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기억의 빌런 - 10화 「정의의 종말」

심문실의 불빛은 너무 밝았다. 눈을 뜬 지 몇 초 만에 망막이 타는 것 같았다. 테이블 앞에 앉은 김민준은 녹음기를 켰다. 카세트 테이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음성이 나의 모든 것을 기록할 것이다. 기록하고, 보관하고, 법정에서 증거가 될 것이다.

나는 입을 열었다.

"이준호입니다. 경찰청 특수수사팀 경사 이준호."

목소리가 떨렸다. 그것이 내 목소리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테이블 아래에서 자동으로 움직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멈추지 않았다.

"지난 3년간 제가 해결했다고 보고한 20건의 사건이 있습니다."

김민준이 파일을 넘겼다. 피해자들의 사진이 담긴 문서였다. 첫 번째는 강남역 모텔의 20대 여성. 두 번째는 서초구 오피스텔의 또 다른 여성. 사진 속 얼굴들이 모두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죽음의 표정. 내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그 중 대부분이... 제가 저질렀습니다."

말을 마치는 순간, 내 손이 멈췄다. 손가락들이 경직되었다가 천천히 펴졌다. 그 동안 또 다른 목소리가 내 목에서 나왔다. 낮고, 부드럽고, 위협적인 목소리.

'이제 말해도 된다. 그들이 알아야 한다. 우리가 누구인지.'

나는 고개를 들었다. 김민준의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 공포가 있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내 눈을 본 것으로.

"첫 번째 피해자는 이혜진. 강남역 모텔에서 목이 졸려 사망했습니다. 제 기억복원 능력으로 해결했다고 보고했습니다."

파일을 넘겼다.

"하지만 저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직접 그곳에 있었습니다."

"이준호, 천천히..."

"두 번째 피해자는 박민지. 세 번째는 임수현. 네 번째는 박수진. 다섯 번째는 최유라."

이름을 말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각각의 얼굴이 떠올랐다. 죽음 직전의 눈. 내 얼굴을 보며 느꼈을 공포. 그들의 기억 속에서 내가 본 것은 나를 죽이려는 괴물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였다.

"그들 모두를 제가... 우리가..."

손가락이 또 움직였다. 이번에는 멈추지 않았다. 계속 움직였다. 경련처럼. 마치 자동으로 써내려가는 기계처럼. 손가락의 끝에서 뭔가가 흘러내렸다. 눈물이었다.

"당신이 범행을 자백하는 건가요?"

김민준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멀리서 나는 것 같았다. 심문실의 벽이 흔들렸다. 거울이 있었다. 심문실 뒤의 투명한 거울. 그 거울 너머에 누군가가 있었다. 한지은. 그녀의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물이 흘렀다.

나는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속에 두 개의 눈이 보였다.

하나는 나의 눈. 파란색 셔츠를 입은 경찰관의 눈. 규칙과 질서 속에서만 살아온 눈. 피해자들을 보호하려던 눈.

다른 하나는... 다른 눈. 검은색 장갑을 낀 손의 주인인 그 눈. 밤의 거리를 돌아다니던 눈. 죽음을 추적하던 눈.

둘 다 내 눈이었다.

"10년 전 교통사고 이후, 의사들은 저를 '외상후 해리성 정체감 장애'로 진단했습니다."

목소리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하지만 저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저는 제 능력을 개발했습니다. 타인의 기억을 읽는 능력. 그것이 제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명탐정. 영웅. 정의의 손."

테이블을 내려쳤다. 파일들이 흩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었습니다. 저는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범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나—"

손이 또 움직였다. 이번에는 내 목을 향했다.

"—는 영웅이 되고 싶었습니다."

김민준이 재빨리 손을 잡았다. 심문실의 문이 열렸다. 경찰들이 들어왔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다른 누군가가 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누군가는 웃고 있었다.

"드디어 하나가 되었다."

목소리가 낮았다. 내가 아닌 목소리. 하지만 내 입에서 나왔다.

"나를 봐주세요. 이제 나를 봐주세요. 제발."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의식이 검어졌다. 다시 깨어났을 때,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천장이 하얀색이었다. 병원인지, 감옥인지, 아니면 정신병원인지 알 수 없었다. 창문은 없었다. 벽은 패딩으로 덮여 있었다.

한 주일이 지났다.

심문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서 그것이 말했다. 나의 또 다른 인격이. 그것은 내가 못했던 말들을 했다.

"저는 당신 안에 있었습니다. 10년 동안."

"당신이 정의를 추구할 때, 저는 복수를 했습니다."

"당신이 영웅이 되려고 할 때, 저는 죽음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당신이었습니다. 같은 뇌, 같은 피, 같은 과거."

거울 속의 눈이 눈물을 흘렸다. 나의 눈이 아닌 다른 눈. 하지만 같은 눈.

"저는 당신이 나를 봐주길 원했습니다. 그것만 원했습니다."

파일이 넘겨졌다. 심문실에서, 경찰청에서. 기억복원 부서가 폐지되었다는 보도자료. 초능력이 법적 증거로 인정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통보. 내가 해결했다고 했던 20건의 사건들이 모두 재수사 대상이 되었다. 진짜 범인을 찾아야 한다는 지시.

그 진짜 범인은 나였다. 또 다른 나였다.

박철수 부서장은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대신 기자들이 찾아왔다. 미디어의 관심은 집중적이었다. '신의 손을 가진 명탐정의 정체'. 뉴스는 계속 반복되었다. 나의 얼굴이 계속 방송되었다. 영웅에서 괴물로. 하루 사이에.

한지은이 한 번 찾아왔다. 정신병원의 방문실에서. 그녀는 울었다. 말하지 않았지만 울었다. 내가 그녀를 몰라줬던 것에 대해 울었던 것 같았다. 자신의 직관이 맞았다는 것에 대해 울었던 것 같았다.

"미안합니다."

내가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한지은이 말을 흐렸다. 그리고 돌아갔다.

윤태희 의사는 자주 왔다. 매주 목요일마다. 그는 침묵했다. 단지 앉아서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10년 동안 내가 받지 않으려던 치료를 이제 받고 있었다. 너무 늦은 치료.

"당신은 책임이 있나요?"

한 번 윤태희가 물었다.

"네. 그리고 그 책임은 또 다른 저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벌받아야 하나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없었다. 법은 명확했다. 정신질환으로 인한 범죄. 처벌보다는 치료. 정신병원에의 수감. 그것이 정의라고 했다.

하지만 정의가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정신병원의 방은 조용했다. 오후 세 시,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그 창문은 이제 있었다. 밖을 볼 수 있었다. 서울 남부의 거리. 강남, 서초, 송파. 내가 그 거리를 돌아다니던 그 밤들이 떠올랐다.

나는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 두 개의 눈동자가 보였다.

하나는 시뻘건 눈. 밤의 거리를 보던 눈. 죽음을 추적하던 눈. 그 눈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파란색의 피로한 눈. 낮의 경찰청에 있던 눈. 정의를 꿈꾸던 눈. 그 눈은 울고만 있었다.

나는 웃음과 울음이 섞인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안녕, 나."

거울 속의 두 눈이 깜빡였다. 그리고 나는 누가 대답했는지 알 수 없는 목소리를 들었다.

"안녕, 우리."

# 정의의 종말

천장이 하얀색이었다. 병원인지, 감옥인지, 아니면 정신병원인지 알 수 없었다. 창문은 없었다. 벽은 패딩으로 덮여 있었다.

한 주일이 지났다.

심문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서 그것이 말했다. 나의 또 다른 인격이. 그것은 내가 못했던 말들을 했다.

"저는 당신 안에 있었습니다. 10년 동안."

"당신이 정의를 추구할 때, 저는 복수를 했습니다."

"당신이 영웅이 되려고 할 때, 저는 죽음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당신이었습니다. 같은 뇌, 같은 피, 같은 과거."

거울 속의 눈이 눈물을 흘렸다. 나의 눈이 아닌 다른 눈. 하지만 같은 눈.

"저는 당신이 나를 봐주길 원했습니다. 그것만 원했습니다."

---

심문실의 형광등이 깜박였다. 테이블 위에 파일들이 쌓여 있었다. 경찰청 특수수사팀 기억복원 부서의 공식 폐지 통보. 초능력이 법적 증거로 인정되지 않기로 결정한 대법원의 판결문. 재수사 대상 20건 사건의 목록.

김민준이 그 목록을 읽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각 사건의 피해자 이름을 하나씩 짚었다.

"이게 맞나요?"

그가 나를 바라봤다. 질문이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네."

내 목소리는 낮았다. 흑백 조사실의 벽은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강남역 모텔, 피해자 오은주. 목 졸림."

"네."

"강서구 건물 옥상, 피해자 박준영. 추락사."

"네."

"강동구 편의점 뒷골목, 피해자 임수현. 다중 외상."

"네."

김민준의 목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마치 기차가 내리막을 달리는 것처럼. 멈출 수 없이.

"서초동 오피스텔, 피해자 박수진. 칼상과 질식."

"네."

"송파구 주택가, 피해자 최유라. 흉기 상해 및 실혈."

"네."

"이상 5명. 그리고 당신이 해결했다고 한 나머지 15건은?"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사건들을 모두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다른 인격이 저질렀던 그 모든 일들을.

"기억이 안 난다는 건가요?"

"네."

"당신의 초능력으로 다른 사람의 기억은 읽을 수 있지만, 자신의 기억은 읽을 수 없다는 거군요."

그의 말에는 날카로운 풍자가 있었다. 3년 동안 나를 믿지 않았던 남자. 그 남자가 이제야 옳았다.

"외상후 해리성 정체감 장애. 윤태희 의사의 진단서를 읽었습니다."

김민준이 또 다른 파일을 펼쳤다. 10년 전 진단서. 그 종이 위에는 나의 모든 것이 적혀 있었다.

"10년 전 교통사고 이후 뇌 외상. 간헐적 기억 소실. 시간 단절 현상. 그리고 이 문장입니다."

그가 읽었다.

"'환자는 진단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치료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현재 상태로는 인격 통합이 불가능하며, 향후 증상 악화 시 폭력적 행동의 위험성 있음.'"

김민준이 종이를 내려놨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까, 경사?"

"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기억복원 능력을 사용해 수사를 진행했습니까?"

"네."

"왜?"

그 질문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무거웠다. 나는 왜 했을까. 영웅이 되고 싶었기 때문인가. 팀에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내 안의 또 다른 인격을 모르고 싶었기 때문인가.

"모르겠습니다."

내 대답은 진실이었다.

---

심문실 밖에서 박철수 부서장을 만났다. 그는 나를 보지 않았다. 마치 내가 투명인간인 것처럼 그냥 지나갔다. 3년 동안 나를 믿고 따랐던 남자. 그 남자의 등 뒤에는 새로운 팀원들이 붙어 있었다. 내가 해결했다고 한 20건의 사건들을 다시 처음부터 수사할 팀. 내 대신 그 자리를 채울 팀.

한지은은 로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돌아봤다. 마치 두 번 확인해야만 믿을 수 있는 것처럼.

"준호."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르지 않은 지 오래였다.

"한지은."

"당신이..."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네. 제가 범인입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당신의 직관을 무시했습니다. 제가 당신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한지은이 내 팔을 잡았다. 그 손가락은 떨리고 있었다.

"당신을 봤어요. 조사실에서. 거울에 비친 당신의 얼굴이. 두 개의 눈이. 한쪽은 울고 있었어요. 다른 한쪽은 웃고 있었어요."

"네."

"그것도 당신인가요?"

"네."

한지은이 손을 놨다. 그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조사실 로비의 밝은 조명 아래에서. 사람들이 지나가는 가운데서. 그녀는 울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뭐가..."

"제가 더 빨리 알았어야 했어요. 제 직관이 맞았는데도. 제가 당신을 멈췄어야 했는데."

"당신 탓이 아닙니다."

"그럼 누구 탓이에요?"

그 질문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

정신병원의 방은 조용했다. 오후 세 시,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그 창문은 이제 있었다. 밖을 볼 수 있었다. 서울 남부의 거리. 강남, 서초, 송파. 내가 그 거리를 돌아다니던 그 밤들이 떠올랐다.

벽 위에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윤태희 의사의 지시로. 피해자들의 사진. 오은주. 박준영. 임수현. 박수진. 최유라. 그리고 나머지 15명. 얼굴이 흐릿한 것들도 있었다. 내 다른 인격이 기억하지 못하게 만든 것들.

나는 그 사진들 앞에 섰다. 하나씩 이름을 불렀다. 나의 목소리로. 나의 또 다른 인격의 목소리로.

"오은주."

"박준영."

"임수현."

"박수진."

"최유라."

목소리가 바뀌기 시작했다. 내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 거칠고, 낮고, 절망적인 목소리.

"제가 당신들을 죽였습니다."

그 목소리가 말했다.

"제가 당신들을 고통스럽게 죽였습니다."

"제가 당신들의 가족들을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제 탓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그의 탓입니다."

"그가 나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나를 부정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나를 죽였기 때문입니다."

목소리가 다시 바뀌었다. 나의 목소리로.

"아니다. 이것도 내 탓이다."

"모든 것이 내 탓이다."

나는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 두 개의 눈동자가 보였다.

하나는 시뻘건 눈. 밤의 거리를 보던 눈. 죽음을 추적하던 눈. 그 눈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그것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또 다른 인격이. 내 안의 거울.

다른 하나는 파란색의 피로한 눈. 낮의 경찰청에 있던 눈. 정의를 꿈꾸던 눈. 그 눈은 울고만 있었다.

나는 웃음과 울음이 섞인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안녕, 나."

거울 속의 두 눈이 깜빡였다. 그리고 나는 누가 대답했는지 알 수 없는 목소리를 들었다.

"안녕, 우리."

그 목소리는 내 목소리이면서 동시에 다른 목소리였다. 마치 두 명이 동시에 말하는 것처럼. 또는 한 명이 두 개의 목소리로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뭐라고 생각해?"

"정의가 뭐라고 생각해?"

거울 속에서 두 눈이 다른 방향을 보기 시작했다. 하나는 위로. 하나는 아래로.

"정의는 처벌입니까?"

"정의는 용서입니까?"

"정의는 기억입니까?"

"정의는 망각입니까?"

거울이 깨지기 시작했다. 한 줄의 금이 들어가고, 또 다른 금이 들어갔다. 마치 거미줄처럼. 하지만 거울은 깨지지 않았다. 금만 그어졌을 뿐.

그 금 사이로 또 다른 것들이 보였다. 그림자. 내가 저질렀던 모든 범행의 장면들. 그 장면들 속의 나. 그리고 그 장면들을 지우려던 나.

"우리는 하나입니다."

거울 속의 목소리가 말했다.

"우리는 절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죽었습니다."

"우리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우리는 뭘까요?"

나는 거울에 손을 대었다. 거울도 나를 향해 손을 대었다. 같은 손. 같은 온도.

창문 밖에서는 서울의 저녁이 내려앉고 있었다. 강남역의 불빛들이 켜지기 시작했다. 강동구의 편의점 불빛도. 서초동의 오피스텔 불빛도. 송파구의 주택가 불빛도.

그 불빛들 아래에서 누군가의 가족들은 저녁을 먹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부모는 자식의 빈 자리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친구는 전화가 오지 않는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할 것이다.

그들을 위한 정의는 무엇인가.

나는 거울에서 손을 떼었다. 거울 속의 나도 손을 떼었다. 그리고 거울은 다시 온전해졌다. 금은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깨진 적이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그 금은 여전히 내 안에 있었다. 두 개의 눈 사이에. 두 개의 목소리 사이에. 두 개의 나 사이에.

그리고 그 금은 절대 아물지 않을 것이다.

의사가 약을 들고 들어왔다. 윤태희는 내 눈을 바라봤다. 어느 눈인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괜찮으세요?"

"네."

"누가 대답했습니까?"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거울 속에서처럼 웃음과 울음이 섞인.

"모르겠습니다, 의사님."

윤태희가 약 한 알을 내밀었다.

"이것을 드시면 한 사람이 될 겁니다."

"한 사람이 된다는 게 뭐죠?"

"당신이 당신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미 저인데요."

"그렇습니다. 당신은 이미 당신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미 그들입니다."

약을 삼켰다. 그러자 세상이 살짝 흔들렸다. 아니, 세상이 흔들린 게 아니라 내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인 것 같았다.

"우리가 하나가 되는 건가요?"

거울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면 우리가 완전히 분리되는 건가요?"

나는 거울을 다시 봤다. 거울 속에는 이제 한 명의 눈만 있었다.

하지만 그 눈은 두 가지 색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빨강과 파랑.

죽음과 정의.

범인과 영웅.

그리고 그 눈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더 이상 거울 속에서가 아니라. 직접.

"우리 이제 뭐 할 거야?"

그 목소리는 내 목소리도, 거울 속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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