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고본
지호의 고백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는 그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차도, 능력도 아닌, 오직 나를 향한 집착으로 뛰는 심장.
“네 능력은 나를 조종하는 게 아니었어.”
지호의 눈이 살짝 커졌다. 나는 그의 뺨을 감싸며 계속 말했다.
“그냥 내가 원하는 걸 더 빨리 알게 해준 것뿐이야. 내가 너를 원한다는 걸, 내가 무너지고 싶어 한다는 걸, 내가 진짜 나로 사랑받고 싶어 한다는 걸.”
지호의 숨이 거칠어졌다. 그가 내 손을 잡아 입술에 가져갔다. 손가락 끝에 닿는 그의 입김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더 이상 고통스러운 열기는 아니었다.
“누나.”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내가 처음 본 균열이었다. 차를 만들 때의 집중도, 밤새 열병을 앓을 때의 인내도 아닌, 그저 나 앞에서 무너지는 스물여섯 살 남자의 목소리.
“처음부터 누나만을 원했어요. 누나가 내게 차를 마셔주길 바란 것도, 그걸로 누나가 나를 봐주길 바란 것도, 결국은... 내 이기심이었어요.”
나는 그를 끌어당겼다. 그의 얼굴이 내 가슴에 파묻혔다. 손가락 사이로 그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살아 있는 감촉.
“이제는 차 없이도 나를 봐줄 거예요?”
지호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이 젖어 있었다. 나는 그 눈을 들여다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충분히 보고 있어. 너라는 사람을, 너의 집착을, 너의 진심을.”
지호의 손이 내 허리를 감쌌다. 더 이상 조심스럽지 않았다. 그가 나를 침대에 눕혔다. 이불의 부드러운 감촉이 등 뒤로 퍼졌다. 그의 체온이 내 위로 덮였다.
입술이 포개졌다. 처음으로 차 없이 나누는 키스였다. 그런데도 내 감각은 더 예민했다. 그의 혀가 내 입안을 천천히 쓸었다. 따뜻하고, 촉촉하고, 집요했다. 침이 섞이는 소리가 귀에 닿았다. 나는 그의 목덜미를 팔로 감았다. 피부와 피부가 맞닿는 곳에서 열이 올랐다.
“누나.”
지호가 내 목에 입술을 댔다. 쇄골을 따라 혀가 지나갔다. 그의 숨결이 내 피부를 간질였다. 유두가 천천히 경직됐다. 옷 너머로 그의 손이 내 가슴을 감쌌다. 엄지가 유두를 문질렀다. 내 등이 살짝 들렸다.
“아... 천천히...”
내 목소리가 잠겼다. 지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은 여전히 젖어 있었지만, 그 안에는 더 이상 집착이나 계산이 없었다. 오직 나를 향한 충만한 감정만이 담겨 있었다.
“평생 천천히 할게요. 평생 누나를 안을 시간이 생겼으니까.”
그의 말에 가슴이 저렸다. 눈물이 핑 돌았다. 지호가 내 눈가에 입을 맞췄다. 그의 혀가 내 눈물을 핥았다. 짠맛이 그의 입술에 묻었다.
“평생이라니... 그런 말 쉽게 하는 거 아니야.”
“쉽게 하는 말이 아니에요. 누나 앞에서는.”
지호의 손이 내 옷을 벗겼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마치 선물을 푸는 것처럼. 내 가슴이 완전히 드러나자 그의 숨이 멎었다. 그는 잠시 내 몸을 응시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피부가 달아올랐다.
“아름다워요.”
그가 속삭였다. 그의 손이 내 배를 쓸었다. 배꼽 주변을 손끝이 빙글빙글 돌았다. 내 복근이 경련하듯 수축했다. 그의 손이 더 아래로 내려갔다. 허벅지 안쪽을 스쳤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오므렸다.
“아직 부끄러워?”
지호가 낮게 웃었다. 이 짓궂은 남자. 나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가 내 턱을 잡아 다시 자신을 향하게 했다.
“도망가지 마요. 이제는 누나의 모든 걸 보고 싶어요. 부끄러워하는 얼굴도, 욕망에 솔직한 얼굴도, 나에게 완전히 열린 얼굴도.”
그의 손이 내 팬티를 벗겼다. 음모가 드러나고, 그 아래 음부가 공기에 노출됐다. 나는 숨을 삼켰다. 지호의 시선이 그곳에 닿았다. 그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
“젖었어요.”
그의 손가락이 음순을 살짝 벌렸다. 애액이 손가락에 묻어났다. 그는 그 손가락을 내 눈앞에서 천천히 입에 넣었다. 빨아들이는 소리가 났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누나의 맛이에요. 차 없이도 이렇게 달아요.”
지호가 내 다리를 벌렸다. 그의 얼굴이 내 음부로 다가왔다. 그의 혀가 음핵을 스쳤다. 내 몸이 튕겨 올랐다. 전기라도 통하는 것처럼.
“아... 지호야...”
그가 천천히 핥았다. 음순을 따라, 질 입구를 따라. 그의 혀는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애액과 그의 침이 섞여 흘러내렸다. 내 허벅지 안쪽이 젖었다. 그의 혀가 질 안으로 들어왔다. 근육이 수축하며 그를 조였다. 손가락이 이불을 움켜쥐었다.
“더... 더 해줘...”
내 목소리가 갈라졌다. 지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그의 입가가 젖어 반짝였다. 그가 천천히 손가락을 질 안으로 밀어 넣었다. 두 번째 손가락이 추가됐다. 질벽이 손가락을 빨아들였다. 그의 손가락이 안쪽을 압박하며 천천히 움직였다. 애액이 질 밖으로 흘러나와 침대 시트에 스며들었다.
“누나, 느껴져요? 내 손가락이 누나 안에서 움직이는 게.”
지호가 속삭였다. 그의 손가락이 더 깊이 들어왔다. 자궁 경부에 닿을 듯 말 듯. 내 안이 그를 더 강하게 조였다. 나는 그의 어깨를 잡았다. 손톱이 그의 피부를 파고들었다.
“느껴져... 너무... 느껴져...”
내 목소리가 신음과 함께 흘러나왔다. 지호의 손가락이 더 빨리 움직였다. 질벽의 주름을 문지르며, 안쪽의 예민한 점을 자극하며. 나는 허리를 들었다. 절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호가 손가락을 뺐다. 나는 허전함에 눈을 떴다. 그가 내 위로 올라왔다. 그의 성기가 내 음부에 닿았다. 귀두가 음순 사이를 스치며 애액을 묻혔다.
“들어가요.”
내가 먼저 말했다. 지호가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의 성기가 천천히 질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따뜻하고 단단한 살덩어리가 내 안을 채웠다. 질벽이 그를 감쌌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아... 괜찮아요?”
지호가 멈춰서 물었다. 그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참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그의 엉덩이를 다리로 감쌌다. 그리고 그를 더 깊이 끌어당겼다.
“멈추지 마. 더... 더 깊이.”
지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천천히. 그의 성기가 질 안을 미끄러졌다. 빠져나갈 때는 질벽이 그를 아쉬워하듯 수축했고, 들어올 때는 내 안이 환영하듯 열렸다. 그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내 숨소리와 그의 숨소리가 겹쳐졌다.
“누나... 사랑해요... 진짜 사랑해요...”
지호가 신음처럼 말했다. 그의 허리가 더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성기가 내 안의 예민한 곳을 반복해서 마찰했다. 나는 그의 등을 팔로 감았다. 그의 등에 난 땀방울이 내 팔뚝에 묻었다.
“나도... 나도 사랑해... 지호야...”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런데 이 눈물은 더 이상 고통이나 억압의 눈물이 아니었다. 해방의 눈물, 충만함의 눈물. 내 질이 그의 성기를 더 강하게 조였다. 오르가즘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 허벅지가 떨렸다. 복부가 경련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이게 진짜 나야.”
내가 중얼거렸다. 지호의 움직임이 절정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의 성기가 내 안에서 더 커지고 단단해졌다.
“부서지기 쉽고, 욕망에 솔직하고, 너를 사랑하는 사람.”
그 순간, 지호가 내 안에서 절정했다. 뜨거운 액체가 자궁 경부를 때렸다. 나도 동시에 절정했다. 질벽이 그의 성기를 강하게 쥐어짜며 경련했다. 애액이 그의 성기 옆으로 흘러내렸다. 내 온몸이 떨렸다. 손끝과 발끝이 저렸다. 시야가 하얘졌다.
지호가 내 위로 무너졌다. 그의 체중이 나를 짓눌렀다. 하지만 그 무게가 오히려 나를 안정시켰다. 우리 둘의 심장 소리가 겹쳐서 들렸다. 쿵쿵, 쿵쿵. 빠르게, 그리고 점점 느리게.
한참을 그렇게 누워 있었다. 지호의 성기가 아직 내 안에 있었다. 질벽이 가끔 그의 성기를 기억하듯 살짝 수축했다. 그때마다 지호의 성기도 반응하며 움찔거렸다. 우리는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숨을 골랐다.
“누나.”
지호가 내 목에 얼굴을 파묻고 중얼거렸다.
“이제 누나는 내 거예요. 완전히.”
나는 그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땀에 젖어 축축했다. 그의 냄새가 내 코를 채웠다. 차 향기도, 열병의 흔적도 아닌, 그저 강지호라는 남자의 냄새.
“응. 그리고 너는 내 거야.”
지호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이 휘어졌다. 진짜 웃음이었다. 계산도, 집착도, 능력도 없는, 그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웃는 스물여섯 살 남자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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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어났을 때, 창문 너머로 아침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몸이 개운했다. 마치 오랫동안 짊어졌던 무거운 갑옷을 벗어던진 것처럼.
옆을 돌아봤다. 지호가 나를 보고 있었다. 언제 깨어났는지, 그는 팔베개를 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 아침 햇살이 반사되어 반짝였다.
“좋은 아침이에요, 누나.”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부드러웠다. 나는 그에게 살짝 웃어 보였다.
“좋은 아침.”
우리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지호가 먼저 주방으로 갔다. 나는 그의 침대에 앉아 방 안을 둘러봤다. 여전히 깔끔하고, 미니멀하고, 차 도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방. 그런데 어제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이 하나도 없었다.
“오늘은 차 안 마실 거예요?”
내가 주방 쪽으로 물었다. 지호가 고개를 내밀었다.
“아니요. 오늘은 제가 평범한 차를 준비했어요. 아무 능력도 없는, 그냥... 진짜 차.”
그가 쟁반을 들고 왔다. 위에는 찻주전자와 찻잔 두 개가 올려져 있었다. 그가 내 앞에 찻잔을 내려놓고 차를 따랐다. 익숙한 향이 퍼졌다. 그런데 정말로, 어제까지 느꼈던 그 감각의 증폭이나 이성의 마비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저 따뜻하고 은은한 차 향기뿐.
“이건 할머니에게 배운, 가장 기본적인 블렌딩이에요. 카모마일과 레몬그라스, 약간의 꿀. 그냥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차예요.”
나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따뜻한 차가 목을 타고 내려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감각이 증폭되지도 않았고, 억압된 욕망이 솟아오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이 차는 맛있었다. 지호가 지금까지 내게 줬던 어떤 차보다.
“맛있어.”
내가 말했다. 지호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가 내 맞은편에 앉아 자신의 찻잔을 들었다.
“누나, 나 결심했어요.”
“뭘?”
“더 이상 능력을 쓰지 않기로. 적어도 누나에게는.”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그를 바라봤다. 지호가 계속 말했다.
“누나 말이 맞았어요. 내 능력은 누나를 조종하는 게 아니었어요. 그냥 내가 누나의 진짜 마음을 확인하는 도구였을 뿐이에요. 그런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누나는 이미 내게 진짜 마음을 보여줬으니까.”
그가 내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했다.
“앞으로는 그냥, 진짜 차만 줄게요. 진짜 나만.”
나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나도 결심한 게 있어.”
지호가 궁금한 듯 나를 바라봤다.
“회사에 사표 낼 거야. 그리고 내 작은 책방을 열 거야.”
지호의 눈이 커졌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거야. 편집장이 아니라, 그냥 서연우로서 책을 추천하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
“멋져요.”
지호가 진심으로 말했다. 그의 눈이 반짝였다.
“내가 도와줄 수 있을까요? 책방에서 일하게 해줘요. 차도 만들어주고, 청소도 하고, 누나가 필요한 건 뭐든지.”
“이력서는 내일까지 제출해.”
내가 짓궂게 말했다. 지호가 크게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가 아침 햇살 속으로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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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이 흘렀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다. 길가의 은행나무들이 노란 잎을 떨어뜨리고, 그 자리에 앙상한 가지가 드러날 무렵, 나의 작은 책방 ‘37.2℃’가 문을 열었다.
책방은 한적한 주택가 골목에 있었다. 오래된 2층짜리 주택의 1층을 개조한 공간이었다. 큰 창문으로 햇살이 잘 들었고, 벽을 따라 꽂힌 책장에는 내가 정성스럽게 고른 책들이 빼곡했다. 한쪽에는 지호의 차를 마실 수 있는 작은 티 테이블도 마련했다.
개업 첫날, 윤미래와 한수빈이 찾아왔다. 미래는 문을 열자마자 큰 소리로 감탄했다.
“와, 언니! 진짜 예쁘다! 이게 바로 연우 언니만의 공간이구나!”
미래는 책장 사이를 돌아다니며 책들을 구경했다. 그녀의 손이 책등을 스치며 지나가는 모습을 보니, 예전 출판사에서 함께 일하던 때가 떠올랐다.
“이 책, 언니가 편집한 거 아니야? 그때 밤새면서 교정 보느라 힘들어하던 거 기억나.”
미래가 책 한 권을 꺼내 들며 말했다. 맞았다. 그 책은 내가 편집장이 되고 처음으로 총괄했던 프로젝트였다. 당시에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밤마다 야근하며 원고를 수십 번은 다시 읽었었다.
“그땐 정말 힘들었지.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힘듦조차도 다 나였던 것 같아.”
내가 말했다. 미래가 책을 다시 꽂으며 나를 돌아봤다.
“언니, 진짜 많이 변했어. 예전엔 그런 말 절대 안 했잖아. 힘든 티도 안 내고, 완벽한 척 웃으면서 넘기고.”
미래의 눈이 약간 젖어 있었다.
“나 사실, 언니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적도 있어. 너무 완벽하니까 그 가면 밑에 진짜 언니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거든. 그런데 이제는 그냥, 지금 언니가 좋아.”
나는 말없이 미래를 안아주었다. 그녀의 어깨 너머로 수빈이 보였다. 수빈은 입구 근처에서 어색하게 서서 책방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수빈아, 들어와서 편하게 구경해.”
내가 말했다. 수빈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화분이 들려 있었다.
“이거... 개업 축하 선물이에요. 편집장님 책상 위에 놓을까요?”
“이제 편집장 아니야. 그냥 언니라고 불러도 돼.”
수빈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녀는 화분을 내밀었다. 작은 다육 식물이었다.
“저... 언니. 그동안... 죄송했어요.”
수빈이 입을 열었다. 그녀는 시선을 바닥에 둔 채 계속 말을 이어갔다.
“지호 씨를 의심했던 거... 그리고 그걸 언니한테 보고했던 거... 사실은 질투였어요. 언니가 나 대신 지호 씨만 챙겨주는 것 같아서.”
나는 수빈의 어깨를 감쌌다. 그녀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괜찮아. 나도 너에게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했어. 앞으로는 여기 자주 놀러 와. 항상 차 대접할게.”
그때, 주방 쪽에서 지호가 나왔다. 그는 쟁반에 찻잔 여러 개를 들고 있었다. 수빈이 지호를 보며 살짝 긴장하는 기색을 보였다.
“수빈 씨, 오랜만이에요.”
지호가 평소처럼 순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의 손이 쟁반에서 찻잔을 내려 수빈 앞에 놓았다.
“이건 수빈 씨를 위해 특별히 블렌딩한 거예요. 예전에 사무실에서 많이 긴장해 있던 모습을 봤거든요. 긴장을 풀어주는 허브 블렌딩이에요. 물론... 아무 능력도 없는 그냥 차예요.”
수빈이 찻잔을 들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잠시 후, 그녀의 굳어 있던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맛있어요. 고마워요, 지호 씨. 그리고... 저도 미안했어요.”
지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수빈 씨는 누나를 진심으로 걱정했을 뿐이잖아요. 저는 그게 고마웠어요. 누나를 지키려는 사람이 있다는 게.”
나는 그 광경을 보며 가슴이 따뜻해졌다. 미래와 수빈이 함께 차를 마시며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 지호가 그 옆에서 차를 따르며 조용히 미소 짓는 모습. 이게 내가 진짜 원했던 거였다. 완벽한 페르소나가 아닌, 그저 나 자신으로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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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이 돌아가고, 책방 안에는 나와 지호만 남았다. 겨울 해가 일찍 져서 밖은 이미 어두웠다. 책방 안의 따뜻한 조명이 창문에 반사되어 우리 둘의 모습을 비췄다.
나는 책방 뒤편의 작은 테라스로 나갔다. 테라스에는 작은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도시의 불빛이 멀리 반짝이고 있었다. 예전 출판사 옥상에서 보던 풍경과 비슷했다.
“누나.”
뒤에서 지호가 불렀다. 그가 쟁반을 들고 나왔다. 위에는 찻주전자와 찻잔 하나가 놓여 있었다.
“오늘의 마지막 차예요.”
그가 내 앞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차를 따르자 은은한 향이 퍼졌다. 그런데 이 향은 지금까지 맡아본 어떤 차와도 달랐다. 깊고, 부드럽고, 미묘하게 달콤했다.
“이건 무슨 차야?”
내가 물었다. 지호가 내 맞은편에 앉았다.
“이건 아무 능력도 없는 그냥 차예요. 하지만 이 안에는 누나를 향한 내 모든 마음이 담겨 있어요.”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나는 찻잔을 들었다.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따뜻한 액체가 입안을 채우고 목을 넘어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감각이 증폭되지도, 이성이 마비되지도, 욕망이 솟아오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이 차는 완벽했다. 지호가 지금까지 내게 줬던 어떤 차보다.
“이제는 네가 무슨 차를 주든 상관없어.”
내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충분히 해방되었으니까.”
지호가 내 손을 잡았다. 그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손을 잡은 채, 겨울 밤의 도시 불빛을 바라봤다.
“누나, 이제 행복해요?”
지호가 물었다. 나는 그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윤곽은 또렷했다. 다정한 눈매, 단단한 턱선, 나를 바라볼 때면 언제나 미묘하게 떨리던 입술.
“응. 행복해.”
나는 대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완벽하지 않아도, 그저 나 자신이어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이제 알아서.”
지호가 나를 돌아봤다. 그의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가 내 손을 놓고 천천히 일어섰다. 내 뒤로 돌아와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의 손가락이 내 어깨 근육을 살며시 주무르기 시작했다. 따뜻한 체온이 옷감 너머로 스며들었다.
“누나, 오늘 많이 긴장했죠? 개업 첫날이라.”
그의 목소리가 귀 옆에서 들렸다. 숨결이 내 귓불을 스쳤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어깨가 위로 올라갔다. 지호의 엄지가 승모근을 따라 천천히 원을 그렸다. 단단하게 뭉친 근육이 그의 손길에 조금씩 풀어졌다.
“지호야...”
“쉿, 그냥 있어요. 오늘 하루 종일 웃느라 힘들었잖아요.”
그의 손이 어깨에서 목덜미로 올라왔다. 손가락이 내 목선을 따라 쓸었다. 엄지가 귀 뒤의 움푹 파인 곳을 압박했다. 나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나왔다. 지호의 손이 잠시 멈췄다.
“누나, 그 소리... 다시 내줄래요?”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지호가 내 앞으로 돌아왔다. 그가 무릎을 꿇고 앉아 나를 올려다봤다. 그의 눈동자에 테라스의 작은 전구 불빛이 반사되어 반짝였다.
“아까 차 마셨어요?”
“응.”
“아무 일도 없었죠?”
“응.”
“그런데 지금, 누나 마음은 어때요?”
나는 그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다정한 눈매, 단단한 턱선, 나를 바라볼 때면 언제나 미묘하게 떨리던 입술. 그 입술이 지금, 살짝 벌어져 있었다.
“네가 갖고 싶어.”
내가 솔직하게 말했다. 지호의 입술이 천천히 올라갔다. 그가 내 무릎 위에 손을 얹었다. 그의 손바닥이 내 허벅지를 천천히 쓸어 올렸다. 치마 아래로 손가락이 사라졌다.
“차 없이도?”
“차 없이도.”
내가 숨을 들이켜며 대답했다. 지호의 손가락이 내 팬티 위를 스쳤다. 벌써 젖어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천을 밀어내고 음순 사이를 갈랐다. 애액이 손가락을 적셨다.
“누나, 여긴 아직 겨울인데... 이렇게 따뜻해요.”
그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의 손가락이 천천히 질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손톱이 그의 셔츠를 파고들었다.
“여기서...?”
“아무도 없어요. 다들 퇴근했고, 골목도 조용하고, 하늘엔 별도 뜨고.”
그의 손가락이 안쪽을 압박하며 움직였다. 나는 허리를 살짝 들었다.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지호의 다른 손이 내 허리를 감싸 안정시켰다.
“누나가 오늘 얼마나 예뻤는지 알아요? 손님들한테 책 추천해주면서 눈 반짝이는 거, 차 맛있다고 웃어주는 거, 내가 옆에 있을 때마다 살짝 안심하는 표정...”
그의 손가락이 더 깊이 들어왔다. 엄지가 음핵을 문질렀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삼켰다.
“그 모습들... 다 기억해요. 그리고 지금 이 모습도.”
지호가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손가락이 질벽을 쓸며 빠져나왔다가 다시 들어왔다. 애액이 그의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일 아침에 또 차 줄 거지?”
내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내일 아침, 모레 아침, 그리고 평생 매일 아침.”
그의 손가락이 더 빨리 움직였다. 절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그의 손목을 잡았다. 멈추라는 뜻이 아니라, 더 깊이, 더 세게 해달라는 뜻으로.
“하지만 지금은...”
지호가 내 치마를 완전히 걷어 올렸다. 차가운 겨울 공기가 허벅지에 닿았다. 그의 얼굴이 내 다리 사이로 다가왔다. 뜨거운 입김이 음부에 닿았다.
“차 대신 이걸 줄게요.”
그의 혀가 음핵을 스쳤다. 나는 의자 등받이를 움켜잡았다. 그의 혀가 음순을 따라 움직이고, 질 입구를 파고들었다. 따뜻하고 촉촉한 감촉이 내 안을 채웠다. 애액과 그의 침이 섞여 허벅지 안쪽을 타고 흘러내렸다.
“지호야... 지금... 나...”
“가도 돼요, 누나. 여기서.”
그의 목소리가 진동으로 전해졌다. 그의 혀가 더 깊이 들어왔다. 나는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질벽이 그의 혀를 강하게 조였다. 시야가 하얘졌다. 도시의 불빛이 별처럼 흩어졌다.
절정이 지나고, 나는 숨을 골랐다. 지호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입가가 젖어 반짝였다. 그가 내 무릎에 얼굴을 기댔다.
“누나.”
“응.”
“내일 아침, 어떤 차를 줄지 벌써 고민돼요.”
나는 웃음이 터졌다.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대답했다.
“어차피 네가 무슨 차를 주든, 나는 너를 마실 거야.”
지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이 휘어졌다. 그가 일어나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에선 내 체액의 짭짤한 맛이 났다.
“그럼 내일도, 모레도, 평생 매일 아침... 차 한 잔과 함께 시작해요. 진짜 얼굴로, 진짜 마음으로.”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손을 잡은 채 다시 도시의 불빛을 바라봤다. 겨울 밤하늘에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내일 아침, 그가 또 차를 내밀겠지. 그때 나는 어떤 얼굴로 그를 바라볼까. 부끄러워하면서도, 욕망을 숨기지 않고, 그저 나 자신으로서 그에게 입을 맞출까. 아니면 먼저 찻잔을 내려놓고 그를 끌어당겨 키스할까.
어느 쪽이든 좋았다. 어차피 그는 내 남자였고, 나는 그의 여자였으니까. 이제 더 이상 숨길 것도, 두려워할 것도, 억누를 것도 없었다. 우리는 이렇게, 매일 아침 차 한 잔과 함께,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진짜 얼굴로, 진짜 마음으로, 서로를 마주하며. 그리고 밤이면, 이 테라스에서 다시 한번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