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층 - 마지막 별
8층 입구의 어둠은 루엔의 숨을 멈추게 했다. 계단을 올라오면서 느껴온 것들과는 다른 질감이었다. 6층의 침묵은 공허했고, 7층의 빛은 따뜻했다면, 이곳은 거울처럼 반사되는 검은색이었다.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발소리가 일곱 번 돌아와 귀에 닿았다.
"약속의 방."
루엔이 중얼거렸을 때, 방 전체에 불이 켜졌다. 촛불이 아니었다. 별의 조각들이었다. 수십 개의 작은 별들이 공중에 떠 있었고, 그 아래로는 루엔 자신의 모습들이 겹겹이 서 있었다. 어린 루엔, 학년이 올라갈수록 변해가는 루엔, 그리고 지금의 루엔. 모두 입을 벌리고 있었다.
"돌아올 거야."
가장 어린 루엔이 말했다. 누군가에게 약속하는 모습이었다.
"탑에 올라가서 별을 되살릴 거야."
조금 더 큰 루엔이 말했다. 부모에게, 형에게, 마을에게 약속하는 듯했다.
"넌 특별해."
루엔이 누군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누군가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루엔은 알았다. 루나였다.
루엔의 발이 멈췄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약속의 방. 그렇다면 이곳에서 마주해야 할 것은 자신이 지어온 모든 약속들과, 그 약속들을 지키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었다.
"루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루엔이 돌아섰을 때, 루나가 계단 위에 서 있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양쪽 팔이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현실인지 방의 환영인지 루엔은 판단할 수 없었다.
"루나?"
"따라왔어."
루나가 한 계단, 한 계단 내려왔다. 루엔이 올라온 계단을 다시 내려와야 했을 텐데, 루나의 다리는 후들거렸다.
"하지만 넌... 올라올 수 없다고."
"그래. 5층까지만 올 수 있었어. 그 이상은 아무리 해도 못 올라갔어. 하지만 6층에서 느껴지는 빛이 있었어. 너의 빛이 올라오는 게 보였어. 그래서... 계속 올라왔어. 규칙을 깨고."
루나가 루엔 앞에 섰다. 그제야 루엔은 루나가 현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루나의 손이 떨리고 있었고, 그 손에서 나오는 열이 루엔의 얼굴을 데웠다.
"넌 날 속여본 적 있어."
루나가 말했다. 루엔의 숨이 끝났다.
"어떤 거짓을?"
"넌 날 따라오지 말라고 했어. 넌 혼자 가겠다고 했어. 그런데 너의 손이 자꾸만 돌아섰어. 떠날 때마다 뒤를 봤어. 내가 따라오길 원했어. 내가 계속 옆에 있기를 원했어. 그렇게 하면서 넌 '혼자 가야 한다'고 거짓을 했어."
루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가장 큰 거짓은... 넌 돌아올 거라고 약속했어. 너는 이 탑에서 살아서 돌아올 거라고. 하지만 넌 알고 있잖아. 이 탑이 뭔지. 각 층마다 거짓을 고백하면서 자신을 벗겨내고 있잖아. 이 정도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잖아."
루엔의 목이 메었다.
"왜 올라왔어?"
"넌 날 믿으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난 너를 믿었어. 그리고 넌 날 속이지 않을 거라고 믿었어. 그래서 올라왔어. 넌 분명히 돌아올 거라고 믿었어."
루나가 손을 내밀었다. 루엔의 손을 잡을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루엔은 움직이지 않았다.
"미안해."
루엔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미안해, 루나. 난 너한테 거짓을 했어. 난 돌아올 거라고 약속했지만, 사실 난 돌아오고 싶지 않았어. 이 탑에서 나는 거짓 없이 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넌 날 따라오지 말고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난 여기서 영웅이 되고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건 거짓이야. 난 넌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넌 내가 가장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루엔이 가슴을 쳤다.
"난 너한테 상처를 줬어. 내가 올라갈 때마다 넌 뒤에 남겨졌잖아. 넌 날 따라오고 싶었는데, 날 따라올 수 없게 만들었어. 그리고 그게... 그게 나를 이 정도까지 올라오게 했어. 넌 나를 믿었어. 너는 내 거짓을 알면서도, 나를 버리지 않았어. 그게 나를 계속 올라가게 했어."
루나가 루엔의 얼굴을 들었다. 루엔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난 너한테 약속했어. 돌아오겠다고. 그런데 사실 난... 난 돌아오고 싶지 않았어. 다시 거짓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았어. 그냥 여기서 영웅이 되고 싶었어. 그 거짓이 내 가장 깊은 거짓이야."
루엔이 마지막 말을 끝냈을 때, 방 전체가 진동했다. 공중에 떠 있던 별의 조각들이 모두 아래로 떨어졌다. 그 중 가장 큰 조각이 루엔의 손 앞에서 멈췄다. 여덟 번째 별의 조각이었다. 투명하지만 그 안에 온난한 빛이 담겨 있었다.
루엔이 손을 뻗어 별을 집었다.
하늘로 솟아올랐다.
8층 전체가 밝혀졌다. 그 빛이 탑 위로 뚫고 나가, 세상의 하늘로 퍼져나갔다. 루엔이 밖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을의 하늘이 거의 모두 밝혀져 있었다. 밤이 아니었다. 황혼도 아니었다. 낮이었다. 햇빛이 마을을 비추고 있었다.
루나가 루엔을 안아줬다.
"고마워. 넌 날 배반하지 않았어."
루나의 목소리가 루엔의 귀에 닿았다.
"난 너를 좋아했어. 그래서 널 믿었어. 그리고 넌 내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어. 넌 정말로 돌아왔어."
루엔은 루나를 안았다. 루나의 몸이 따뜻했다. 그 따뜻함이 루엔의 가슴을 채웠다.
그들이 8층을 나왔을 때, 9층의 입구가 열려 있었다. 계단이 위로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계단 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완전한 어둠이었다.
"여기까지야."
루나가 말했다.
"뭐?"
루엔이 루나의 얼굴을 봤다. 루나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마지막 별은 넌 혼자 복원해야 해. 그건 넌 자신과 한 약속이니까. 난 여기까지만 올 수 있어. 넌 아래로 내려가면 안 되지만, 나는 올라갈 수 없어. 이건 넌 혼자 해야 해."
루엔이 루나의 손을 놓았다. 루나의 손이 루엔의 손에서 미끄러져 내려갔다.
"돌아와."
루나가 말했다.
"약속해."
루엔이 말했다.
"난 돌아올 거야. 진짜로. 이번엔 거짓이 아니야."
루엔은 계단을 올랐다. 발을 디딜 때마다 루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점점 멀어졌다. 루엔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9층의 어둠은 완벽했다.
루엔이 마지막 계단을 밟았을 때, 거울이 나타났다. 아니, 거울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루엔 자신이 거울이 되었다. 루엔의 앞에는 루엔 자신이 서 있었다. 같은 높이, 같은 모습, 같은 눈빛으로.
"넌 뭐야?"
루엔이 물었다.
"너야."
거울 속 루엔이 말했다.
"넌 나야?"
"아니. 난 넌 아직 모르는 너야. 넌 아직 자신과 한 약속을 모르고 있어. 넌 이 탑에 올라오기 전에 자신과 약속했어. 뭐였지?"
거울 속 루엔의 얼굴이 흐릿해졌다.
"난 모르겠어."
루엔이 말했다.
"그래. 그래서 넌 여기 왔어. 마지막 거짓을 고백하기 위해. 그 거짓이 넌 자신과 한 약속이야."
루엔은 거울에 손을 뻗었다. 손이 거울을 통과했다. 차가운 감각이 손을 타고 팔 전체로 퍼져나갔다.
"난... 난 누군가가 아니야."
루엔의 목소리가 떨렸다.
"난 특별한 사람이 아니야. 난 재능이 없는 사람이야. 난 평범해. 하지만 난 그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거짓을 지었어. 그리고 이 탑에 올라와서, 별을 복원했어. 그렇게 하면 난 특별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사실 난... 난 이미 특별해. 거짓 없이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 마음만으로. 그게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 난 누군가가 될 필요가 없어. 난 그냥 루엔이면 돼. 평범한 루엔이면."
마지막 말을 끝냈을 때, 거울이 부서졌다. 거울의 조각들이 모두 아래로 떨어졌다. 그 조각들이 떨어지는 순간, 아홉 번째 별의 조각이 나타났다.
루엔이 별을 집었다.
하늘로 솟아올랐다.
탑 전체가 진동했다. 세상의 하늘이 모두 밝혀졌다. 해가 떠올랐다. 진짜 해가. 세 해 동안 보지 못한 그 따뜻한 빛이. 루엔의 눈앞이 하얀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루엔은 알았다. 이제 마지막 별만 남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별을 복원하는 순간, 무엇이 일어날지도.
루엔이 9층을 나왔을 때, 10층의 입구가 보였다. 아니, 입구가 아니었다. 그냥 벽이었다. 그 벽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고대 문자였다. 루엔은 아르투르에게 배운 고대 문자를 읽을 수 있었다.
"별을 되살리는 자는 자신을 죽여야 한다."
루엔의 숨이 멈췄다.
그 벽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마지막 별을 복원하는 순간, 루엔은 정말로 자신을 죽여야 할까.
루엔의 손이 벽을 향해 뻗어나갔다.
루엔의 손이 벽에 닿는 순간, 벽이 흰빛으로 변했다.
10층의 공간이 펼쳐졌다.
그곳은 다른 어떤 층과도 달랐다. 층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광대했다. 무한한 하늘이었다. 발 아래는 없었고, 루엔은 떠 있었다. 공중에 떠 있으면서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하늘의 중앙에, 마지막 별의 조각이 떠 있었다.
검은색이었다. 아홉 개의 별이 모두 하늘에 떠올랐을 때도 이 조각은 검은색으로 남아 있었다. 빛을 반사하지 않는, 완벽한 어둠의 형태.
루엔이 한 발을 내디뎠다. 발이 공중에 닿았다. 마치 땅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루엔은 걸었다. 별의 조각을 향해.
가까워질수록 루엔의 몸이 떨렸다. 손가락 끝부터 떨림이 시작되었다. 팔 전체로 퍼져나갔다. 가슴이 철렁거렸다.
이 별을 집으면, 뭔가 끝난다는 것을 루엔은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일곱 개의 별을 복원할 때마다 거짓을 고백했다. 하지만 그 거짓들은 모두 외부를 향한 것이었다. 가족에게 한 거짓, 친구에게 한 거짓, 사회에 한 거짓. 하지만 이 마지막 별은 다를 것 같았다.
"이게 마지막이야."
루엔이 중얼거렸다.
"이 별을 복원하면 끝이야."
손이 더 떨렸다.
"그리고 나는 죽어야 해."
루엔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석판에 새겨진 문구가 자꾸만 떠올랐다. '별을 되살리는 자는 자신을 죽여야 한다.'
루엔이 별의 조각에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아래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루엔!"
미라의 목소리였다.
루엔이 고개를 들었다. 아래의 어둠 속에서 미라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루나는 없었다. 루나는 약속대로 올라오지 않았다. 하지만 미라는 올라오고 있었다.
"미라?!"
루엔이 소리쳤다.
"넌 왜 올라온 거야? 루나가 말했잖아. 여기는 혼자 와야 한다고!"
미라가 계단을 올라오다가 멈췄다. 미라의 얼굴이 보였다. 눈이 부어 있었다. 울었다는 증거였다.
"난 널 놔둘 수 없었어."
미라가 말했다.
"뭐?"
"넌 혼자가 아니야. 넌 지금까지 혼자였어. 거짓으로 혼자였어. 하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야. 난 여기 있어."
미라가 한 발을 더 올렸다. 하지만 그 순간, 계단이 끊겼다. 미라의 발이 허공에 떨어졌다.
"미라!"
루엔이 소리쳤다. 루엔은 별의 조각을 버리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미라가 떨어지고 있었다. 루엔은 미라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손이 미라의 손에 닿았다.
그 순간, 루엔의 손에서 빛이 나왔다.
"넌 뭐야?"
미라가 물었다.
루엔이 미라를 위로 끌어올렸다. 미라의 몸이 가벼워졌다. 마치 별처럼.
"미라! 넌 왜 올라온 거야?"
루엔이 미라를 끌어안으며 외쳤다.
"루나가 말했잖아. 여기는 내가 혼자 와야 한다고!"
"그건 루나의 약속이야. 내 약속이 아니야."
미라가 말했다.
"뭐라고?"
"난 너를 놓지 않기로 약속했어. 그건 탑 입구에서부터 했어. 난 너를 따라가겠다고. 끝까지. 루나는 너의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난 달라. 난 내가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어. 너를 놓지 않는다는 약속을."
미라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넌 혼자가 아니야. 넌 절대 혼자가 아니야."
루엔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금까지 루엔은 자신이 혼자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짓을 고백할 때마다 사람들이 떠나갔다. 루나는 4층에서 손을 놨다. 셀린은 7층에서 손을 놨다. 루나는 9층에서 손을 놨다. 루엔은 계속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라는 달랐다.
미라는 내려가지 않았다. 미라는 끝까지 따라왔다.
"미라... 난..."
루엔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너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미라가 말했다.
"뭐?"
"처음에 만났을 때. 난 너한테 말했어. 넌 거짓을 지으면 안 된다고. 하지만 넌 계속 거짓을 지었어. 그리고 난 그 거짓들을 다 알고 있었어. 넌 날 속이지 못했어. 처음부터."
미라의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난 널 믿었어. 왜냐하면 넌 거짓을 지을 때마다 눈이 흔들렸거든. 그건 거짓이 아니라 도움을 청하는 신호였어. 넌 누군가를 원했어. 누군가를 믿고 싶었어. 그래서 난 항상 여기 있었어. 그리고 지금도 있어."
미라가 루엔의 손을 잡았다.
"넌 절대 혼자가 아니야."
루엔이 눈물을 흘렸다.
지금까지 흘린 눈물과는 다른 눈물이었다. 절망의 눈물이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을 믿어준다는 깨달음의 눈물이었다.
"고마워."
루엔이 말했다.
"미라. 고마워."
"넌 뭐하고 있어. 이제 가야지."
미라가 루엔의 손을 끌었다.
"마지막 별이 기다리고 있잖아."
루엔과 미라는 함께 별의 조각을 향해 걸었다.
가까워질수록 루엔의 마음이 차분해졌다. 미라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루엔은 알았다. 이제 마지막 거짓을 고백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루엔이 별의 조각에 손을 뻗었다.
"미라. 난 널 거짓으로 대했어."
루엔이 말했다.
"뭐?"
미라가 물었다.
"처음에 넌 내 유일한 친구였어. 넌 내 거짓을 지적했어. 넌 나한테 진심을 요구했어. 하지만 난 넌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어. 난 넌 도움이 될 거 같아서 가까이 했어. 넌 내 거짓을 꿰뚫을 수 있는 사람이었거든. 그래서 넌 내게 필요했어. 하지만 사실 난 넌 믿지 않았어. 난 넌 언젠가 날 떠날 거라고 생각했어."
루엔이 별의 조각을 집었다.
"미안해. 미라. 난 널 속였어. 넌 나한테 진심을 줬는데, 난 거짓을 줬어."
미라의 얼굴이 보였다.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넌 미안해할 필요 없어."
미라가 말했다.
"난 알고 있었어. 넌 날 속였어. 하지만 난 널 믿었어. 왜냐하면 넌 자신을 속이고 있었거든. 넌 나한테 거짓을 했지만, 그건 널 지키기 위한 거였어. 난 그걸 이해했어. 그래서 난 계속 여기 있었어."
별이 루엔의 손에서 떠올랐다.
마지막 별이.
검은 별이 하늘로 솟아올라갔다.
그리고 하늘이 완벽하게 밝혀졌다.
세상의 모든 별이 떠올랐다. 태양이 중천에 떴다. 달도 보였다. 세 해 동안 사라졌던 모든 빛이 돌아왔다.
루엔의 눈앞이 하얀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루엔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육체가 빛으로 해체되었다. 뼈와 살이 아닌 순수한 광선으로 변해갔다. 고통이 아니었다. 무언가 더 큰 것으로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루엔은 죽지 않았다. 루엔은 변했다. 석판의 문구가 의미하던 바가 이것이었다. 죽음이 아니라 변화. 루엔이 별이 되어가는 과정.
미라가 루엔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손은 이미 빛을 통과했다.
"루엔!"
미라의 목소리가 울렸다.
"뭐하는 거야?"
"미라."
루엔이 말했다. 목소리는 이제 바람처럼 울렸다. 하지만 그 속에는 명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난 이제 가야 해."
"뭐? 가? 어디로?"
"모르겠어. 하지만 이게 끝인 것 같아. 이게 내가 한 약속이었어. 자신과 한 약속. 별을 모두 복원하면 난 변한다는."
루엔의 형태가 점점 더 투명해졌다. 하지만 그 빛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아니야. 넌 가면 안 돼. 넌 약속했잖아. 돌아온다고!"
미라가 루엔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루엔의 손이 이미 빛이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난 돌아올 거야. 미라. 약속해."
루엔이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세상을 밝혀야 해. 별이 되어야 해. 그게 내 역할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넌?"
"난 여기 있을 거야. 하늘에서. 이 별이 되어서. 넌 나를 볼 수 있어. 밤하늘에서. 그리고 언젠가..."
루엔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언젠가 난 다시 돌아올 거야. 이 세상이 더 이상 거짓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 그때 난 다른 형태로 돌아올 거야."
"루엔!"
미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루엔은 이미 미라를 볼 수 없었다.
루엔은 빛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탑이 흔들렸다.
탑 전체가 진동했다. 벽이 갈라졌다. 계단이 사라졌다. 루엔이 올라왔던 모든 층이 사라져갔다.
미라는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미라는 떨어지지 않았다. 루엔의 빛이 미라를 받아주었다. 루엔의 손이 미라를 안았다.
"난 여기 있어."
루엔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루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넌 절대 혼자가 아니야."
그 순간, 탑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아니, 탑이 아니었다. 별이었다. 거대한 별이. 루엔이 올라왔던 탑이 모두 별로 변했다. 그리고 그 별이 하늘로 떠올라갔다.
미라는 별의 표면에 서 있었다.
아래를 봤다.
마을이 보였다. 루나가 보였다. 셀린이 보였다. 아르투르가 보였다. 그리고 루이스와 카이가 보였다.
모두가 하늘을 보고 있었다.
별이 떠올라갔다.
세상의 중심이었던 별이, 다시 하늘로 돌아갔다.
그 순간, 세상에 빛이 퍼져나갔다.
햇빛이 대지를 적시기 시작했다. 어둠이 물러났다. 그림자가 생겼다. 색이 돌아왔다.
세 해 동안 사라졌던 세상이 다시 나타났다.
루나가 울고 있었다.
셀린이 하늘을 보고 있었다.
아르투르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루이스는 주먹을 쥐고 있었다.
하지만 루엔은 보이지 않았다.
미라는 별 위에서 루엔을 부르고 있었다.
"루엔!"
미라가 외쳤다.
"넌 어디 있어?"
그 순간, 바람이 불었다.
미라의 뺨을 스친 바람이었다.
"미라."
루엔의 목소리가 바람 속에서 들렸다.
"난 여기 있어."
미라가 눈물을 흘렸다.
"넌 정말 나한테 약속했어?"
"응. 난 돌아올 거야. 다시는 거짓 없이."
바람이 미라를 감싸안았다.
그리고 별 위의 미라가 천천히 내려갔다.
마을로.
친구들에게.
아래로 내려가며, 미라는 루엔의 목소리를 들었다.
"고마워. 미라. 날 믿어줘서."
미라가 대답했다.
"난 계속 널 기다릴 거야."
"알아. 그래서 난 돌아올 거야."
바람이 사라졌다.
미라는 마을의 중앙에 내려앉았다.
루나가 미라를 안았다.
"미라! 넌 어디 있었어? 우리는 자꾸 올라가고 싶었는데, 계단이 사라졌어!"
루나가 물었다.
미라는 잠시 하늘을 봤다. 루엔이 있는 별을 봤다. 그 별에서 나오는 빛이 마을 전체를 밝히고 있었다.
"루엔이 돌아올 거라고 약속했어."
미라가 말했다.
"뭐?"
"루엔이 다시 돌아올 거야. 이 세상에. 별이 아닌 형태로."
루나의 눈이 밝아졌다.
"정말?"
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야. 루엔을 기다리는 거."
셀린이 다가왔다.
"미라. 넌 뭐 본 거야? 탑에서?"
셀린이 물었다.
미라가 대답했다.
"루엔이 별이 되었어."
아르투르가 다가왔다.
"루엔이... 별이 되었군."
아르투르가 중얼거렸다.
"별을 되살리는 자는 자신을 죽여야 한다는 석판의 문구. 그게 바로 이 뜻이었구나. 죽음이 아니라, 변화였어. 루엔은 죽지 않았다. 루엔은 별이 되었다."
루이스는 여전히 주먹을 쥐고 있었다.
"별이 되었다고?"
루이스가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루엔의 능력은?"
루이스가 하늘을 봤다.
별이 반짝였다.
루엔의 별이.
그 별에서 빛이 퍼져나갔다.
그 빛이 세상 전체를 밝혀냈다.
루이스는 알았다.
루엔이 탑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루엔 자신이 탑이 되었다는 것을. 루엔이 별이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루엔이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도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루이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카이는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이제 카이도 루엔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루엔이 별이 되었으니까.
미라는 계속 하늘을 봤다.
루엔의 별을.
"루엔."
미라가 중얼거렸다.
"넌 정말 약속을 지켰어. 넌 돌아왔어."
바람이 미라의 뺨을 스쳤다.
루엔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응. 난 항상 약속을 지킬 거야. 이제부터는. 거짓 없이."
미라가 웃었다.
"고마워. 루엔. 넌 정말 특별한 사람이야."
"아니야. 난 평범한 루엔이야. 그냥."
루엔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하지만 난 이제 거짓 없이 평범할 거야."
그리고 별이 더 밝아졌다.
세상의 모든 빛이 루엔의 별에서 나오고 있었다.
루엔이 약속했던 대로.
루엔이 되살린 모든 별이 하늘에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세상은 다시 밝았다.
거짓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