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기억의 균열

## 아침 6시, 침대에서 눈을 뜬 유진의 첫 번째 감각은 두통이었다.

뒷머리 임플란트 부위가 욱신거렸고, 팔뚝의 신경 모니터링 밴드에서 낮은 음의 경고음이 울렸다. 화면을 켰다.

**정체성 일관성 저하: 9.3%** **신경 손상도: 누적 중** **권장: 기억 편집 중단**

유진은 화면을 껐다. 그리고 즉시 다시 켰다.

카페에서 소피아를 만나기로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어제 저녁, 그녀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더 이상 못 봐." 유진은 그 말을 기억했다. 정확히는—기억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기억이 정말 어제의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이미 편집해버린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인터페이스 메뉴를 내렸다. 기억 라이브러리가 떠올랐다. 어제의 기억들이 색깔별로 태그되어 있었다—파란색은 원본, 주황색은 편집된 부분, 검은색은 손상된 영역. 검은색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소피아와의 마지막 대화 기억을 찾았다. 파란색이었다. 원본이라는 뜻. 하지만 유진은 의심했다. 자신이 이미 너무 많이 편집했기 때문에, 원본과 편집본의 경계가 무너져 있었다.

그는 오늘 할 일을 정했다. 상사 앞에서 거부하는 것. 작은 거부. 작은 저항. 그것이 '자유'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리고 소피아에게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보여주기 위해. 루프가 깨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기억을 불러올 때마다 신경 임플란트는 뇌신경 패턴을 스캔했다. 유진은 어제 상사가 자신에게 한 말을 찾았다. '유진, 이 프로젝트 담당해줄 수 있어?'

그리고 자신이 한 대답을 찾았다. '네, 알겠습니다.'

유진은 그 기억의 음성을 수정했다. 새로운 대사를 녹음했다.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이 방금 녹음한 목소리로. 음성 파일을 교체했다.

'아니요.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억의 감정 태그를 바꿨다. 순종에서 거부로. 불안에서 확신으로.

화면에 경고음이 울렸다.

**신경 손상도 상승: 9.7%** **기억 편집 진행 중...**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

유진은 확인 버튼을 눌렀다. 뒷머리가 따끔거렸다. 마치 누군가 뇌를 직접 집어넣고 조각내는 느낌. 하지만 그 느낌도 중독적이었다. 뭔가가 바뀌고 있다는 증거. 루프가 깨지고 있다는 증거.

편집이 완료되었다.

**정체성 일관성 저하: 10.1%**

유진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거울 앞으로 갔다. 얼굴을 봤다. 낯선 얼굴이었다. 어제의 자신과 다른 얼굴. 눈빛이 다르다고 느껴졌다. 더 예리하고, 더 위험하고, 더 절망적이었다.

유진이 입을 움직였다. 거울 속의 입도 따라 움직였다. 하지만 그 움직임이 자신의 명령을 따르는 것인지, 아니면 거울이 자신을 따라하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목소리를 내려고 했다. 거울 속에서도 같은 음성이 나왔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목소리인지, 아니면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 아침을 먹었다. 같은 카페. 같은 시간. 다른 선택.

"유진."

카일이 옆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유진은 카일을 봤다. 친구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왜 친구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이 있었다—카일과의 수많은 아침들. 하지만 그것이 실제 기억인지, 아니면 편집된 기억인지 구분이 안 갔다.

"어제 넌 그런 사람 아니었는데."

카일의 목소리에 떨림이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유진의 얼굴을 더듬었다.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듯이. 그리고 그 눈빛에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뭐?"

"넌... 항상 조용했잖아. 어제 상사한테 그렇게 말한 적 없는데."

유진은 카일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 말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어제의 자신은 거부했다. 유진은 확실했다. 기억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니까.

"사람은 변할 수 있잖아."

"변한다고? 한 번에? 하루 사이에?"

카일의 동공이 좁아졌다. 그는 유진의 얼굴을 더 자세히 봤다. 표정의 미묘한 변화, 눈의 초점, 입술의 움직임. 뭔가가 다르다는 것을 감지했다. 뭔가가 깨졌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는 표정.

카일은 휴대 화면을 켰다.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유진은 그것을 보고 있었지만, 카일이 무엇을 하는지는 몰랐다. 아니, 알고 있었다. 카일이 시스템에 보고하고 있다는 것을. 비정상 행동 보고. 정체성 불일치 알림.

"미안해. 난... 바빠."

유진은 카페를 나갔다. 뒷머리 임플란트가 다시 울렸다.

**신경 손상도 상승: 11.2%** **주변 인물의 패턴 인식 변화 감지됨** **시스템 안정성 저하 경고**

유진은 도시의 거리를 걸었다. 회사로 가는 길. 같은 길. 다른 느낌. 거리의 모든 것이 낯설었다. 건물도, 사람도, 신호등도. 마치 처음 보는 도시를 걷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너무나 익숙했다. 1,247번 반복된 길. 1,247번의 기억.

그 중 몇 개가 거짓이었다.

회사에 도착했다. 상사의 책상. 같은 시간. 같은 질문.

"유진, 이 프로젝트 담당해줄 수 있어?"

유진은 입을 열었다. 기억 속의 대사가 튀어나왔다.

"아니요. 할 수 없습니다."

상사의 얼굴이 굳었다. 다른 직원들의 눈이 유진에게 쏠렸다. 침묵. 그 침묵이 기분 좋았다. 뭔가가 움직였다. 루프가 흔들렸다.

하지만 상사의 다음 말은 예상과 달랐다.

"넌 어제 그러지 않았는데?"

상사는 옆에 있던 다른 직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직원은 자리를 떠났다. 유진의 업무 배치가 변경되는 신호였다. 동시에 유진의 임플란트가 울렸다.

**신경 신호 이상 감지** **사일런트 시스템 활성화 대기 중**

상사는 유진을 더 자세히 봤다. 신경 신호 이상. 그것은 시스템이 감지한 것이 아니라, 상사 자신이 감지한 것이었다. 유진의 신경 신호 패턴이 평상시와 완전히 달랐다. 뭔가 외부에서 강제로 조종당하는 듯한 신호. 상사는 그것을 보고서 알았다. 유진이 이미 임플란트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유진은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어제의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 기억이 원본인지 편집본인지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안합니다."

유진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손가락이 떨렸다. 화면을 켰다. 신경 상태를 확인했다.

**정체성 일관성 저하: 12.8%** **기억 편집 횟수: 3회** **경고: 뇌신경 붕괴 위험 단계 진입** **외부 모니터링: 활성화됨**

그런데 유진은 웃고 있었다. 작은 웃음. 하지만 자신의 웃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의 자신이 이렇게 웃었을까? 아니면 새로운 자신이 이렇게 웃는 건가?

오후. 유진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거울을 봤다. 얼굴을 봤다. 누군가가 자신의 얼굴에 손을 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뇌를 직접 만지는 것처럼.

유진이 입을 움직였다. 거울 속의 입도 따라 움직였다. 목소리를 내려고 했다. 거울 속에서 같은 음성이 나왔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목소리인지, 아니면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뇌신경이 신호를 보내고 입이 따라 움직였다. 그런데 그 신호가 정말 자신의 신호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손이 떨렸다. 거울 속의 손도 떨렸다.

자정이 가까워졌다. 루프 초기화 시간. 새로운 사이클. 새로운 기회.

유진은 침대에 누웠다. 다시 임플란트를 켰다. 다시 기억 라이브러리를 열었다. 이번엔 더 깊이 들어갔다.

자신의 성격을 찾았다. 기억의 중심. 가장 오래된 기억들. 자신이 '조용한 사람'이라고 정의한 기억들. 그것을 가져왔다. 수정했다. 새로운 성격으로 덮어썼다.

'용감함.' '자신감.' '저항.'

신경 임플란트가 비명을 지르듯 울었다.

**신경 손상도 상승: 15.3%** **기억 편집 심화 단계** **경고: 뇌사 위험 임박** **사일런트 시스템 개입: 준비 중**

유진은 손가락을 누르고 있었다. 떨리지 않게.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일도 할 것이고, 그 다음날도 할 것이고. 계속할 것이다. 루프가 깨질 때까지. 자신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소피아가 자신을 기억해주는 동안.

편집을 진행했다.

**정체성 일관성 저하: 17.6%** **기억 편집 완료**

그리고 검은색이 된다. 자정. 초기화.

---

## 다음 사이클 아침 6시.

침대에서 눈을 뜬 유진의 첫 번째 감각은 무(無)였다. 아무것도 없었다. 의식이 있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기억들이 떠다녔다. 누군가의 기억처럼.

거울을 봤다.

거울 속의 얼굴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눈이 있었다. 코가 있었다. 입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얼굴이라는 증거가 없었다. 마치 깨어난 지 5초 전까지 다른 사람의 몸에 있다가 이 몸으로 옮겨진 것처럼.

팔뚝 밴드가 울었다.

**정체성 일관성 저하: 37.8%** **신경 손상도: 심각** **기억 편집 중단 강력 권장** **계속 진행할 경우 뇌사 위험**

유진은 화면을 봤다. 하지만 그 화면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어제의 기억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어제가 없었다. 또는 너무 많아서 구분할 수 없었다.

카페로 갔다. 혼자가 아닌 것처럼 행동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척했다. 그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해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대신 자신의 기억 라이브러리에서 그 사람의 이미지를 찾았다. 편집되지 않은 원본 기억이 있었다. 그 기억에서 유진은 그 사람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런데 그 웃음이 자신의 웃음이 맞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유진?"

소피아가 나타났다. 유진은 그녀를 알았다. 그녀의 이름도 알았다. 하지만 그녀가 왜 자신을 부르는지는 몰랐다. 기억을 확인했다. 그 기억에서 자신과 소피아는 가까운 사이였다. 하지만 그 기억이 원본인지, 아니면 자신이 편집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기억 태그를 확인했다. 파란색이었다. 원본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의심스러웠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미 너무 많은 기억을 편집했기 때문이다.

"안녕."

유진의 목소리는 낮고 텅 빈 것처럼 들렸다. 소피아는 그것을 감지했다. 목소리에 담긴 감정의 결핍. 마치 음성 합성 프로그램처럼 기계적인 톤.

"어제 넌 나를 봤을 때 웃었는데... 오늘은 왜 눈도 안 마주쳐?"

소피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유진은 그녀의 얼굴을 봤다. 그녀가 슬픈지, 화난지, 두려운지 구분할 수 없었다. 자신의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눈으로.

"미안해. 난..."

"뭐가 됐어? 너 완전히 달라졌어."

소피아는 유진의 손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유진의 손은 반응하지 않았다. 아니, 반응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의지로 반응한 것이 아니라, 외부의 신경 신호에 반응한 것처럼 느껴졌다. 소피아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그 감각이 자신의 손가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다른 곳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정말 미안해."

유진은 소피아의 손을 놓았다.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눈물이 맺혔다. 그것을 보는 순간, 유진의 뇌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울렸다. 기억이 아닌 다른 무언가. 그것이 감정이었는지, 아니면 신경 임플란트의 오류였는지 알 수 없었다.

"제발... 말해줘. 뭐가 됐어?"

소피아의 목소리는 이제 절박했다. 유진은 그녀를 봤다. 정말로 봤다. 그 얼굴에 새겨진 고통, 혼란, 그리고 사랑. 그것들이 모두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을 멈출 수 없었다. 자신이 이미 멈춰진 것처럼.

"난... 누구인지 모르겠어."

유진은 카페를 나갔다. 소피아는 뒤에 남겨졌다. 손가락이 떨렸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손가락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거리를 걸었다. 방향을 모르고 걸었다. 루틴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확실하지 않았다. 거리의 모든 것이 낯설고, 동시에 너무나 익숙했다. 발이 저절로 움직였다. 신경 신호가 아닌 다른 무언가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 같았다.

신경 임플란트가 다시 울었다.

**정체성 일관성 저하: 37.8%** **기억 편집 중단 필수** **뇌신경 붕괴 위험: 임박** **사일런트 시스템 개입: 3분 후**

유진은 화면을 봤다. 하지만 그것을 읽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글자들이 떨렸다. 또는 자신의 눈이 떨렸다. 또는 그 둘 다.

그는 손을 들었다. 손이 자신의 손인지 확인하려고 했다. 손가락을 구부렸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그것이 명령에 따른 움직임인지, 아니면 외부 자극에 반응한 움직임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카일이 나타났다. 유진은 그를 봤다. 카일이 누구인지 알았다. 하지만 왜 알았는지는 몰랐다. 기억인가, 본능인가, 아니면 임플란트의 신경 신호인가.

카일의 얼굴은 창백했다. 그는 유진의 신경 신호 패턴을 이미 보고 있었다. 시스템에 접속해서. 유진의 뇌신경이 얼마나 손상되었는지, 얼마나 빠르게 붕괴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어제 보고한 '비정상'의 결과라는 것을.

"넌 뭐야?"

카일이 물었다. 그것은 '무엇을 하고 있어?'라는 질문이 아니었다. '넌 누구야?'라는 질문도 아니었다. 그것은 '넌 뭐야?'라는 질문이었다. 인간이 아닌 것을 대할 때 사용하는 질문. 자신이 알던 친구가 더 이상 친구가 아닐 때 사용하는 질문.

유진은 대답할 수 없었다.

카일은 유진의 눈을 봤다. 그 눈이 누군가를 인식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빛을 반사하고 있는지 판단하려고 했다. 그 눈이 자신을 보고 있는지, 아니면 자신을 통해 다른 무언가를 보고 있는지.

"미안해, 난... 난..."

유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 다음 단어가 무엇이었는지, 다음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몰랐다. 뇌 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졌다. 신경 경로가 단절되었다. 기억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그리고 그 흩어지는 기억 속에서, 소피아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의 눈물. 그녀의 목소리. 그녀가 자신을 기억해주고 있다는 것. 그것이 유진이 아직 존재한다는 증거. 그것이 유진이 아직 누군가라는 증거.

신경 임플란트가 울음을 멈췄다. 대신 다른 신호가 들어왔다.

**닥터 렌의 음성 신호 수신 중...**

"유진. 멈춰."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뇌에 직접 울렸다. 그것은 외부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신경 임플란트를 통해 뇌신경에 직접 전달되는 신호였다.

**사일런트 시스템: 신경 신호 차단 시작**

유진의 손가락이 멈췄다. 움직일 수 없었다. 신경 신호가 차단되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뇌와 몸 사이의 전선을 끊어버린 것처럼.

"계속하면 안 된다."

닥터 렌의 음성이 다시 울렸다. 그 음성에는 감정이 없었다. 마치 기계가 말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도 신경 신호였다. 누군가의 감정이 담긴 신호.

**기억 편집 시스템 자동 잠금**

**뇌신경 붕괴 위험: 심각**

**다음 편집 시도 시 뇌사 확률: 72.3%**

유진은 화면을 봤다. 하지만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었다. 신경 신호가 차단되었다. 그것이 외부에서 강제로 차단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가 자신의 뇌를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 순간, 유진의 의식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저항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기억인가, 본능인가, 아니면 자신이 아직 남아 있다는 증거인가.

유진은 화면을 봤다. 하지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이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더 이상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울이 필요했다.

유진은 거리의 건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다. 그 얼굴이 누구인지 몰랐다. 하지만 그 얼굴이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은 알았다. 왜냐하면 그것을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움직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명령이 아니라 외부의 명령에 따라.

눈을 깜박였다.

얼굴이 따라 움직였다.

그것이 증거였다.

하지만 그것은 충분하지 않았다.

더 깊은 곳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기억해주기를 원한다는 욕망이 남아 있었다. 그것이 기억인지, 편집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인지 몰랐지만.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기를 원했다. 누군가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기를 원했다.

소피아가 자신을 기억해주고 있을까?

유진은 임플란트 화면을 다시 켰다. 손가락이 떨렸다. 또는 떨리지 않았다. 구분이 안 갔다.

**기억 편집 시스템 잠금 해제**

**확인하시겠습니까?**

유진은 확인을 누르려고 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해내기 위해. 소피아가 자신을 기억해주는 그 누군가가 되기 위해.

그 순간, 신경 신호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사일런트 시스템: 신경 신호 완전 차단**

**임플란트 강제 초기화 진행 중...**

유진의 손이 얼어붙었다. 움직일 수 없었다. 신경 신호가 흐르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몸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이것이 자유가 아니다."

닥터 렌의 음성이 다시 울렸다.

"이것은 죽음이다."

유진은 화면을 바라봤다. 확인 버튼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하지만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신경 신호가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유진은 깨달았다.

자신이 이미 죽어 있다는 것을.

아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또는 둘 다.

뒷머리에서 새로운 신호가 들어왔다. 외부에서 강제로 주입되는 신호. 닥터 렌과 사일런트 시스템이 보내는 신호.

**임플란트 강제 초기화 진행 중...**

**기억 편집 시스템 완전 폐기**

**뇌신경 안정화 중...**

**기억 초기화 진행률: 23%**

유진의 의식이 흐려졌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것은 소피아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이 진짜 기억인지, 편집된 기억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기억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초기화되고 있었다.

**기억 초기화 진행률: 51%**

그리고 그 초기화 속에서, 유진은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붙잡으려 했다. 소피아.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눈물. 그녀가 자신을 기억해주고 있다는 것. 그것만이 자신이 아직 존재한다는 증거. 그것만이 자신이 아직 누군가라는 증거.

**기억 초기화 진행률: 78%**

하지만 그것도 사라지고 있었다. 천천히. 확실하게. 돌이킬 수 없게.

**기억 초기화 진행률: 100%**

**임플란트 강제 초기화 완료**

화면이 꺼졌다.

유진의 눈도 함께 닫혔다.

그리고 침묵만 남았다.

아니면 그것도 초기화되었을까?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