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표정은 두려움도 고통도 아닌, 배신감이었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환영이 깨졌다.
다시 바. 다시 칵테일 잔. 다시 떨리는 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방금 그게 뭐지. 나는 평생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감각적 폭력에 손끝이 저렸다. 저 남자의 체취에서 본 것이다. 그가 수술실에서 저지른 실수. 환자를 잃은 그 순간의 죄책감까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혐오감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아랫배가 뜨거워졌다. 저 떨리는 손을 내 몸 위에 올려보고 싶었다. 저 손이 내 살갗을 더듬을 때 어떤 떨림으로 변할지, 그 떨림을 내 손으로 통제하고 싶었다. 완벽해 보이는 외과의사의 가면 아래 숨은 결함—그것이 내 안의 무언가를 곧추세웠다. 저 손의 떨림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유욕이 치솟았다.
나는 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바텐더에게 “더블, 니트”라고 주문하는 순간, 나는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소독약 냄새를 지우는 향을 아세요?”
그의 어깨가 굳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옆얼굴에 바의 조명이 얹혔다. 짙은 눈썹, 날카로운 턱선, 그리고 피로가 켜켜이 쌓인 눈가.
“……뭐라고 하셨죠?”
목소리도 날이 서 있었다. 메스를 다루는 사람의 정확한 발음.
“라벤더와 유칼립투스, 그리고 아주 약간의 티트리 오일.” 나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말했다. “에탄올 성분을 중화시키는 데는 라벤더만 한 게 없거든요. 그런데 손끝까지 배어 있는 소독약 냄새는…… 쉽게 안 빠지죠. 특히 수술이 길어지면.”
그가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눈동자에 경계와 당혹, 그리고 아주 미세한 안도가 스쳐 지나갔다.
“당신은……”
“조향사예요.” 나는 살짝 웃었다. “냄새로 밥 먹고 사는 사람.”
침묵이 몇 초 흘렀다. 바텐더가 그의 위스키를 내려놓았다. 그는 잔을 집어 들지 않았다.
“며칠째 씻어도 안 없어지더라고요.”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나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톤이었다. “비누로 열 번을 닦아도, 장갑을 끼고 수술했는데도…… 왜인지.”
“손에 밴 게 아니에요.” 나는 그의 손등을 손끝으로 살짝 쓸었다. 피부가 차가웠고, 힘줄이 굵었다. “머릿속에 밴 거죠.”
그가 숨을 멈췄다.
내 손끝이 그의 손가락 사이를 지나 손바닥에 닿았다. 떨림이 더 선명하게 전해졌다. 엄지와 검지 사이의 굳은살—집도의 특권 같은 흔적. 나는 그 굳은살을 엄지로 눌렀다.
“며칠 전에 무슨 일 있었죠?”
그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이내 좁아졌다. 포식자를 마주한 피식자의 눈빛이 아니라, 자신을 꿰뚫어보는 존재를 처음 마주한 인간의 표정이었다.
“당신…… 누구세요?”
“윤세아.” 나는 이름을 건넸다. “그리고 당신은 외과의사. 심장이었나요, 흉부였나요—아, 상관없고. 중요한 건 당신이 요즘 잠을 못 자고 있다는 거.”
그가 입을 열었다 닫았다. 위스키 잔을 집어 들고 한 번에 삼켰다.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정태준입니다.” 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바에 울렸다. “그리고…… 네, 맞아요. 잠을 못 자요.”
그가 나를 마주보았다. 그 눈빛에는 방금 전의 경계 대신 알 수 없는 굶주림이 서려 있었다. 마치 어둠 속에서 손을 뻗어 마침내 무언가를 만진 사람처럼.
“당신 같은 사람은 처음이에요.”
“다행이네요.” 나는 바스툴에서 일어나 그의 넥타이를 느슨하게 잡아당겼다. 실크가 손바닥에 미끄러졌다. “나도 당신 같은 결함은 처음이니까.”
‘결함’이라는 단어에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거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숨을 깊게 들이쉬며 내 손목을 잡았다. 그의 손에서 나는 소독약 냄새가 내 코를 찔렀다.
“객실로 올라가실래요?”
그 말이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었던 건, 내가 이미 일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울에 비친 우리 모습이 낯설었다. 내 표정은 차분했지만, 동공은 확장되어 있었고, 그의 숨소리는 거칠었다. 37층 버튼을 누르는 그의 검지가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객실 문이 닫히자마자 내가 먼저 키스했다.
그의 입술에서도 소독약 냄새가 났다. 혀끝으로 그의 아랫입술을 핥자 쓴맛이 감돌았다. 에탄올과 위스키가 섞인 냄새. 나는 그의 넥타이를 풀면서 와이셔츠 단추를 하나씩 열었다. 손가락이 그의 쇄골에 닿자 피부가 뜨거웠다.
“내가 할게요.”
내가 속삭이며 그를 침대 쪽으로 밀었다. 매트리스가 스프링 소리를 내며 그를 받아들였다. 나는 그의 위에 올라타 넥타이로 그의 두 손목을 느슨하게 묶었다. 저항할 틈을 주지 않았다.
“이게 무슨……”
“쉿.” 나는 그의 입술에 검지를 대고, 천천히 그의 와이셔츠를 벗겼다. 단추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의 몸은 예상대로 단단했다. 복근이 선명하게 갈라져 있었고, 옆구리에는 오래된 수술 상처—아마 맹장일 것이다—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그의 벨트를 풀었다. 지퍼를 내리자 바지 안에서 이미 단단해진 성기가 불룩하게 드러났다. 팬티 위로 손바닥을 대고 천천히 눌렀다. 그가 숨을 들이켰다.
“의사 선생님.” 나는 그의 귀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봉합 연습이 더 필요하실 것 같아요.”
그의 몸이 경련하듯 굳었다. 내가 방금 한 말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내가 그의 직업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실수까지 꿰뚫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말했잖아요. 냄새로 밥 먹고 산다고.”
나는 그의 팬티를 벗기고 성기를 완전히 드러냈다. 귀두는 이미 투명한 점액으로 젖어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의 성기를 감싸쥐고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였다. 포피가 귀두를 따라 밀려 올라갔다 내려갔다. 그의 허벅지가 긴장으로 떨렸다.
“아……!”
그의 신음이 새어나왔다. 나는 리듬을 바꾸지 않고, 대신 다른 손으로 그의 고환을 감쌌다. 음낭의 피부가 차갑고 촉촉했다. 손가락으로 고환을 굴리자 그의 성기가 더 단단해졌다. 귀두 끝에서 투명한 액체가 한 방울 흘러내렸다.
“당신 손…… 떨리고 있어요.”
내가 그의 손목을 묶은 넥타이를 풀며 말했다. 자유로워진 그의 손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나는 그의 오른손을 잡아 내 허리로 이끌었다.
“만져봐요.”
그의 떨리는 손이 내 블라우스 아래로 파고들었다. 손가락이 내 갈비뼈를 더듬고, 척추를 따라 올라와 브래지어 후크를 찾아냈다. 한 손으로 후크를 푸는 동작이 정확했다. 외과의사답게.
브래지어가 느슨해지자 그의 손이 내 가슴을 감쌌다. 엄지와 검지가 유두를 찾아내 살짝 비틀었다. 정확한 압력. 마치 수술 도구를 다루듯, 지나치게 섬세한 터치.
“아……!”
이번에는 내가 신음했다. 그의 손이 내 가슴을 애무하는 동안, 다른 손은 내 등을 따라 내려왔다. 손가락이 척추의 굴곡을 하나하나 짚으며 미끄러졌다. 마치 절개선을 확인하듯, 피부 아래 뼈의 형태를 읽는 듯한 움직임.
그러다 그의 손가락이 멈췄다. 내 등의 한 지점—견갑골 아래, 오래전 내가 실패한 조향작을 맡을 때마다 결리는 그 부위—를 정확히 눌렀다. 의도한 건지 우연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압력에 내 몸이 무너졌다.
바로 그곳이었다. 삼 년 전, 내가 직접 블렌딩한 향수병이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산산조각나던 날. 유리 파편이 박혔던 자리. 실패작의 독한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찔렀고, 손에서는 피가 났다. 그날 이후로 이 부위는 실패한 향기를 맡을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결렸다.
“여기…… 맥박이 빠르네요.”
그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손가락이 그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바이탈 사인을 체크하듯 내 맥박을 짚으며, 동시에 집도하듯 압력을 가했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손이 내 몸의 비밀을 해부하고 있다는 전율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그가 갑자기 상체를 일으켜 나를 침대에 눕혔다. 자세가 뒤집혔다. 그가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손이 내 스커트를 허벅지까지 끌어올렸다. 팬티 위로 손바닥이 닿자, 나는 자신이 얼마나 젖어 있는지 깨달았다. 천이 질벽에 달라붙을 정도였다.
“당신도…… 떨리고 있는데.”
그가 팬티를 벗기며 중얼거렸다. 그의 손가락이 음모를 헤치고 음부를 드러냈다. 검지와 중지가 대음순을 벌리고, 음핵을 찾아내 원을 그리며 문질렀다. 나는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거기…… 아, 거기……”
내 목소리가 통제를 잃고 갈라졌다. 그의 손가락이 질 입구를 맴돌다 천천히 밀고 들어왔다. 내 질벽이 이물감에 경련했다. 한 마디, 두 마디. 손가락이 안쪽까지 들어와 질벽을 누르며 천천히 움직였다.
“긴장이 심하네요.” 그가 숨을 내뱉으며 손가락을 빼냈다. 그리고 내 허벅지 안쪽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이완이 필요해요. 숨 깊게 들이쉬고…… 내쉬고.”
의사 같은 말투. 그가 내 호흡을 지시하는 동안, 그의 손가락이 다시 질 안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두 개. 질벽이 팽창하며 그를 받아들였다. 그의 손가락이 질 안에서 굽어져 전벽을 자극했다. 마치 촉진하듯, 질벽의 결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움직임. 내 등이 침대에서 들렸다.
“제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제발 멈추라는 건지, 더 하라는 건지. 그의 손가락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동안, 엄지는 계속해서 음핵을 문질렀다. 질 안에서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물소리가 났다. 애액이 그의 손바닥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제…… 들어갈게요.”
그가 자신의 성기를 내 질 입구에 대고 천천히 밀어 넣었다. 귀두가 들어오는 순간, 질벽이 찢어질 듯이 팽창했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그는 한 번에 밀어 넣지 않고, 조금씩, 마치 봉합하듯 천천히 진입했다. 그의 손이 내 허벅지를 벌리고, 성기가 질 안으로 밀려들어올 때마다 그의 손가락은 내 살갗 위에서 보이지 않는 실을 당기듯 미세하게 움직였다. 봉합. 당김. 매듭.
“아…… 너무…… 커……”
내 신음이 객실에 울렸다. 그의 성기가 끝까지 들어와 자궁 경부에 닿았다. 나는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의 체취—소독약과 땀, 그리고 희미한 혈액 냄새—가 나를 감쌌다.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일정한 리듬으로. 삽입과 인출이 반복될 때마다 질벽이 마찰로 뜨거워졌다. 내 애액과 그의 점액이 섞여 허벅지 사이가 끈적거렸다. 피부가 부딪히는 소리, 스프링이 삐걱거리는 소리, 그리고 우리의 숨소리가 뒤섞였다.
“더…… 빨리……!”
내가 다급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리듬을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게, 더 정확하게 찔러 넣었다. 마치 수술 도구를 다루듯 한 번의 삽입에도 모든 신경을 집중하는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그의 손이 내 가슴을 다시 쥐었다. 유두를 엄지와 검지로 집어 비틀며, 동시에 성기가 질 안에서 각도를 바꾸었다. 전립선에 해당하는 부위—여성에게는 없지만, 그가 찾아낸 그 지점—가 강하게 자극되었다.
“아, 거기…… 거기야……!”
나는 그의 등에 손톱을 박았다. 오르가즘이 다가오고 있었다. 질벽이 그의 성기를 더 강하게 조였다. 내 허벅지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망쳤어……”
그가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그의 리듬이 흐트러졌다. 삽입이 얕아지고, 손의 떨림이 심해졌다.
“망쳤어…… 내가…… 망쳤어……”
수술실에서 했을 그 말. 환자의 심장이 멈추던 순간, 봉합사가 손에서 미끄러지던 순간의 그 절망. 그의 죄책감이 지금, 나를 안고 있는 이 순간에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이 나를 절정으로 밀어 넣었다.
“아…… 나도……!”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나 자신도 몰랐던 말. “조향 실패작 냄새…… 나도…… 망쳤어……!”
그 순간, 환영이 밀려왔다. 내가 블렌딩한 첫 시그니처 향수. 썩은 장미 꽃잎이 알코올에 절여져 썩어가는 냄새. 탄 합성 머스크가 코점막을 태우는 듯한 자극. 유리병이 깨지며 손바닥에 박히던 파편들. 피가 났고, 그 피에 실패한 향료가 스며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완벽한 향만을 좇았다. 실패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남자의 실패 앞에서 내 트라우마가 한꺼번에 폭발하고 있었다.
오르가즘이 터졌다.
질벽이 강하게 수축하며 그의 성기를 압박했다. 전신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경련이 일었다. 시야가 하얘졌다. 썩은 꽃잎과 탄 머스크의 환영이 뇌리를 가득 채웠다. 그의 성기가 내 안에서 맥동하며 정액을 쏟아내는 것이 느껴졌다. 뜨거운 액체가 자궁 경부를 때렸다.
우리는 동시에 절정했다.
서로의 실패를 끌어안은 채.
서로의 직업병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채.
그의 죄책감과 나의 트라우마가 침실의 공기 속에서 뒤섞였다. 소독약 냄새와 실패한 향기의 기억이 한데 엉켜, 숨 막힐 듯한 침묵만이 남았다.
그때, 그의 손이 내 얼굴을 감쌌다.
나는 흠칫했다. 아직 숨을 고르지도 못했는데, 그의 엄지가 내 눈가를 쓸었다. 눈물이 나와 있었다. 내가 울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실패작이요.”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목소리는 아직 잠겼지만, 떨리지는 않았다.
“당신이 방금 말한 거. 조향 실패작.”
내 몸이 굳었다. 들켰다. 오르가즘의 순간에 스스로 폭로한 내 가장 깊은 상처. 나는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그의 손이 내 턱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게 무슨 냄새였는데요.”
질문이 아니었다. 명령에 가까운 톤. 의사가 환자에게 증상을 묻는 말투.
“썩은…… 장미.” 내 입술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탄 머스크. 알코올. 그리고…… 피.”
그가 숨을 들이켰다. 그의 엄지가 내 입술을 스쳤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숙여 내 입술에 입을 맞췄다. 조금 전의 키스와는 완전히 달랐다. 거칠지도, 조급하지도 않았다. 마치 상처를 소독하듯, 아주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나쁘지 않네요.”
그가 입술을 떼며 말했다.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 조합…… 썩은 장미와 탄 머스크, 거기에 철분까지.” 그는 내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기대며 중얼거렸다. “그거, 수술실 냄새랑 비슷하네요.”
그 말에 내 심장이 멎는 듯했다. 수술실 냄새. 그가 매일 몸에 배어 돌아다니는, 그리고 지우고 싶어 미칠 듯이 괴로워하는 바로 그 냄새. 그가 내 실패의 냄새를 자신의 일상과 겹쳐보고 있었다.
“당신 실패…… 나한테는 익숙한 냄새예요.”
그의 손이 내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얼마나 그렇게 누워 있었을까.
그의 성기가 내 안에서 빠져나가고, 질 밖으로 정액이 흘러내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끈적한 액체가 허벅지를 타고 침대 시트에 스며들었다.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숨을 골랐다. 그의 숨소리도 아직 거칠었다.
그가 나를 끌어안았다. 그의 손이 내 등을 쓸었다. 조금 전까지 떨리던 그 손이, 지금은 완전히 안정되어 있었다.
잠은 천천히, 그리고 무겁게 밀려왔다.
아침이었다.
눈을 떴을 때, 침대는 비어 있었다.
나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시트가 몸에서 미끄러졌다. 가슴과 배에 남은 붉은 자국—그의 손자국과 입술 자국—이 선명했다. 질 입구가 욱신거렸다. 정액의 흔적이 허벅지 안쪽에 말라붙어 있었다.
그의 옷은 사라졌다. 구두도, 넥타이도. 하지만 침대 옆 탁자 위에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접힌 쪽지 한 장.
나는 손을 뻗어 펼쳤다.
*“당신 이름도 묻지 못했네요. 커피 한 잔 할 시간도 없이 병원으로 가야 해서. 연락처를 남겨도 될지 모르겠지만…… 010-####-####.”*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작은 글씨로:
*“당신이 말한 라벤더, 한번 시도해볼게요.”*
나는 쪽지를 내려놓고, 침대 옆 의자에 걸려 있는 그의 와이셔츠를 발견했다. 그가 두고 간 것이었다. 흰색 셔츠. 깜빡한 걸까, 아니면 일부러?
일어나 셔츠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얼굴을 묻었다.
소독약 냄새.
에탄올과 포비돈요오드, 그리고 쇠붙이 비린내. 그리고 그의 체취—땀과 피부, 그리고 희미한 위스키 향.
그 순간, 다시 환영이 밀려왔다.
수술등 아래 떨리는 손. 심장 박동 모니터의 단음. 환자의 굳어가는 눈동자.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그의 옆모습. 어깨가 축 처지고, 마스크 너머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환영이 걷혔다.
나는 셔츠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천이 구겨졌다. 내 심장이 이상하게 뛰고 있었다. 두려움인지, 흥분인지, 집착인지 구분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을 채웠다.
“정태준……”
내 입술 사이로 그의 이름이 새어나왔다.
나는 쪽지를 다시 집어 들었다. 그의 전화번호를 응시하며, 다른 손으로는 핸드폰을 켰다. 검색창에 그의 이름을 입력하는 대신, 나는 곧바로 병원 전산망 접속 앱을 열었다. 조향사 협회 VIP 의뢰인 명단에 의사들이 꽤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몇 달 전, 긴급 주문을 넣으면서 무심코 알려준 병원 인트라넷 접속 코드. 로그인 화면이 떴다.
*서울중앙의료원 의료진 조회.*
검색창에 ‘정태준’을 입력하고 엔터를 눌렀다.
프로필 사진이 떴다. 흰 가운, 무표정. 그 아래로 흉부외과 전문의, 당직 일정, 최근 수술 기록—그리고 그가 잃은 환자의 차트 번호. 나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스크롤하며 그의 모든 기록을 훑어내렸다. 수술실 CCTV 로그 접근 권한은 없었지만, 환자 차트는 열람할 수 있었다. 익명 처리된 환자의 사망 원인. 수술 중 심정지. 봉합 시간 기록.
그때, 화면 하단의 ‘병원 내부 메모’ 탭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무심코 탭을 눌렀다. 대부분의 환자 차트에는 없는 항목이었다. 이것은 의료진 개인에 대한 내부 메모. 열람 권한이 제한된 파일.
화면이 넘어갔다.
*[내부 메모 – 흉부외과 정태준]*
*최초 면담일: 2023. 11. 17.*
*의뢰 사유: 수술 중 트레머(손 떨림) 증상. 본인 자진 신고. 심리적 외상 가능성 언급.*
*특이사항: 환자 사망 당시 수술실 내 특이 향취 감지됐다는 진술. ‘썩은 꽃 냄새 비슷한 것’이라고 표현. 원인 불명. 병원 측, 마취제 외 다른 화학물질 유입 가능성 조사 중. 해당 사건 이후 정태준 전문의, 동일한 향취에 대한 과민 반응 보임. 후각 촉발성 불안 장애(olfactory-triggered anxiety) 의심.*
*치료 경과: 2023. 12. 5. 상담 중 ‘그 냄새만 사라지면 손 떨림도 멈출 것 같다’ 진술. 현재 후각 재활 치료 병행 중. 담당의 소견—환자 본인이 ‘자신의 결함을 알아채는 사람’에게 강한 심리적 의존을 보일 가능성 높음. 주의 요망.*
*최근 업데이트: 2024. 1. 8. 외부 조향사 협회를 통한 맞춤형 아로마테라피 처방 검토 중. 환자 본인 강력 희망. 담당의 승인 대기 중.*
핸드폰이 내 손에서 미끄러져 침대 위로 떨어졌다.
썩은 꽃 냄새.
그가 수술실에서 맡았다는 그 냄새. 그리고 그가 ‘자신의 결함을 알아채는 사람’에게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사의 소견. 나는 떨리는 손으로 셔츠를 다시 집어 들었다.
그가 나에게 끌린 건 우연이 아니었다.
내가 그의 손 떨림을 꿰뚫어본 것도, 내 실패작의 향이 그의 트라우마와 맞닿은 것도, 그가 나에게서 ‘익숙한 냄새’를 느꼈다고 고백한 것도—모든 것이 하나의 퍼즐처럼 맞물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 퍼즐의 마지막 조각은 아직 오지 않았다. 외부 조향사 협회를 통한 맞춤형 아로마테라피. 담당의 승인 대기 중.
나는 셔츠를 코끝에 댄 채로, 그의 병원 기록을 다시 한 번 훑어내렸다. 그의 수술 일정을, 그가 잃은 환자의 이름을, 그리고 이제는 그의 정신과 치료 기록까지. 모든 것을.
그의 체취를 들이마시며 나는 중얼거렸다.
“도망칠 수 없어요, 선생님.”
내 목소리는 이미 웃고 있었다.
“당신 결함…… 내가 다 들여다볼 테니까. 그리고 당신이 찾는 그 향…… 결국 나한테 오게 되어 있으니까.”
셔츠에서 나는 소독약 냄새가, 방 안에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