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자정 정각, 강남역 지하 1층 플랫폼의 끝자락.

나는 그곳에서 게이트를 본다. 다른 누구도 보지 못하는 것을. 철로 위에 떠 있는 검은 문, 아니 구멍이라고 해야 할까. 모양도 없고 색도 명확하지 않은 그것. 자정이 되는 순간 공기가 갈라지듯 나타나는 입구.

게이트 안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쇳소리가 아니라 뭔가 생명체의 비명 같은 것. 나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사냥 의뢰서를 꺼냈다. 길드 유진수로부터 받은 정보—강남역 B급 게이트, 내용물 분노 속성 몬스터 1마리, 의뢰료 1천만 원.

의뢰료를 보며 느껴야 할 감정이 뭘까. 기쁨? 그런 건 이미 2년 전에 사라졌다.

나는 게이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중층 공간. 게이트 내부는 현실과 겹쳐 있는 또 다른 세계였다. 강남역 플랫폼의 형태는 유지되고 있었지만, 벽은 살아 있는 육질처럼 맥박치고 있었고, 천장에서는 검은 액체가 천천히 떨어졌다. 냄새는 철과 썩은 것이 뒤섞인 냄새. 숨을 깊게 들이마실 이유가 없었다. 나는 숨 쉬는 것도 의무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몬스터는 플랫폼의 중앙에 있었다.

소의 머리와 인간의 상반신을 한 형태. 높이 2.5미터 정도. 이미 나를 감지했는지 저것의 눈—다섯 개의 눈이 모두 나를 향했다. 눈동자는 붉은색이었다. 분노의 색.

"나온다."

내 목에서 나오는 말도 타인의 음성처럼 들렸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내 입을 빌려 말하는 것처럼.

몬스터가 포효했다. 플랫폼이 흔들렸다.

그것이 달려들 때, 나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감정 수집 능력을 활성화하는 것은 의식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눈을 깜빡이는 것처럼. 자동이었다.

몬스터의 분노가 나에게로 흘러 들어왔다.

그 감정은 구체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검은 연기처럼 나타나 내 가슴팍으로 빨려 들어갔다. 뜨거움. 전기 같은 자극. 그리고 힘.

내 몸이 변했다.

근육이 팽창했고, 피부 표면에 혈관이 부풀어 올랐다. 팔의 굵기가 두 배가 되었다. 나는 이 상태에서 뛰어올랐다. 몬스터를 향해.

격돌의 순간, 내 주먹이 그것의 뿔을 부수었다. 뿔이 아니라 머리 전체가 움푹 파였다. 몬스터는 비명을 질렀지만, 나는 이미 두 번째 펀치를 날리고 있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펀치에서 몬스터는 움직임을 멈췄다.

몸이 검붉게 빛났다. 분노의 에너지가 나를 비추고 있었다. 내 손가락 끝에서까지 혈관이 보일 정도의 강렬한 색채. 내가 느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이것이 기쁨일까? 쾌감일까? 아니다. 나는 이미 그런 감정을 잃었다. 그저 신체의 반응일 뿐이었다.

나는 몬스터의 시체에 한 발을 올렸다. 갈비뼈가 부러지며 내는 소리. 내장기관이 터지는 소리. 그것을 들으며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새벽 5시 정각이 되자 게이트가 닫혔다.

강남역 플랫폼이 다시 나타났다. 형광등, 선로, 벤치, 지하철의 냄새.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마치 게이트 따위는 없었던 것처럼. 마치 내가 몬스터를 죽이지 않았던 것처럼.

나는 팔을 들었다.

발광 표식이 남아 있었다. 팔뚝에서부터 손목까지 이어지는 붉은색 문양. 마치 문신처럼 보였지만, 천천히 희미해지고 있었다. 이전 사냥에서도 이런 표식들이 남았다. 항상 새벽 5시에서 오전 10시 사이에 완전히 사라진다. 나는 이것을 '남은 감정의 자국'이라고 생각했다. 분노를 흡수했으니 분노의 흔적이 남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표식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30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뚜렷했다. 팔뚝의 피부가 따뜻했다. 아니, 뜨거웠다. 타는 듯한 열감이 손목 아래로 퍼지고 있었다. 그 열이 단순한 화상이 아니었다. 내부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느낌. 피부 아래에서 근육이 경련하듯 움직이고, 신경이 날카로운 자극을 보내고 있었다.

이상했다.

나는 문지르려고 손을 올렸다가 멈췄다. 표식 아래로 맥박이 뛰고 있었다. 나의 맥박이 아닌, 다른 것의 맥박. 마치 팔 안에 또 다른 심장이 있는 것처럼.

집은 강남구 논현동에 있었다. 반지하 원룸. 월세 50만 원. 사냥으로 번 돈이 충분하지만, 굳이 좋은 집으로 옮기고 싶지 않았다. 이곳이 익숙했다. 아니, 익숙하다는 감정도 사라졌다. 그냥 변화를 거부하는 관성일 뿐.

내가 문을 열었을 때, 어머니가 거기 있었다.

"준호."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놀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안도감. 그 뒤에는 슬픔. 모든 감정이 시간차를 두고 겹쳐 있었다.

"미안해. 너 요즘 전화도 안 받고... 집에도 안 오고..."

어머니는 나를 안으려고 팔을 벌렸다. 나는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집에 있었어?"

"응. 오늘 따라 뭔가 불안해서... 너 괜찮아?"

나는 팔을 재빠르게 내렸다. 소매로 표식을 덮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봤을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거울 속의 남자와 같은 얼굴. 텍스처가 없는 얼굴.

"너 정말 우리 준호 맞아?"

어머니가 물었다. 목소리가 흔들렸다.

나는 답을 찾으려고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내 팔 아래에서 맥박이 뛰고 있었다. 다른 것의 맥박. 그것이 빨라지고 있었다.

순간, 팔소매 아래에서 표식이 진홍색으로 번쩍였다. 어머니가 놀라 몸을 뒤로 물렸다.

"준호? 그게... 뭐야?"

내 팔뚝의 문양이 맥박에 맞춰 호흡하듯 펄떡거렸다. 아까는 단순한 발광이었는데, 지금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표식의 테두리가 점점 선명해지면서 무언가의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눈. 여러 개의 눈.

그것들이 떠오르는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피부 아래에서 뭔가가 뚫고 나오려는 느낌. 신경이 찢어지는 듯한 자극이 팔 전체를 휩쓸었다. 손가락 끝까지 경련이 전해졌다. 피부는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어머니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입이 떨렸다. 공포. 명백한 공포가 어머니의 얼굴을 뒤덮었다.

"아, 아니야. 그냥..." 나는 소매를 내렸다. 손이 떨렸다. 감정이 없는 손이 떨리는 건 이상했다. "사냥할 때 다친 거야."

거짓이었다. 명백한 거짓. 어머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게이트에서? 또 게이트에서 다쳤어? 준호, 이건..." 어머니가 내 팔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나는 다시 뒤로 물러났다.

"건드리지 마."

목소리가 나왔다. 내 목소리가 아닌 것처럼 들렸다. 차갑고 딱딱하고, 기계음처럼. 어머니의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 눈물이 흘렀다.

"정말... 넌 누구니?"

같은 질문이었다. 거울 속에서 내가 했던 질문과 동일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답이 없었다. 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누구인지 나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나를 안으려고 다시 팔을 벌렸다. 나는 몸을 돌려 침대 쪽으로 향했다.

"제발..."

어머니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하지만 나는 귀를 닫았다. 아니, 닫으려고 했다.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 울음을 듣지 않기 위해.

"제발 엄마한테 뭐라도 말해 줘. 화내든, 울든, 뭐든... 그냥 뭐라도 느껴 줘. 제발."

나는 침대에 누웠다. 어머니의 울음소리는 계속 들렸다. 손으로 귀를 막았지만 스며들었다. 그것이 내 마지막 남은 감정을 건드렸다.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 그것이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울렸다.

하지만 그것도 곧 사라질 것 같았다.

"미안해."

나는 그렇게만 말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다른 감정은 없었다. 미안함도 진정성 없이 나왔다. 기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대사처럼.

어머니가 침대 끝에 앉았다. 나는 몸을 안쪽으로 웅크렸다. 어머니의 손이 내 등을 쓸어내렸다. 아무 감정 없이 받아들였다. 마치 낯선 사람을 위로받듯이.

밤은 계속됐다. 새벽 5시가 지나갔다. 게이트가 닫혔다. 내 팔의 표식도 희미해졌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마치 다음 자정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침대에 누웠을 때, 내 팔의 눈들이 다시 떠졌다.

여러 개의 눈이 동시에 나를 보고 있었다. 내 것이 아닌 눈으로. 그리고 그 눈들이 뭔가를 원하고 있었다. 뭔가를 전달하려고 했다.

그 메시지는 명확했다.

'넌 이미 끝났어.'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알 수 없는 번호가 떴다. 나는 받았다. 대답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이준호 맞나?" 목소리가 매끄러웠다. 누군가 계획된 대사를 읽는 것처럼. "박태현이라고 한다. 게이트 관리청 비상대응팀."

"누세요."

"자정의 게이트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말이야. 그 사람은 당신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박태현이 잠시 멈췄다. 그 침묵 속에 뭔가 계산하는 기색이 있었다.

"그리고 당신의 팔의 표식에 대해서도. 그것이 단순한 감정의 자국이 아니라는 걸 말이야. 10년 전 강남역 폭발 사건을 기억하나? 당신의 아버지가 있던 게이트에서 일어난 사건."

내 손이 본능적으로 팔을 감쌌다. 팔 아래의 눈들이 경련하듯 움직였다. 남은 감정이 흔들렸다. 공포. 의심. 계산. 그것들이 한순간 내 몸을 지배했다. 2년 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 폭발의 원인이 뭔지 알고 싶지 않나? 왜 당신에게만 그 표식이 나타나는지. 왜 당신이 감정을 잃어가고 있는지."

박태현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마치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진정해 봐요. 우린 적이 아니야. 오히려 같은 편이야. 당신이 찾고 있는 답이 여기 있어."

"뭘 찾고 있는데요."

"게이트의 근원. 그리고 당신이 사라져 가고 있는 이유. 그것을 멈추는 방법도."

전화가 끊겼다. 주소가 문자로 날아왔다. 강남역 인근의 어떤 건물. 그리고 시간. 내일 자정.

어머니가 침대 옆에 섰다. 나를 내려다봤다. 내 팔을 보려고 했다. 나는 팔을 몸 아래로 숨겼다.

"누가 전화했어? 뭐라고 했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준호, 제발... 엄마한테 말해 줘. 아빠처럼 떠나지 말고. 아빠도 게이트에 빠져서... 결국..."

어머니의 말이 흐릿해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하지만 그것도 소용없었다. 그 울음이 내 안의 마지막 감정을 흔들었다.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

그것이 있었다. 아직도.

하지만 그것도 곧 사라질 것 같았다.

새벽이 밝아왔다. 어머니는 침대 옆 바닥에 앉아 있었다. 나를 지키려고. 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나는 그 모습을 바라봤다. 감정 없이. 하지만 팔 아래에서 눈들이 박동했다. 어머니를 향해. 그 눈들이 뭔가를 원했다. 지키고 싶은 마음을 짓밟고 싶은 욕망. 그것이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렸다.

무거움. 진동. 공명.

마지막 남은 감정의 흔적이 팔의 표식과 맞닿았다.

그것이 마지막이 되기 전에, 나는 모든 것을 끝내야 했다.

자정의 게이트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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