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퇴고본

세르피나의 화염이 내 주위를 휘감으며 폐광산의 어둠을 찢어발겼다. 그녀의 붉은 망토가 스스로 타오르는 듯 펄럭이고, 눈동자 속 이글거리는 불꽃이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왼팔 붕대 아래선 피가 박동에 맞춰 스며 나오고, 갈비뼈는 숨 쉴 때마다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댔다. 그래도 이 순간, 그녀의 욕망이 내 눈앞에 거대한 환영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불타는 왕좌. 단순한 불꽃이 아니었다. 녹슨 철관과 부패한 귀족들의 문장을 집어삼키며 새롭게 태어나는 제국의 심장이 박동하고 있었다.

"카이드."

세르피나가 내 이름을 불렀다. 평소의 조소 섞인 새디스트 톤이 아니었다. 더 깊고, 굶주린 맹수의 낮은 울음. 그녀의 성대가 욕망으로 진동하는 소리였다.

"당신이라면 볼 줄 알았지. 내 안의 이것을."

"불타는 왕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원하는 건 단순한 파괴가 아니었어. 제국을 무너뜨리고, 그 잿더미 위에 네가 군림하는 거지."

"군림?" 비릿한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번졌다. "아니, 그건 충분하지 않아. 나는 호르스트 공작 같은 썩은 피가 아니라, 진짜 강자만이 앉을 자리를 원해. 그리고..."

한 걸음. 그녀의 발걸음마다 바닥의 돌이 녹아 검은 유리로 변했다. 화염 마법이 그녀의 감정에 반응해 무의식적으로 새어 나오는 것이었다.

"당신과 함께라면, 그 왕좌는 진짜가 돼. 알리시아도, 엘라라도 결국 당신을 선택했어. 나도... 이제야 확신했군."

내 골든핑거가 그녀의 욕망을 생생하게 시각화했다. 붉은 안개가 불타는 왕좌 주변을 맴돌며, 그 왕좌의 팔걸이에 내 손이 올려지는 환영이 겹쳐졌다. 더 깊은 곳엔 또 다른 이미지가 숨어 있었다. 쇠사슬. 불타는 쇠사슬이 그녀의 손목을 왕좌에 묶고, 동시에 그녀가 그 쇠사슬의 끝을 내게 건네는 모습. 그녀는 나를 정복하려는 동시에, 내게 정복당하길 원했다. 그 역설의 불꽃이 그녀의 눈에 담겨 나를 태울 듯이 바라봤다.

"조건이 있어."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네 왕좌는 제국의 백성들을 위한 것이어야 해. 단순한 복수의 불길이 아니라, 진짜 질서를 세우는 불이어야 한다고."

"그래." 그녀가 내 말을 자르듯 손을 뻗어 내 턱을 잡았다. 그녀의 손가락은 놀랍도록 뜨거웠고, 닿은 피부가 순간적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먼저, 나를 정복해. 이 불길이 당신마저 태울 수 없다는 걸 증명한다면, 나는 당신의 여자가 될 테니까."

그 순간, 그녀의 욕망 속 '불타는 왕좌'가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욕망의 해방이 시작된 것이다. 그녀의 화염 마법이 한 차원 강력해지며, 우리 주변의 공기가 일그러졌다. 광산 천장의 암석이 녹아내려 불타는 눈물처럼 떨어지고, 그녀의 머리카락이 스스로 타오르는 듯한 붉은 오라를 발산했다.

"그럼 증명하지." 나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전투 전의 짧은 고요. 그녀의 불타는 망토가 우리 둘을 감쌌다.

세르피나의 입술이 내 목에 닿았다. 그녀의 혀는 불꽃처럼 뜨거웠고, 핥는 자리마다 피부가 저릿하게 반응하며 소름이 돋았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쥐며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그녀의 등이 녹아내린 돌벽에 닿자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그녀의 피부가 벽을 식히는 게 아니라, 벽이 그녀의 열기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었다.

"당신의 손길이 느껴져." 그녀가 낮게 웃으며 내 귀를 깨물었다. "그래, 이거야. 알리시아가 왜 그렇게 변했는지 이제 알겠어. 그 여자, 당신에게 완전히 길들여졌더군."

내 손이 그녀의 전투복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녀의 피부는 마치 내장된 용광로처럼 뜨거웠고, 손바닥이 닿을 때마다 그녀의 근육이 경련하듯 떨렸다. 나는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단단하면서도 탄력 있는 살결이 내 손아귀에 가득 들어찼다. 그녀의 유두는 이미 딱딱하게 솟아 있었고, 내 엄지가 그 끝을 문지르자 그녀의 입에서 짧고 날카로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아... 좋아. 계속해. 더 거칠게."

세르피나가 갑자기 내 어깨를 밀어내며 주도권을 빼앗았다. 그녀는 나를 바닥에 밀쳐 넘어뜨리고, 내 허리 위로 올라탔다. 그녀의 불타는 망토가 우리 주변에 둥글게 펼쳐지며 마치 용암 웅덩이 같은 공간을 만들었다. 그녀가 상체를 숙여 내 입술을 덮쳤다. 키스는 공격적이고 탐욕적이었다. 혀가 내 입 안으로 밀고 들어와, 내 혀를 빨아들이고 깨물었다. 그녀의 입김은 화염 마법의 잔열로 뜨거웠고, 우리 입술 사이로 흘러내린 타액이 내 턱을 타고 흘렀다. 그녀가 그 타액을 혀로 핥아 올리며 내 입술을 다시 삼켰다.

"내가 지배할 거야."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녀의 손톱이 내 가슴을 긁었다. "당신의 모든 것을 내가..."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내 바지를 거칠게 끌어내렸다. 내 성기가 이미 완전히 발기해 튀어 오르자, 그녀의 눈동자가 짐승처럼 반짝였다. 붉은 안개가 그녀의 시야를 채우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욕망과 내 정복욕이 충돌하는 지점. 그녀의 손가락이 내 성기를 감싸 쥐었다. 그녀의 손바닥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뜨거웠고, 그 촉감만으로 내 허리가 반사적으로 들썩였다.

"하지만 당신에게 정복당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녀가 내 성기를 천천히 쥐락펴락하며 속삭였다. "오히려... 이게 더 흥분돼. 당신 같은 남자에게 굴복당하는 상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알아?"

그녀가 자신의 하의를 벗어 던졌다. 그녀의 음부는 이미 애액으로 흠뻑 젖어, 불타는 망토의 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그녀가 내 성기를 자신의 질 입구에 갖다 댔다. 귀두가 그녀의 음순에 닿자, 그녀의 허리가 전율로 떨렸다.

"느껴져?" 그녀가 내 성기 끝을 자신의 질 입구에 문지르며 천천히 압박했다. "내가 얼마나 뜨거운지. 당신의 자지가 녹아버릴지도 몰라."

"그건 내 대사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단숨에 끌어내렸다.

내 성기가 그녀의 질 속으로 한 번에 빨려 들어갔다. 압도적인 열기와 압박감이 동시에 나를 삼켰다. 그녀의 질 내벽은 마치 살아있는 불꽃처럼 내 성기를 감싸고 수축했다. 평범한 여자의 체온이 아니었다. 그녀의 마법이 체내에서도 발현되어, 질 속이 화염 마법의 잔열로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그녀가 신음성을 길게 내뱉으며, 허리를 완전히 낮춰 내 성기의 뿌리까지 삼켰다.

"아아... 이거야. 이게 내가 원했던 거야." 그녀의 질 근육이 내 성기를 꽉 물었다. "당신의 자지가 내 안에서 불타고 있어. 이 고통... 이 쾌락..."

그녀가 상체를 뒤로 젖히며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능동적이고 탐욕적이었다. 내 위에서 자신의 쾌락을 찾아 리듬을 조절하며, 때로는 빠르게 허리를 찍어 내리고, 때로는 느리게 골반을 회전시켰다. 그녀의 질 근육이 내 성기를 꽉 물고 놓지 않았고, 매번 그녀가 허리를 들 때마다 애액과 내 분비물이 섞여 끈적한 소리를 냈다. 퍽퍽, 질척질척. 그녀의 허벅지 안쪽으로 애액이 줄줄 흘러내려 내 배 위에 고였다.

"당신이... 안에서 날 태우고 있어." 그녀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녀의 손톱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내가 당신을 태울 줄 알았는데... 이건 마치... 내가 당신의 불쏘시개가 된 것 같아..."

그녀의 말은 신음으로 끊겼다. 그녀의 음핵이 내 성기와 마찰될 때마다 그녀의 전신이 경련했다. 나는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겨 더 깊이 찔러 넣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음핵을 엄지로 문질렀다. 딱딱하게 솟은 그 작은 돌기를 원을 그리며 압박하고, 손톱으로 살짝 긁었다.

"거기! 아... 좋아, 거기야! 더 세게!"

그녀가 내 위에서 완전히 주도권을 쥐고 허리를 움직이는 동시에, 나에게 애무당하며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녀의 질이 갑자기 강하게 수축하기 시작했다. 리드미컬한 경련이 내 성기를 압박했고, 그녀의 몸이 활처럼 휘어졌다.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이 실제로 불꽃을 뿜으며 타올랐다. 그녀의 화염 마법이 오르가즘과 동시에 폭주한 것이다.

"간다... 나, 갈 거야...! 카이드, 내 안에...!"

그녀가 절규했다. 그 순간, 그녀의 질 깊숙한 곳에서 폭발적인 열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녀의 오르가즘은 마치 화염 폭발 같았다. 그녀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 마력이 우리 주변의 공기를 이글거리게 했고, 그녀의 애액은 끓을 듯이 뜨거워져 내 성기를 적셨다. 질 내벽이 격렬하게 수축하며 내 성기를 짜내듯 조였고, 그 압박에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의 질 깊숙이 정액을 쏟아부었다.

사정의 순간, 그녀가 내 목을 끌어안으며 내 입술을 깨물었다. 피 맛이 입 안에 퍼졌다. 우리의 혀가 서로 얽히고, 신음이 섞이며, 불타는 망토 속에서 모든 것이 하나로 녹아내렸다. 내 정액이 그녀의 자궁 입구를 때릴 때마다 그녀의 질이 경련했고, 그 경련이 또다시 내 사정을 촉발시켰다.

그녀가 내 위에 쓰러지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피부는 여전히 뜨거웠지만, 그녀의 눈빛은 이전과 달랐다. 붉은 안개가 걷히고, 그녀의 눈동자 속에 내 모습이 또렷이 비쳤다. 그녀의 질 속에 내 성기가 아직 박혀 있었고, 우리의 분비물이 섞여 그녀의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알겠어." 그녀가 속삭였다. 그녀의 손가락이 내 땀에 젖은 이마를 쓸었다. "정복당하는 쾌락과 지배하는 쾌락은... 결국 같은 거였어. 나는 평생 지배하려고만 했지. 하지만 당신 아래에서, 나는 비로소 진짜 왕좌에 오를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 당신에게 굴복하는 것만큼 짜릿한 지배는 없더군."

그녀의 욕망 속 '불타는 왕좌'가 완전히 재구성되었다. 이제 그 왕좌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였다. 하나는 그녀를 위한 것, 다른 하나는 나를 위한 것. 그녀는 나의 황제가 되어달라고 요구하면서, 동시에 내 여왕이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녀의 새디스틱한 성향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어져, 나를 지배하는 동시에 내게 지배당하는 역설 속에서 진정한 쾌락을 찾아낸 것이었다.

"욕망의 해방이야." 나는 그녀의 땀에 젖은 이마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제 네 화염은 더 강해질 거야. 제국을 개혁할 힘을 얻은 거지."

"그래." 그녀가 일어나며 망토를 둘렀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의 압력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단순한 화염 마법사가 아니라, 불타는 왕좌의 진정한 후계자로서의 위용이었다. 그녀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빌헬름을 끝장내러 가지. 우리의 왕좌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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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의 본거지인 폐광산 깊은 곳. 그곳은 마치 작은 요새처럼 방어선이 구축되어 있었다. 제국 귀족군의 정예 병사들이 방패를 겹겹이 쌓고, 마법사들이 보호막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 제단처럼 꾸며진 철골 구조물 위에 알리시아와 유리아가 묶여 있었다.

"카이드!" 빌헬름이 증폭 마법으로 목소리를 울렸다. 그의 얼굴은 광기와 두려움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이었다. "네 여자들을 구하러 왔나? 하지만 보아라. 한 명은 이미 반쯤 죽었고, 다른 한 명은... 음, 네 여동생은 이제 나의 충실한 인형이 되었다. 신의 눈물 유적의 힘은 위대해. 그 아이 안에 잠든 모든 기억을 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지."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유리아가 기계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동자엔 아무 감정도 없었다.

"보아라. 완벽한 인형이다. 그리고 이 인형은 네가 가장 아끼는 사람이지? 카이드, 너는 지금 어떤 기분이냐? 네 여동생이 네 여자들을 죽이게 만든 내 솜씨가?"

나는 알리시아를 보았다. 그녀의 백은 갑옷은 피로 얼룩져 있었고, 왼쪽 어깨는 부자연스럽게 꺾여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핏기가 완전히 사라져 회색빛이었다. 고문과 마력 억제로 인해 그녀의 생명력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었다. 내 가슴이 철컥 내려앉았다. 그 순간, 알리시아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전투 중 입은 부상과 피로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의 환영이 둘로, 셋으로 번지며 내 시야를 교란했다. 어느 것이 진짜 알리시아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전투 이성이 감각적 왜곡에 잠식되어 갔다.

"세르피나." 나는 이성을 붙잡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방어선을 돌파한다. 난 알리시아에게 직행할 테니, 넌 오른쪽 측면을 맡아."

"알겠어." 그녀가 손을 뻗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화염이 그녀의 손바닥에서 생성되었다. 불꽃은 단순한 붉은색이 아니라, 푸른빛이 감도는 백색에 가까웠다. 욕망의 해방으로 강화된 멸염의 진정한 형태였다.

"가라!"

세르피나가 양팔을 휘둘렀다. 광산 전체를 집어삼킬 듯한 화염 폭풍이 방어선을 덮쳤다. 병사들의 방패가 순식간에 녹아내리고, 마법 보호막이 유리처럼 산산조각났다. 비명이 광산을 가득 메웠다.

나는 그 불길을 가르며 돌진했다. 왼팔의 부상이 욱씬거렸고, 갈비뼈가 숨 쉴 때마다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알리시아가 저기 있다. 그런데 그녀의 모습이 또 겹쳐 보였다. 하나는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는 알리시아. 다른 하나는 축 늘어져 숨이 끊어진 알리시아. 어느 쪽이 진짜인가? 내 시야가 흔들렸다. 그 순간, 오른쪽 측면에서 접근하던 아군 특수부대가 내 시야에 포착됐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적으로 착각했다. 그들의 검은색 전투복이 빌헬름의 암살 부대와 똑같아 보였다. 내 검이 반사적으로 그들을 향해 휘둘러졌다.

"카이드 님! 멈추십시오! 아군입니다!"

엘라라의 외침이 들렸지만, 이미 늦었다. 내 검날이 아군 병사 한 명의 어깨를 베었다. 피가 튀었다. 그 병사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제야 내 눈에 그들의 인식표가 들어왔다. 아군이었다. 내가 아군을 공격했다. 충격이 내 몸을 관통했지만, 전투 이성의 붕괴는 멈추지 않았다. 왼쪽에서 날아온 석궁 볼트를 피하지 못하고 왼쪽 허벅지에 맞았다. 화살촉이 살을 파고드는 통증이 번개처럼 스쳤지만, 나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오른쪽에서 병사 하나가 검을 휘둘러 내 옆구리를 베었다. 피가 솟구쳤지만, 나는 그대로 그 병사의 목을 꺾어버렸다.

"카이드! 조심해!" 엘라라가 이끄는 구원 부대가 뒤늦게 합류하며 외쳤다. 그녀의 목소리가 수중에서 들리는 것처럼 왜곡되어 들렸다.

전투 이성이 완전히 잠식되어 갔다. 알리시아의 환영이 계속 겹쳐 보였다. 그녀가 웃고 있는 모습, 피를 흘리는 모습, 내 이름을 부르는 모습이 동시에 떠올랐다. 더 이상 냉철한 용병왕이 아니었다. 그저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려는 한 남자였다. 그 순간, 내 발이 바닥의 느슨한 암석을 밟았다. 지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오른발이 미끄러지며 중심을 잃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적병 셋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한 명이 내 왼쪽 무릎을 도끼로 내리찍었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카이드 님!"

엘라라가 치유 마법을 시전하며 달려왔지만, 적병들이 그녀를 가로막았다. 나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적들의 발길질을 받아내며 검을 휘둘렀다. 무릎이 박살났다.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었다. 전투 이성 상실의 대가가 현실로 밀려왔다. 이대로면 죽는다. 알리시아도 구하지 못하고, 유리아도 구하지 못하고, 모든 것이 끝난다.

"알리시아!"

내가 그녀에게 도달하려 안간힘을 쓰는 순간, 그녀의 눈꺼풀이 가까스로 들렸다. 흐릿한 초점이 나를 겨우 인식했다. 진짜였다. 이건 진짜 알리시아였다. 그녀가 내 무릎의 참상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카... 이드... 네 무릎..."

"말하지 마. 지금 꺼내줄 테니까."

내가 그녀의 결박을 풀려는 순간, 빌헬름의 매복 부대가 튀어나왔다. 중장갑을 두른 기사들이 검과 도끼를 휘둘렀다. 나는 무릎이 박살난 상태로 알리시아를 감싸 안으며 몸을 날렸다. 등에 도끼가 스치며 갑옷을 찢고 살을 베었다. 피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네놈은 여기서 죽는다! 내가 직접 네 심장을 도려내주마!"

기사들이 일제히 공격해왔다. 나는 한 손으로 알리시아를 붙잡은 채, 다른 손으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자세가 불안정했고, 부상이 쌓인 몸은 내 명령을 듣지 않았다. 첫 번째 기사의 검을 막아냈지만, 두 번째 기사의 도끼가 내 어깨를 내리찍었다. 뼈가 갈라지는 소리가 귀까지 전해졌다.

그 순간, 거대한 화염 벽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세르피나가 날아오르며 외쳤다.

"내 남자에게서 떨어져라! 그를 건드리는 놈은 재가 될 것이다!"

그녀의 화염이 기사들을 집어삼켰다. 갑옷이 녹아내리고, 살갗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기사들의 비명이 순식간에 끊겼다. 그녀는 마치 불사조처럼 전장을 휩쓸며 빌헬름의 방어선을 완전히 붕괴시켰다.

"이게... 이게 너의 힘이냐, 세르피나!" 빌헬름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그의 얼굴에서 광기가 사라지고 공포가 번졌다. "말도 안 돼! 그 정도 화염 마법은 존재할 수 없어! 너는 분명 호르스트에게 패배했어야..."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유리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네 여동생이 죽어도 상관없나, 카이드!"

그 순간, 빌헬름의 손에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와 유리아의 몸을 감쌌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허리를 꺾었다. 신의 눈물 유적의 힘이 그녀의 몸을 방패로 삼으려는 것이었다. 동시에 유적 전체가 공명하기 시작했다. 광산 벽면에 새겨진 고대 문양들이 푸르게 빛나며, 바닥에서 거대한 마력의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신의 눈물 유적이여! 나에게 힘을! 이 불경한 자들을 멸하라!"

빌헬름이 외치자, 유적의 힘이 폭발적으로 증폭되었다. 푸른 마력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세르피나의 화염과 충돌했다. 붉은 불꽃과 푸른 마력이 뒤엉켜 광산 전체를 집어삼킬 듯한 폭발을 일으켰다. 충격파가 나를 뒤로 밀쳐냈다. 알리시아를 붙잡은 손이 떨어질 뻔했다.

"빌헬름! 네가 유적의 힘을 빌렸다면, 나는 내 남자의 힘을 빌리겠다!"

세르피나가 포효했다. 그녀의 화염이 더욱 거세지며 푸른 마력 폭풍을 뚫고 나아갔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꽃이 유적의 푸른 빛과 뒤엉켜 보라색 폭염을 만들어냈다. 두 힘이 정면으로 충돌하며 광산 천장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암석이 비처럼 쏟아졌다.

"이건 불가능해... 불가능하다고! 나는 신의 눈물 유적을 손에 넣었다! 이런 식으로 끝날 리가 없어!"

빌헬름이 절규하며 유리아를 더욱 강하게 옥죄었다. 그녀의 몸에서 푸른 빛이 더욱 강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세르피나의 화염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거세져, 유적의 마력 폭풍을 하나씩 집어삼켰다. 마침내 그녀의 불꽃이 빌헬름의 방어벽을 뚫고 그를 덮쳤다.

"으아아악!"

빌헬름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의 옷에 불이 붙었고, 피부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바닥을 뒹굴며 불을 끄려 했지만, 세르피나의 화염은 꺼지지 않았다. 그가 신의 눈물 유적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유적은 더 이상 그에게 응답하지 않았다. 유리아를 방패로 삼으려 했던 그의 계획은 실패했다. 세르피나의 화염이 너무나 정밀하게 그녀를 피해 그만을 태웠기 때문이다.

"이걸로 끝이다, 빌헬름."

세르피나가 마지막 일격을 날리려는 순간, 유적이 갑자기 폭주했다. 빌헬름의 죽음에 반응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알 수 없었다. 푸른 빛이 광산 전체를 집어삼키며 모든 것을 마비시켰다.

나는 알리시아를 구출해 엘라라에게 맡겼다. 그녀는 심각한 부상이었지만, 아직 숨은 붙어 있었다. 엘라라가 긴급 치유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나는 박살난 무릎을 끌며 알리시아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피부는 차가웠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그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카이드... 미안해... 내가 약해서..."

"닥쳐." 나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네가 약한 게 아니야. 내가 늦은 거야. 내가... 내가 전투 이성을 잃어서... 아군을 공격하고, 지형도 못 보고, 무릎도 박살나고...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이 무슨 용병왕이냐..."

내 목소리가 갈라졌다. 알리시아의 부상은 내 실수 때문이었다. 내가 더 빨리, 더 정확하게 판단했다면 그녀가 이렇게까지 고통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어깨가 부러진 것도, 그녀의 얼굴이 회색빛이 된 것도, 모두 내 탓이었다. 내 눈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눈물이었다. 용병왕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카이드... 울지 마..." 알리시아가 떨리는 손을 들어 내 뺨을 닦았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어... 나는... 당신이 와줘서... 그걸로 충분해..."

"충분하지 않아!" 나는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네가 이렇게 될 때까지 내가 뭘 했지? 빌헬름의 계략을 왜 미리 눈치채지 못했어? 왜 더 빨리 오지 못했어? 내가... 내가 더 강했다면..."

그때였다.

"오빠."

기계적인 음색이 울렸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유리아가 결박에서 스스로 풀려나 있었다. 아니, 풀려난 게 아니었다. 그녀의 피부에 푸른 문양이 번지고 있었다. 신의 눈물 유적과 똑같은 빛을 발하는 문양이 그녀의 목에서 시작해 얼굴로, 팔로 번져나갔다. 그녀의 관절이 기계적으로 끊기듯 움직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실에 매달린 인형처럼, 그녀의 팔이 부자연스러운 각도로 꺾이며 올라갔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푸른 마력 결정의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신의 눈물 유적의 힘이 그녀를 완전히 잠식한 것이다.

"유리아...?"

"오빠." 그녀가 천천히 걸어왔다. 걸음걸이마저 관절이 끊기는 듯한 부자연스러운 리듬이었다. 그녀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알리시아를 가리켰다. 그 손가락 끝에서 푸른 빛이 스며나왔다. "저 여자 때문에 오빠가 다쳤어. 봐, 피를 흘리고 있잖아. 옆구리에서 피가 나고 있어. 어깨도 찢어졌어. 무릎도 박살났어. 다 저 여자 때문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과거의 다정했던 말투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게 더 소름끼쳤다. 마치 기억을 빌려 말하는 인형 같았다. 그녀의 푸른 문양이 더욱 선명해지며 피부 위에서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세르피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푸른 불꽃이 일렁였다.

"너도." 유리아가 세르피나를 향해 손가락을 겨누었다. "너도 오빠를 다치게 했어. 네 화염 때문에 오빠가 위험해졌어. 네가 오빠 곁에 있으면 안 돼. 너는 불덩어리일 뿐이야. 오빠를 태울 거야."

그녀가 다시 고개를 돌려 엘라라를 보았다. 그녀의 입술이 비틀렸다.

"너도 마찬가지야. 오빠를 치료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오빠를 이용하는 거지? 다 알아. 너는 오빠의 힘을 원하는 거야. 진심으로 오빠를 사랑하는 건 나뿐이야. 나만이 오빠를 진짜로 생각해."

"유리아, 정신 차려! 너는 빌헬름에게 조종당하고 있어!" 엘라라가 외쳤다.

"조종?" 유리아가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마치 유리가 깨지는 소리 같았다. "아니, 나는 드디어 깨어났어. 오빠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 저 여자들은 모두 오빠를 아프게 해. 그러니까... 모두 사라져야 해."

그녀가 알리시아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나는 그녀 앞을 막아섰다. 박살난 무릎이 비명을 질렀지만, 나는 검을 들어 그녀를 겨누었다.

"유리아, 거기서 멈춰. 제발... 정신 차려. 너는 이런 아이가 아니야."

"오빠." 그녀가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입가만 올라갈 뿐, 눈은 전혀 웃지 않았다. "오빠는 나를 막을 수 없어. 오빠는 지금 너무 다쳤어. 무릎도, 어깨도, 옆구리도. 그런 몸으로 어떻게 나를 막으려고? 하지만 걱정하지 마. 오빠를 아프게 한 건 저 여자들이니까. 나는 오빠를 절대 다치게 하지 않을 거야."

그녀가 손을 뻗어 알리시아를 가리켰다. 그 순간, 그녀의 손끝에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녀의 팔 전체에 푸른 문양이 타오르듯 빛났다. 나는 몸을 날려 그 빛을 막아섰다.

"안 돼!"

그 순간, 신의 눈물 유적 쪽에서 거대한 푸른 빛이 솟아올랐다. 동시에 내 골든핑거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통제 불능 상태로 모든 여성의 욕망이 시각화되어 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은빛 사슬이 눈앞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끊어지는 환영. 푸른 파도가 핏빛으로 물들며 역류하는 광경. 붉은 안개가 검은 가시와 뒤엉켜 나를 찔러대는 고통. 모든 감각이 뒤섞이며 현실과 환영의 경계가 무너졌다.

"으아아아!"

내 머릿속이 폭발할 것 같았다. 무릎이 꺾였다. 유리아가 내게 다가와 내 뺨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녀의 손가락이 내 피부에 닿자, 푸른 문양이 그녀의 손에서 내 얼굴로 번지려 했다.

"괜찮아, 오빠. 곧 모든 게 끝날 거야. 그리고 우리만 남는 거야. 아무도 오빠를 괴롭히지 못해. 나만 오빠 곁에 있을 거야. 저 여자들은... 내가 전부 없애줄게."

그녀가 세르피나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손에서 푸른 마력이 검은 가시 형태로 변형되었다. 그녀가 그 가시를 세르피나에게 던지려는 순간, 세르피나가 화염 방패를 펼쳤다. 하지만 유리아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엘라라를 향해 또 다른 가시를 날렸다. 엘라라가 비명을 지르며 피했다. 유리아가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모두 죽을 거야. 오빠를 아프게 한 것들. 오빠를 빼앗아 간 것들. 전부 내가 없애줄게. 그러면 오빠는 다시 나만 볼 거야. 그렇지, 오빠?"

그녀의 눈에서 푸른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이 내 피부에 닿자, 내 의식이 천천히 잠식되어 갔다. 그녀의 푸른 문양이 더욱 밝게 빛나며 그녀의 전신을 감쌌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푸른 빛을 띠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녀의 관절이 다시 한 번 부자연스럽게 꺾이며, 그녀가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마지막으로 들린 것은, 유리아의 속삭임이었다. 그 목소리는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신의 눈물 유적의 힘이 그녀의 성대마저 잠식해, 마치 수백 개의 목소리가 겹쳐 울리는 듯한 소름끼치는 음색이었다.

"영원히, 나만의 오빠로. 이제 아무도 우리를 갈라놓지 못해. 저 여자들은 모두 사라질 거야. 하나씩, 천천히, 고통스럽게. 오빠의 눈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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