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응혼의 각성

밤이 유난히 길었다. 소연의 손가락이 제단의 차가운 돌을 더듬었다. 제물을 올리는 자리인데, 올려놓은 것은 쌀과 막걸리뿐이었다. 마을이 하나둘 떠나가면서 제물도 함께 줄어들었다.

제단 위에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어제 돼지를 잡을 때의 자국이 아니었다. 소연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피였다. 지난 3년간 초하루마다 흘린 피의 흔적들이 돌 위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 검은 자국들이 마치 야차의 발톱 자국처럼 보였다.

"미안해."

목소리가 나왔다. 그것도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의 목소리였다. 소연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제단 앞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얼굴이 흐릿했다. 하지만 소연은 그 형상을 알고 있었다. 10년 전 죽은 그 사람. 마을의 물장수 홍택. 자신이 잘못된 판단으로 죽게 한 사람.

"내가 잘못했어."

소연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흐릿한 형상이 입술을 움직였다. 두 입이 동시에 움직였다. 누가 죄를 지었는지 경계가 없어졌다.

"내가 미안해. 나 때문에."

환상은 더 가까워졌다. 소연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제단에 무릎을 꿇은 자리에서 손가락만 떨렸다. 흐릿한 형상의 손이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내려왔다.

그 순간, 뜨거움이 밀려왔다.

손가락이 무언가를 잡았다. 차갑고 매끈한 표면. 제단 아래에서 나타난 것이었다. 칠흑 같은 색의 검. 손잡이는 따뜻했다. 아니, 뜨거웠다. 소연의 체온을 빨아먹는 듯한 뜨거움.

"안녕, 작은 것."

검이 말했다. 목소리는 여성의 목소리였다. 오래되고 낡은, 마치 먼지 사이에 묻혀 있던 목소리.

"너도 죄책감으로 죽으려고 하는군. 좋아. 함께 죽자."

소연의 손이 검의 손잡이를 더 깊이 움켜쥐었다. 체온이 떨어지고 있었다. 손가락부터 시작된 차가움이 팔뚝으로, 어깨로 퍼져 나갔다. 가슴이 얼었다. 하지만 그것은 공포가 아니었다. 오히려 안도감이었다.

죄책감이 무거워질수록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 마치 자신이 물에 가라앉으면서 동시에 떠오르는 것 같은 모순된 감각. 소연은 눈을 감았다. 이것이 해방인가 싶었다. 죄책감으로부터의 해방. 그것이 죽음이라면, 자신은 기꺼이 그것을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검의 목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소연의 귓가에 속삭이는 듯했다.

"87일. 음력 초하루까지 정확히 87일이 남았다. 그 동안 너는 내 날이 되어줄 것이고, 나는 너의 죄를 먹으며 산다. 그 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너도, 나도."

소연이 눈을 떴다. 손 안의 검이 빛났다. 검은색이 아니라 붉은색으로. 마치 불이 타오르는 듯한 붉은 빛이 제단에서 솟아올랐다. 그 빛이 마을 상공으로 뻗어 나갔다.

하늘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 마을을 덮고 있던 검은 어둠이 뒤로 물러났다. 단 한 순간만 물러났지만, 그 틈새로 소연은 보았다. 그 어둠의 형상을. 마치 까마귀 떼처럼 소용돌이치는 그 무언가. 야차. 150년 된 원귀.

검의 빛이 사라지자 다시 어둠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전의 어둠과는 달랐다. 이제 그것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위협이었다. 소연은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응혼의 검을 들었기 때문에.

흐릿한 형상은 사라져 있었다. 제단 위에는 쌀과 막걸리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제단의 검은 자국들은 더 진해 보였다.

소연은 천천히 일어섰다. 검을 들고. 손가락이 여전히 떨렸지만, 이번에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자신이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으로 자신이 온전해 보였다.

당 안으로 들어갔다. 촛불을 켜고, 제단 옆의 나무 상자에서 낡은 기록들을 꺼냈다. 할머니가 남긴 기록들이었다. 야차에 대한 것들. 150년 전 마을에 내려진 저주의 기록들.

글씨가 흐릿했다. 손가락이 흐릿한 글씨를 따라 내려갔다.

'검 한 번 휘둘 때마다 수 시간의 생명이 깎인다.'

소연의 눈이 멈췄다.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하루를 24시간으로 계산하면, 한 번 휘두를 때마다 3시간이 깎인다면 하루에 8번. 87일이면 696번.

손가락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 정확히 계산된 죽음의 횟수. 그 숫자가 뇌를 관통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호흡이 얕아졌다. 손가락이 떨렸다. 이번에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696번. 그것이 자신이 야차를 상대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한참을 그 숫자 앞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 무게가 자신을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뭔가 명확해졌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정말로 가능한지도.

뭔가를 해야 했다. 뭔가를 반드시 해야 했다.

새벽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당 입구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빠르고 다급한 발걸음. 소연이 고개를 들었을 때, 유진이 들어섰다.

어둠이 가시는 새벽녘이었다. 유진의 얼굴이 창백했다. 하늘 위의 붉은 빛을 봤을 것이었다. 그의 눈이 소연의 손을 찾았다. 손 안에 들려 있는 검을.

"당신이 죽는다면..."

유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손가락이 주먹으로 움켜졌다.

"우리는 어떻게 되냐?"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 그의 눈빛이 묻고 있었다. 당신이 진짜 죽을 건가? 당신이 정말로 우리를 버릴 건가? 그 많은 것을 한 문장 속에 담았다.

소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유진의 절망이 자신을 짓누르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을 밀어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절망이 옳았기 때문이었다.

소연은 검을 들었다. 빛이 다시 밝아왔다.

유진의 눈이 검의 빛에 휩싸였다. 그는 뒷걸음질을 치지 않았다. 한 발 더 가까이 들어섰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응혼이 맞나?"

목소리가 낮았다. 사실 확인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았다. 유진은 마을의 전승 속에 남은 저주받은 검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것을 집어드는 자는 모두 죽는다는 것을.

소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검을 내려놓았다. 빛이 사라졌다. 제단 위에 검은 고요히 놓여 있었다. 마치 평범한 쇠 조각처럼.

"87일이다."

소연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음력 초하루까지 87일. 그 동안 내가 야차를 막지 못하면 마을은 끝난다. 그 동안 내가 야차를 막으면..."

소연이 유진을 바라봤다.

"그 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유진의 얼굴이 굳었다. 그의 손이 탁자를 내려쳤다. 음향이 제단에 울렸다.

"다른 방법은 없나?"

"없다."

"할머니는? 할머니가 응혼을 든 건 아닌가? 할머니가 어떻게 견딘 건지—"

"할머니는 아직 살아 있다."

소연이 말을 끊었다. 유진의 질문이 멈췄다.

"살아 있지만, 죽어 있다.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헤매고 있다. 응혼의 저주를 완전히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연이 일어섰다. 당 안의 촛불이 흔들렸다. 새벽바람이 밖에서 불어들었다. 점점 차가워지는 바람.

"나는 다를 것이다."

유진의 눈이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왜? 할머니와 뭐가 다른가?"

"할머니는 자신을 살리려고 응혼을 들었다."

소연이 말했다.

"응혼이 깨어나기 전에, 할머니는 이미 죽음을 거부하고 있었다. 응혼에게 자신을 구해달라고 빌었다. 그 욕망이 할머니를 갉아먹었다. 응혼도 할머니도 서로를 원하지 않았는데, 필사적인 욕망이 둘을 묶어버렸다."

소연이 제단 위의 기록을 가리켰다.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이미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응혼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응혼이 나를 선택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정말 죽는 건가?"

유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87일 뒤에 정말로?"

"모른다."

소연이 대답했다.

"응혼도 모르는 것 같다. 응혼은 150년을 혼자 있었다. 월희 이후로 아무도 응혼을 들지 않았다. 응혼이 나를 선택한 건, 나와 함께 뭔가를 끝내기 위해서다. 그것이 죽음인지, 다른 무언가인지는..."

소연이 검을 다시 들었다. 빛이 밝아왔다.

"87일 동안 알아내야 한다."

유진의 손이 소연의 팔을 잡았다. 힘이 들어갔다. 상처를 낼 것 같은 힘이 아니라, 떨어지지 않겠다는 다짐처럼.

"당신이 죽으면 안 된다."

유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내가 이미 잃은 게 너무 많다. 엄마, 아빠, 형. 다 야차 때문에 잃었다. 당신까지 잃을 수는..."

그의 말이 끝나지 않았다. 당 밖에서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목소리. 민준의 목소리였다.

"누나! 누나!"

민준이 뛰어 들어왔다. 얼굴이 창백했다. 손에는 촛불을 들고 있었다.

"하늘이... 하늘이..."

"진정해."

소연이 민준을 안았다. 아이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봤어. 방금 하늘이 빨갛게 물들었어. 무서워."

"괜찮다."

소연이 민준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그건 야차가 아니다. 그건 우리가 준 신호다."

"신호?"

민준이 고개를 들었다.

"우리가 싸울 준비가 됐다는 신호다."

그 말을 하면서 소연은 느꼈다.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정말로 자신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응혼의 검을 들었기 때문에.

유진은 여전히 소연의 팔을 잡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 변했다. 절망에서 무언가 다른 것으로. 아직 희망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운 감정이었지만, 절망도 아니었다.

"87일 동안 뭘 할 건가?"

유진이 물었다.

"야차의 정체를 알아내야 한다."

소연이 답했다.

"응혼이 말했다. 음력 초하루에 모든 게 결정된다고. 그 전에 나는 야차가 누구인지, 왜 이 마을에 내려왔는지 알아야 한다. 할머니 기록에 있을 거다. 그 기록들을 다시 읽어야 한다."

"기록에 뭐가 있나?"

"150년 전 이 마을에 내려진 저주. 그 저주의 이유. 야차가 뭔지 알면, 어떻게 막아야 할지도 알 수 있을 거다."

소연이 제단 옆의 상자를 가리켰다. 그 안에는 할머니가 남긴 기록들이 가득했다.

"검으로?"

유진이 물었다.

소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검을 들고 당 밖으로 나갔다. 새벽하늘이 점점 밝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마을 위에는 여전히 어둠이 드리워 있었다. 응혼의 빛이 그 어둠을 가르며 뻗어 나갔다.

"우선 마을을 지켜야 한다."

소연이 말했다.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 오늘밤부터 마을의 모든 집을 돌아다니며 모두를 한 곳으로 모을 거다."

유진과 민준이 뒤를 따랐다. 아이의 손이 유진의 손을 잡았다. 세 사람이 함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을의 첫 번째 집에 도착했을 때, 소연은 검을 들어올렸다. 빛이 그 집을 비추었다. 창문이 열렸다. 할머니의 얼굴이 나타났다.

"누구냐?"

할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무녀다."

소연이 답했다.

"모두를 당 앞으로 모아야 한다."

"뭐가 일어났나?"

"응혼이 깨어났다."

그 말이 떨어지자 할머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창문이 닫혔다. 얼마 후 할머니가 나왔다. 옷을 제대로 입지도 못한 채로.

한 집 한 집을 돌면서 소연은 마을 사람들을 모았다. 두 번째 집에서는 중년의 여인이 나왔다. 아이 둘을 데리고 있었다.

"응혼이 깨어났다고?"

여인이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섞여 있었다. 마지막 희망을 붙잡으려는 것 같은.

"그렇다."

소연이 대답했다.

"87일 동안 야차를 막을 수 있다."

"그 후엔?"

여인이 물었다. 아이들이 그녀의 치마를 붙잡았다.

"모른다."

소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다."

세 번째 집에서는 젊은 남자가 나왔다. 그는 소연을 보자마자 고개를 돌렸다.

"나는 안 간다."

그의 목소리가 차갑게 떨어졌다.

"당신 때문에 내 아내가 죽었다. 당신이 응혼을 들었다고 해서 무슨 달라지냐? 우리는 이미 다 잃었다."

소연은 그를 바라봤다. 그의 분노는 정당했다. 그의 원망도 정당했다.

"당신의 분노는 옳다."

소연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 마을을 떠나면, 야차는 당신을 따라갈 것이다. 마을 밖에서 당신은 응혼의 빛을 받지 못한다. 그곳에서 야차는 당신을 찾을 것이다."

남자는 소연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분노만 있었다.

"그래도 난 안 간다."

그는 문을 닫아버렸다.

소연은 그를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유진이 그의 팔을 잡았지만, 소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음 집으로 향했다.

네 번째 집에서는 이장 이준호가 나왔다. 그의 얼굴에는 복잡한 표정이 떠 있었다. 희망과 두려움, 그리고 무언가 더 깊은 감정까지. 그는 소연을 보는 순간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응혼이 깨어났다는 게 사실인가?"

이장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

"사실이다."

소연이 대답했다.

"87일 동안 마을을 지킬 수 있다. 그 동안 우리는 야차의 정체를 알아내야 한다."

"야차의 정체?"

이장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그것은 희망의 빛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감정이었다.

"그걸 알면 뭐가 달라지나?"

"모른다."

소연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할머니 기록에는 150년 전 저주의 이유가 있을 거다. 그것을 알아내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장은 오랫동안 소연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무언가 계산하는 빛이 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저울질하는 것처럼.

"좋다. 나도 간다."

사람들이 따라왔다. 모두가 당 앞으로 모여들었다.

당 앞 제단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수십 명의 마을 사람들. 노인과 아이, 여인과 남자. 하지만 모두가 온 것은 아니었다. 떠나려던 사람도 있었고, 소연을 원망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저주가 깨어나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소연이 말했다. 검을 들었다. 빛이 마을을 밝혔다.

"87일 동안 우리는 함께 버텨야 한다. 아무도 마을을 떠나면 안 된다. 응혼의 빛이 마을을 보호하는 동안, 우리는 야차가 뭔지 알아내야 한다."

"당신은?"

이장이 물었다.

"응혼과 함께 야차를 막는다."

소연이 대답했다.

"87일 동안. 그 동안 당신들은 할머니의 기록을 읽어야 한다. 150년 전 이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야차가 왜 내려왔는지. 그것을 알아내야 한다."

"당신은?"

이장의 질문이 날카로웠다.

"87일 뒤에 뭐가 되나?"

소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하늘을 바라봤다. 응혼의 빛이 하늘 위의 어둠을 계속 가르고 있었다. 그 어둠 안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까마귀 떼처럼 소용돌이치는 형상. 그리고 그 형상이 마을의 한쪽을 노리고 있었다. 마치 먹이를 찾는 맹금류처럼.

야차는 기다리고 있었다.

87일 뒤의 음력 초하루를 기다리며.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소연은 느낄 수 있었다. 응혼의 검을 통해. 야차가 이미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마을의 누군가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당 위의 하늘이 다시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희망의 빛으로 보였다.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 빛 안에 얼마나 많은 죽음이 담겨 있는지. 그리고 그 죽음이 정말로 구원이 될 수 있는지를.

소연은 알고 있었다. 응혼의 검을 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할머니의 기록을 읽으면서, 한 번 휘둘 때마다 수 시간의 생명이 깎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루에 8번, 87일이면 정확히 696번.

그 숫자 앞에서 호흡이 얕아졌다. 손가락이 검의 손잡이를 더 깊이 움켜쥐었다. 뜨거움이 팔뚝으로 퍼져 나갔다. 죽음의 온도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유일한 길이었다.

응혼이 속삭였다. 소연의 귓가에서.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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