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후의 첫 밤, 나는 죽은 척했다
한청의 진료소 방은 자주빛 깔린 약장 냄새로 가득했다. 서화는 손을 재빠르게 움직여 겨울 풍증으로 온 부인의 맥을 짚었다. 손목 아래로 전해지는 고르지 못한 맥박, 혀의 옅은 백태, 가늘어진 음성—세 가지 신호가 이미 진단을 말해주고 있었다.
"한 달 정도 계속 피로하셨나요?"
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류층 귀족 부인이었다. 비단 옷자락 값만 해도 서화가 일 년간 버는 돈이 될 것 같았다. 그렇지만 부인의 눈빛은 다른 여자들과 같았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그런 눈빛 말이다.
"기력을 돋워주는 약을 지어드리겠습니다. 매일 아침 미지근한 물에 풀어 마시세요."
손가락 세 개를 세워 약재의 분량을 설명하던 그 순간이었다.
문이 열렸다.
우그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황궁의 관복을 입고 있었다. 내사부 밀사—황제의 직속 부하다. 서화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손을 멈추면 진료가 끊긴다. 진료가 끊기면 의심받는다.
"한의녀, 밖으로 잠깐."
한청이 일어났다. 서화는 부인에게 절을 하고 방을 빠져나왔다. 복도의 찬바람이 목 뒤로 스며들었다.
밀사의 얼굴은 마른 편이었고, 눈빛은 이 건물에 어울리지 않는 날카로움을 담고 있었다. 한청은 밀사 옆에 서서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약을 담던 손가락이 미세하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네가 서화인가?"
밀사가 물었다. 그 목소리에는 거래의 냄새가 났다.
"그렇습니다."
서화는 고개를 숙였다. 평민 의녀가 황궁 밀사 앞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존댓말이었다.
"황후 폐하께서 3개월 전 돌아가셨다. 알고 있나?"
"들었습니다."
서화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황후의 죽음은 궁중의 가장 큰 사건이었다. 모든 의녀들이 그 소식을 받고 한 달을 슬픔으로 지냈다. 민경 황후는 진양후작가의 딸이었고, 그 아버지는 보수파 귀족의 중심이었다. 황후의 죽음은 단순한 부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치다.
"황제 폐하께서는 새로운 황후를 필요로 하신다. 그러나 외교적, 정치적 이유로 즉시 새 황후를 책봉할 수 없다. 따라서 일시적 조치가 필요하다."
밀사는 서화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물건을 재고 있는 눈빛이었다.
"너는 고인 황후 폐하와 용모가 매우 닮았다고 한다. 더불어 언행이 침착하고 기지가 있다고 들었다. 황제 폐하께서는 이 3개월간 황후의 대역을 맡을 자를 찾고 계신다. 너를 제안하고 싶다."
서화는 숨을 쉬지 않았다.
황후의 대역.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평민 의녀가 황궁에 들어가 황후의 자리에 앉는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고, 부를 의미할 수도 있고, 권력을 의미할 수도 있었다.
"만약 성공한다면?"
서화가 물었다. 한청이 눈을 크게 떴다. 평민 의녀가 황궁 밀사에게 조건을 묻다니.
밀사는 웃었다. 그것은 유쾌한 웃음이 아니었다. 냉소였다.
"만약 성공한다면, 너는 황궁을 빠져나갈 때 평민 신분으로 돌아가 한청의 진료소에서 계속 일하면 된다. 황제 폐하께서는 그 보상으로 한청의 진료소를 국가 의료 기관으로 격상시켜주실 것이다. 너의 기술도 당연히 인정받을 것이고."
"그리고 만약 실패한다면?"
밀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이 곧 대답이었다.
서화의 손가락이 구부러졌다 펴졌다를 반복했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른 것이었다. 평생 남의 도구로 살아온 한 여자가 처음으로 '선택받은' 순간이었다. 아니, 선택받은 게 아니라 제안받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차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누군가의 필요로 인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서화는 그저 한청의 제자였다. 한청의 손가락 끝에 따라다니는, 약을 달이고 부인들의 맥을 짚는 그런 여자였다.
이제는 달랐다.
"알겠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서화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렇지만 그 차분함 아래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흐르고 있었다. 생존 본능. 아니, 그 이상의 것.
***
황궁의 후궁은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밀사의 안내로 들어선 그 순간, 서화는 자신이 다른 세계에 들어섰음을 깨달았다.
외궁은 황제가 정무를 보는 공간이었다. 관복을 입은 신료들이 분주하게 드나들고, 황제의 명령이 전달되는 그곳에서 서화는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아무도 그녀를 보지 않았다. 평민 의녀 따위는 외궁의 배경이었다.
내궁으로 들어갈 때는 달랐다. 황족의 거주 공간인 내궁의 문 앞에는 여관들이 서 있었다. 그들의 눈빛이 서화를 스캔했다. 새로운 얼굴, 평민의 얼굴, 위험한 얼굴.
"이 자는 황제 폐하의 지시로 황후 대역으로 들어오는 자입니다. 허락 없이 그녀의 출입을 막으면 안 됩니다."
밀사가 말했다. 여관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경멸로. 두려움으로. 그리고 호기심으로.
후궁은 더욱 달랐다.
후궁 구역은 황후의 절대 영역이었다. 여기서는 평민이 들어올 수 없다. 신분을 속이면 사형이다. 그런데 지금 서화는 황제의 명령으로 이 구역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그것이 합법인가? 아니다. 그것은 예외였다. 황제의 명령은 모든 규칙을 초월했다.
서화는 조용히 따라갔다. 황후의 침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여관들이 고개를 숙였다. 새로운 황후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황제의 도구라고 생각했을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숙였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황후 폐하의 침실입니다."
밀사가 문을 열었다. 그 안은 화려했다. 비단으로 짜인 침대보, 진주로 장식된 거울, 청자로 만든 향로. 모든 것이 죽은 황후의 것이었다.
서화는 거울 앞에 섰다.
그 안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자신은 서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황후였다. 밀사가 준 황후의 적삼과 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거울에 비쳤다. 용모는 고인 황후와 비슷했고, 행동은 황후의 그것이었고, 눈빛은—눈빛은 평민이었다.
그런데 거울 안의 여자는 웃고 있었다.
아니, 웃고 있지 않았다. 그냥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웃음으로 보였다. 황후의 웃음으로.
서화는 중얼거렸다.
"내가 정말 황후인가?"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거울 안의 여자도 같은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
황제 휴명을 만난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외궁의 황제 개인 서재에서 밀사는 서화를 들였다. 그 방은 생각보다 작았다. 책으로 가득한 벽장, 붉은 목재의 책상, 그리고 그 뒤에 앉은 황제.
서화는 절을 했다. 올바른 황후의 절이었다.
"3개월만 견디면 된다."
황제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것은 명령이 아니라 거래였다.
"알겠습니다, 폐하."
"너의 정체가 들통나면 죽는다. 황족과 신료들 중 누구도 너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진정한 황후를 원한다. 너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잘 생각해봐라. 지금도 물러날 수 있다. 나갔다가 들어오지 않으면 그만이다."
서화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황제의 눈을 마주쳤다.
"나가지 않겠습니다, 폐하."
황제는 서화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호기심이 있었고, 경멸도 있었고, 그리고 무언가 다른 것도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그것은 죄책감이었다.
"좋다. 그렇다면 일을 시작하자."
황제는 손을 들었다. 밀사가 서화를 데려갔다. 그 밤, 서화는 황후의 침실에서 잠을 자야 했다. 죽은 황후의 침대에서.
***
밤은 길었다.
서화는 침대에 누웠지만 잠을 자지 못했다. 천장의 먼지가 보였다. 그 먼지는 죽은 황후가 보던 것과 같은 먼지였다.
시간이 흘렀다. 자정을 지났을 것이었다.
서화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용히 발을 옮겼다. 황후의 침실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나갔다.
복도는 어두웠다. 촛불이 몇 개 놓여 있었지만, 대부분의 공간은 암흑이었다. 서화는 그 암흑 속을 헤쳐 나갔다. 후궁에서 내궁으로, 내궁에서 외궁으로.
외궁의 황제 개인 서재에 도착했을 때, 서화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황제는 아무도 자신의 서재에 들어올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서화는 들어왔다.
서화는 책장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정치서, 병법서, 역사서. 모두 황제가 읽어야 할 책들이었다. 그렇지만 서화가 찾는 것은 책이 아니었다.
황제의 책상 아래에 놓인 문서 상자. 그것을 열었을 때, 서화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낡은 종이 한 장. '대역 계약서'라고 쓰여 있었다.
황제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서화의 호흡이 얕아졌다.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하지만 알고 싶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황제를 묶을 수 있는 사슬이었다.
문서를 펼쳤다. 손글씨로 작성된 조항들이 눈에 들어왔다.
'서화(徐花)를 황후의 지위로 책봉하며, 3개월간의 대역 기간 종료 후 신분 복원을 약속한다. 이 계약은 대흑제국의 법률에 따라 구속력을 갖는다. 황제 휴명(皇帝 休鳴).'
서화의 눈이 커졌다. 이것은 계약이 아니었다. 이것은 법령이었다.
황제의 인장이 찍힌 순간, 이 문서는 더 이상 종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법이 되었다. 대흑제국의 법은 황제의 인장 아래서만 생명을 얻는다. 그리고 한 번 생명을 얻은 법은 황제 자신도 폐지할 수 없다. 그것이 제국의 기초이자, 황제의 족쇄였다.
서화는 문서를 다시 읽었다. 그리고 비로소 이해했다.
자신은 단순한 대역이 아니었다. 자신은 공식적으로 황후였다. 황제가 무심코 서명했지만, 법적으로는 절대적 효력을 지닌 황후.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인가? 실수였나? 아니면 계획이었나?
서화는 문서를 들었다. 종이의 무게가 비현실적으로 무거웠다. 품에 안은 무게가 심장을 누르는 듯했다. 이 얇은 종이 한 장이 자신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 몸을 경직시켰다.
"발견했군요."
서화의 등이 얼어붙었다.
뒤를 돌았다. 문 앞에 황제가 서 있었다. 촛불 빛이 그의 얼굴을 반쯤 비추고 있었다.
"폐... 폐하."
서화는 급히 절을 하려 했다. 하지만 손에는 여전히 계약서가 들려 있었다.
"그것을 보고도 나갈 수 있나?"
황제의 목소리가 낮았다. 침착했다. 그렇지만 그 침착함 아래에는 뭔가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폐하, 이는..."
"나도 모르게 서명한 것이다."
황제가 한 발 다가왔다.
"너의 이름이 거기 있었나? 아니면 황후의 이름이 있었나?"
서화는 문서를 다시 들었다. 손글씨를 읽었다. 서화. 자신의 이름이었다.
"서화, 라고..."
"그렇다. 내가 실수했다."
황제는 서화 앞에 멈추었다. 그의 눈이 문서를 바라봤다. 마치 자신이 저주한 물건을 보듯이.
"너를 없애버리고 싶은가?"
"폐하?"
"이 문서를 태워버리고 싶은가? 그렇게 되면 너는 그저 평민 의녀일 뿐이다. 신분을 속인 죄로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 혹은 내가 너를 궁에서 내쫓을 수도 있다."
"..."
"하지만 이 문서가 있으면, 너는 법적으로 황후다. 그 누구도 너를 건드릴 수 없다. 나도 너를 해칠 수 없다."
황제가 손을 뻗었다. 서화는 본능적으로 문서를 들어 올렸다.
"그것을 나에게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폐하께서는... 저를 죽이실 수도 있습니다."
"맞다. 하지만 그러면 황실의 법적 권위가 무너진다. 황제가 공식 문서를 없애려 한다는 것이 드러나면, 제국 전체의 신뢰가 흔들린다."
황제의 입가에 비통한 미소가 떠올랐다.
"내가 발로 차 내려던 너라는 작은 의녀 때문에, 나는 이 사슬에 묶였다."
서화는 말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다. 아니,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3개월 동안, 너는 나의 황후다. 법적으로, 공식적으로. 그리고 그 3개월이 지난 후에, 우리가 이 문서를 어떻게 처리할지 정해질 것이다."
"폐하는...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왜냐하면 너는 이제 선택권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황제가 한 발 물러섰다.
"그 문서를 들고 도망쳐도 좋다. 궁 밖의 누군가에게 보여 주어도 좋다. 내 실수를 천하에 드러내도 좋다. 나는 너를 막을 수 없다. 법이 너를 보호하니까."
서화는 문서를 바라봤다. 손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너는 죽는다. 신분 위조죄로 사형에 처해질 것이다. 법은 강력하지만, 법을 집행하는 것은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은 실수한다."
황제가 다시 한 발 다가왔다.
"특히, 나는 실수하기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다."
서화가 고개를 들었다.
황제의 얼굴이 그 가까이 있었다. 촛불 빛이 그의 눈을 비추고 있었다. 그 눈 속에는 피로가 있었고, 분노가 있었고, 그리고 뭔가 절박한 것이 있었다.
"그 문서를 가지고 있어라. 그리고 3개월 동안 나의 황후로 살아라. 완벽하게.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그 후에는?"
"그 후에는..."
황제가 말을 멈추었다.
"3개월이 지나면, 모든 것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너도, 나도, 그리고 이 제국도."
서화의 눈이 커졌다. 그 말의 무게를 감지했다.
"그때가 되면 우리가 함께 결정하자. 너는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고, 혹은 정말로 황후가 될 수도 있다."
황제는 서화의 손에서 문서를 빼앗았다.
"이것을 다시 상자에 넣어라. 누구도 이 상자의 존재를 모른다. 나도 모르는 척하고, 너도 모르는 척해라. 그렇게 해야 모두가 안전하다."
"폐하, 저는..."
"가져라."
황제가 문서를 다시 서화에게 건넸다.
서화는 받았다. 손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이제 침실로 돌아가라. 아무도 너를 봤다면, 나는 너를 호출했다고 말할 것이다. 황후가 황제의 부름에 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서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설 준비를 했다.
"서화."
황제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처음으로.
서화가 다시 돌아섰다.
"이 일이 끝나면, 너는 뭐가 되고 싶은가?"
"폐하?"
"평민 의녀로 돌아가고 싶은가? 아니면 황후로 남고 싶은가?"
서화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
"모르겠다면, 지금은 생각하지 말아라. 3개월이 지나면, 답이 나올 것이다."
황제는 다시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책을 펼쳤다. 대화가 끝났다는 신호였다.
서화는 문서를 품에 안고 나갔다.
복도를 걸으면서, 서화는 자신의 손을 봤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떨림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짓이 들통날 순간의 공포였다. 계약서를 품에 안은 무게감이 심장을 누르고 있었다. 이 얇은 종이 한 장이 자신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 몸을 경직시켰다.
그렇지만 동시에 뭔가 다른 감정도 흐르고 있었다. 결의. 아니, 그것보다 강한 무언가.
자신은 더 이상 누군가의 도구가 아니었다. 자신은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자신을 묶은 동시에 자유롭게 했다.
이것은 게임이 아니었다. 이것은 전쟁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이미 진영을 정했다.
***
아침이 되었다.
서화는 황후의 침실에서 깨어났다. 어제 밤의 기억이 악몽처럼 떠올랐다. 하지만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문서였다.
그것은 악몽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서화는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황후의 옷으로.
거울을 봤다. 거울 속의 여자는 여전히 황후처럼 보였다.
아니, 더 이상 '처럼'이 아니었다.
그녀는 황후였다.
문서가 말하고 있었다. 법이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황제도 인정했다.
서화는 침실을 나갔다. 밖에서 여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황후께서 일어나셨습니다."
한 여관이 절을 했다. 다른 여관들도 따라 절을 했다.
서화는 그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자신을 황후로 대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네. 아침 준비를 해주세요."
서화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황후의 목소리였다.
여관들이 서화를 인도했다. 목욕실로, 옷 실로, 화장실로.
서화는 모든 것을 받았다. 황후가 받아야 하는 모든 것을.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더 이상 연기하지 않게 되었다. 이미 황후였으니까.
***
이경 상서가 황후를 알현하려 했을 때, 서화는 후궁의 응접실에 앉아 있었다.
"황후께서 이른 아침부터 나오셨습니까?"
이경의 눈이 좁혀졌다. 그는 서화를 면밀히 관찰했다. 민경 황후라면 절대 이런 시간에 나올 리 없었다. 그 여자는 늦잠을 자는 것으로 유명했다.
서화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경은 민경 황후를 알고 있었다. 자신과의 차이를 눈치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계약서를 품에 안은 무게감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네, 상서님. 황제께서 어제 밤 말씀하신 바가 있어서요."
서화는 차를 마셨다. 손가락이 찻잔을 쥐는 각도, 입술이 차를 마시는 방식—모든 것이 황후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 안의 심장은 평민의 것이었다. 서화는 그 차이를 느껴야 했다. 그리고 감춰야 했다.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이경의 질문이 날카로웠다. 그의 눈은 서화의 얼굴, 손, 목의 움직임을 모두 따라다녔다.
"궁중의 의례에 대해 배워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서화는 차를 내려놓았다. 손이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의도된 안정감이었다. 평민 의녀의 손은 이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황후의 손은 이렇게 움직인다. 서화는 그 차이를 알고 있었다. 그것을 보여줘야만 했다.
"황후 폐하께서는 민경 황후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아십니까?"
이경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함정이 놓여 있었다. 서화는 그것을 느꼈다. 거짓이 들통날 순간의 공포가 목을 조였다.
"황후는 황제를 보필하고, 후궁을 다스리며, 궁중의 의례를 주관하는 것이 직분입니다. 민경 황후께서도 그러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확한 답변입니다."
이경이 몸을 다시 뒤로 기울렸다. 하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서화를 놓지 않았다. 그것은 사냥꾼의 눈이었다. 먹이를 바라보는 눈이 아니라, 동료를 재보는 눈이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 더 여쭙겠습니다."
이경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민경 황후께서는 진양후작가의 딸이셨고, 보수파 귀족의 이익을 대변하셨습니다. 황후께서도 그렇게 하실 작정입니까?"
서화의 호흡이 얕아졌다. 이경은 자신의 정체를 의심하고 있었다. 아니,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왜 직접 묻는가? 왜 이렇게 노골적으로? 그것은 시험이었다. 자신을 떨어뜨리기 위한 함정이 아니라, 자신을 재보기 위한 시험이었다.
서화는 찻잔을 다시 집었다. 이번에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떨림이었다. 황후가 느낄 수 있는 불안감의 떨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계산된 떨림이었다. 이경에게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떨림이었다.
"상서님, 저는 황제의 황후입니다. 어느 파벌도, 어느 가문도 대변하지 않습니다."
서화가 대답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약간의 거리감이 담겨 있었다. 황후가 신하에게 보여야 할 거리감. 하지만 그 거리감 아래에는 평민 의녀의 절박함이 숨어 있었다.
"흥미로운 답변입니다."
이경이 일어섰다.
"민경 황후께서는 절대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은 항상 자신의 가문을 대변하셨거든요."
이경이 서화에게 한 발 다가왔다. 서화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손가락이 찻잔을 더 세게 쥐었다. 거짓이 들통날 순간의 공포가 몸을 경직시켰다.
"황후께서는 정말 특별하신 분인 것 같습니다."
이경이 서화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 눈빛에는 의심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뭔가 다른 것도 있었다. 경고인가? 아니면 보호인가?
"그것이 좋은 특별함인지, 나쁜 특별함인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입니다."
이경이 한 발 물러섰다.
"황후께서는 앞으로 조심하셔야 합니다. 궁중에는 많은 눈이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입이 있습니다."
서화는 이경의 의도를 읽어냈다. 그것은 경고였다. 하지만 동시에 보호이기도 했다. 이경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밝히지 않기로 선택했다. 왜? 자신을 시험하는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이경이 자신을 무언가의 기준으로 평가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준을 통과했다는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상서님."
서화가 절을 했다. 황후의 절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평민 의녀의 감사가 숨어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뭔가 다른 것도 담겨 있었다. 이경의 의도를 읽어낸 자의 확신이었다.
이경은 나갔다.
서화는 차를 마셨다. 손가락이 컵을 쥐는 힘이 점점 세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것을 깨달았다.
이경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밝히지 않았다. 그것은 선택이었다. 자신을 시험하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고, 보호하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선택의 의도가 무엇이든, 이경은 자신에게 기회를 준 것이었다.
그 기회를 어떻게 사용할지는 자신의 몫이었다.
서화는 침실로 돌아갔다.
품에서 문서를 꺼냈다.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녀는 문서를 읽었다. 다시, 또 다시.
'대역 계약서. 서화를 황후의 지위로 책봉하며...'
이 문서가 있는 한, 자신은 죽지 않는다. 황제도 자신을 건드릴 수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기였다.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족쇄이기도 했다. 이 문서를 들고 있는 한, 자신은 황후로 살아야 했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서화는 문서를 다시 품에 넣었다.
그리고 거울을 봤다.
거울 속의 여자는 웃고 있었다. 황후처럼.
아니, 이제는 정말 황후처럼이 아니라 황후 그 자체로.
서화의 눈빛이 변했다. 평민 의녀의 눈빛에서 무언가 다른 것으로. 결의? 야심? 그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생존 본능이 진화한 형태였다. 이미 죽음의 문턱에 섰던 자가 다시 살아나는 순간의 눈빛이었다.
"이제 시작이다."
밖에서 여관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아침 준비물을 가져오고 있었다. 하지만 서화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울 속의 황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복도에서 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여관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밀사께서 오셨습니다!"
서화의 몸이 경직되었다. 밀사? 이렇게 이른 시간에?
침실의 문이 열렸다. 밀사가 들어섰다. 그의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황후 폐하, 황제께서 즉시 외궁으로 나오시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서화가 물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보수파 귀족들이 궁에 들어왔습니다. 민경 황후의 아버지 진양후작이 황제를 만나겠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서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리고... 그들은 새 황후를 보고 싶다고 합니다."
밀사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서화는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깨달았다.
이것은 더 이상 게임이 아니었다.
이것은 전쟁이었다.
그리고 전쟁은 이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