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온기

새벽 세 시, 다시 숨이 막혔다.

꿈이었다. 회사 회의실인데 창문이 없고, 문도 없고, 벽만 자꾸 가까워지는 꿈. 손가락으로 누르면 살이 패이는 벽. 나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누군가 내 입을 틀어막고 있었고—

눈을 떴다. 천장이 보였다. 낡은 목재로 된 천장. 초록색 페인트가 벗겨져 나무의 결이 드러나 있었다. 내 침대 위에 있는 천장이 아니었다. 침대도 아니고, 소파 위에서 깨어났다.

'온기'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이 낡은 카페의 2층 방. 지난주 월요일에 인수한 이곳.

가슴이 천천히 진정되었다. 손을 펼쳤다 굳었다를 반복했다. 손가락이 떨렸다. 여전히 벽을 누르는 감각이 손끝에 남아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시계를 봤다. 새벽 3시 17분. 숨을 가다듬고 천천히 들이마셨다. 숨을 참았다. 1, 2, 3, 4, 5. 내쉬었다.

이 호흡법은 서울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가르쳐줬다. 효과가 있는 날도 있고, 없는 날도 있다. 오늘은 반반이었다.

나는 소파에서 내려와 계단을 내려갔다. 한 발 한 발 디딜 때마다 목재가 삐걱거렸다. 그 소리가 싫지 않았다. 도시의 아파트에서는 이런 소리가 없었다. 방음이 완벽했고, 외부의 모든 음파가 차단되었다. 그런데 그 침묵이 더 무서웠다. 침묵 속에서 내 숨소리만 들렸고, 내 심장 박동만 들렸고, 내 불안만 들렸다.

계단을 내려와 1층 카페 홀에 섰다. 달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테이블들에 흰 띠를 그었다. 테이블 여덟 개, 의자 스물 여섯 개. 낡은 에스프레소 머신, 녹슨 싱크대, 박스에 담긴 찻잔들. 모두 전 주인이 남긴 것이었다.

전 주인은 누구인가.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곳이 이제 내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에스프레소 머신 앞에 섰다. 손가락으로 기계를 건드렸다. 차갑고 딱딱했다. 이 기계를 다시 켤 생각은 없었다. 나는 이곳에서 누구도 만나지 않을 계획이었다. 혼자 있을 공간이 필요했고, 그것이 이 카페를 인수한 유일한 이유였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계약서에 서명했고, 이제 이곳이 내 소유였다.

손님은 거절하겠다고 다짐했다. 문을 열지 않거나, 열더라도 '영업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겠다고. 이 작은 읍내에 수백 명이 살고 있겠지만, 그들 중 누구도 내게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박스를 들었다. 찻잔이 들어 있었다. 흰색 자기에 파란 무늬가 있는 찻잔들. 누군가는 이 찻잔들을 소중히 여겼을 것이다. 하나하나 꺼내어 싱크대에 놓았다. 더운 물을 틀었다. 파이프에서 물이 튀어나왔다. 녹슨 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그 물을 마주 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 물을 마셨을 것이다. 이 카페에서 찻잔에 담긴 물을 마셨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 테이블에 앉아서 누군가와 대화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누구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찻잔들을 닦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천으로 물기를 닦아냈다. 찬 도시 밤에서 벗어나 여기에 온 지 일주일. 아직도 도시의 소음이 귀에 남아 있었다. 회사 회의실의 목소리들, 엘리베이터의 경적음, 거리의 신호음. 그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는 이곳에 왔다.

시골 읍내의 낡은 카페. 인터넷에서 본 사진은 이보다 훨씬 낙후되어 보였다. 하지만 직접 와보니 나쁘지 않았다. 낡았지만, 누군가 정성으로 만든 흔적이 있었다. 벽의 색칠, 바닥의 타일, 창문의 커튼. 모두 누군가의 손이 닿은 자국이었다.

새벽 5시가 되었다. 나는 테이블 위의 먼지를 닦고 있었다. 손가락이 검게 물들었다. 얼마나 오래 이 카페가 비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한 달? 두 달? 전 주인은 왜 떠났을까. 그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창문을 통해 밖을 봤다. 산이 보였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산. 새벽빛에 검게 물들어 있는 산. 그 산 위로 하늘이 천천히 밝아지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숨을 다시 가다듬었다. 1, 2, 3, 4, 5.

아침이 올 것이다. 손님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거절하겠다. 이 공간을 지킬 것이다. 혼자만의 세상을 유지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

오전 9시 30분, 카페의 문이 열렸다. 내가 아니라, 밖에서.

나는 바닥을 청소하고 있었다. 빗자루로 먼지를 쓸어내는 중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을 때 나는 손을 멈췄다. 빗자루가 바닥에서 떨어졌다.

"여기 영업하나요?"

여자의 목소리였다. 낮고 부드러운. 나는 돌아봤다.

할머니였다. 일흔은 넘어 보였다. 흰 머리를 단정하게 묶었고, 파란색 옷을 입고 있었다. 손에는 보따리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할머니는 내 얼굴을 보고 웃었다.

"아, 새 주인이시네. 그럼 영업하는 거네요."

나는 입을 열었다. 아니, 영업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해야 했다. 거절해야 했다. 내 다짐을 지켜야 했다.

"죄송하지만 아직 준비가—"

"괜찮아요. 저 그냥 앉아만 있어도 돼요."

할머니는 이미 테이블에 앉고 있었다. 가장 창가의 테이블. 햇빛이 가장 잘 들어오는 자리. 할머니는 보따리를 테이블 위에 놓고, 창밖을 봤다.

"여기 따뜻하네."

그 말을 듣는 순간, 뭔가 내 안에서 움직였다.

따뜻하다? 이곳이?

이 낡은 카페가? 녹슨 기계와 박스로 가득한 이곳이?

나는 할머니를 봤다. 할머니는 여전히 창밖을 보고 있었다. 주름진 얼굴, 움직이는 입술. 마치 누군가를 그리워하듯이.

그 순간, 내 눈가가 뜨거워졌다.

손가락이 저렸다. 왼손의 집게손가락과 중지에서 시작되는 저림. 마치 누군가 내 손을 잡는 듯한 감각. 그런데 아무도 나를 잡지 않았다.

할머니의 얼굴에서 나는 무언가를 읽었다. 내가 아는 슬픔. 누군가를 잃은 사람만이 가지는 그 깊은 침묵. 내 손가락은 그 슬픔에 반응했다. 마치 할머니의 그리움이 내 손을 통해 울리는 것처럼.

"물 한 잔 가능할까요?"

할머니가 물었다. 나는 움직였다. 자동으로. 의식하지 않고. 싱크대로 가서 물을 떠서 찻잔에 담았다. 아까 닦은 찻잔이었다. 물을 마신 할머니는 눈을 감았다.

"좋아. 이런 물이 많이 필요한 거야."

할머니가 중얼거렸다. 그 말이 내게 전해졌다. 뭔가를 잃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투였다.

할머니는 한 시간을 더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서 창밖을 봤다. 나는 그 시간 동안 할머니를 관찰했다. 때때로 할머니의 입이 움직였다.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소리는 나지 않았다. 할머니의 눈에서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눈물이었다.

나는 손을 움직일 수 없었다. 말도 건넬 수 없었다. 내 손가락은 계속 저렸다. 왼손의 두 손가락이 마치 신호를 보내듯이. 그 신호는 할머니의 슬픔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할머니가 일어섰다. 보따리를 들었다. 그리고 내게 보였다. 보따리 안에는 무언가 음식 같은 것이 있었다.

"맛있는 거 있으면 좋겠어. 다음에는 내가 가져올게."

할머니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문을 열고 나갔다. 파란 옷의 실루엣이 햇빛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할머니가 앉던 테이블 위에 선 채로 있었다. 창문에는 햇빛이 가득했다. 테이블은 따뜻했다. 할머니의 손이 닿았던 자리는 여전히 온기를 가지고 있었다.

내 손가락의 저림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해졌다. 손가락이 떨렸다. 팔이 떨렸다. 내 숨이 빨라졌다. 1, 2, 3, 4, 5. 숨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가다듬어지지 않았다.

그 할머니의 마음이, 내 마음처럼 느껴졌다.

왜? 내가 어떻게 그 할머니의 슬픔을 알았을까. 그 할머니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를 잃었다는 것을. 왜 내 손가락이 저렸을까. 왜 내 눈이 따뜻했을까.

나는 테이블에 앉았다. 할머니가 앉던 자리에. 내 손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손가락이 계속 저렸다. 저림은 통증이 아니었다. 마치 무언가 깨어나는 신호 같았다.

창밖의 산이 보였다. 새벽에 봤던 산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밝았다. 초록색으로. 누군가는 이 산을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누군가는 이 테이블에 앉아서, 이 창밖을 보면서, 어떤 마음으로 있었을까.

나는 그 할머니가 다시 올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생각에, 나는 두려웠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할머니가 온 것처럼 카페의 문을 열었다. 손가락은 밤새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어제 할머니의 말, '여기 따뜻하네'가 계속 맴돌았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했다. 따뜻함이란 무엇인가. 온도인가, 감정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존재 자체인가.

카페의 불을 켰다. 형광등이 깜박였다. 전기가 불안정했다. 나는 어제 닦은 테이블들을 다시 한 번 훑었다. 할머니가 앉던 자리는 여전히 따뜻했다. 아니, 이제는 내 착각이었다. 테이블은 실온이었다. 하지만 내 손이 그 자리에 닿으면, 뭔가 다른 온도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커피를 내렸다. 어제 할머니를 위해 물을 준 것처럼, 오늘도 누군가 올 때를 대비했다. 하지만 이건 이상했다. 나는 손님을 거절하기로 다짐했다. 혼자만의 세상을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왜 커피를 내렸을까. 왜 테이블을 닦고 있었을까.

창밖을 봤다. 시골 읍내의 아침은 조용했다. 할머니가 어제 가던 길을 다시 상상해봤다. 파란 옷, 보따리, 주름진 손. 그 할머니는 누구의 손을 그리워하고 있었을까. 누군가를 잃었을 때의 그 특별한 침묵이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도시에서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느꼈던 고독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어제 할머니의 고독은 다른 종류였다. 깊었다. 물러나지 않는 종류였다.

문을 닫으려다 멈췄다. 손가락이 또 저렸다. 할머니가 다시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손가락이 울리는 대로 내버려두고, 나는 문을 열어 두기로 했다.

오전 열 시쯤, 문이 열렸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할머니가 아니었다. 청년이었다. 스물다섯, 여섯쯤 되어 보이는. 후드를 푹 눌러쓴 청년이 들어섰다. 얼굴을 거의 드러내지 않은 채로.

"손님이신가요?" 나는 물었다.

청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카페를 둘러봤다. 허름한 인테리어, 낡은 의자들, 얼룩진 벽. 청년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카페야?"

청년이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는 무언가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네. 문을 열은 지 하루 됐어요."

"아."

청년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창밖을 봤다. 창밖의 산, 들, 하늘. 청년의 어깨가 떨어졌다. 마치 뭔가 무거운 것을 내려놓으려고 하는 듯이.

"커피 있어요?" 청년이 물었다.

"네.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아메리카노."

청년은 가장 구석진 테이블에 앉았다. 할머니가 앉던 자리가 아닌 다른 곳. 나는 커피를 타서 건넸다. 청년은 받으면서도 나를 보지 않았다.

그 순간, 내 손가락이 저렸다. 어제처럼. 하지만 다른 신호였다. 할머니의 슬픔과는 다른 종류의 울림. 마치 누군가 내 손을 누르고 있는 것처럼. 절박하게.

나는 청년을 봤다. 후드 아래의 얼굴.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절망의 표정. 내가 거울을 보지 않은 지 몇 달이 됐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청년의 얼굴은 내 것과 같았다. 같은 종류의 고독. 같은 종류의 포기.

청년은 커피를 마셨다. 한 모금, 또 한 모금. 아무 표정 변화 없이. 마치 맛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청년은 한 시간을 그 자리에서 앉아 있었다. 커피를 다 마신 후에도. 창밖을 봤다. 할머니처럼. 마치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아니면 무언가에서 도망치는 것처럼.

"다음에 또 와도 돼요?" 청년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언제든."

청년의 얼굴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받아주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것처럼. 청년은 돈을 내고 나갔다. 후드를 여전히 푹 눌러쓴 채로.

나는 청년이 앉던 테이블을 봤다. 할머니가 앉던 테이블과는 다른 온기가 있었다. 이 온기는 절망의 온기였다. 포기의 온기였다. 하지만 그 안에 무언가 다른 것도 있었다. 아주 작은, 희미한 빛 같은 것.

나는 테이블을 정리했다. 커피 잔을 들었다. 그 순간, 잔이 미끄러졌다. 손가락이 떨렸기 때문이었다. 저림이 심해졌다. 왼손의 두 손가락에서 팔뚝까지. 마치 누군가 내 안에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나는 싱크대에 잔을 놓고 손을 물에 담그었다. 찬물이었다. 손가락의 저림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해졌다. 이제는 통증이 아니었다. 뭔가 깨어나는 신호. 뭔가 울리는 신호.

왜 나는 이 청년의 마음을 아는가.

왜 나는 이 할머니의 슬픔을 느끼는가.

왜 내 손가락이 저렸는가.

나는 손을 물에서 빼고, 그 손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할머니가 앉던 테이블에. 청년이 앉던 테이블에. 아직도 구분이 되지 않는 온기들이 섞여 있었다.

오후 세 시, 다시 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중년의 남자였다. 검은 옷을 입은, 얼굴을 거의 들지 않는 남자였다. 그 남자는 문을 열고 들어와서, 한참을 카페의 벽을 봤다. 특히 계단 옆 벽면을 유심히 바라봤다. 마치 뭔가를 찾는 것처럼.

"손님이신가요?" 나는 물었다.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내 손가락이 다시 저렸다. 더 강하게. 마치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남자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여기... 전에 누가 운영하던 카페 아닌가요?"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도 그걸 모르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카페를 중개인에게서 샀다. 그 전의 주인이 누구인지, 왜 팔았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 남자는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네. 그런데..."

"내 딸이 여기서 일했었어."

남자가 말했다. 그 말이 나에게 전해졌을 때,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내 손가락은 계속 저렸다. 왼손의 두 손가락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부르는 것처럼.

남자는 계단 옆 벽을 다시 봤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뻗었다. 벽 위의 어떤 지점을 만졌다. 마치 뭔가가 거기 있었던 것처럼.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다. 벽에는 못 자국만 남아 있었다. 사진을 걸었던 자리. 그 자리를 남자의 손가락이 천천히 따라갔다.

"사진이 있었는데..."

남자가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침묵 속에, 나는 무언가를 느꼈다. 후회. 그리움. 그리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뭔가.

"커피 마실래요?" 나는 물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커피를 타서 건넸다. 남자는 받아 마셨다. 손가락이 떨렸다. 내 손가락이 아니라, 남자의 손가락이.

밤이 되자, 나는 혼자 카페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여러 잔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할머니의 온기, 청년의 온기, 남자의 온기. 그들이 앉았던 자리들이 모두 다른 온도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손을 들었다. 왼손의 두 손가락. 여전히 저리고 있었다. 저림은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치 이것이 내 일부가 된 것처럼.

"왜 자꾸 사람들이 들어오는 거야."

나는 중얼거렸다. 빈 카페에 향해서.

"내가 원한 건 혼자인데."

하지만 내 손가락은 계속 저렸다. 그리고 그 저림 속에, 뭔가 다른 신호가 있었다. 뭔가 나를 부르는 신호. 아니, 누군가를 부르라는 신호.

다음 날 아침, 나는 카페의 문을 열었다. 어제와 같은 시간에. 그리고 기다렸다.

첫 손님이 들어섰다.

파란 옷을 입은, 익숙한 실루엣.

할머니였다.

"여기 따뜻하네."

할머니가 중얼거렸다. 어제처럼.

그 순간, 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이 할머니는 처음 오는 게 아니었다. 이 할머니는 이전부터 이곳을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계단 옆 벽을 바라봤다. 어제 남자가 손을 뻗었던 그 지점을 마치 아는 사람처럼.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사진이 있었는데..."

사진. 그 말이 나에게 전해졌을 때, 내 손가락은 강하게 저렸다. 마치 무언가를 기억하라는 신호처럼.

할머니는 천천히 나를 봤다. 그리고 웃었다. 슬픈 웃음이었다. 할머니의 눈가에는 주름이 깊었고, 그 주름 사이로 눈물이 맺혀 있었다.

"새 주인도 모르겠지. 여긴 그냥 따뜻한 곳이 아니야."

할머니가 천천히 말했다. 내 손가락이 울렸다. 마치 할머니의 말이 내 몸을 통과하는 것처럼.

"여긴 누군가를 기억하는 곳이야."

할머니는 계단 옆 벽을 다시 봤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어제 남자처럼. 그 지점을 만졌다. 할머니의 손가락이 벽 위의 못 자국을 따라 움직였다. 마치 지워진 무언가를 다시 그려내려고 하는 것처럼.

"사진이 있었는데... 딸 사진이."

할머니가 말했다. 내 눈이 뜨거워졌다. 손가락의 저림이 팔뚝까지 퍼져나갔다.

"저 남자... 그 아이 아버지인가?"

나는 물었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는 이 카페에서 일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 혼자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그리고 그 아이는..."

할머니의 말이 끊겼다. 할머니는 벽을 만지고 있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내 손가락처럼.

"그 아이는 그들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었어. 내가 모르는 방식으로. 이 카페가 그 아이의 손을 통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었어."

나는 할머니를 봤다. 할머니는 여전히 벽을 보고 있었다. 계단 옆의 그 지점을.

"그런데 그 아이가 떠났어. 사진도 내려갔고. 이 카페도 문을 닫았고."

할머니가 천천히 나를 봤다.

"하지만 새 주인이 들어오고 나니까, 다시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어. 그 아이처럼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여기 있다는 걸 알고서."

나는 할머니의 말을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뭘 할 수 있다는 건가. 나는 그저 커피를 줬을 뿐이다. 물을 줬을 뿐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눈빛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 손가락이 저렸어요. 어제부터."

나는 말했다. 할머니를 바라보며.

"왜 저렸는지 모르겠어요. 왜 그들의 마음이 느껴지는지. 왜 이 카페가 따뜻한지."

할머니는 내 손을 봤다. 왼손의 두 손가락. 여전히 저리고 있었다.

"그게 그 아이의 선물이야."

할머니가 말했다.

"그 아이가 이 카페에 남긴 것.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능력. 누군가의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손."

할머니는 내 손을 잡았다. 할머니의 손은 따뜻했다. 그리고 그 온기 속에, 나는 무언가를 느꼈다. 할머니의 그리움. 그 딸을 잃은 후의 긴 세월. 그리고 그 딸이 이 카페에서 만났던 모든 사람들.

"그 아이가 여기 남아 있어."

할머니가 말했다.

"너를 통해서."

나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다. 내 손가락은 더 이상 저리지 않았다. 대신, 따뜻했다. 할머니의 손처럼.

"내가... 뭘 해야 하는 거예요?"

나는 물었다.

할머니는 웃었다. 슬픈 웃음이었다.

"그냥 여기 있어줘. 이 카페를 열어줘. 그리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맞이해줘. 그 아이가 했던 것처럼."

할머니는 내 손을 놓았다. 그리고 일어섰다.

"다음에 또 올게. 그리고 이번엔..."

할머니가 계단 옆 벽을 봤다.

"이번엔 사진을 다시 걸어도 될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할 수 없었다. 내 목이 메어 있었다.

할머니는 문을 열고 나갔다. 파란 옷의 실루엣이 햇빛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계단 옆 벽을 봤다. 아무것도 없는 벽. 하지만 거기에 뭔가 있었던 자국이 보였다. 못 자국. 사진을 걸었던 자리. 그 자리에 누군가의 얼굴이 있었을 것이다. 이 카페에서 일하던 누군가의 얼굴.

내 손가락이 다시 저렸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종류의 저림이었다. 슬픔이 아니라, 뭔가를 기억해야 한다는 신호. 뭔가를 지켜야 한다는 신호.

나는 손가락으로 그 못 자국을 만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누군가의 얼굴을 상상해봤다. 할머니의 딸. 이 카페에서 누군가를 만났던 사람. 누군가의 손을 잡아줬던 사람.

그리고 지금은, 내 손을 통해 계속 누군가를 만나고 있는 사람.

내 손가락의 저림은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두렵지 않았다. 이제는 그것이 나의 일부였다. 그 딸이 남긴 선물. 이 카페에 남겨진 온기.

나는 창밖을 봤다. 산이 보였다. 초록색으로. 밝고 따뜻하게.

그리고 나는 알았다.

내가 혼자만의 세상을 원했던 건,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이 카페에서, 이 손가락으로, 나는 누군가를 상처 주는 대신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여기 있는 이유였다.

나는 테이블을 정리했다. 할머니가 마신 물잔, 청년이 마신 커피잔, 남자가 마신 커피잔. 모두 다른 온기를 가진 잔들. 나는 하나하나 닦아냈다.

창밖의 산은 여전히 초록색이었다. 새벽에 검게 물들어 있던 산이 이제는 밝아졌다. 누군가는 이 산을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누군가는 이 테이블에 앉아서, 이 창밖을 보면서, 어떤 마음으로 있었을까.

내 손가락이 저렸다. 하지만 이제는 그 저림이 무섭지 않았다. 그것은 신호였다. 누군가를 부르는 신호. 누군가와 만나라는 신호.

"온기."

나는 중얼거렸다. 카페의 간판을 보며.

이 이름이 맞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따뜻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 따뜻함은 온도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손이 닿은 자국이었다. 누군가의 그리움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 손이 그 따뜻함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문을 열어 두기로 했다. 혼자만의 세상을 지키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대신,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다. 그 딸처럼. 이 카페를 통해.

손가락의 저림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누군가를 맞이하라고.

누군가의 손을 잡으라고.

누군가의 슬픔을 느끼라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내가 여기 있는 이유였다.

나는 카페의 불을 켰다. 형광등이 밝아졌다. 테이블들이 하나하나 드러났다. 그 위에는 아직도 여러 사람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문이 열렸다. 또 다른 누군가가 들어섰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처음으로, 거절하지 않고.

"환영합니다. 뭘 마실래요?"

나는 물었다.

손님은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커피를 내렸다. 내 손가락은 계속 저렸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나를 인도하고 있었다.

그 딸이 남긴 길로.

그 딸이 만든 세상으로.

그 딸이 지켜낸 따뜻함으로.

나는 커피를 건넸다. 손님은 받았다. 그리고 창밖을 봤다. 산이 보였다.

"여기 따뜻하네요."

손님이 중얼거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말이 누군가에게 전해지길 바랐다. 이 카페를 떠난 누군가에게. 이제는 내 손을 통해 계속 누군가를 만나고 있는 그 사람에게.

"네. 여기는 따뜻한 곳이에요."

나는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내 손가락의 저림이 조금 더 약해졌다. 마치 누군가가 내 손을 놓아주는 것처럼.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것은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이 카페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동안.

나는 그것이 좋았다.

그것이 내 몫이었다.

그것이 내가 여기 있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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