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나라가 멸망하는 날, 황궁의 현판이 불에 타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황제 레인의 목이 잘리는 순간, 내 비명도 함께 끊겼다. 왕비 셀레나의 검은 손가락이 내 목을 누르고—

손가락이 얼어붙는다.

눈을 떴다. 천장은 정보 관아의 관저. 햇빛이 창문을 통해 흐르고, 새소리가 들렸다.

손을 들어올렸다. 손가락이 떨렸다. 이 손은 정말 내 손인가?

회귀했다. 전생에서 죽은 내가, 다시 살아났다. 전생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왕비가 황제를 어떻게 조종했는지. 황족 원로회가 어떤 음모를 짰는지. 나라가 어떻게 멸망했는지. 모든 것이 뇌에 박혀있었다. 어제 일보다 더 생생하게.

거울을 봤다. 젊다. 죽기 전의 얼굴이다. 눈가에 주름도 없고, 손등에 때묻은 흔적도 없다. 너무 깨끗해서 역겹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 이것은 선택지가 아니라 운명이었다.

전생에서 황제를 사랑했던 나는, 이번 생에서 황제를 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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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조회에 나타났을 때, 황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황금빛 옥좌에 앉은 레인. 전생에서 마지막으로 본 얼굴과 같았다. 젊고, 이상주의적이고, 절망하지 않은 눈빛.

그 눈이 나를 봤다.

심장이 멈췄다가 다시 뛰었다. 호흡을 고르게 유지했다. 표정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카이나.'

황제가 내 이름을 불렀다. 전생에서 몇 번이나 들었던 그 목소리가, 다시 내 귀에 닿았다.

'폐하.'

절했다.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대했다. 이렇게 하면 눈물이 흐르는 것을 숨길 수 있다.

'그대는 정보 관아의 참모라 했는가?'

'그렇습니다, 폐하.'

일어섰다. 황제의 눈을 마주했다. 그 눈은 여전히 따뜻했다. 하지만 나는 그 따뜻함을 느끼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것을 보존해야 할 것으로 봤다.

'전 황제를 돕고 싶습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소리는 차분했다. 전생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손가락의 온기가 사라졌다. 마치 차가운 석상의 손이 되었다.

황제가 눈을 좁혔다.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대는 누구인가?'

침묵이 내려앉았다. 황궁의 넓은 방 안에서, 나와 황제 사이에만 공기가 있었다.

입을 열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폐하.'

황제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그것이 신뢰의 표정인지, 판단의 표정인지 알 수 없었다.

'신뢰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황제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봤다. 따뜻할 것이다. 황제의 손은 항상 따뜻했다.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느껴버렸다.

내 손은 차갑다.

황제의 따뜻한 손과 만나는 순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내 손에는 온기가 없다는 것을. 전생의 기억을 꺼낼 때마다, 나는 한 조각씩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황제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대의 손이...'

'폐하, 중요한 보고가 있습니다.'

빠르게 손을 뺐다. 한 걸음 물러섰다.

'황족 원로 루시안께서 개혁 정책의 유예를 청원하셨습니다. 공식 이유는 시행 준비 미흡이지만...'

문서를 펼쳤다. 황제의 책상 위에.

'이 청원서는 왕비 폐하의 시종장이 작성했습니다. 필체가 일치합니다.'

황제는 문서를 들었다.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이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정보 관아에서의 첫 번째 업무가 문서 검증이었습니다. 필체 분석은 기본입니다.'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진실도 아니었다. 나는 전생에서 이 정책이 어떻게 무산되었는지 알고 있었다. 황족 원로회의 반발로 황제가 한 발 물러섰고, 그 약간의 물러남이 왕비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 기회가 황제의 신뢰를 약화시켰고, 결국 나라 전체를 집어삼켰다.

황제는 다시 문서를 봤다. 그 다음 나를 봤다.

'그대의 손이...'

'대응안도 준비했습니다.'

빠르게 끼어들었다.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만약 원로회가 공식 반발을 할 경우, 황제 폐하께서 황족 대표들과 직접 협의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자리에는 정보 관아의 실무진이 함께해야 합니다. 정책의 실행 가능성을 직접 설명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황제는 내 말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나를 재고 있었다.

'신뢰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라고 했지. 그대가 내 신뢰를 만들고 싶다는 것인가?'

'아닙니다, 폐하.'

고개를 들었다.

'저는 증거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신뢰는 증거에서 나옵니다.'

그 말은 진실이었다. 이번 생의 나는 황제의 사랑을 원하지 않는다. 원한다면, 전생처럼 황족의 압박에 무너질 것이다. 대신 나는 증거를 쌓겠다. 하나씩, 천천히, 황제가 나를 신뢰할 수밖에 없도록. 이것이 이번 생에서 달라진 나의 선택이었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를 향해 말했다.

'그렇다면 증거를 보이겠지.'

그것은 신뢰가 아니었다. 하지만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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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가 끝난 후, 나는 황제의 지시로 정책 협의실에 불려갔다. 루시안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황족 원로 셋이 더 있었다. 모두 전생에서 왕비의 편에 선 자들이었다.

황제는 내가 준 문서를 펼쳤다.

'이 청원에 대해 설명하겠다.'

루시안의 얼굴이 굳었다.

'폐하, 이것은 원로회의 공식 청원입니다. 평민 참모의 의견이 필요한 사항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다.'

황제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이 문서의 필체가 왕비의 시종장과 일치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원로회가 진정으로 정책 유예를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침묵이 흘렀다. 루시안의 눈이 나를 향했다. 살의에 찬 눈빛이었다.

'폐하, 이것은 원로회에 대한 모독입니다.'

'모독이 아니라 확인이다.'

황제가 나를 바라봤다.

'카이나, 이 정책이 유예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나는 숨을 쉬었다. 이것이 내가 준비한 순간이었다.

'개혁 정책의 유예는 황제 폐하의 권위를 약화시킵니다. 원로회가 한 번 황제의 결정을 번복시킨다면, 다음번에는 더 큰 요구를 할 것입니다. 결국 정책 결정권이 원로회로 넘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왕비는?'

'왕비 폐하는 원로회의 지지를 얻게 됩니다. 황제 폐하와 원로회 사이의 균형을 자신의 편으로 기울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황제 폐하의 권력은 점차 약해지고, 결국...'

나는 말을 멈췄다. 전생의 멸망을 모두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루시안이 일어섰다.

'폐하, 이 여인의 말은 원로회에 대한 모욕입니다. 우리는 나라의 안정을 위해—'

'안정을 위해 황제의 정책을 훼손하는가?'

황제가 손을 들었다.

'이 정책은 유예되지 않는다. 대신 원로회와 함께 시행 방안을 재검토하겠다. 카이나, 일주일 안에 보완안을 제출하라.'

'알겠습니다, 폐하.'

루시안은 황제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분노와 함께 뭔가 다른 감정이 있었다. 계산이었다. 그는 이미 다음 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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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의 복도로 나왔을 때, 루시안이 나를 막아섰다.

'평민 참모라 했는가.'

'그렇습니다, 원로 루시안.'

절을 했다. 완벽한 인사. 전생에서 배운 황족 예절을 모두 다했다.

'평민 출신이 황제의 귀를 이렇게나 빠르게 사로잡다니. 흥미로운 일이군.'

그가 나를 한 바퀴 돌며 봤다. 마치 물건을 감정하듯이.

'조심하게, 그대. 황제의 신뢰는 가장 위험한 것이 될 수 있다. 특히 여인의 손에서 말이다.'

그의 말은 위협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경고이기도 했다. 황족 원로회는 이미 나를 '위협'으로 분류했다. 전생에서처럼.

루시안이 떠난 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복도의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봤다.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무표정했다.

'카이나.'

카이의가 뒤에서 나타났다. 얼굴에 걱정이 떠올라 있었다.

'루시안과 무슨 말을 했나?'

'경고를 받았어요.'

솔직했다. 카이의는 내 과거를 모르지만, 현재의 위험은 함께 겪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날 표적으로 삼았다.'

'그럼 우리는?'

카이의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대신 결의가 있었다.

'계속 나아간다. 증거를 모으고, 정책을 실행한다. 그리고 황제가 우리를 신뢰하게 만든다.'

'그게 가능할까?'

'가능해야 한다.'

손을 펼쳤다. 손가락이 창백했다. 손목 아래까지 색깔이 변하기 시작했다. 전생의 멸망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차가움이 손가락에서 팔로 올라오고 있었다. 마치 천천히 죽음이 올라오는 것처럼.

카이의의 눈이 내 손에 머물렀다. 그의 표정이 경직되었다.

'카이의,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

카이의가 고개를 기울였다.

'당신은 왜 날 돕고 있어요?'

카이의는 잠시 침묵했다. 눈이 나를 바라봤다. 뭔가를 숨기는 듯한 눈빛이었다.

'정보 관아에 들어온 지 이틀 만에 왕비의 음모를 파악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돕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의 대답은 명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묻지 않기로 했다.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었다.

대신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당신은 정보 관아에 들어오기 전에 뭘 했어요?'

카이의의 눈이 흔들렸다. 아주 짧게. 하지만 충분했다.

'개인 사정이 있었다.'

'그렇군요.'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지만 기억했다. 전생에서 카이의는 왕비의 정보망에 속한 자였다. 나중에 황제를 배반했지만, 처음에는 왕비의 사람이었다.

이번 생에서도 그럴까? 아니면 이미 다른 길을 걷고 있을까?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내 다음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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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나는 정보 관아의 서고에 혼자 남았다. 전생에서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을 기억 속에서 꺼냈다. 왕비 셀레나의 음모, 황족 원로회의 압박, 그리고 마지막에 나라가 무너지던 그 날.

기억을 더 꺼낼수록, 손가락이 얼어붙었다. 손목에서 팔로, 팔에서 어깨로 올라오는 차가움. 마치 죽음이 천천히 올라오는 것처럼.

손을 봤다. 이제 손가락의 색깔이 완전히 변했다. 창백해졌다. 거의 투명에 가까울 정도로. 손목까지 얼어붙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가 완전히 투명해졌다. 그 다음 손가락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내가 조금씩 이 세계에서 지워지고 있는 것처럼.

이것이 대가다, 라고 생각했다.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온 대가. 정확한 정보를 가진 대가. 그리고 황제를 구하기로 선택한 대가.

창문 밖으로는 황궁의 정원이 보였다. 야간 경비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그들 사이로, 검은 옷을 입은 인물이 움직였다.

라벨이었다. 왕비 셀레나의 비밀 요원.

그는 정보 관아의 건물을 둘러봤다. 창문마다 들여다봤다. 마치 침입할 경로를 찾는 것처럼. 그리고 나를 본 것 같았다. 창 너머로.

그는 웃었다. 차갑고, 계산적인 웃음. 그리고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목을 그었다.

협박이었다. 명백한 협박.

나도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내 웃음에는 온기가 없었다. 이미 사라져버렸다.

이것이 시작이다, 라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나와 황족 원로회, 그리고 왕비 셀레나 사이의 전쟁이. 그 중심에는 황제 레인이 있다. 그를 지키기 위해, 나는 점점 더 얼어붙어야 할 것이다.

기억은 힘이다. 하지만 그 힘은 내 감정을 빨아먹고 있었다. 공감 능력이 사라졌고, 판단은 점점 더 냉정해졌다. 황제를 향한 사랑도, 그것이 나를 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두려움도 이제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남은 것은 의무뿐이었다. 황제를 구해야 한다는 단순한 의무. 그리고 그것을 위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손을 다시 펼쳤다. 이제 손가락이 아닌 손목까지 완전히 창백했다. 손가락 두 개가 거의 투명에 가까웠다.

내일은 팔이 얼어붙을 것이다. 그 다음은 심장일 것이다.

돌아갈 길이 없다. 이것이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황제를 구하기 위해, 나는 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심지어 내 생명까지.

그리고 그것이 두렵지 않다는 사실이, 가장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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